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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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만난 한강의 네 번째 책이다. 따뜻하지 않은 그녀의 책, 상처가 있는 그녀의 책, 그래서 더 안아주고 싶은 책들. 반대로 상처를 싸매주는 책, 맘 껏 울게 하는 책들.  담담함이 깊어 소리가 들리는 않는 듯한 그녀의 글들. 책을 읽을 때는 소리 내어 크게 웃으면 안될 것만 같은 책들. 차가움이 제목에서 그리고 보여지는 것을 통해 처음부터 전해진다.

작가인 내게 전해진 조각가(운형)의 이야기로 구성되는 액자소설이다. 운형을 기억하는 나도 나를 기억하는 운형도 보여지는 그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그렇다. 본질이 아닌 껍데기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은 나의 깊은 곳까지 내가 드러내지 않은 것들을 알아보는 이를 만나기도 한다.  운형의 작품을 한 눈에 알아보는 작가는 처음에 그랬듯이 마지막까지 운형을 알아본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 과연 서로에게 무엇을 보았기 때문일까?
  
계부에게 폭행당한 상처를 먹는 것으로 감싸고 살았던 L, 육손으로 태어났기에 놀림을 받았던 어린 시절 전부를 수술과 동시에 싹뚝 잘라버리고 싶었던 E. 그녀들의 겉 모습을 틀로 만들어 작품으로 탄생시키고 싶었던 운형은 알고 있었다. L이 가진 아름다운 손을 통해, 손을 제외한 아름답고 완변한 몸을 가진 E의 얼굴을 통해 L과 E의 상처를 깨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손을 통해 자신을 찾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손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숨막히는 석고를 온 몸에 바르고 틀로 만들어 다시 새로운 삶을 주고 싶었고 그를 통해 스스로도 새로운 삶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까많고 커다란 사각 뿔테 안경을 끼자 거울 속의 나는 전혀 나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단한 변장이라도 한 양. 나는 아무에게도 나를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몰래 불안하던 마음이 어루만져진 기분이었다. 그저 잠시의 기분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안경의 힘은 나에게 주술적인 것이 돼갔다.  숨을 고를 수 있었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고, 여유를 갖고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51~52쪽 ] 어린 시절 이렇게 시작된 운형의 삶은 안경이라는 껍데기에 의존하고 있었다.그러면서도 정작 운형은 자신을 깨지 못한 채, 그녀들이 벗어놓은 그 틀 속에 자신을 숨기고 살고 있었다. 운형에게 삶은 온통 상처였던 걸까? E를 사랑하게 되면서 운형과 E은 서로의 상처로 이루어진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로써 새로이 태어나게 된다.

[삶의 껍데기 위에서, 심연의 껍데기 위에서 우리들은 곡예하듯 탈을 쓰고 살아간다. 때로 증오하고 분노하며 사랑하고 울부짓는다, 이 모든 것이 곡예이며, 우리는 다만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잊은 채. 313쪽]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는 상처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나의 작은 것까지 속속들이 알고있는 어린 시절 동창들의 만남을 꺼리는 작은 일상부터 숨기고 싶은 치부들, 그리고 말하고 싶지 않은 어느 한 순간들. 그러나 그것들을 깨부수지 못해 그것과 함께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내내 부정하고 싶어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내 부분을 석고를 개어 내어 그 모습을 드러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의 껍데기를 부여잡고 있는 걸까? [껍데기는 조개나 게, 거북이처럼 단단한 걸 말해요. 하지만 껍질은 내용물에 완전히 엉겨 있죠. 사과나 배, 고양이과 개, 그리고 사람처럼.286쪽] 그것이 껍데기가 아닌 껍질이라 하여 내 살과 피를 함께 떼어 낸다 해도 그 틀을 만들고 싶다. 그 껍질을 떼어내면 새로운 껍질이 재생될지 모른다. 새로운 피와 살을 만들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변화되어 새로이 되는 내 것.

지금까지 만난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내 맘에 소리없이 다가오지만 아주 큰 메아리를 남긴다. 내게 즐거움과 동시에 기다림을 안겨준다. 이제 또 그녀의 글을 기다린다. 한강, 그녀는 아마도 지금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또 다른 껍데기를 연신 글로써 만들어 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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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0-21 17: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자목련님은 벌써 15년 전에 한강 작가님의 책을 읽으셨군요. 전 이번 노벨상 열풍으로 이제 주문했는데 아직도 발송이 안 되고 있네요. 그래서 주문을 취소 할까, 오전에 내내 고민했는데 오후에 자목련님의 리뷰를 보게 될 줄이야. 갑자기 반가운 마음이 들었어요. 이건 꼭 읽으라는 계시로 알고 취소하길 취소했어요. ㅎㅎ 과거의 자목련님께 감사 합니다~

2024-10-22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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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으로 세상을 물들였던 시인, 도종환. 그가 깊은 숲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음은 작은 월간지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짤막한 산골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다. 그렇게 써내려간 맣은 글들이 이제 우리를 시인이 살고 있는 숲으로 향하게 한다. 그가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 자연의 향기, 그리고 그숲에서 만나는 일상, 산짐승들과 새들의 노래들과 텃밭에 심은 쑥갓, 상추와 대화를 하고 자신을 정좌하는 그곳으로 초대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이 가지고 있는 그만의 색을 시인의 눈으로 보고 시인의 감성으로 써내려간 글들은 마음을 맑게 한다. 그의 말처럼 청안하게 한다. 맑다는 느낌, 그리고 샘물같은 느낌. 그리고 둘러본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 곁에 있는 자연. 그리고 내 모습,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중요한 목표요 이유이기도 하지만 고통의 원인도 거기 있습니다.내가 벗어나야 할 것도 바로 그 안에 있습니다. 영원히 내 것은 없습니다. 52쪽, 다른 사람을 만나는 날 그를 위해 신경썼던 것처럼 나를 만나는 날은 나를 위해 시간을 보냅니다.139쪽] 바쁜 세상, 어지러운 세상을 그 밖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말하고 있다. 조금 천천히 조금 더디게 그리고 조금 자세히 살면 어떨가 하고 제안한다. 세상 모든이에게 주는 편지이건만 마치 오롯이 내게만 보내는 편지인양 읽는 내내 즐거움이 함께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잠시 멈춤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또 세상속으로 돌아올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봄을 안겨주는 책이라 소개하고 싶다. 물론 책속에는 사계가 담겨있다. 그러나 연두빛이 고은 표지에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숲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고 사는 삶은 타인의 눈에는 욕심을 버린 것 처럼 보이고 세상을 버린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에 시를 뿌리던 그가 그 숲에서 새로운 씨를 뿌리게 되었을때 갖었던 수많은 상념들이 글속에서 흐르고 있다. [옳은 것은 옳게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조급한 게 탈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은 서서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183쪽, 많이 읽고 아는 것만큼 마음이 그렇게 깊고 맑게 바뀌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을 조금이라도 바르게 실천하며 사는 일은 휠씬 더 중요합니다. 200쪽] 시인이 조근조근 들려주는 말은 인생의 선배로써 인생의 교수(敎授)로서 곧 강의, 그 자체이다. 

싱그러운 봄날, 아침을 여는 청아한 이슬같은 시인의 모든 글이 이제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 그리고 또 숙연해진다, 이것이 시인의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들일 것이다. 그러니 도종환, 그는 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이 가 있으면 하나를 제대로 볼 줄 모르게 됩니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지 못합니다. 많은 것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적은 것을 깊이 있게 만나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적게 많날때는 가까이서 자세히 보게 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산국화 한 송이도 가까이서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향기롭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은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는 일도 필요합니다. 깊이 있게 알아가노라면 분명히 그 사람의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316쪽] 시인이 숲에서 전해주는 향기가 세상으로 점점 더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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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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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라는 제목을 보고 문학동네의 2007년의 화두는 달인가보다 하고 농담을 삼켰다. 이 책을 고대했다. 얼마나 고대했을까? 무엇 때문 이었을까, 정작 책을 사고 내 앞에 온 책은 내게 괄시를 받고 있었다. 김진규 작가의 당선 인터뷰를 만나고 부터 책에 대한 갈망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것은 화였고 시샘이었다. 한 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작가의 말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썼길래, 처음 쓴 글이 1등을 거뭐졌을까? 39살이라는 나이에 마음속 품었던 화산을 분출하게 한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궁금했다. 그러나 책은 너무 느렸고 나를 힘들게만 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 시대를 따라가야 했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기억해야 했다. 묘연, 태겸, 향, 여문, 설희, 후인, 희우, 난, 기현. 그 알 수 없는 향을 가진 그들을 그렇게 만났다.

어찌보면 한 가족을 중심으로 그의 주변 인물의 관계에 관한 쉬운 이야기일 수 있다. 그 안에 사랑이 있고 욕망이 있고 오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어려웠다. 배경 또한 조선시대의 어느 시대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색을 아는 아버지를 가진 묘연의 아버지를 통해 환멸을 느끼고 차가움을 배웠다. 아버지 하나로 이어진 인연의 고리를 풀어야만 했고 그 자신도 그 인연의 끝을 찾지 못했다.그 고리는 자신의 아들에게 이어지고 엉켜진 감정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여기 저기 차 향이 났다.
'달을 먹다' 라는 제목이 달이 차고 달이 기울고 하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만이 여물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모든 것을 삼키기도 하고 모든 것을 지우기도 한다.

묘연이 중심인가 싶었지만 그 모두가 중심이었다. 하나의 사건에 있어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상황은 달라 보였다. 이 소설, 그렇게 쓰여졌다. 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많은 여인과 이복동생 하연이 남기고 간 딸 난이와 묘연의 아들 희우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그 슬픔이 달이 차오르듯 서서히 그렇게 차오른다.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덮어버릴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관계도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만 구절 구절 글이 좋았다. 작가가 묘사한 계절이(이른 아침이었고 겨울이었다, 뭐든 감추기에 좋았다, 깊은 밤이었고 봄이었다, 미치기에 좋았다, 한낮이었고 여름이었다, 넘치기에 좋았다, 또 밤이었고 가을이었다, 버리기에 좋았다. ) 아름다웠고 계절마다 피어나는 색색의 꽃이 품어내는 향이 좋았다. 정말 그러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중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수많은 달을 먹고 흘러간 시간의 끝에도 인연은 여전하게 슬프고 애닯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또 다른 슬픔을 키우는 후인과, 여문의 마음이 안쓰러웠고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피해 스님이 되어버린 기현의 속내가 서러웠다. 끝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말하는지도 나는 잡을 수 없었다. 사람의 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독할 수 있다는 단순 진리를 새삼 또 확인하게 되며 인간의 솔직하지 못한 욕망의 표현을 끝내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는 생각이 남았다. 사실, 좀 더 잘 쓰고 싶었다. 기다렸던 책이니까. 좀 더 이 책에 대해 좋은 평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 김진규가 가진 세계가 궁금할 뿐이다. 그녀가 써 낼 지금의 소설을 만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이 알아채지 못하는 자기만의 암호로 자신의 상처를 꾸준히 드러내게 마련이다. 무의식적인 구조 요청이라고 보면 되겠다. 214쪽]  내게도 누군가 구조 요청을 보낼까, 바로 볼 수 있어서 그 상처가 빨리 낫도록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저 내 안의 상처만 쓰다듬고 있는게 아닌지.. 책은 덮었고 내게는 여전하게 책 속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향에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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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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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내가 전경린의 책을 선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오래 전에 만난 책의 제목도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이라는 책이었다. 그 향이 너무 짙어서 전경린의 책은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두었었다. '엄마의 집' 이라는 책도 '엄마' 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집' 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도 엄마인데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집이 아닌 엄마의 집이라는 것은 엄마의 공간이라는 뜻일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문학에도 유행이나 흐름이 있는 것일까? 전경린이 황진이를 쓸 당시도 또 다른 황진이가 시선을 받고 있었고 이 책 역시 얼마 전에 만난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두 작가의 작품을 내맘 대로 꼬집어 볼 수 있어 내심 쾌재를 부른다.

우리의 시대는 이만큼 변화하고 있다는 것일까. 이혼녀, 재혼, 별거, 한 부모 가정, 이제는 쉽게 만나지는 단어들이지만 여전하게 그 단어를 만날때 마음이 편치 않음은 나의 보수적 성향 때문일까. 이혼을 한 엄마가 자신의 집을 갖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이제 그 집에서 자신의 전부인 딸과 뜨거운 해후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아빠의 딸이 등장한다. 과연 핏줄이 섞이지 않은 승지와 호은과 엄마는 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책에서 만난 유쾌한 호은과 냉소적인 승지는 보색의 관계처럼 그렇게 두드러진다. 그러면서도 그 조화가 아름답다. 세상을 모두 껴안고 싶은 아빠와 나만의 세상이 곧 세상의 전부라 믿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호은과 승지와 비슷하다. 여기서 나는 작가 전경린의 머리 속을 궁금해했다. 도대체 이런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아니 그녀는 왜 이리 따뜻해지고 평범해졌을까? 내용은 물론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의 미흔도 엄마였건만 미흔과 미스 엔 사이에는 몇 번의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엄마라는 것은 세상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의 집이라는 것은 가족이 아닌 타인도 미움이 가득했던 상대도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아주 큰 공간이다. 그리고 그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는 것이다. 아, 전경린. 나는 그녀에 대한 색안경을 벗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 역시 세상에 대한 문을 열어둔게 아닐까. 가족이라는 것은 이제 점점 그 의미를 정의하기 어려워진다. [일상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존재적 고뇌를 가족과 나누는 것은 무리이다. 일상과 존재의 경계에서 가족간의 절망이 생겨나는 것이다.95쪽] [가족 공동체의 내부는 다정과 간섭이 넘치지만 사실, 한 치만 건너서 들으면 또 얼마나 이기적이고 흉한 공모인가. 96쪽] 가족이니까라는 이유로 쉽게 행한 말들과 행동으로 우리는 더 큰 상처를 만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것, 보듬어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존중해주어야 하는 기본적인 사회인 것이다.

혈연만을 중시하던 우리네 사회에서 다양한 가족의 구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식구라는 말을 가족대신 쓰고 싶다. 공지영이 그려낸 집이라는 것이 화해의 공간이었다면 전경린이 그려낸 집은 공유의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지여의 글이 지극히 감정적이었다면 전경린은 이성적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엄마의 집'이라는 것은 아빠의 부재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우리 사회를 꼬집는 것도 같았다. 곁에 있어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아빠의 부재, 그 부재가 가족을 위한것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그 부재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집을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자신을 갖는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 엔은 책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다. 그녀가 딸 호은에게 하는 말은 모든 엄마가 그들의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사랑이든 삶이든, 난 그게 내 몫의 강물을 헤엄쳐 건너는 일 같아. 그 물은 내 존재로부터 솟아나와 큰 강을 이루어. 누구에게나 혼자 건너야 하는 강이 있는 거야. 263쪽]  [사람이란 관계 속에서 가장 사람답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누구나 일 년에 한 달쯤은 완전히 혼자 지내보는 것도 좋을 거야. 여행을 가라는 게 아니야.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하면서 가능한 지인을 만나지 않고 묵묵히 홀로 생활을 해보는 거야. 자신의 원형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이곳과 자신을 만끽하면서. 270쪽]
함께 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나누며 살고 있는 우리의 집, 나도 집을 꿈꾼다. 진정한 화해와 소통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엄마라서 참 좋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꿈꾸는 집, 그곳에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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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속을 걷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지음 / 예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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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그 장면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다. 온통 하얀 눈이 가득한 러브레터의 오타루가 나를 맞이한다. 아, 그 순백의 눈 속에서 소리치던 슬픈 눈을 가진 여배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직까지 눈을 보지 못한 내게 눈덮힌 오타루를 담은 사진은 경이로움 그 자체 엿다. 그 사진 속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영화, 그것은 몽상일지 모르지만 그 감동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머무르게 된다.

이동진기자가 돌아본 영화 속 그곳은 스크린 속의 꿈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현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의 그곳에 도착하지만 그곳에 영화는 남아있지 않다. 환타지를 꿈꾸는 이에게, 사랑을 이루고 싶은 이에게,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이에게, 미안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15편의 영화 속 풍경 중에 내가 기억하는 영화는 얼마 되지 않다. 한편으로는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갈망이 있어 다행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느끼는 그 어떤 것에 대해 소리치듯 설명하는 글에 대해 공유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영화는 만들어진 이야기건만 우리는 영화처럼 살고 싶어하고 영화 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고 싶어한다. 그런 갈망이 있는 이에게 이 영화 속 풍경을 따라 떠나는 여행기는 저자가 찍어놓은 아름다운 사진들도 함께 있어 여행기로써는 도움이 될 듯하다. 무척 강한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너무 짙은 감상을 고스란히 적어 놓은 글은 객관적 여행을 위한 사람들에게 달콤한 면만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또한 여행 이전에 영화만을 만나는 내게는 몇 편의 영화에 대한 또 하나의 갈망이 생겼다.

비포 선라이즈를 찍고 9년 후에 그 후속작으로 찍은 영화 [비포 선셋], 소풍을 떠난 소녀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정말 마법의 힘이 느껴질 것만 같은 영화 [행잉록의 소풍], 실화를 바탕으로 찍고 몰래 몰래 티벳을 촬영한 영화, [티벳에서의 7년] 등을 비롯하여 영화 전문기자였던 저가의 설명과 함께 많은 영화들이 이 책에서 다시 그려진다.

영화라는 것을 주제로 떠난 여행기의 끝은 영화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한 순간의 장면은 그 찰나를 담은 듯 사라지고 정작 그저 추억일 뿐이고 삶의 궤적일 뿐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많은 삶이 위로를 받는다. 2003년 이후 크리스마스에 방영하는 단골 영화인 [러브 액츄얼리]는 봐도 봐도 지겹지 않고 행복함이 전해지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그래도 지난 한 해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 결국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길. 크리스마스 직후에 새해 첫날이 이어진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길. 잃어버린 것들로 속상해하다가도 누군가 건넨 인사에 미소로 답하면서 새로 시작할 수 있길. 그렇게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또 하나의 크리스마스를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다시 또 한 번 기다릴 수 있기를. 110쪽]  감성에 너무 강하게 다가와 취하는 듯 정신을 차릴 수없는 글들이 많았지만 크리스마스에 만나서 그런지 이 글은 그 짙한 향이 참 좋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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