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그 장면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다. 온통 하얀 눈이 가득한 러브레터의 오타루가 나를 맞이한다. 아, 그 순백의 눈 속에서 소리치던 슬픈 눈을 가진 여배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직까지 눈을 보지 못한 내게 눈덮힌 오타루를 담은 사진은 경이로움 그 자체 엿다. 그 사진 속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영화, 그것은 몽상일지 모르지만 그 감동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머무르게 된다. 이동진기자가 돌아본 영화 속 그곳은 스크린 속의 꿈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현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의 그곳에 도착하지만 그곳에 영화는 남아있지 않다. 환타지를 꿈꾸는 이에게, 사랑을 이루고 싶은 이에게,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이에게, 미안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15편의 영화 속 풍경 중에 내가 기억하는 영화는 얼마 되지 않다. 한편으로는 보지 못한 영화에 대한 갈망이 있어 다행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느끼는 그 어떤 것에 대해 소리치듯 설명하는 글에 대해 공유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영화는 만들어진 이야기건만 우리는 영화처럼 살고 싶어하고 영화 속 한 장면의 주인공이고 싶어한다. 그런 갈망이 있는 이에게 이 영화 속 풍경을 따라 떠나는 여행기는 저자가 찍어놓은 아름다운 사진들도 함께 있어 여행기로써는 도움이 될 듯하다. 무척 강한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너무 짙은 감상을 고스란히 적어 놓은 글은 객관적 여행을 위한 사람들에게 달콤한 면만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또한 여행 이전에 영화만을 만나는 내게는 몇 편의 영화에 대한 또 하나의 갈망이 생겼다. 비포 선라이즈를 찍고 9년 후에 그 후속작으로 찍은 영화 [비포 선셋], 소풍을 떠난 소녀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정말 마법의 힘이 느껴질 것만 같은 영화 [행잉록의 소풍], 실화를 바탕으로 찍고 몰래 몰래 티벳을 촬영한 영화, [티벳에서의 7년] 등을 비롯하여 영화 전문기자였던 저가의 설명과 함께 많은 영화들이 이 책에서 다시 그려진다. 영화라는 것을 주제로 떠난 여행기의 끝은 영화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한 순간의 장면은 그 찰나를 담은 듯 사라지고 정작 그저 추억일 뿐이고 삶의 궤적일 뿐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많은 삶이 위로를 받는다. 2003년 이후 크리스마스에 방영하는 단골 영화인 [러브 액츄얼리]는 봐도 봐도 지겹지 않고 행복함이 전해지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그래도 지난 한 해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 결국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길. 크리스마스 직후에 새해 첫날이 이어진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길. 잃어버린 것들로 속상해하다가도 누군가 건넨 인사에 미소로 답하면서 새로 시작할 수 있길. 그렇게 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또 하나의 크리스마스를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다시 또 한 번 기다릴 수 있기를. 110쪽] 감성에 너무 강하게 다가와 취하는 듯 정신을 차릴 수없는 글들이 많았지만 크리스마스에 만나서 그런지 이 글은 그 짙한 향이 참 좋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