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주문하려고 했다. 궁금한 내용이기도 했고 적립금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책을 정말 읽고 싶냐는 질문이 불쑥 올라왔다. 아니다, 라는 답이 들려왔다. 아주 솔직한 마음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읽어야만 할 것 같아 구매하는 행위, 진심으로 그 책을 원하는지 확실한 답을 미루고 그저 먼저 사면 될 거라 믿는 부끄러운 마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13-08-1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도 이럴 때가 있어서 마음을 접고 주문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최근에 어느 책에서 또 한번 실망을 했지만요.^^

자목련 2013-08-20 19:49   좋아요 0 | URL
책을 선택하는 일은,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 같아요. ㅎ
프레이야 님이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일까, 궁금하네요.
전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을 읽고 있는데 진도가 더뎌요^^

프레이야 2013-08-21 10:19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뒤늦게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읽고 있어요.
자목련님은 읽어보신 책일 것 같은데요^^

자목련 2013-08-21 21:30   좋아요 0 | URL
최근에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을 읽으면서 생각난 책인데, 프레이야 님이 만나고 계셨군요. 책과 서점,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라도 반가워요^^
달콤하고 시원한 밤 보내세요^^*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책이다. 그것이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라면 더욱 반갑고 기쁘다. 최근에 친한 지인에게 선물한 책을 다른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 그 책은, 김 언의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다. 선물 받은 책은 또 있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두 번째인 오현종의 『달고 차가운』이다. 조해진의 책에 이어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보니 계속 모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가까운 이가 읽고 추천하는 책이라면 주저 없이 곁에 두게 된다. 좋아하는 동생이 먼저 읽고 남긴 글을 보고 바로 구매한 조엘 디케르의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의 경우가 그렇다. 지인이 소개한 책이라면, 읽기 전에 기대가 상승한다. 이제 막 첫 장을 펼치려는 웬디 웰치의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은 그래서 더 궁금하다.

 

 

 

 

 

 

 

 

 

 

 

 

 

 

 

 

 

 

 

 엊그제부터 밤이 안온하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 바람이 다르다. 밤을 가르는 듯 우렁찬 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런 다짐을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나는 항상 실패한다

 

  나는 항상 실패한다. 나는 항상 시도한다. 나는 항

 상 물거품이다. 나는 항상 신비하고 절망한다. 나는

 항상 이유다. 나는 항상 결론이고 거의 없다. 나는 항

 상 무한하고 있다. 나는 항상 결정적이고 온다. 멀어

 져가는 대상에 대하여 나는 항상 단정하고 대상이다.

 나는 항상 불가능하고 없다. 홀로 던져져 있다. 나는

 항상 마주하고 적이다. 흑이고 백이다. 나는 항상 흘

 러넘치는 선물. 거리 곳곳을 옮겨 다니는 식물. 어떤

 시각이든 필요하고 어떤 청각이든 고통을 빼먹는다.

 핑계가 아니면 변명으로. 흐름이 아니면 덩어리로.

 액체가 아니면 젤이라도 바르고 나타나서 밤을 움직

 인다. 밤에 움직인다. 나는 항상 서 있다. 거의 죽어

 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묵직하게 달아나는

 영혼을 붙잡고 있다. 돌로 눌러놓고 있다. (125쪽, 「나는 항상 실패한다」전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블루데이지 2013-08-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이 소개한 책이라면, 읽기 전에 기대가 상승한다라는 말씀 저 저 저 너무 공감해요~
왠지 믿고 본다고 할까요?ㅋㅋ

자목련님의 글을 보며
<엊그제부터 밤이 안온하다.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 바람이 다르다.>의 말씀에 끄덕이며
저도 평온해집니다.

자목련 2013-08-16 16:1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꾸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나요. ㅎ

지금 이곳엔 바람이 가득해서 무척 시원해요. 이 바람을 블루데이지 님에게 보내드리고 싶어요^^

2013-08-16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6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끼리는 안녕, -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나의 말들을 믿지 않았다. 현실은 소문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현실과 환상은 구분되지 않았고 삶과 죽음은 뒤엉켰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136쪽

 

 거짓말은 나를 숨기기 위한 방패에 불과하다. 때문에 나는 곧 드러나고 만다. 하지만 나를 감추고자 하는 마음을 아는 이에게 거짓말은 진실이 되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떤 이는 거짓말을 통해 나를 멀리하고 어떤 이는 거짓말을 통해 나와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그 두 관계는 애정의 존재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이종산의 『코끼리는 안녕,』속 주인공 마리는 삶이 곧 거짓말이다. 무엇 때문에 마리가 거짓말을 시작했는지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의 장면을 다 보여주지 않고 모호한 상황만 이어간다. 어쩌면 이러한 전개가 이 소설의 특징인지도 모른다. 짧은 문장을 이용해 감정을 전달한다.

 

마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관을 만드는 여자다. 아버지는 죽고 엄마와는 떨어져 지낸다. 학창 시절부터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의도적으로 속이려 한 게 아니다. 어느 순간 그렇게 시작됐고 멈출 수 없었다. 동물원에서 일하는 민구는 그런 마리를 이해하려 애쓴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결국 그 역시 마리를 떠난다.

 

 말하는 코끼리 우리 앞에서 마리는 드라큘라를 만나고 그의 지난 삶을 듣는다. 오래 전 그가 사랑한 미라라는 여자와 환생이라는 남자의 이야기. 그가 간절히 그 여자를 찾고 있다는 걸 알지만 마리는 민구와 미라의 관계를 말하지 못한다. 코끼리가 죽고 그 우리 앞에 있었다는 이유로 마리는 조사를 받는다. 민구는 미라와 함께 마리를 데리러 온다. 그랬다. 마리는 드라큘라와 함께 있는 게 좋다. 거짓이 아닌 이야기, 아무 의미가 없는 이야기를 그와 나눌 수 있으니까.

 

 마리와 드라큘라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서로를 길들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누군가를 길들이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전한 나를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소중하다. 마리에게 드라큘라가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그를 위해 관을 만든다. 그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드라큘라 옆에 나란히 누웠다. 드라큘라가 관 뚜껑을 닫았다. 안에서 여닫기 편하도록 손잡이를 만들고 잠금장치도 해뒀다. 드라큘라가 관을 안에서 잠갔다. 나는 불편해졌다. 잠금쇠 쪽으로 손을 뻗었다. 드라큘라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내 숨소리가 들렸다.’ 123쪽

 

 소설엔 분명 드라큘라가 등장하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다. 마리가 코끼리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점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말하는 코끼리의 등장부터 판타지 이미지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깔고 그 위에 무심한 듯 경쾌한 대화를 툭툭 던진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는 직접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믿고 그것에 속지 않는가. 우리 삶 속에 부유하는 수많은 이야기처럼 말이다.

 

 ‘-마늘 먹을 줄 알아요?

 -돈 떨어지면 마늘 까.

 -햇빛은 괜찮아요?

 -오늘은 괜찮아. 일 년에 하루는 낮에 돌아다닐 수 있어.

 -보통 땐 관에만 있어요?

 -낮에 보통은.

 -갑갑하겠다.

 -십오 년 넘게 관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는데 뭐.’ 31쪽

 

 이종산은 젊은 작가다. 아니 어린 작가라는 말을 선택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한데 그녀는 거짓말이나 농담이 힘겨운 삶의 순간을 견디게 한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이토록 놀랍고 유쾌한 농담을 건네는 걸 보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랑의 도피 ㅣ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권의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하나는 필요에 의해서, 나머지는 좋았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사랑의 도피』를 다시 읽게 된 건 두 경우에 모두 속한다. 2009년 『다른 남자』로 먼저 읽었다. 물론 그 내용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다.  해서 조금 더 집중해서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부분에서 밑줄을 긋는 건 나의 한계인가.

 

 소설의 인물은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등의 중심에 있다. 그러니까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실이 아닌 약간의 과장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독일이라는 배경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판사 시절 아버지가 유대인에게 선물 받은 그림을 둘러싼 비밀을 다룬<소녀와 도마뱀>, 동독과 서독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겪게 되는 내면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한 <외도>, 유대인 여자친구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독일인 남자친구의 이야기 <할례>을 차례로 보면 전쟁과 이념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것들이 삶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세밀하게 그려낸다.

 

 베를린 장벽에 무너진 후 동독과 서독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외도>에서 화자인 나와 스벤은 체스를 두는 친분을 쌓는다. 스벤의 아내 파울라와 그의 딸 율리아와도 한 가족처럼 지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동독과 서독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어쩌면 그건 평생 풀리지 않는 숙제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장벽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사이의 우정을 저편 당신들의 우정이나 이곳의 우리들 사리의 우정처럼 여길 수도 없구요.” (84쪽, 외도 중에서)

 

 스벤과 파울라는 각자 대학에서 강의를 맡으며 동독이 아닌 독일인으로 정착하는 듯하다. 그러나 스벤은 비밀경찰에게 나와 파울라에 대한 정보를 은밀하게 제공한다. 과거 정당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것,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 대해서 말이다. 그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안 파울라는 크게 화를 내고 그 일로 셋의 관계는 어긋난다. 스벤과 파울라는 율리아의 부모의 역할에만 충실한다. 표면적으로 셋은 여전히 친구로 남았지만 결국 동과 서로 나뉘고 만 것이다.

 

 ‘장벽이 무너지던 겨울을 동서독 사람들 사이의 호기심으로 물든 사랑의 봄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던 그런 것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러던 중 낯설게, 자기 것과 다르게 그리고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만 여겨지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가깝게 평범하게 그리고 성사시게 느껴졌다. 세면대에 떨어져 있는 여자친구의 검은 머리카락처럼, 혹은 그녀와 함께 산책을 할 때에는 마음에 들지만 함께 쓰고 있는 아파트에 있을 땐 신경을 건드리는 여자친구의 덩치 큰 개처럼. 호기심의 대상으로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혼돈 속에서 어떻게 함께 삶을 꾸려 가느냐에 있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아직 관심이 있을 경우에.’ (125~126쪽, 외도 중에서)

 

 <할례>는 유대인 여자와 독일인 남자의 사랑을 통해 이념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안디와 사라는 뉴욕에서 만났다. 독일을 떠난 유학중인 안디는 여자친구 사라의 가족을 통해 유대인의 의식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사라와 안디는 아주 잘 통하는 사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유대인과 독일인의 역사라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함께 독일 여행을 다녀온 후 골은 점점 깊어간다.  

 

 “무엇보다 너희는 나를 편견을 갖고 대해. 너희는 독일인들에 대해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너희는 나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는 거야. 그러므로 너희는 더 이상 나한테 관심을 가질 필요 없는 거지.”

 “우리가 너한테 크게 관심이 없다고? 네가 우리한테 갖고 있는 관심 정도도 안 된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네가 멀리 떨어져서 우리를 시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거지? 그리고 왜 그 차가운 반응을 독일인들한테만 느낄까?” (319~320쪽, 할례 중에서)

 

 안디는 사라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키고 싶다. 해서 유대인의 의식인 할례를 감행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안디는 그녀를 떠난다. 그들에게 전쟁은 아무렇지도 않은 과거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현재였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죽은 후 다른 남자의 존재를 알고 혼란스러운 남편의 심리를 다룬 <다른 남자>, 세 여자 사이를 오가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위험한 남자의 이야기 <청완두>, 죽음과 직면하고서야 이혼 후 돌보지 않은 아들을 떠올리는 <아들>,  무의미한 결혼 생활이 아닌 진짜 삶을 찾기 위해 아내를 떠나는 <주유소의 여인>속 인물의 삶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삶을 흔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이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런 흔들리는 삶을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아름답게 그려낸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황홀하지만 쉽지 않은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때문에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문제는 목표라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이가 많지 않다는 거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완전하다고 느끼는 삶이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불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거나 불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가벼운 나날』은 이처럼 복잡미묘한 삶을 가장 완벽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소설은 건축가 남편 비리와 아내 네드라의 평범한 이야기다. 부부에겐 사랑하는 두 딸과 친구, 애완견이 있다. 친구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듣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대화의 주제를 위해 책을 읽고, 아이들을 위해 직접 동화를 쓰고 연극을 준비한다. 누가 봐도 그들은 행복한다. 가장 완벽하게 연출된 가족사진처럼 말이다. 그러나 부부가 꿈꾸는 삶은 달랐다. 비리와의 결혼이 탈출구였던 네드라에겐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비리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하고 안정된 생활은 생기를 잃은 삶이었다.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51쪽

 

 네드라와 비리의 일상을 통해 엿보는 타인의 삶, 그건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쇼핑을 즐기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교외의 전원주택으로 돌아오는 삶에 만족이 결여되었다면 누가 믿겠는가. 타인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네드라의 갈망은 우리의 내면의 소리와 닮았다. 해서 어떤 장면에서는 마음을 들킨 듯 소름이 돋고, 어떤 장면은 덤덤하게 넘기고, 어떤 장면에서는 화끈거린다. 비리는 능동적으로 삶을 이끄는 네드라가 부러웠고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둘은 이혼을 결정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마흔 하나의 네드라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떠난다.

 

 ‘축제는 끝났다. 아이들에게 그가 수없이 읽어주었던 이야기, 세 가지 소원을 다 써버린 가난한 부부처럼, 그는 절실히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분명히 보았다. 다 말하고 나니 그가 정작 원했던 건 단 한 가지, 아주 작은 소망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집에서 자라길 바랐었다.’ 325쪽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삶과 내가 모르는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 나의 생, 역시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삶에 속한다. 물론 네드라와 비리가 부부였을 때처럼 다 안다고 믿는 공통의 삶도 존재한다. 그건 때로 포장을 원하고 영혼 없는 웃음을 요구했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삶은 내가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이 균형을 이룬 삶인지도 모른다. 네드라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그의 고단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니까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밀 조각들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삶 말이다. 네드라의 말처럼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옮겨가면서 내가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의 접점에 닿는 순간과 마주할게 될 것이다. 그 접점을 우리는 결혼, 이혼, 죽음이라는 말로 부르는지도 모른다.

 

 “전과 다름없다…… 아녜요. 누구도 전과 같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옮겨 가고 있어요.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에요.” 352쪽

 

 제임스 설터는 우리가 살면서 놓치는 삶의 순간을 포착한다. 평이한 순간들을 아름답고 선명하게 담아내 특별하게 만드는 놀라운 작가다. 차마 잴 수 없었던 삶의 무게를 적확하게 측량하는 것이다. 그의 문장으로 태어난 삶은 이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몰랐던 삶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삶이 궁금하다.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우리의 삶.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