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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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때문에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문제는 목표라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이가 많지 않다는 거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완전하다고 느끼는 삶이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불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거나 불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가벼운 나날』은 이처럼 복잡미묘한 삶을 가장 완벽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소설은 건축가 남편 비리와 아내 네드라의 평범한 이야기다. 부부에겐 사랑하는 두 딸과 친구, 애완견이 있다. 친구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듣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대화의 주제를 위해 책을 읽고, 아이들을 위해 직접 동화를 쓰고 연극을 준비한다. 누가 봐도 그들은 행복한다. 가장 완벽하게 연출된 가족사진처럼 말이다. 그러나 부부가 꿈꾸는 삶은 달랐다. 비리와의 결혼이 탈출구였던 네드라에겐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비리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하고 안정된 생활은 생기를 잃은 삶이었다.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51쪽

 

 네드라와 비리의 일상을 통해 엿보는 타인의 삶, 그건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쇼핑을 즐기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교외의 전원주택으로 돌아오는 삶에 만족이 결여되었다면 누가 믿겠는가. 타인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네드라의 갈망은 우리의 내면의 소리와 닮았다. 해서 어떤 장면에서는 마음을 들킨 듯 소름이 돋고, 어떤 장면은 덤덤하게 넘기고, 어떤 장면에서는 화끈거린다. 비리는 능동적으로 삶을 이끄는 네드라가 부러웠고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둘은 이혼을 결정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마흔 하나의 네드라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떠난다.

 

 ‘축제는 끝났다. 아이들에게 그가 수없이 읽어주었던 이야기, 세 가지 소원을 다 써버린 가난한 부부처럼, 그는 절실히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분명히 보았다. 다 말하고 나니 그가 정작 원했던 건 단 한 가지, 아주 작은 소망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집에서 자라길 바랐었다.’ 325쪽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삶과 내가 모르는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 나의 생, 역시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삶에 속한다. 물론 네드라와 비리가 부부였을 때처럼 다 안다고 믿는 공통의 삶도 존재한다. 그건 때로 포장을 원하고 영혼 없는 웃음을 요구했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삶은 내가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이 균형을 이룬 삶인지도 모른다. 네드라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그의 고단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니까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밀 조각들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삶 말이다. 네드라의 말처럼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옮겨가면서 내가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의 접점에 닿는 순간과 마주할게 될 것이다. 그 접점을 우리는 결혼, 이혼, 죽음이라는 말로 부르는지도 모른다.

 

 “전과 다름없다…… 아녜요. 누구도 전과 같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옮겨 가고 있어요.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에요.” 352쪽

 

 제임스 설터는 우리가 살면서 놓치는 삶의 순간을 포착한다. 평이한 순간들을 아름답고 선명하게 담아내 특별하게 만드는 놀라운 작가다. 차마 잴 수 없었던 삶의 무게를 적확하게 측량하는 것이다. 그의 문장으로 태어난 삶은 이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몰랐던 삶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삶이 궁금하다. 투명하거나 불투명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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