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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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의 빼곡한 책등을 훑는다. 끌리는 제목의 시집을 꺼낸다. 어느 곳을 펼치든 은밀한 감정들이 쏟아진다. 시를 읽는 순간, 시와 하나가 된다. 숨을 들이마시는 찰나는 영원보다 길다. 그러나 예전처럼 시를 외우지 못한다. 아니 노력하지 않는다. 소녀, 청춘의 시절을 지났기 때문일까. 마르지 않을 것 같던 감정의 샘물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럼에도 바람이 불면 이은규의 시집 『다정한 호칭』이 생각난다. 비가 오는 날엔 유희경의 『오늘 아침 단어』를 뒤적여 우산에 관련된 시를 찾아 읽는다. 의도하지 않아도 시는 우리의 곁에 머문다.

 

 시란 무엇일까. 눈물이 흐른 자리를 가만히 닦아내는 고운 이의 손수건인지도 모른다. 세계사의 『순간을 읊조리다』를 휘리릭 넘긴다. 넘길 때마다 다른 문장과 마주한다. 슬픔을 삼킨듯한 건조한 시인의 문장에 나는 울컥한다. 내게 속한 시인의 시집을 찾는다. 김혜순, 그리고 최승자를 함께 읽는다. ‘서른 살’ 대신 내 나이를 넣고 읽는다. 시는 이렇게 시를 부른다.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김혜순의 열쇠, 48~49쪽)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의 삼 십 세, 78쪽)

 

 『순간을 읊조리다』엔 칠십 명 시인의 시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의 문장들이다. 시의 조각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할까. 어떤 문장은 일기 같고 어떤 문장은 편지 같고 어떤 문장은 절규이며 어떤 문장은 눈물이다. 누군가의 시가 아니라 모두의 시처럼 익숙한 시어들도 있고 낯선 시인의 문장도 있다.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운 시인,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검색창에 어떤 시인의 이름을 써 넣는다. 

 

 기존의 다양한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시인이나 소설가가 선택한 시를 수록한 책과 달리  『순간을 읊조리다』는 시인의 노래를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의 그림으로 담았다.  한 편, 한 편 정성으로 그려낸 시화전 같은 책이다. 누군가는 학창시절에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을 전하고 받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상대가 시에 담긴 은밀한 감정을 발견하는 예리한 이라면 얼마나 달콤한 고백일까.

 

 가을이 손을 내미는 시기 박준의 문장을 가슴에 새긴다.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박준의 환절기, 199쪽) 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시란 이렇게 위대하다. 그리고 차오르는 달을 기다리는 깊은 밤엔 이런 문장이면 충만하다. ‘밤은 네가 잠들기를 바란다 밤은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황인숙의 밤, 170~171쪽) 이제 밤과 둘만의 시간, 밤의 진심을 듣는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시집이 아니더라도, 시로 빚어진 영롱한 보석을 발견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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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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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애도 : 그건 (어떤 빛 같은 것이) 꺼져 있는 상태, 그 어떤 “충만”이 막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애도는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1977. 12. 8)

 

 애도 : 꼼짝할 수 없는 상태, 그 어떤 방어수단도 없는 상황. (1977. 12. 9)

 

 어쩌면 강력한 애도의 말들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슬픔의 나열을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랬는지도 모른다. 롤랑 바르트의 슬픔은 나의 슬픔과 같을 수 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르지 않다. 아니, 결코 같을 수 없다. 어머니를 잃고 쓴 2년의 일기. 계절이 변화를 견디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일은 경험을 통해서도 쉽게 설명될 수 없다. 아주 짧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기록 속에서 발견한 부재는 아주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아프다. 그래서, 말을 잃는다.

 

 모두가 그렇듯 젊고 눈부셨던 20대, 철없던 그 시절, 나는 어머니의 죽음과 마주했다. 장례를 치르고 당시 살아계신 할머니를 도와 마늘을 엮는 일까지 끝냈다. 그러나 직장이 있던 도시로 돌아온 나는 밤마다 술을 마셔야 했다. 술이 아니면 잠들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해 겨울 직장을 그만두고 도시를 떠났다.

 

 젊지 않은 나이,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나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난 5월 아버지는 이별할 겨를도 주지 않고 떠나셨다. 중환자실에서 잠깐 맑은 의식을 찾으셨을 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시간은 사라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어머니의 그것과 달랐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자꾸 생각난다. 그렇다고 젊었던 시절처럼 술을 마시거나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부르고 싶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구부정하게 앉아 식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보고 싶다. 롤랑 바르트의 감정을 빌려 먹먹해진 가슴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눈이 내렸다. 파리에 폭설이 내렸다. 참 드문 일이다.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그 혼잣말이 나를 아프게 한다:그녀는 결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으리라, 이 눈을 보기 위해, 이 눈 소식을 나로부터 듣기 위해서. (1978. 2. 12)

 

 일상 속에 들어 있는 말없는 가치들과 함께 지내는 일(부엌, 거실, 옷들을 청결히 하고 늘 바르게 정리하기, 물건들 안에 들어 있는 과거와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일) ― 그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비록 곁에 없어도, 나는 그녀와 여전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다. (1978. 8. 18)

 

 내게 속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물건을 생각한다. 어머니와 찍은 사진 몇 장이 전부다. 아버지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버지의 낡은 신발도, 옷도, 담배 냄새가 가득했던 방도 사라졌다. 사진 속에 표정이 없는 아버지가 있다. 이제 아버지는 우리들의 대화 속에 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대화 속에서만 살아 움직인다. 내가 몰랐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는 그들의 형제뿐이다. 롤랑 바르트처럼 꿈에서라도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아직 꿈에서 아버지를 뵌 적이 없다. 어머니는 겨우 두 번 정도.

 

 그녀의 꿈을 꾸는 건 (나는 그녀의 꿈만을 꾼다) 그녀를 보기 위해서, 생생하게 다시 만나고 싶어서인데, 그러나 꿈에서 보는 그녀는 언제나 그와는 다른 마망, 나로부터 잘려나간 그녀의 모습일 뿐이다. (1979. 3. 18)

 

 누군가의 부재를 인정하라고 섣불리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가혹한 말이다. 누구에게나 가족과 연인의 마지막을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어떤 이에게는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긴 시간이 주어지고 어떤 이에게는 찰나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었지만 여전히 슬프다. 어쩌면 슬픔을 달래려는 건 나의 못된 이기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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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부터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책을 주문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고 싶은 책과 살 수 있는 책, 사는 책은 다르기 때문이다. 문학동네에서 청소년 테마 소설이 나왔다. 세 권 가운데 『관계의 온도』를 선택했다. 관계는 어른이든, 아이든, 청소년이든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리고 어렵다. 그런 관계를 어떻게 다뤘을지 궁금하다. 주문한 책을 보니 신간보다 구간이 더 많다. 3900원(5만원 이상 구매시)이란 매우 파격적인 가격으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정약용의 산문집『다산의 마음』, 문화재 지킴이 전형필을 다룬 『간송 전형필』, 소재 때문에 선뜻 읽기가 겁나면서 관심이 가는 『고백』, 모두 구간이다. 그러니까 남들 다 읽은 책을 나는 이제야 읽으려 한다.

 

 

 

 

 

 

 

 

 

 

 

 

 

 

 

 

 

 

 

 

 

 

 

 신간의 유혹은 여전히 강렬하다. 책을 좋아하는 이, 책을 소장한 이, 책을 읽는 이, 책을 모으는 이, 여하튼 책과 관련된 이들에게 『장서의 괴로움』은 지나칠 수 없는 책이다.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읽고 싶은 이어령』, 『버리는 글쓰기』가 내게 강렬한 눈빛을 보낸다.

 

 어제는 동네 어른의 부고를 들었다.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를 잃은 이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내일이 발인이라는데, 기상 캐스터는 폭우를 예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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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4-08-20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밥 대신 책입니다. ㅋㅋㅋ

자목련 2014-08-20 20:54   좋아요 0 | URL
아침엔, 책 주문하느라 밥 때를 놓쳤습니다, ㅋㅋ

프레이야 2014-08-2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밥도 포기할 수 없어요 ㅎㅎ. 쌓여가는데도 책은 좋아요. 빗소리 시원한 저녁입니다^^ 동기들의 부고도 들려오곤 합니다. ㅜㅜ 그런 나이가 되었네요. 죽음이 나이순은 아니지만 ‥

자목련 2014-08-21 18:48   좋아요 0 | URL
분명 구매한 책인데 찾지 못하는 일이 늘어도, 장바구니를 계속 채우고 있어요. ㅎ
여긴 비가 그쳤어요. 흐린 듯하면서도 맑은 그런 하늘입니다.
 
흑룡전설 용지호 - 제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21
김봉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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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는 게 왜 행복한지 알아? 그건 자전거를 타는 순간만은 어떤 고민도 하지 않기 때문이야. 오로지 달리는데 집중해야 하거든. 그러지 않으면 길을 이탈할 수도 있고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 (238쪽)

 

  주인공 지호는 중학교 3학년으로 경기도 평촌에 산다. 회사원 아버지, 애정을 잔소리로 표현하는 엄마, 까칠한 중1 여동생과 함께 산다.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평범 그 자체다. 학교에서도 개그맨 지망생인 ‘오밤’이 유일한 친구다. 그랬던 지호가 자전거를 타면서 달라진다. 아버지 회사에서 나온 자전거를 타면서 지호의 생활엔 생기가 넘친다.

 

 강남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만나는 라이더들과 레이스를 펼친다. 항상 승리하는 지호는 라이더들에게 대단한 존재로 소문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져 당황하는 지호는 묘기 자전거라는 BMX를 타는 ‘스텔스 형’의 도움을 받는다. 지호가 몰랐던 자전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호는 점점 자전거의 매력에 빠져들고 중년의 ‘꿍따리 아저씨’, 작업복과 안전모로 달리는 ‘하이바 아저씨’를 만나 무지개다리 모임을 결성한다. 그리고 지호 또래 여중생 ‘로미’가 합류한다. 늦은 밤, 각자의 일을 끝내고 모여든 형과 아저씨에게 지호는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공유한다.

 

 ‘집에서는 엄마의 잔소리와 여동생의 빈정거림에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오밤을 제외하곤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소극적인 용지호가 아닌, 양재천 물길을 가르며 그 누구보다 빨리 달리는 용사 드래곤! 적어도 무지개다리 아래의 드래곤은 밝은 표정에 말도 잘하는 명랑한 소년이었다.’ (91쪽)

 

 지호의 고민은 친구 문제였다. 공부와 운동을 잘 하는 반장의 생일 초대를 받은 지호는 ‘오밤’과 함께 간다. 앨범을 보다 ‘오밤’은 반장에게 자신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냐고 묻는다. 그 뒤로 학교에서 반장은 지호에게 ‘오밤’을 무시한다. 지호가 이유를 묻자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오밤’이 사과를 했지만 반장은 친구들을 동원해 왕따를 시킨다. 지호가 반장이 아닌 ‘오밤’을 선택하자 이번엔 지호를 괴롭힌다. 심지어 지호의 자전거를 망가트린다. ‘오밤’은 반장의 눈치를 보며 지호를 피할 뿐이다.

 

 어른들은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라고 말하지만 고등학교를 자퇴한 스텔스 형은 반대다. 선생님은 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도 없을 거라고 분노한다. 그래도‘스텔스 형’과  ‘꿍따리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찾아와 지호를 응원한다. 응원에 힘입어 지호는 운동회 참가에 자신을 제외하는 반장에게 비겁하다고 말한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고 반장은 대장 노릇을 그만둔다. 용기를 내 건 지호지만 무지개다리 모임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교를 자퇴하고 힘든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찾아 꿋꿋하게 나가는 ‘스텔스 형’, 비정규직 노동자의 귄익을 위해 거리 시위에 나선  ‘하이바 아저씨’, 돈을 버느라 함께 있어주지 못한 아들의 죽음으로 아파하는 ‘꿍따리 아저씨’, 아빠의 인형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은  ‘로미’ 는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대단히 평범한 우리네 이웃의 모습이다.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지호는 이제 막 좋아하는 게 생겼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생겼다. 좋아하는 걸 위해, 잘 하는 걸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지호의 모습을 상상한다. 또 다른 이름의 수많은 지호를 응원하는 멋진 소설이다.

 

“아직 난 겁쟁이고, 눈치도 없고, 자신감도 없어. 하지만 그게 나야. 피하거나 속인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어. 이제 피하지도 않고 숨지도 않을 거야. 앞으로 난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야.”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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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이의 칠일장 1 : 얘야, 아무개야, 거시기야! - 제1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ㅣ 초승달문고 32
천효정 지음, 최미란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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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옛날에 이름 없는 아이가 살았어. 어쩌다 남들 다 있는 이름 하나 못 가졌는지는 이 아이도 몰라. 집도 절도 없이 그저 바람처럼 떠돌아다녔대. 이름이 없었지만 아이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어. 이름이란 게 남이 쓰는 것이지 자기가 쓰는 게 아니잖아? 이름 없다고 못 먹는 것도 아니요, 못 입는 것도 아니요, 못 자는 것도 아닌걸.’ (1권, 7쪽)

 

 주인공 삼백이는 부를 이름이 없어 삼백 살까지 살게 된 아이다. 저승사자가 세 번이나 찾아왔지만 이름이 없어 죽지도 못한 것이다. 삼백 살에 스스로 삼백이라 이름 짓자 바로 저승사자가 나타나 죽게 된다. 기발한 소재의 이야기는 삼백이가 죽고 난 후가 더 기막히다.

 

 구렁이, 개, 소, 까치, 호랑이, 말 귀신이 상주로 나서 삼백이의 칠일장(葬)을 치러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삼백이의 장례식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장례를 치르는 여섯 밤 동안, 여섯 귀신들이 저마다 삼백이와의 기막힌 인연이 이어진다.

 

 삼백 살을 살았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일을 경험했을까. 동물의 시선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첫째 밤 구렁이 귀신은 달걀을 좋아하는 외동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걀만 좋아하는 외동딸이 구렁이 알을 달걀인 줄 알고 먹었다가 고생한다. 지나가던 거지에게 밥을 내어주고 거지가 알려준 방법으로 산신령을 찾아가 고친다. 놀랍게도 거지가 바로 삼백이였다.

 

 둘째 밤 개 귀신은 임금님이 좋아하던 개에 대한 이야기다. 밥도 안 먹고 시름시름 앓는 개를 고친 건 꼬마 시동이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진짜 사랑을 전할 줄 알았던 시동이 개답게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한 것이다. 셋째 밤 소 귀신은 연날리기에 빠진 아이가 연을 따라 구경한 연나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뒤를 까치, 호랑이, 말이 삼백이의 따뜻한 마음을 이야기한다. 장례식을 치른 동물 귀신은 모두 삼백이의 도움을 받았다.

 

 ‘소 귀신, 덜커덩덜커덩 쟁기로 땅을 파고 구렁이 귀신, 스르륵스르륵 꼬리 말아 관 내리고 개 귀신, 타다닥타다닥 뒷발질로 흙을 덮고 말 귀신, 다그닥다그닥 말굽으로 봉분 다지고 호랑이 귀신, 떽떼굴떽떼굴 둥근 바위 굴려 오고 까치 귀신, 똑똑똑딱딱딱 비석을 쪼았지.’ (2권, 102쪽)

 

 기발한 상상과 거침없는 유머와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유쾌한 동화다. 정말 재미있다. 이야기 곳곳에 타인을 향한 배려와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 있다. 삼백 살까지 사는 삼백이라는 아이를 통해 작가는 웃음과 동시에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야기로만 표현할 수 없는 재치와 해학을 담은 그림이 있어 더욱 빛난다. 재미있는 동화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삼백이를 권한다. 진정 아이들을 위한 재미있는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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