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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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신비한 여정이라고 할까요. 강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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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정지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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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은 아름답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 시절에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아파야 청춘이다’, ‘청춘이니까 괜찮다’는 말은 모두 청춘이 아닌 이들의 목소리다. 청춘의 상처, 청춘의 꿈, 청춘의 사랑은 청춘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그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정지향의 <초록 가죽 소파 표류기>를 읽으면서 울적해지는 이유도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떤 시간도 소유하지 못하고, 어떤 공간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부유하듯 살아온 무표정한 내 모습을 마주한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소설은 수신인이 없는 편지를 쓰듯 건조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울의 새 캠퍼스로 이전하는 지방 대학에서 소설을 공부하는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동아리 선배 요조와 동거 중이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도시를 요조는 고아의 도시라 불렀다. 그러니까 젊음이나 활기는 사라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떠난 인도 여행에서 만난 민영이 고아의 도시를 방문한다. ‘나’를 찾아온 것이다. 입양아 민영은 열여덟 살부터 누군가의 소파를 빌려 생활하는 여행자다.

 

 ‘나’는 학기가 끝나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자취집에 남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한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과 죽음으로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하기 때문이다. 요조도 마찬가지다. 부모님과 의견이 맞지 않아 연락을 끊고 지낸다. 양부모님의 이혼으로 독립한 민영과 다르게 자발적으로 독립한 셈이다. 소설은 서로 닮은 듯 다른 세 명의 청춘 성장기라 할 수 있다.

 

  세 명이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어떤 놀라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 민영이 오면서 방송사 PD 시험을 준비하는 요조가 자신의 고시원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도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걷고 시간을 보낸다. 작가는 쓸쓸한 대학가 주변을 스케치하거나 일상을 나열함으로 자신의 불안을 드러낸다. 하여 불안의 깊이는 알 수 없다. 그 불안이 넓게 퍼지는 것을 느낄 뿐이다. 고아의 도시를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불안하고 초초하다.

 

 ‘나는 세탁기로 다가가서 정지버튼을 눌렀어. 물소리가 그치자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작게 들려왔어. 몇 겹의 벽과 창을 거치느라 뭉툭해진 소리였지만 말이야. 나는 창을 활짝 열었지. 소리가 조금 더 선명해졌어. 맞은편에 주르륵 늘어선 건물들이 보였어.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동네처럼 보였어. 하지만 그 방들 중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있었을 거야.’(17쪽)

 

  ‘나’는 어떤 계획도 목표도 없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지,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서 해야 할지, 소설 쓰기에 전력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막한 마음을 요조나 민영을 통해 위로받고 있었다. 그들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나는 어쩌면 그전까지 민영이 언제까지나 소파를 옮겨다니면서 지내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그애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무척 지쳐 있었어. 나는 민영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 씩씩하게 보이는 그애에게 일방적으로 이해받고 싶었던 거야.’(85쪽)

 

 청춘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살 때는 알 수 없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 그 시절도 끝이 있다는 걸 몰랐다. 결국엔 셋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말이다. 섬세하고 내밀한 감정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쉽게 속내를 드러낼 수 없는 청춘의 감성을 차분하게 잘 담아냈다. 청춘을 살아내고 견디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청춘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으로 남겨지는 사람이 되었어. 태어날 때부터 살던 집에 아빠를 남겨놓았고, D시에 엄마와 오빠를 남겨두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할머니를 혼자 남겨두었는데 말이야. 돌이켜보면 나는 별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남겨지고 나니 떠난 사람들밖엔 생각할 수 없더라고. 내가 보는 모든 자리에 그들이 앉거나 섰던 그림자들이 놓여 있더라고.’(140쪽)

 

 어느 순간 찰나가 될 그 시간을 생각한다. 정착하지 않고 부유해도 좋을 시간 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파에 되어 잠시 표류해도 좋을 시간 말이다. 조금은 싱그러웠고 눈부셨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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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동생이 선물한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표지가 우표로 사용된 책이다. 좋아하는 언니에게 내가 선물한 책은 어떤 우표가 붙은 책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께 밤 언니는 책을 잘 받았다며 문자를 보냈다. 우리는 그 밤에 김연수의 산문집에 대한 짧은 기대를 나눴다.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 언니의 이런 문자를 받았다.

 

 - Y야, 여기는 비오는 아침이야. 보내준 책 너무 유쾌한 걸? 완전 좋아. 고마워! -

 

 김연수를 말하는 하루다. 언니와 나는 김연수를 함께 만나고 서로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예쁜 동생을 생각한다.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진 사람들이다.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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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4-11-28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산문집 읽고났더니 김연수 작가님 팬이 되었어요그리고 선물해주고픈 사람도 떠오르더라구요

자목련 2014-12-01 10:13   좋아요 0 | URL
김연수 작가 님 정말 좋아요. 선물을 받으시는 분도 기뻐할 책이 아닐까 싶어요^^

댈러웨이 2014-11-2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표 사진이 다 다르다는 건 몰랐네요. 전 <4월의 미 칠월의 솔>.콜렉션 들어가야하나요? ㅎㅎ 자목련님, 김연수 산문집 중 최고. 즐독하시기를요.

자목련 2014-12-01 10:12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 님!!!!!!!
잘 지내셨나요. 아니 잘 지내셔야 해요. (횡설수설...)
몇 개의 계절이 지났는데 댈레웨이 님은 봄처럼 반갑고 환해요.

김연수 산문집 중 정말 최고인가 봐요. 여기 저기 끊이지 않아요.
여긴 눈이 마구 쏟아져요. 검게 물든 하늘이 정말 예뻐보여요.
아, 정말 반갑고 반가워요!!

게라심 2014-11-29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표랑 표지 색상, 이 디자인이 제일 이쁜 것 같아요.

자목련 2014-12-01 10:08   좋아요 0 | URL
다른 디자인도 갖고 싶게 만드는 마케팅, ㅎ
 
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지음, 박산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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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사랑에 성공할 확률은 낮다. 여기서 성공이란 오랜 연애와 결혼을 뜻한다. 처음 사랑에 모두 서툴기 때문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일도 상대의 마음을 읽는 일도 처음이라 어렵고 힘들다. 첫사랑이 애틋하게 남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첫사랑의 이름과 같은 여자친구를 계속해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존 그린의 장편소설 『이름을 말해줘』의 콜린에게 캐서린이란 이름은 인연이거나 악연일 것이다.

 

 한때 신동으로 주변의 기대를 받았던 콜린은 열아홉 번째 여자친구 캐서린에게 차였다. 놀랍게도 열아홉 명의 여자친구 이름은 캐서린이다. 어쩌다 콜린은 캐서린 이란 이름에 빠지게 되었을까. 실연한 친구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하산은 콜린에게 자동차 여행을 제한한다. 머리속엔 온통 캐서린이 가득한 콜린과 하산은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무덤이 있는 건샷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린지라는 소녀를 만난다. 

 

 콜린은 린지 엄마의 일을 돕기로 하고 린지의 집에서 머문다. 린지 엄마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건샷에 어떤 곳이며 어떤 일을 했는지 녹취하는 일이다. 그리고 콜린은 지금까지 차인 연애를 증명할 공식을 만들기로 한다. 그러니까 그래프로 지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수학 공식은 콜린과 지금까지 만나온 캐서린에게 일어난 일을 통계로 어떤 연애를 하든 콜린이 차일 거라는 공식이다. 그러나 공식을 만들수록 변수가 생긴다.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다른 것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애너그램, 책에서 배운 사실들을 뱉어내기, 이미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원주율 99자리 암기하기, 똑같은 아홉 글자의 이름을 가진 여자들과 계속 사랑에 빠지기, 계속 타자를 치고 또 치고 또 치고 또 치고, 그가 독창성을 발휘할 유일한 희망은 이제 그 수학적 정리밖에 없었다.’ (137쪽)

 

 소설은 이처럼 엉뚱한 이별 공식과 함께 콜린과 린지의 지난 시절을 들려준다. 건샷에서 나고 자라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는 린지. 콜린이 정리한 이별 공식을 읽으면서 린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애정을 생각한다. 캐서린 외에는 어떤 사랑도 할 수 없다던 콜린도 린지에게 호감을 느낀다. 린지의 남자 친구(또다른 이름의 콜린)가 바람을 피우는 사건으로 둘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다.

 

 이별을 수학공식으로 정리하다니, 정말 기발한 상상이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에서 만났던  열정 가득한 십 대의 발랄함과 순수한 사랑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반복되는 짧은 연애를 통해 과거가 된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콜린과 린지의 마음은 커진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과거는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미래는 그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콜린처럼 조금씩 자란다. 

 

 ‘콜린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의 간격, 우리가 예측하는 일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 사이의 간격에 대해 생각했다. 그 간격 사이에 자신을 다시 만들어낼 충분한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신동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공간, 그 이야기를 좀 더 낫고 다르게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다시 계속해서 태어날 수 있는 공간이. 뱀을 죽이는 사람, 대공, 또다콜 퇴치자, 어쩌면 천재까지. 누구든 될 수 있는 공간이 거기 있었다. 지금까지의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 콜린이 건샷에서 배운 것은 다가오는 미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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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부를 전하는 일은 얼마의 마음 조각이 필요한 일일까. 곧 닫힐 11월을 보내는 날들이라 그런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립다. 어느 계절을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마음이 작아져서가 아니라, 일이 많아서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불안하고 서운하다.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 건 아닌가 쓴 약을 마시는 짐작을 한다.

 

 또 한 해를 살았다는 안도와 함께 제대로 살지 못한 날들을 홀로 원망한다. 매년 올해의 리스트를 작성했지만 2014년에는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반복되는 일상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과 연락을 취하며 그들의 얼굴을 보고자 했던 다짐도 냉동실 속 아이스크림처럼 얼어버렸다. 이제는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야만 한다.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고 누군가의 소식을 듣는다는 건 소소한 기쁨이 아니라 아주 큰 즐거움이다.

 

 작은 소동이든 큰 사건이든 일어나고 해결된다. 죽음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매일 죽음의 소식을 듣는다. 가까운 이, 누구나 다 아는 공인, 나와는 상관없는 어떤 사람의 죽음을 듣는다. 때문에 죽음에 익숙해진다. 때문에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다 마주한 소중한 이의 죽음은 버릴 수 없는 상처가 되고 지울 수 없는 그림이 된다.

 

 

‘누군가 죽는다는 것은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완전한 이별, 미련과 기대와 슬픔마저 사치로 만들어버리는 깨끗한 결단. 종지부. 두부를 삼키면 두부가 눈앞에서 사라지듯이 죽음은 그들을 삼켜 없애버린다.’ (내 침대 아래 죽음이 잠들어 있다 중에서, 187쪽)

 

 어쩌면 나는 박연준의 『소란』에서 그 상처와 그림을 매만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의 문장이 건네는 안부가 오직 나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문장에서 그 봄을 떠올리고 잠시 봄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랑이 편애라면, 나는 4월의 나무 이파리들을 편애한다. 꽃 진 다음 이파리가 주인공이라고 외치듯, 막 태어난 색깔인 듯 화사하게, 처녀의 종아리처럼 빛난다. 아직은 떨어질 일이 없다고, 아마 영영 없을 거라고 자신하는 저 몸짓! 앳된 얼굴들. 자전거를 막 배운 아이처럼 생동하는 움직임! 눈물이나 떨어짐, 기우는 일 따위는 모르는 듯 떨다 웃다 선명해지는 저 잎사귀들. 저건 어느 나라 사파이어지? 그늘마저 화사한 4월의 나무들! 좋다. 참 좋다!’ (이파리들 전문, 145쪽)

 

 

 4월을 편애하는 내게 이런 문장은 달콤한 커피처럼 스며든다. 겨울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에 봄으로의 도피를 도와주는 문장이다. 그 봄, 어디든 연두가 춤을 췄다. 그리고 그 봄 부실한 이를 가진 마른 과일 껍질 같던 아버지가 밥상에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고 있었다. 제 기능을 상실하는 귀로 인해 내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팥죽색 얼굴 위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다

  미소처럼, 아주 조금 찡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지나가는 뱀을 구경했다

 

  기운이 없고 축축한 ― 하품을 하는 저 뱀

 

  나는 원래 느리단다

  나처럼 길고, 나름답고, 축축한 건

  원래가 느린 법이란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어둠이 고개를 다 넘어갈 때까지

  눈을 감으렴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뱀이 된 아버지」 의 일부

​

​

  귀여운 귀여운 아버지

  사그라지는 몸

  사그라지는 목소리

  사그라지는 실체

 

  마침내 잦아드는,

  흘러넘치는

  아버지라는 액체  -「물빛, 정오」 의 일부

 

 

 아버지도 무언가가 되었을까. 시 때문인지 박연준과 아버지는 같은 단어로 여겨진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킨 큰언니에게 아버지는 어떤 단어로 기억될까. 아직 그 질문을 큰언니에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영영 묻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는 걸 안다.

 

 곧 12월이 된다. 잠시나마 세상의 죄악을 덮을 수 있다고 믿는 천사의 눈이 내릴 것이다. 12월의 첫날, 다시 이 문장을 읽을 것이다. 끝이라는 말보다 시작이라는 말을 내뱉게 되는 12월이 될지도 모른다. 12월이 되면 불안을 누르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나만의 12월을 갖고 싶다. 

 

 

 ‘이상하다. 12월이 되면 모든 것의 윤곽이 흐려진다. 달력의 숫자들조차 꿈틀거리며 도망가려는 듯 보인다. 명징한 얼굴을 보여주길 거부하듯, 12월이 품은 날들은 웬일인지 모두 흐리다. 인디언들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 혹은 ‘침묵하는 달’,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늙은이 손가락 달’, ‘태양이 집으로 여행을 떠나는 달’ 등으로 부족에 따라 달리 부른다. 재미있다. 우리말로 12월은 ‘매듭 달’이다.’ (12월, 머뭇거리며 돌아가는 달 중에서, 197쪽)

 

 

 여전히 당신의 목소리는 내게로 오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목소리도 당신에게 닿을 수 없다. 안부 대신 건네는 문장을 당신의 목소리로 읽히는 상상을 한다. 상상은 곧 현실이 되리라는 믿음과 함께. 가느다란 믿음이 이스트를 품은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 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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