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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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되고 지속되는 시간에도 늘 외로운 사랑이 있다.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 혼자만의 사랑이 그렇다. 반드시 타인에게 인정받아야만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랑은 축복 속에 있을 때 더 눈부시지 않을까. 사랑으로 고독하고 아파해도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기억을 있다면, 유리조각을 손에 쥔 듯, 베이고 피가 나도 버릴 수 없는 그것이 사랑이라 말할 것이다. 그렇게 시퍼런 멍이 번져, 때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도록 아픈 소설을 만났다. 전경린, 감각적인 언어로 사랑을 탐미하는 그녀가 다시 사랑으로 돌아왔다.  

 소설은 어둠을 닮은 여자, 누경의 이야기로 한 편으로는 통속적인 사랑이야기와 자아 성장을 그렸다. 평범하고 조용하게 자신의 삶의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사랑과 과거의 사랑을 동시에 보여준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어떤 사람도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 그녀가 사랑한 남자, 서강주.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 기현이 있다.  

 소설은 누경이 왜 그토록 불안하게 살아왔는지, 고통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그녀의 일기를 통해 보여준다. 열 여섯 폭행으로 인해,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기를 기록해야 했던 슬픔이 전해져 누경은 곧 내가 된다. 그런 누경에게 서강주가 없었다면 그녀는 금세 녹아버렸을 것이다.  

 2월 3일
 그가 전화를 했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옆 빌라에 사는 노부인 둘이 우산을 쓰고 나란히 아카시아나무들이 서 있는 낮은 언덕을 내려갔다. 옛날 여학생들 같았다.
“괜찮니?”
 “뭐가요?”
 “비가 내리니, 너의 빈 상자들이 걱정돼”
(……)
 “우린 마음이 같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같아.”   - p153


 누경과 서강주는 먼 친척관계였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아내가 있던 서강주와 누경은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말에 속해선 안될 사람이었다. 누경은 서강주라는 빛으로 존재하는 그림자와 같았다. 위태로운 둘의 관계, 시작이 끝이었야 했던 사랑이었지만, 누경은 그로 인해 숨쉬고 있었다.

 그런 누경을 지켜주고 싶은 기현은 자신을 밀어내도 여전하게 그 곁에 머문다. 아픈 누경을 간호하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겠다고 한다. 사랑은 어긋났는지 모르나, 서로의 진심을 알았기에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다.

 지독하게 외로운 소설이다. 전경린만의 쓸 수 있는 그런 소설. 누경의 일기를 쓰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 처럼 자연스레 누경에게 다가오는 일상과 사랑이 평온하길 간절히 바랐겠지 싶다. 그 간절한 바람으로 나도 응원한다. 연두빛 봄날, 그 안에서 빛날 누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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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파티 - 영국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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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떠올리면 오래 전, 우리집에도 세계 문학 전집이 있었다. 꽤 묵직했고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가득했다. 내가 읽은 건 겨우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 바퀴 밑에서가 전부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건 무리였다.  그 뒤로 세계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문학을 읽는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만나는 것이다. 

 창비 세계 문학 전집 영국편에는 <크리스마스 케롤>로 유명한 ‘찰스 디킨즈’ 을 시작으로 ‘토머스 하디’, ‘조피프 콘래드’, ‘제임스 조이스’, <여자의 방>의 ‘버지니어 울프’, ‘D.H 로렌스’,‘캐서린 맨스필드’,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도리스 레씽>까지 만날 수 있다.  

 찰스 디킨즈의 <신호수>나 토머스 하디의 <오그라든 팔>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을 다루었고 뒤를 이은 작가의 소설들은 그 시대의 영국의 변화를 작품속에서 함께 볼 수 있었다.  영국엔 유독 여성을 소재,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회상을 담은 소설이 많았다. 아마도 계급이나 신분에 따라 차별을 받았던 사회상이 반영해 세상에 고발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오그라든 팔>, 버지니어 울프의 <유품>과  D.H 로렌스의 <차표 주세요>,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타피>다. 

 <오그라든 팔>을 보면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두 여자의 이야기로, 두 여자 간의 미묘한 감정과 그들의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가정 환경을 엿 볼 수 있다. 아이까지 낳았지만, 남자와 살지 못하는 여자가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한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아내를 질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자가  꿈에 아내를 공격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나타난다. 정작 두 여연은 만남과 동시에 서로에게 끌리나, 결국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한 증오는 커지고, 기묘한 결말에 이른다.

 죽은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아내의 외도를 알게되는 <유품>, 바람둥이 남자에게 농락당한 여자들이 합심하여 남자를 벌하는 <차표 주세요>는 무척 현실적이었다. 자신만이 최고인 줄 알고 무시했던 아내에게 뒤통수를 맞은 남편, 여자들의 진심을 쥐고 흔든 바람둥이 남자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는 모습은 같은 여자로 살짝 통쾌하기도 했다.

 <가든 파티>는 부유한 집안의 소녀가 파티를 준비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빈부 격차를 실랄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파티가 시작될 무렵, 빈민가에서 죽은 남자의 소식을 듣고, 소녀는 추자고 말하지만, 가족들은 개의치 않는다. 파티가 끝나고 소녀는 그 집을 방문하게 된다.소설은 소녀의 시선을 통해 수직적 관계의 사회를 비춘다.

 창비 세계 문학의 특징을 꼽자면, 단편의 시작전 작가의 이력을 수록한 점과 마지막에 ‘더 읽을거리’라 하여, 다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장들의 단편을 통해 영국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었고, 특히 캐서린 맨스필드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을 더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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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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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색채, 상실감으로 가득찬 여자의 눈빛. 표지만으로도 깊은 슬픔이 전해진다. 이미 1997년 아카데미 9개 부분을 수상한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소설은 아주 천천히 속내를 드러냈다. 소설은 내게 집중을 요구했다.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만난 네 명의 이야기다. 수도원에 사막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화상을 입은 영국인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간호사 ‘해나’가 있었다.  그녀를 찾아온 ‘카라바지오’는 죽은 아버지의 친구이며 첩자이자 도둑이었고, 그곳에 지뢰와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공병 ‘킵’이 찾아온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화상 환자는 자신을 돌봐주는 해나에게 사막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를 영국인이라 굳게 믿고 있는 해나에게 카라바지오는 그가 영국인이 아닐 꺼라 주장한다. 전기가 끊긴 수도원은 그들에게 안식처와 같았다. 카라바지오가 구해오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때로 춤을 추며,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완전하게 변화하였고, 전쟁이 끝난다 해도 그들은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전쟁으로 해나는 그녀 자신과 아버지를 빼앗겼다. 절망과 상실감으로 해나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거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읽는 동안 몇 몇 문장은 머리 속으로 장면을 그려본다. 어둠이 가득한 수도원, 희미한 촛불에 의지하여 영국인 환자 머리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해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한 여자와 사막을 이야기하는 남자.  가족과 형제를 떠나 낯선 나라의 공병이 된 청년 킵, 첩자 활동 중에 손가락을 잃은 카라바지오. 그들은 어느새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해나와 킵은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사랑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처절하며, 강렬하다. 사랑은 참으로 작아서 바늘귀도 들어갈 수 있다(p381)는 글처럼. 

 소설은 잔잔한 음률이었고,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들의 앞 날은 어떻게 펼쳐질까?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전쟁으로 인한 상실은 치유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의문의 끝에는 여전하게 삶이 있었다. 의사가 되었고, 가정을 이룬 킵이 해나를 떠올리는 장면은 영화의 엔딩이었을까?   

 이제는 식사 시간에 그녀와 다시 이야기하고 그들이 천막 안에서나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가장 친밀감을 느꼈던 그 단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요동치는 강같은 공간을 포함하고 있었던 두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를 회상하자 그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던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소년답고 진지한 사람. 나긋나긋한 팔은 그가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를 향해 허공으로 뻗는다. 젖은 장화는 끈을 한데 묶어 이탈리아의 문가 옆에 서 있다. 그의 팔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대 위에는 엎드린 인물 형상이 있다.p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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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사나이 -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기홍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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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연주나, 노래에 매혹되면 한동안 그 음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해서, 블로그의 배경음악이나 CD를 구매해서 반복해서 듣곤 한다. 몹시 화가 났을 때, 울적할 때, 슬픔을 가누지 못할 때, 음악은 큰 위로가 된다. 음악은 감성의 자극 이상으로 영혼까지 흔드는 힘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 이유는, 소설 <피리부는 사나이>때문이다. 쥐를 몰아내기 위한 피리 소리를 듣고 어디론가 사라진 아이들. 무엇이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까?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까?

 소설은 주인공  ‘
나’가 2004년 대학에 입학하고 새로운 만남과 일상에서 시작한다. 스무 살, 대학 신입생의 일상은 잦은 환영회와 술자리로 이어진다.  대학은 새로운 세계라 할 수 있다. 어느 세계든 그 곳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다. 하여, 하숙집 친구인 ‘우진’과 도서관에서 만나게 된 ‘수연’과 어울렸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술자리로 하룻밤 신세를 진 같은 과 동기 정현과 좋지 않은 소문에 휩싸이게 된다. 드러내 놓고, 해명을 하지 않았기에 소문은 더 커지고 결국 정현을 비롯하여 동기들과의 관계는 멀어진다.

 그럴수록 수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축제 때 우연하게 타로 점을 보게 되고, 수연은 자신이 뽑은 카드를 보고 놀라며 그 이후로 소식을 끊는다. 수연에 대해 하는 것이 없었던 나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다시 만난 수연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자신을 지배하는 듯한 운명적인 피리 소리에 대해, 그 이후의 삶에 대해. 피리를 불던 남자를 잊지 못한다고. 나는 점점 그 남자가 궁금하고,
그러던 차에 묘한 기타 연주를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정현의 연주였다. 불편한 사이였던 정현에게 기타 연주를 배우면서  그 음악을 만든 정현의 오빠, 여행에서 돌아온 하숙집 형 이반에 대해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레 친하게 지낸다.

 방학을 맞아
우진은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수연은 휴식을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난다. 정현은 수연이 잊지 못하는 피리부는 남자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수연이 피리 소리를 들었던 파티 장소를 시작으로 그 남자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하며 소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남자의 정체와 배후에 세계를 무력으로 변화시키려는 테러집단이 있었다. 수연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나는 수연을 찾으러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에선 놀랍고도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소설은 아주 섬세하고 차분하게 나의 일상의 변화를 그렸으나, 다소 지루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비밀스런 수연이 이야기를 잘 이끌고 있다. 수연이 들었던 피리소리는 아이들을 사라지게 한 피리소리와 같은지 그 진위를 확인하고 싶게 한다. 더불어 정현의 기타 연주도 그러하다.  또한 소설은 나와 맺어지는 관계의 확장으로  인한 내면의 성장과 ‘피리 소리’란 문을 통해 새로운 변화된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작가는 ‘피리 소리’를 몽환적인 상징으로 그 소리가 열어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나는 옷을
챙겨입고, 운동화 끈을 꽉 묶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아직은 멀리 있는 그들을 향해.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를 향해. p 319

 주인공이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는 과연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 세계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계가 아닐까.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2004년을 전후로 세계엔 폭탄 테러와 자연 재해가 있었던 해로, 작가는 주인공 나의 개인적인 시선과 경험을 통해 사회,더 나가 세계적인 폭력과 무력의 문제가 결코 남의 문제만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비해,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만남과 관계에 있어 작위적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젊은 작가가 긴 호흡으로 다채로운 스토리를 엮어내고자 했음은 대단하다. 해서, 다음엔 더 탄탄한 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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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타로 카드 뒷장처럼 겹겹이 펼쳐지는지. 물위
                   에 달리는 꽃잎들 맴도는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
                   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 사과파이의 뜨거운 시럽
                   이 흐르는지, 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지. 유리공장
                   에서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부서지는지. 어
                   쩌자고 젖은 빨래는 마르지 않는지. 파란 새 우는지,
                   널 사랑하는지, 검은 버찌나무 위의 가을로 날아가는
                   지. 도대체 어쩌자고 내가 시를 쓰는지, 어쩌자고 종
                   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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