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강렬한 색채, 상실감으로 가득찬 여자의 눈빛. 표지만으로도 깊은 슬픔이 전해진다. 이미 1997년 아카데미 9개 부분을 수상한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소설은 아주 천천히 속내를 드러냈다. 소설은 내게 집중을 요구했다.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만난 네 명의 이야기다. 수도원에 사막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화상을 입은 영국인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간호사 해나’가 있었다.  그녀를 찾아온 ‘카라바지오’는 죽은 아버지의 친구이며 첩자이자 도둑이었고, 그곳에 지뢰와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공병 ‘킵’이 찾아온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화상 환자는 자신을 돌봐주는 해나에게 사막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를 영국인이라 굳게 믿고 있는 해나에게 카라바지오는 그가 영국인이 아닐 꺼라 주장한다. 전기가 끊긴 수도원은 그들에게 안식처와 같았다. 카라바지오가 구해오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때로 춤을 추며,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완전하게 변화하였고, 전쟁이 끝난다 해도 그들은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전쟁으로 해나는 그녀 자신과 아버지를 빼앗겼. 절망과 상실감으로 해나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거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읽는 동안 몇 몇 문장은 머리 속으로 장면을 그려본다. 어둠이 가득한 수도원, 희미한 촛불에 의지하여 영국인 환자 머리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해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한 여자와 사막을 이야기하는 남자.  가족과 형제를 떠나 낯선 나라의 공병이 된 청년 , 첩자 활동 중에 손가락을 잃은 카라바지오. 그들은 어느새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해나와 은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사랑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처절하며, 강렬하다. 사랑은 참으로 작아서 바늘귀도 들어갈 수 있다(p381)는 글처럼. 

 소설은 잔잔한 음률이었고,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들의 앞 날은 어떻게 펼쳐질까?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전쟁으로 인한 상실은 치유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의문의 끝에는 여전하게 삶이 있었다. 의사가 되었고, 가정을 이룬 이 해나를 떠올리는 장면은 영화의 엔딩이었을까?   

 이제는 식사 시간에 그녀와 다시 이야기하고 그들이 천막 안에서나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가장 친밀감을 느꼈던 그 단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요동치는 강같은 공간을 포함하고 있었던 두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를 회상하자 그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던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소년답고 진지한 사람. 나긋나긋한 팔은 그가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를 향해 허공으로 뻗는다. 젖은 장화는 끈을 한데 묶어 이탈리아의 문가 옆에 서 있다. 그의 팔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대 위에는 엎드린 인물 형상이 있다.p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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