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러니까 그저께 3월 15일에 잠깐 울었다. 울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잠깐 내 나이를 생각했고, 3월의 절반이 지났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 불안이 몰려왔다. 2010년은 어떤 리스트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계획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 74일이 지났다. 74라는 숫자가 크게 다가왔다. 정신을 차려야지 않냐는 질책의 소리를 들었다. 

 저녁에 고모와 통화를 했다. 사촌들의 근황과 다른 고모들의 소식을 들었고 여전하게 걱정의 잔소리를 들었다.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성의없는 대답을 했다. 고모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살뜰하게 나를 챙길까 알면서도 그랬다. 드라마를 하나 보고 읽다 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는 왜 울었을까, 생각했다. 

 봄이라는데, 여전하게 춥다. 바람 탓인지, 아직 창을 열고 베란다에서 햇살을 맞지 못했다. 그래도 곧 여기 저기 꽃이 필 것이다. 곧 연두를 지나 초록이 가득할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 여물 것이다. 봄은 곧 지나갈 게 분명하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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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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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편혜영의 소설을 기다렸다.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 >에서 일상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섬뜩하게 그려낸 편혜영. 이번엔 과연 얼마나 끔찍한, 혹은 잔인한 일상을  보여줄까. 눈, 코, 입, 귀, 정상적인 한 남자의 얼굴이 분명한데, 뭔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표지는 소설에 대한 암시처럼 느껴진다. 
 
 소설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제약회사 약품개발원으로 일하는 남자는 쥐를 잘 잡는 이유로 C국의 본사로 발령을 받는다. 전처와 이혼하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남자에게 파견근무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C국의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이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면 족했다. 막상 도착하니 C국은 전염병이 돌았고, 남자의 숙소가 있는 제 4구역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본사 직원 몰은 출근이 늦어진다는 말을 끝으로 연락을 끊는다.

 남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실에 외로움을 느끼며 전처와의 일상을 회상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한 시간이 줄었다. 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전염병으로 인해 제 4구역은 정기적인 소독과 식사가 제공된다. 몰과의 연락을 위해 본사와 회사에 전화를 걸지만, 아무 소식도 전해듣지 못한다.  외부와 어떤 접촉도 없이 지내던 남자는 모국에 남겨둔 개가 생각나 동창 유진에게 개를 부탁한다.

 유진은 남자의 출국 전날 잔인하게 죽은 개와 전처의 소식과 자신이 용의자란 사실을 전한다. 남자는 술에 취한 출국 전날을 떠올리지만, 전처와 개를 죽인 기억은 없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런 방문자에 불안해진 남자는 숙소에서 뛰어 내린다. 노숙자가 된 남자는 공원을 거쳐 하수도에서 생활하며 시궁창의 쥐를 잡는다. 방역팀장에 의해 임시방역원으로 선발된 그는 쥐를 잡으며 살아간다.

 남자는 여전하게 몰을 찾는다. 힘겹게 본사에 방문했으나 전영병에 걸려 퇴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몰은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 쥐를 죽이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전염병이 사라진 C국에서 남자는 쥐를 잡아 돈을 벌며 살아간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삶은 고독함과 외로움이 함께였다. 모국에 전화를 걸어 유진을 찾거나, 전처와 같은 이름을 찾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누가 전처를 살해했을까. 소설은 강한 의문을 제시할 뿐 답은 알려주지 않는다.  제약회사 약품개발원인 주인공이 전염병이 도는 나라에게 결국 쥐를 잡으며 살게 되는 이야기. 살아있는 쥐를 죽이는 끔찍함이나 전염병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회의 묘사는 전작과 다름없이 그로테스크하나 훨씬 더 꼼꼼하다. 그 기막힌 전개과정을 보면 편혜영이 무척 공들여 썼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인물들은 유진을 제외하고 이름이 없다. 주인공 ‘남자’를 시작으로 ‘전처’, ‘C국’, ‘제 4구역’, 모든 외국인으로 대표되는 ‘몰’, 심지어 이름없는 ‘개’까지. 익명성으로 부여된 인물은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라도 예외없이 전염될 수 있는 전염병도 그러하다.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모두에게 닥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좁은 사각형의 유리상자 안에서 그는 공연히 떠오르는 이름들을, 전처의 이름이나 유진의 이름 혹은 자신의 이름을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동전을 넣지 않으면 어떠한 신호음도 떨어지지 않는 수화기는 묵묵히 그가 부르는 이름을 들어주었다.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유리상자 안에서 가볍게 공명했다. 그 이름들은 닿을 수 없는 먼 과거와 유일하게 이어진 것이었다. p 234  

 남자의 삶은 기구한 운명이라 해야 할까. 전처나 직장 동료와 대화를 회피하고 살아온 시간과 명확한 의사 전달을 뒤로 하고 결과를 예측해 결국 고립되고 만다. 따지고 보면, 모두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다. 공중전화를 볼 때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싶은 남자의 간절함은 고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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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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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보다는 지적 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로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감동을 소설로 만나지는 못했다.  실은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이 처음인데, 거기다 50주년 기념 소설이라니 어려운 소설을 만났구나 싶었다.  

 소설은 작가 오에의 삶이 아닌 인간 오에의 평범한 일상으로 시작한다. 작가 스스로가 화자가 되어 소설을 전개한다. 노년의 아버지와 중년의 몸이 불편한 아들이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는 일상적이다. 

 “아직 백 살까지는 시간이 있지. 소설도 주제보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쓸 생각이야.”
 “끝까지 못 찾을 수도, 있습니까?”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도 소설가로 살겠다는……”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거다”  p 11

  소설가로 살아온 50년, 그리고 남은 생도 소설가로 살겠다는 화자의 담담하고 결연한 의지가 전해진다. 순간, 숙연해진 나는 생의 마지막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소설을 들여다보면, 일흔이 넘은 작가에게 찾아온 대학 친구 고모리, 그로 인해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30년 전으로, '나'는 스승의 죽음으로 글을 쓰지 못하고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 시절, 영화 제작자 고모리와 한 때 유명했던 아역 스타 사쿠라가 찾아와 시나리오를 부탁한다. '나'와 사쿠라의 인연과 시나리오의 내용은 소설에서 하나의 커다란 축이 된다.  

 그들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의 일본판이었다. 일본 막부 말 동란기의 이야기로 바꾸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사쿠라가 있었다. 제작자 고모리는 반대하고 나섰지만, 사쿠라는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중심이 된 공연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에 관심을 갖고 추진한다. 사쿠라에게 영화는 남은 인생이 걸려 있었다. 그런 사쿠라를 보면서 '나'는  소년 시절 만났던 영화 <애너벨 리>속 한 소녀, 사쿠라를 떠올린다. 

 소년의 기억 속에 사쿠라는 포우의 시 속, ‘애너벨리’ 였다. 소년과 소녀를 이어주는 영화 <애너벨 리>. 그 깊은 유대감은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해서, 사쿠라는 자신이 살아온 삶은 모두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서로가 기억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달랐다. 전쟁이 끝난 혼란의 시기, 부모를 잃은 소녀를 후원해준 미국인은 소녀를 농락하고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  상처는 사쿠라의 잠재의식 속에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소설엔 꽤 많은 이야기가 엉켜 있었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알게 된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의 항쟁이 있었고 사쿠라에겐 진실과의 대면이 있었다. 결국 사쿠라는 어린 시절의 일이 꿈이 아닌 진실이었음을 알게 되고, 충격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한다. 영화는 무산되었고, 그후로 30년이 지난 현재, 고모리는 그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나'를 찾아 온 것이다. 

 30년의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난 세 사람은 거친 파도를 만났고, 사막을 건너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있었다. 아들과 생활하며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며 소설을 쓰고자 작가, 암투병중인 고모리, 세상을 향해 ‘메이스케 어머니’의 외침을 전하려는 사쿠라. 영화같은 인생은 여전하게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첫 만남, 소설가에게 소설은 이제 허구가 아닌 진실의 기록은 아닐런지. 이런 생각도 했다. ‘아름다운 에너벨 리’는 누구일까. 사랑 이상의 사랑이 있었던 그 아름다운 왕국, 그 ‘애너벨 리’는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아닐까. 언젠가는 싸늘하게 죽는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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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시선 -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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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가 들려주는 신화 이야기 정도로 생각한게 잘못이었다. 우선, 신화에 대한 지식이 충분해야 했다. 들어 본 이야기,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닌 충분한 지식 말이다.  하여, 선뜻 이 책에 대한 기대를 품었던 나는 힘든 책읽기를 하고 말았다. 저자의 <두 글자의 철학>을 통해갖었던 즐거운 기억은 <메두사의 시선>으로 인해 어려운 철학으로 남게 되었다.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이라는 부제에서 인간의 과거, 현재,미래를 생각했다. 신화를 바탕으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과거와 놀랍게 발전하는 과학의 시대인 현재에 살면서 느끼는 인간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의 답이 바로 철학에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저자는 결국 인간에게 있어 철학이 왜 필요한지, 철학의 역할에 대해 신화와 과학을 연계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친근한 이야기인 신화로 접근한 시도가 흥미롭다. 12가지의 신화 이야기는 모두 어려웠으나, 아테타 여신과 베 짜기 시합에서 승리하여 거미로 변한 ‘아라크네’ 신화와 그리스 로마 신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인상적이었다.  감히, 신에게 도전해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거미로 변한 게 아니라,인간 아라크네의 기(技)-예(藝)- 실(實)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신화에서 뛰어난 재능의 인간은 거미가 되었다. 현재 아라크네의 후예인 인간은 그 재능을 올바르게 쓰고 있을까.

 자신이 만든 여인상을 사랑하여 아내로 맞이하게 해달라 소원을 빈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저자는 로봇과 연결시켰다. 인간이 만든 피조물인 로봇과 소통하기를 꿈꾸는 인류는 모습이 피그말리온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인간의 성장 과정(한때는 네 발로, 한때는 세 발로, 한때는 두 발로 걸으며, 일반적인 법칙과는 반대로 발이 많을 수록 약한 존재인 인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저자는 세 발에서 나머지 하나의 발에 대해 도구로, 지팡이나 휠체어를 뛰어 넘는 기술이라 설명한다. 나아가, 우주를 꿈꾸는 인간의 미래는 ‘발 없는 인간’ 이라 언급한다. 

  <철학 에세이는 지식으로 쓰는 글이다. 전문 지식이 글의 바탕에 깔려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과학적 관심과 신화적 은유를 철학적 성찰에 연계하려고 노력했다.(...) 신화는 즐겨 진리의 가면 놀이를 하고, 과학은 아직 천진난만하게 자연의 거울이기를 바라며, 철학은 현실의 베일을 끊임없이 벗겼다 덮었다 한다. p 5  사족과 몽상 중에서>  

 책은 일반 독자에게는 무척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전문 지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신선하고 놀라움을 안겨줄 의미있는 책이다. 그래도 더 많은 독자들 이해하기엔 좀 더 쉬운 책이 필요함을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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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의 박물관
성혜영 지음, 한영희 사진 / 샘터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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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던 겨울이 끝자락을 보이고 있다. 몸도 마음도 웅크려있던 탓일까. 오랜만에 햇살이 좋은 날, 어디든 떠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책 속의 그곳에 눈을 담근다. 초등학교라 불리기 전 국민학교 시절, 민속 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있다. 유리 안에 진열된 옛 것의 흔적들을 들여다보며 어떤 감흥도 없었는데, 지금은 괜시리 더 그립다. 아마도 그것은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바쁜 일상에 지쳤을 때, 박물관에서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는 저자의 글에서 울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의 삶이 아닌 과거의 삶이 건네는 위로 한 자락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누군가의 손때가 고스란히 남아 있을 유물들과 사물들은 각각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터. <안동소주전통음식박문관>, <한국자수박물관>, <유럽자기박물관>에서 내 어머니, 할머니 세대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 했다. 제사상의 주인도 알지 못 채 정성껏 음식을 하고, 여린 손으로 수를 놓았던 시절이 있을꺼라 여기지 못했던 엄마도 수를 놓았고, 예쁜 그릇을 아끼느라 쓰지 못하던 모습. 

 책엔 이런 박물관이 있구나, 놀라게 하는 박물관이 많았다.  전기가 귀했던 때 소중한 물건으로 자신을 태워 빛을 밝혀준 등불, 촛불의<한국등잔박물관>, 나무로 만든 사람의 형상들이 모여 있는 <목인박물관>, 삶의 마지막을 생각케 하는 <쉼박물관>, 열쇠대신 쇳대라는 말로 정겨움을 안겨주는 <쉿대박물관>.

 많은 곳중에서 한국문학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한국현대문학관>, 커피 향이 가득할 이름도 근사한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사람이 지겹고 싫은 사람, 틀에 박힌 일상에 머물고 싶은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라’는 경고가 있는 <자화상박물관>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박물관이다. 

 저자는 박물관 관람에 대해 교육이 아닌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창이라 말한다. 그는 박물관 관람 원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1. 작품이나 유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읽지 않는다. 2. 팸플릿이나 도록은 미리 사지 않는다. 3. 박물관이 정해 놓은 동선은 따르지 않는다. 4. 남의 의견을 참조하지 않는다. 5. 관람 시간과 방문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박물관에 갖고 있던 편견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내가 보고 싶은 방법으로 내가 느끼는대로 그것들과 마주하라는 말이다.

  ‘내가 의지한 것이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으므로 나도 어른이 된 터였다.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다던가. 과거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위로이자 또 다른 환상이었다.’ p 19 

 박물관, 그곳에 삶이 있었다. 가보지 못했던 먼 나라의 생활이 있었고, 선조들의 흔적이 있었고, 아련한 추억이 있었고, 과거의 울림이 있었다. 버려야 할 삶이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현재의 삶도 하나의 박물관이 될 터. 어떤 유물들로 채울지는 우리의 몫이리라. 좀 더 따뜻해지고 바람이 좋은 날의 오후 2시, 좋은 사람들과 박물관에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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