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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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보다는 지적 장애인 아들을 둔 아버지로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감동을 소설로 만나지는 못했다.  실은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이 처음인데, 거기다 50주년 기념 소설이라니 어려운 소설을 만났구나 싶었다.  

 소설은 작가 오에의 삶이 아닌 인간 오에의 평범한 일상으로 시작한다. 작가 스스로가 화자가 되어 소설을 전개한다. 노년의 아버지와 중년의 몸이 불편한 아들이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는 일상적이다. 

 “아직 백 살까지는 시간이 있지. 소설도 주제보다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면 쓸 생각이야.”
 “끝까지 못 찾을 수도, 있습니까?”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도 소설가로 살겠다는……”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거다”  p 11

  소설가로 살아온 50년, 그리고 남은 생도 소설가로 살겠다는 화자의 담담하고 결연한 의지가 전해진다. 순간, 숙연해진 나는 생의 마지막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소설을 들여다보면, 일흔이 넘은 작가에게 찾아온 대학 친구 고모리, 그로 인해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30년 전으로, '나'는 스승의 죽음으로 글을 쓰지 못하고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 시절, 영화 제작자 고모리와 한 때 유명했던 아역 스타 사쿠라가 찾아와 시나리오를 부탁한다. '나'와 사쿠라의 인연과 시나리오의 내용은 소설에서 하나의 커다란 축이 된다.  

 그들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미하엘 콜하스의 운명>의 일본판이었다. 일본 막부 말 동란기의 이야기로 바꾸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사쿠라가 있었다. 제작자 고모리는 반대하고 나섰지만, 사쿠라는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중심이 된 공연 <메이스케 어머니 출진>에 관심을 갖고 추진한다. 사쿠라에게 영화는 남은 인생이 걸려 있었다. 그런 사쿠라를 보면서 '나'는  소년 시절 만났던 영화 <애너벨 리>속 한 소녀, 사쿠라를 떠올린다. 

 소년의 기억 속에 사쿠라는 포우의 시 속, ‘애너벨리’ 였다. 소년과 소녀를 이어주는 영화 <애너벨 리>. 그 깊은 유대감은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해서, 사쿠라는 자신이 살아온 삶은 모두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서로가 기억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달랐다. 전쟁이 끝난 혼란의 시기, 부모를 잃은 소녀를 후원해준 미국인은 소녀를 농락하고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  상처는 사쿠라의 잠재의식 속에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소설엔 꽤 많은 이야기가 엉켜 있었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에서 알게 된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의 항쟁이 있었고 사쿠라에겐 진실과의 대면이 있었다. 결국 사쿠라는 어린 시절의 일이 꿈이 아닌 진실이었음을 알게 되고, 충격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한다. 영화는 무산되었고, 그후로 30년이 지난 현재, 고모리는 그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나'를 찾아 온 것이다. 

 30년의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난 세 사람은 거친 파도를 만났고, 사막을 건너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있었다. 아들과 생활하며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며 소설을 쓰고자 작가, 암투병중인 고모리, 세상을 향해 ‘메이스케 어머니’의 외침을 전하려는 사쿠라. 영화같은 인생은 여전하게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첫 만남, 소설가에게 소설은 이제 허구가 아닌 진실의 기록은 아닐런지. 이런 생각도 했다. ‘아름다운 에너벨 리’는 누구일까. 사랑 이상의 사랑이 있었던 그 아름다운 왕국, 그 ‘애너벨 리’는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아닐까. 언젠가는 싸늘하게 죽는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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