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중력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홍정선.강계숙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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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지루했다.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빨리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제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계절은 다시 겨울을 데려왔다. 이사한 집에서 맞는 첫 번째 겨울인 셈이다. 첫눈도 내렸고 김치 냉장고엔 김장으로 채워졌고 베란다엔 쌀도 있다. 추위를 핑계로 게으름을 한껏 부리고 있는 겨울이다. 한데, 마음엔 바람이 분다. 또 한 해를 살았고 다시 겨울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아이들의 기말 고사가 끝나자 허탈하다는 친구는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즈음 누구나 허탈감을 느낄 것이다. <내 생의 중력>이라는 제목으로 엮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내 생의 중력』을 읽으면서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생각한다. 이 시집은 301권부터 399권까지 99권의 시를 엮은 것이다. 한 단계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적절하지 않지만 30대가 끝나고 40대를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출판사는 이 시집의 테마는 ‘시인의 초상’이라고 말한다. 한 권의 시집에서 선택된 단 하나의 시가 시인과 가장 닮은 것이라 봐야할까. 내가 알고 있는 시는 많지 않았고, 내가 알고 있는 시인도 많지 않았다. 수록된 83편의 시, 어떤 시는 소리내어 읽었고 어떤 시는 두 번 세 번 읽었고, 어떤 시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본 시는 이런 시다.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p. 54~55  정일근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의 고래는 무엇일까. 그건 어떤 미련함인지도 모른다. 떠나간 것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단언할 수 있는 때는 언제 올까. 생의 엔진을 모두 끌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등바등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는 그 무엇을 기다릴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는 삶이란  여유가 있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작은 여유는 아닐까.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 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p. 108~109 이수명의 <창문에 비추고 있는 것>

 

 시를 읽고 시를 따라 창을 바라본다. 눈이 오고 있다. 같은 창이지만 바라볼 때마다 풍경은 조금씩 다르다. 같은 듯 다른 것들, 변화하는 모든 것, 그리고 생각들. 짐작컨대 시인이 창을 바라본 시각은 아침이 아닌 깊은 밤일 것이다. 생각이 커지고 깊어지는 밤, 누군가를 생각하는 밤 말이다.

 

 시인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시, 시를 통해 그들을 본다. 때로는 단 한 줄의 구절로, 때로는 아주 긴 문장으로, 자신을 그리는 그들이다. 내게는 이름으로, 시로 기억되는 시인들. 여느 시집에서 시를 보았다면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번에서는 시인을 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이런 시에서 또 한 시인을 본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옛 여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진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 듯

 인중을 긁적이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 ― 쓰기로 옮겨 쓴다. p. 121~122

 

 심보선의 <인중을 긁적이며>의 일부다. 시는 시인의 손가락으로 옮겨진 우리 모두의 삶이다. 그러니 시는 모두의 초상인 것이다. 붉은 피가 흐르는 고통이, 바라볼수록 눈부신, 외롭고 쓸쓸한 우리의 모습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담아 내는 일이 힘겹겠지만 거짓이 아닌 날 것 그대로, 손가락의 삶으로 옮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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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령 하는 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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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막연하게 노년의 삶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다. 편리한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그들의 마음을 변하게 만든 건 무엇일까. 그건 공포와 불안이다. 오염된 공기 대신 신선한 공기를 사들이고, 나라에서 공급하는 수돗물을 더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파트 문을 닫는 순간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콩크리트 숲들이 불안의 도가니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매연으로 가득한 하늘과 병들어가는 몸과 마음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나고자 하는 게 아닐까.  강영숙은 이런 도시의 모습을 소설에 담아냈다. 그러니까 『아령 하는 밤』에 수록된 소설들의 배경은 모두 도시다.

 

 <문래에서>는 작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구제역의 공포가 등장한다. 화자인 나는 서울의 문래를 떠나 이사를 왔다. 도시를 떠나 얼핏 보기에 전원 생활로 평화로워 보이는 동네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땅은 오염되었고 동물들은 죽어 나고 그 땅에 동물들은 다시 묻혔다. 화자의 남편은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났지만 새로운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령 하는 밤>엔 점점 심각해지는 도시의 범죄를 이야기 한다. 공단이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화자는 함께 살던 언니가 죽고 혼자 남는다. 때마침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화자는 밤마다 아령 하는 한 노인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바쁜 일상에 자신 외에 다른 누구도 돌아볼 여력이 없는 사람들, 화자는 고장 난 변기를 수리하러 온 사람과 그나마 대화를 나눈다. 화자의 눈에 비친 도시는 이렇다. 악취와 매연은 한 도시의 상징처럼 되버렸다. 사람은 그저 도시를 채우는 부속물이 되버린지 오래다. 말을 잃은 사람들, 감정이 사라진 도시가 안타까울 뿐이다.

 

 ‘도시가 원인 모를 악취에 휩싸였다. 알 수 없는 기름 냄새가 공단 건너편의 주택가로 점점 퍼져나갔다. 처음엔 단순하게 찌든 기름 냄새 정도였던 것이 점차 심해져서 두통을 유발시켰다. 눈이 붓고 목이 따끔거린다는 아이와 노인 들 덕분에 동네 안과와 이빈후과만 미어터지는 특수를 보았다. 방역을 위해 공무원들이 조사를 나오고  하수구란 하수구는 매일 두 번씩 소독을 했다.’ p. 43

 

 도시엔 이처럼 공포와 불안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공포와 불안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되기도 한다. 화려한 도시의 삶이란 공포와 불안을 담보로 세워진 게 아닐가 싶을 정도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불안한 도시>속 누군가는 실종되기도 하고 외롭고 <죽음의 도로> 속 우울한 누군가는 자살을 꿈꾸기도 한다. 도시인의 건조한 일상을 그려낸 <그린란드>나 떠나지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물건을 보관해주는 <프리퍄트창고>는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도시의 풍경이다.

 

 살풍경한 도시를 담은 <재해지역투어버스>같은 소설도 있다. 이 소설에서 재해를 입은 도시는 말 그대로 관광 상품이 된 것이다. 헤리케인이 휩쓸고 간 도시가 누군가에게는 놀랍고 신기한 곳이라니.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해를 떠올리면 언젠가 이런 버스가 등장할 것만 같아 두렵고 무섭다.

 

 ‘버스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였다. 버스 안은 출발할 때와 달리 이상하게 고요해졌다. 운전기사의 멘트는 점점 더 빨라졌다. 몸으로 그때의 모든 시간을 매번 재현해야 하는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는 운전석 앞에 달린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나 웬걸, 그는 아주 신이 나 보였다. 보트가 지나다니면서 지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과 담요를 주는 게 다였어요. 군용 헬리콥터는 시계와 물, 방수 쌘드백을 떨어뜨려주었죠. 그러나 몹시 부족했어요. 일부 물이 빠진 시내 거리에 전세계 미디어가 총집결해 있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p. 117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산다. 어떤 이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어 그럴 것이다. 어떤 이는 도시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버렸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풍경이며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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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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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장은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어떤 문장은 지독한 슬픔을 감싸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글이란 건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그가 마냥 부럽다. 그런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 이제 나는 그를 더 많이 좋아할 것이다. 이제 나는 그의 글을 기다릴 것이다. 그는 바로 『가나』의 작가 정용준이다.

 

 소설엔 슬픔과 절망이 가득하다. 어찌할 수 없는 절망과 함께 태어났거나 희망 보다는 절망만이 남은 삶이라 할 수 있다. 원망할 대상 조차 존재하지 않아 그들은 사라지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죽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들을 원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만다. 9편의 소설은 하나같이 아프고 아름답다. 아파서 나도 아프고, 아름다워서 감탄한다.

 

 표제작인 <가나>는 죽은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거대한  바다 한 가운데가 아니라 고국에 돌아가 벙어리 아내와 아들에게 사랑한다 말해줘야 했다. 그동안 말하지 못한 진심을 들려줘야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줘야 했다. 죽어서라도 그들에게 닿고 싶은 애절한 마음이 가슴 아픈 소설이다. 죽음을 묘사한 그의 문장은 고요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해류가 몸을 떠민다. 그것은 무겁고 밀도가 높은 바람과 같았다. 그 흐름에 따라 천천히 발이 움직이고, 난 바닷속을 산책하듯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을 어찌 형용할 수 있을까, 부드러운 흙 속에 심겨진 나무뿌리처럼 나는 바닷속에 잠겨 있다. 생각이 난다. 회전하는 스크루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내 심장이 멈췄을 것이다. 오른쪽 허리가 심하게 손상되었다. 헤쳐진 살점과 내장들이 붉은 해초처럼 흔들린다. 갈치 두 마리가 내 곁에 맴돈다. 갈치가 움직일 때마다 칼날이 흔들리듯 날카로운 빛이 반짝거린다. 갈치가 내 몸을 먹는다. 너덜거리는 살점을 먹고 손상된 내장을 먹는다. 떠 있던 다리가 바닥에 닿는다. 바닥의 모래는 이제껏 밟아봤던 그 어떤 땅보다 부드러웠다. 바닷속에 숨겨진 땅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p. 62

 

 전쟁이 일어난 일상을 담은 소설 <여기 아닌 어딘가로>에서도 그의 문장은 차분하다. 갑자기 닥친 상황에 도로는 막히고 광장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화자인 그는 어딘가로 도망치지 않는다.  아비규환인 세상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는 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가고 있다.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자리에 주저앉아 손가락으로 계속 귓구멍을 쑤신다. 주황색 하늘은 여전히 맑게 개어 있다. 사람들이 곳곳에 누워있다. 아니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방향으로 관절이 꺾여 있거나 몸의 일부가 사라진 사람들도 많다. 땅바닥에는 누군가의 신체의 일부로 보이는 것들이 여기저기 쓰레기처럼 흩어져 있다. 강 건너편 빌딩이 느리게 붕괴되고 있다. 콘크리트가 모래산처럼 떨어져 나간다.’ p. 205~206

 

 이런 소설도 있다. 행복이란 이름의 아버지와 장미와 왕자라는 이름을 지녔지만, 거대한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누나와 그를 돌보는 동생의 고통스러운 이야기 <굿나잇, 오블로>.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혹 같은 게 자라기 시작한 취업 준비생인 남자의 이야기인 <어느 날 갑자기 K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임신을 했지만 아이를 지키려는 사라와 그의 가족의 갈등 속에서 태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랑해서 그랬습니다>는 독특하다.

 

 정용준이 그려낸 인물은 죽음과 고통을 온 몸으로 견디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만하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인 구름이만 남기고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며 횟집을 운영하는 남자 농과 출산 당시 죽은 아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창녀의 이야기인 <구름동 수족관>, 어린 시절 선생님의 질책으로 인해 말을 더듬기 시작하여 결국 말을 삼켜버린 남자와 간질을 앓고 있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인 <떠떠떠, 떠>처럼 절망이 흐르지만 동시에 절망을 걷어낼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작가의 확고한 믿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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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2011-12-1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구절을 읽으니 느낌이 묵직하네요. 만만치 않은 주제로 소설을 쓰는 작가군요. -고통을 외면해선 안 되겠지요. 게다가 별도 다섯개. 읽어봐야겠다 싶으면서도, 하나같이 만만찮은 고통을 가진 주인공들이라, 읽기도 전에 심장 부근이 뻐근해집니다.^^;

자목련 2011-12-14 21:00   좋아요 0 | URL
무척 좋았던 소설입니다. 간결한 문장에 많은 것을 담았다고나 할까요. 제게는 그랬어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소설이예요.^^
 
기억 - KBS 사이언스 대기획 인간탐구
김윤환.기억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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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기 마련이다. 그와 반대로 잊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을 것이다.  원하는 것만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잊어버리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해서 누군가는 기억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잊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인간의 평균 수명 연장으로 인해 노인성 치매가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부각된지 이미 오래다. 최근 그 심각성은 노인뿐 아니라 그 연령대가 점점 낮아진다는 데 있다. 뇌에선 우리가 모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기억』을 통해 그 신비함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억』은 ‘기억’이란 주제로 한 방송사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정리한 책이다. 일반적인 지식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임상실험과 최첨단 장비들을 동원해 인간의 뇌를 직접 촬영하고 보여준다. 기억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술과 복용 약에 대한 설명도 다루고 있다.  

 책은 크게 세 가지로 기억에 대해 다룬다. 제1부 ‘오래된 미래, 기억’에서는 기억을 잃은 삶을 통해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기관인 해마에 대해 설명한다. 기억을 잃은 경우 중 단기 기억을 잃은 사람들의 일상은 매일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어제를 기억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만 기억하는 것이다. 환자들과 높은 기억력을 지닌 사람들의 뇌를 비교한 결과 해마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기억을 변형, 조작하기도 한다니 놀랍다.

 제2부 ‘봄날은 온다’에서는 심각한 건망증으로 치매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인 기억력 저하의 원인과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기억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과거에 비해 복잡해진 환경과 과도한 스트레스와 지나친 음주였다. 건망증으로 인해 생활의 균형이 깨지는 사람들에게 기억력 증강을 위한 방법은 어려운 게 아니다. 규칙적이고 꾸준한 운동과 각 나라의 수도와 국기, 전화번호 외우기, 하루를 기록하기 등 뇌를 움직이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몇 개이며 하루에 걷는 시간은 얼마인가 책은 바쁜 현대인에게 묻는다. 

 제3부 ‘두 번째 선물, 망각’에서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대신 망각하는 뇌에 대해 설명한다. 동시에 기억할 수 있는 건 7가지 이며 그 시간도 18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존의 뇌 공간에 있던 것들은 순차적으로 잊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할지라도 점차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불행과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하는 인간을 뇌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니, 정말 경이롭지 않은가. 신경학 임상의사 올리버 색스가 『편두통』에서 편두통의 발생 역시 심각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쉬기 위한 뇌의 활동이라 설명한 부분과 같은 것이다. 

 책을 통해 만난 사례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운 사연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기억을 잃고 오늘을 살아가는 일이 두려운 사람들,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평생을 고통과 함께 사는 사람들, 남아 있는 기억을 붙잡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것이다. 팔다리 없이 태어난 ‘닉 부이치치’의 말처럼 말이다.  

 “가끔은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어떤 기억을 반드시 간직해야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기억은 바꿀 수 없어요. 바꿀 수 없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지요. 자신이 바꿀 수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세요. 아픈 기억이 있고, 평생 남은 기억도 있겠지만 나쁜 기억 때문에 장애가 되지 말고 좋은 기억에 집중하며, 나빴던 시간에서 교훈을 얻어 앞으로 나가세요.” p. 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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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딸 - 맛있고 심플한 삶, 코즈모폴리탄의 이야기
나카가와 히데코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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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모두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이다. 엄마의 음식은 대단한 게 아닌 평범한 것들이다. 말린 조갯살과 고추를 간장에 넣고 조리거나, ‘밀국’이라 불렀던 손칼국수, 생선 뼈를 고아낸 국물로 끓인 김치찌개 같은 것이다. 먹은 기억은 있지만 한 번도 직접 해본 적이 없어 그 맛은 손이 아니라 마음에만 남았다.  그러니까 그 맛이야 말로 『셰프의 딸』에 나오는 ‘엄마의 맛’ 인 거다.

 『셰프의 딸』이란 제목만 보고 요리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양한 요리의 레시피가 있으니 분명 요리책이 맞다. 한데 이 책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닌 요리에 담긴 맛있고 따뜻한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를 따라 서독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후로 일본, 동독, 스페인에서 생활하고 현재 한국에 살고 있다. 해서 그녀가 들려 주는 음식 이야기는 일본 음식에 국한되지 않은 요리다.    

 책엔 ‘라자냐’, ‘크림 콘 스프’, ‘크레이프’, ‘햄버거 스테이크’처럼 익숙한 요리들과 생소한 이름인 ‘아펠쿠헨’(독일식 전통 케이크), ‘다시마키 타마고’(일본식 달걀말이), 한국의 닭볶음탕과 비슷한 ‘포요 아 라 카수엘라’ 등 낯선 요리까지 다양하다.  그녀의 요리엔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특별한 요리인 것이다.  

 책에서 빨간 장미 도시락통을 보는 순간 누구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원하던 불고기나 소시지 반찬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다시 한 번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프랑스 요리 셰프로 함께 식사를 할 수 없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로스트 치킨’을 먹을 때마다 그녀는 사랑을 먹은 것이다. 그 치킨 요리엔 가족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하던 모든 엄마, 퇴근길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사온 세상 모든 아빠의 마음이 담겨 있던 것이다.

 그녀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사람이 아니다. 한데 그녀가 소개하는 요리는 친근하다. 왜냐하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요리 선생님이 아닌 엄마나, 친구, 누나처럼 요리를 만들며 수다를 떨고 함께 즐긴다. 요리 과정에 따른 사진이 함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누구나 도전 가능한 요리다.   

 그녀가 외롭고 힘든 타국 생활을 견디고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요리가 있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음식을 나누며 먹는 사이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니 말이다. 불편한 사람과 밥 먹는 일처럼 어려운 일도 없으니까. 나도 그랬다. 자취를 하던 학창시절 맛난 집밥을 먹여준 친구가 있었다. 진수성찬이라 해도 혼자 먹으면 그 맛을 모른다. 함께 먹는 즐거움은 정말 크다.

 맛있는 음식이나 새로운 요리를 접하면 ‘이 요리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하고 궁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내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요리는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요리를 잘 하게 된 이유는 집안내력이라는 둥, 어릴 때부터 단련된 미각 덕분이라는 둥 여러 이야기를 듣지만, 사실은 내가 단순히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한 아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금도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이 맛있다고 즐거워 할 때나, 요리 교실에서 배운 음식을 집에서 만들었더니 가족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다. 왠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매번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요리의 즐거움은 아닐까. p. 252  

 그녀의 말처럼 터무니없는 즐거움을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이 아니라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복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족이나 연인이 떠오르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쓰여지는 손편지처럼 음식을 만드는 일도 그런 것이다. 음식을 잘하고 못하고는 나중 일이다. 맛있는 음식을 마주하고 함께 먹는 일이야말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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