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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령 하는 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11년 10월
평점 :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막연하게 노년의 삶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거다. 편리한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그들의 마음을 변하게 만든 건 무엇일까. 그건 공포와 불안이다. 오염된 공기 대신 신선한 공기를 사들이고, 나라에서 공급하는 수돗물을 더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파트 문을 닫는 순간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콩크리트 숲들이 불안의 도가니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매연으로 가득한 하늘과 병들어가는 몸과 마음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시를 떠나고자 하는 게 아닐까. 강영숙은 이런 도시의 모습을 소설에 담아냈다. 그러니까 『아령 하는 밤』에 수록된 소설들의 배경은 모두 도시다.
<문래에서>는 작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구제역의 공포가 등장한다. 화자인 나는 서울의 문래를 떠나 이사를 왔다. 도시를 떠나 얼핏 보기에 전원 생활로 평화로워 보이는 동네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땅은 오염되었고 동물들은 죽어 나고 그 땅에 동물들은 다시 묻혔다. 화자의 남편은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났지만 새로운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령 하는 밤>엔 점점 심각해지는 도시의 범죄를 이야기 한다. 공단이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화자는 함께 살던 언니가 죽고 혼자 남는다. 때마침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화자는 밤마다 아령 하는 한 노인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바쁜 일상에 자신 외에 다른 누구도 돌아볼 여력이 없는 사람들, 화자는 고장 난 변기를 수리하러 온 사람과 그나마 대화를 나눈다. 화자의 눈에 비친 도시는 이렇다. 악취와 매연은 한 도시의 상징처럼 되버렸다. 사람은 그저 도시를 채우는 부속물이 되버린지 오래다. 말을 잃은 사람들, 감정이 사라진 도시가 안타까울 뿐이다.
‘도시가 원인 모를 악취에 휩싸였다. 알 수 없는 기름 냄새가 공단 건너편의 주택가로 점점 퍼져나갔다. 처음엔 단순하게 찌든 기름 냄새 정도였던 것이 점차 심해져서 두통을 유발시켰다. 눈이 붓고 목이 따끔거린다는 아이와 노인 들 덕분에 동네 안과와 이빈후과만 미어터지는 특수를 보았다. 방역을 위해 공무원들이 조사를 나오고 하수구란 하수구는 매일 두 번씩 소독을 했다.’ p. 43
도시엔 이처럼 공포와 불안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공포와 불안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되기도 한다. 화려한 도시의 삶이란 공포와 불안을 담보로 세워진 게 아닐가 싶을 정도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불안한 도시>속 누군가는 실종되기도 하고 외롭고 <죽음의 도로> 속 우울한 누군가는 자살을 꿈꾸기도 한다. 도시인의 건조한 일상을 그려낸 <그린란드>나 떠나지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물건을 보관해주는 <프리퍄트창고>는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도시의 풍경이다.
살풍경한 도시를 담은 <재해지역투어버스>같은 소설도 있다. 이 소설에서 재해를 입은 도시는 말 그대로 관광 상품이 된 것이다. 헤리케인이 휩쓸고 간 도시가 누군가에게는 놀랍고 신기한 곳이라니.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해를 떠올리면 언젠가 이런 버스가 등장할 것만 같아 두렵고 무섭다.
‘버스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였다. 버스 안은 출발할 때와 달리 이상하게 고요해졌다. 운전기사의 멘트는 점점 더 빨라졌다. 몸으로 그때의 모든 시간을 매번 재현해야 하는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나는 운전석 앞에 달린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나 웬걸, 그는 아주 신이 나 보였다. 보트가 지나다니면서 지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과 담요를 주는 게 다였어요. 군용 헬리콥터는 시계와 물, 방수 쌘드백을 떨어뜨려주었죠. 그러나 몹시 부족했어요. 일부 물이 빠진 시내 거리에 전세계 미디어가 총집결해 있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p. 117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산다. 어떤 이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어 그럴 것이다. 어떤 이는 도시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버렸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떤 풍경이며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