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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홍정선.강계숙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평점 :
작년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지루했다.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빨리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제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계절은 다시 겨울을 데려왔다. 이사한 집에서 맞는 첫 번째 겨울인 셈이다. 첫눈도 내렸고 김치 냉장고엔 김장으로 채워졌고 베란다엔 쌀도 있다. 추위를 핑계로 게으름을 한껏 부리고 있는 겨울이다. 한데, 마음엔 바람이 분다. 또 한 해를 살았고 다시 겨울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아이들의 기말 고사가 끝나자 허탈하다는 친구는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즈음 누구나 허탈감을 느낄 것이다. <내 생의 중력>이라는 제목으로 엮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내 생의 중력』을 읽으면서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생각한다. 이 시집은 301권부터 399권까지 99권의 시를 엮은 것이다. 한 단계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적절하지 않지만 30대가 끝나고 40대를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출판사는 이 시집의 테마는 ‘시인의 초상’이라고 말한다. 한 권의 시집에서 선택된 단 하나의 시가 시인과 가장 닮은 것이라 봐야할까. 내가 알고 있는 시는 많지 않았고, 내가 알고 있는 시인도 많지 않았다. 수록된 83편의 시, 어떤 시는 소리내어 읽었고 어떤 시는 두 번 세 번 읽었고, 어떤 시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바라본 시는 이런 시다.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p. 54~55 정일근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의 고래는 무엇일까. 그건 어떤 미련함인지도 모른다. 떠나간 것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단언할 수 있는 때는 언제 올까. 생의 엔진을 모두 끌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아등바등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는 그 무엇을 기다릴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는 삶이란 여유가 있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작은 여유는 아닐까.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 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p. 108~109 이수명의 <창문에 비추고 있는 것>
시를 읽고 시를 따라 창을 바라본다. 눈이 오고 있다. 같은 창이지만 바라볼 때마다 풍경은 조금씩 다르다. 같은 듯 다른 것들, 변화하는 모든 것, 그리고 생각들. 짐작컨대 시인이 창을 바라본 시각은 아침이 아닌 깊은 밤일 것이다. 생각이 커지고 깊어지는 밤, 누군가를 생각하는 밤 말이다.
시인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낸 시, 시를 통해 그들을 본다. 때로는 단 한 줄의 구절로, 때로는 아주 긴 문장으로, 자신을 그리는 그들이다. 내게는 이름으로, 시로 기억되는 시인들. 여느 시집에서 시를 보았다면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번에서는 시인을 보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이런 시에서 또 한 시인을 본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옛 여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진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 듯
인중을 긁적이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 ― 쓰기로 옮겨 쓴다. p. 121~122
심보선의 <인중을 긁적이며>의 일부다. 시는 시인의 손가락으로 옮겨진 우리 모두의 삶이다. 그러니 시는 모두의 초상인 것이다. 붉은 피가 흐르는 고통이, 바라볼수록 눈부신, 외롭고 쓸쓸한 우리의 모습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담아 내는 일이 힘겹겠지만 거짓이 아닌 날 것 그대로, 손가락의 삶으로 옮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