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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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좋아하는 추리 작가가 없다. 때문에 익숙한 이름이거나 기존에 만났던 작가의 추리 소설을 다시 찾게 된다. 가장 최근에 히가시고 게이고의 『백은의 잭』을 읽고 다소 실망했다. 그 전에 만났던 소설과는 다른 점이 있었지만 뭔가 숨막히는 긴장감은 떨어지는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내 책장에는 그의 소설이 또 있었다. 『명탐정의 규칙』은 아주 흥미로운 구성을 지닌 추리 소설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작가가 직접 알려주는 추리 소설을 쓰는 법이라고 말해도 좋다. 아니, 추리 소설을 읽는 방법이라고 해야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일반적인 추리 소설의 다양한 규칙에 따른 사건을 소개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를테면 밀실 살인 사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범인의 등장,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수법, 괴상한 살인 방법 같은 일반적인 추리 소설의 형태를 분석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독자를 위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별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자하면, 나같이 마지막까지 작가의 복선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독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추리 소설을 읽기 위한 교과서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이 흥미로운 건 두 명의 등장 인물 때문이다. 범죄의 성립과 추리  과정을 설명하고 해설하는 그들은 경찰 오기와라 반조 경감과 낡아 빠진 양복에 더부룩한 머리, 연륜이 쌓인 지팡이가 트레이드 마크인 명탐정 덴카이치 다이고다. 둘은 사건마다 티격 태격 싸우는 모습으로 독자를 즐겁게 해 준다. 물론 대부분의 사건을 해결하는 건 덴카이치의 몫이다.

 

 히가시고 게이고는 독자와 작가, 그리고 범인의 입장까지 모두 친절하게 설명한다. 매번 비슷한 설정의 추리 소설에 대한 독자의 불만을 책 속에서 오기와라 경감의 속내로 드러내준다.

 

 ‘탐정 소설에서 우리 조연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절대로 명탐정보다 먼저 범인을 알아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p. 54

 

 ‘산장은 언제나 폭설로 고립되고, 외딴섬의 별장도 폭풍우로 늘 고립된다. 이런 식이라면 독자들도 곧 질려 버릴 것이 뻔하다. 등장인물 역시 진절머리 나기는 마찬가지다.’ p. 78

 

 그러자, 이번에는 범인의 입장을 탐정 덴카이치의 목소리로 깔끔한 정리가 들어간다.

 

 “범인의 입장에서도 장점이 있지요. 무대가 고립되면 경찰이 개입할 수 없고, 등장인물들도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손쉽게 살인을 할 수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모두를 살해하고 범인 자신도 자살할 수 잇지요. 물론 그런 패턴은 명작에나 해당하는 것이지만요.”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 독자는 추리 소설에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독자는 때로 작가보다 한 발 앞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할 터이고 어떤 독자는 추리 소설만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기도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추리 소설 입문서로 좋을 듯하다. 특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명 작품을 읽기 전에 만났다면 더욱 더 좋을 것이다.

 

 범죄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누군가에 대한 원한, 복수, 욕망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일어난다. 아마도 추리 소설의 작가 혹은 범죄를 해결하는 명탐정은 그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분류에 속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소설 속 노인의 말처럼 인간의 수수께기를 푼다는 건 인간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를 해야 가능할테니까.

 

“살인 사건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건 바로 인간의 수수께기를 푸는 거야. 그렇다면 오랜 세월의 인생 경험에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터득한 사람이야말로 탐정에 적합하다는 말이 된다네.” p.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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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2012-02-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군요. (추리소설을 거의 읽지 않은, 입문이란 말도 아까운 문앞의 독자)
근데 이 다음으로 읽으면 좋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작은 무엇인가요? (많이 읽지는 못 할 것 같으니, 이미 읽은 자목련님께 조금만 추천받고자 함^^)

자목련 2012-02-05 20:45   좋아요 0 | URL
영화로만 보았지만 아무래도 히가시노의 명작은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이 아닐까 싶어요. 읽은 책으로는 <잠자는 숲>과 <탐정클럽>이 재미있었어요.

아, 그리고 이 책도 재미있고 흥미로웠어요.^^

섬 2012-02-0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백야행 영화 한국판 말인가요? 고수 나오는.. 그건 저도 봤어요.^^
일단 용의자 X의 헌신과 이 책을 봐야겠군요..(그 이상은 저로선 아마 무릴 거예요.ㅎㅎ)

자목련 2012-02-06 19:37   좋아요 0 | URL
고수와 손예진이 나오는 영화, 맞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이 히가시노의 가장 최고의 책이라고 지인들은 말하더라구요. 한데, 저도 책으로는 읽지 못했어요.^^
 
오릭맨스티
최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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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를 언제 읽었던가. 내용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하게 각인된 건 제목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 최윤의 소설을 읽고자 했던 건 제목인『오릭맨스티』란 낯선 단어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 대한 갈망은 그러했다.

 

 한 여자와 한 남자의 만남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타인으로 존재했던 이들이 서로를 탐구하며 관찰한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도 괜찮을지, 아니면 여기서 이별을 고해야 할지 대부분의 첫 만남에 그렇듯이.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에 이어 많은(결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믿는다) 것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합의를 보고 관계를 확장시키는 일은 그저 일상적인 삶처럼 보인다.

 

 ‘여자는 정말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자는 유령 같다. 여자는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없다. 나이와 직장 전화번호와 남자가 사는 원룸의 위치와 그가 근무하는 회사의 위치. 모든 게 가변적이다. 여자는 그녀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 즉 남자의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남자가 여자에 대해 모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남자는 여자의 신상과 여자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 40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여자와 남자. 익명은 때로 다수를 의미한다. 여자는 여자들, 남자는 남자들이 되기도 한다.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 배신한 아들 대신 딸에게 어떤 기대를 품는 부모는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사랑하기에 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은 정말 진짜일까. 진정 모든 건 가변적이지 않을까.

 

 ‘결혼이, 부부 관계가 그들이 원래 지니고 있었던 자잘하지만 치명적일 수도 있는 악행들을 뿌리 뽑지 못한다. 게다가 왜 그래야만 하지? 남자는 속으로 반문한다. 남자의 생각이 맞다. 뿌리가 뽑히기는커녕 두 배로 늘어가거나 깊어지고 그에 대해 뻔뻔해진다.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남자에게서 잠시 가려져 있던 단점들이 봄에 잡초 싹이 돋듯 파르스름하게 돋아나는 것을 보고 여자는 고개를 흔들고 두 팔을 늘어뜨린다. 어차피 남자도 여자도 성인이 아니다. 인생은 짧고 할 수 있는 것은 적다.’ p. 103~104

 

 그렇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 결혼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이런 낯익은 풍경을 시작으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욕망에 대해 말한다. 평이하고 솔직한 심경으로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작가의 속내는 조금 천천히 나타난다. 해서 어느 순간 불행을 감지한다. 취미 그 이상을 넘어선 외제 자동차에 대한 남자의 집착, 화려한 일탈을 꿈꾸는 여자의 마음이 같은 지점에서 연소하고 만다. 단 한 번의 멋진 휴가지에서 폭우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하고 두 살 배기 아들만 살아 남는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렇게 여자와 남자의 생은 끝난다. 무수한 소문을 남기고, 늙은 부모에게 상실과 절망을 안기고 떠난 것이다.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화자인 ‘나’가 등장한다. 부모를 잃고 벨기에로 입양된 나는 그 죽음의 순간을 온 몸에 새긴 채 살고 있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한 환영으로 마주할 뿐이다. 청년이 되어 여자와 남자이자, 자신의 부모와 함께 마지막을 보낸 장소를 찾는다. 화자는 기억 속 저편에서 보았을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석양이 영원하지 않듯 삶은 유한하다.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탐하고 꿈꾸는지도 모른다.

 

 한 때, ‘평범’이라는 단어에 매달린 적이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다는 게, 남들처럼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 시점이었다. 균열이 없는 삶을 지속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인내와 욕망을 참아내야 하는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잘사는 것처럼 사는 것, 비슷한 부류와 어울리면서도 그들을 좀 더 앞지르기를 바라며,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건 모두의 숨겨진 욕망일 것이다.

 

 쓸쓸하면서도 어떤 묵직한 아련함이 남는 소설이다. ‘인생은 짧고 할 수 있는 것은 적다’란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내 안에 잠재된 욕망과 탐욕은 무엇일까. 잊지 않고 때때로 찾아오는 울울한 감정은 무엇일까. 명확한 뜻을 알지 못한 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오릭맨스티’를 중얼거리며 언젠가 마주할 인생의 석양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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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2012-01-1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소설 줄거리도 흥미롭지만, 인용구 둘도 모두 좋아서, 소설에 호감이 부쩍!
2. 평범이란 '유한한 삶이기에 더 많은 걸 탐하고 꿈꾸는 마음'의 에너지를 간신히 견뎌내고 삶의 표면의 균열을 막은 결과 일까요. 그나저나 평범도 운명인 것 같아요. 혹은 내가 평범하지 못하다는 마음이 착각이거나요.
3. '잊지 않고 때때로 찾아오는 울울한 감정'이 무엇일지, 혹은 이 감정의 존재가 의미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다 보면 인생의 큰 비밀 하나를 알게 될 것 같아요.^^

자목련 2012-01-20 11:28   좋아요 0 | URL
1. 전 제목 때문에 호감을 가졌던 소설인데, 담담한 문장이 좋았어요.
2. 평범도 운명인 것 같다는 말씀, 정말 깊이 와 닿습니다. 맞아요, 모든 기준은 나에게 있으니까요.
3. 울울한 감정은, 생명력을 안겨주기도 해요. 아, 이렇게 아프고 이렇게 쓸쓸한 날들이 지나감을 느끼니까요..

따뜻함을 안은 덧글로 포근한 아침입니다. 고아워요, 섬님^^
 
의자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13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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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날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환기를 시키고, 메일을 확인하고, 다시 밥을 먹으려고 밥솥에 취사 버튼을 눌렀다. 읽고 있던 책이 있었지만, 그 책을 덮고 이정록의 시집 『의자』를 든 건 소란스러운 내 마음 때문이다. 수록된 시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세어보니 <어린 나무의 발등>부터 <풀뿌리의 힘>까지 모두 61편의 시였다. 알고 있었던 <의자>처럼 한결같이 따뜻한 시들이었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사물들이 시의 소재였다. 곧 우리의 삶을 시라는 이름으로 마주한 것이다.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 먹기가 참 쉽지 않다. 이런 시는 나를 웃겼다가 끝내 울리고 말았다. 어느 집 수저통에 한 벌쯤 있을 젓가락을 소개로 한 시다. 처음엔 똑같았을 젓가락들이 어느새 한 쪽만 닳아버렸다. 어머니와 주고 받는 농 비슷한 말들이 우스워서 웃다가 마지막 연에서 그 웃음이 울음으로 변해버렸다. 한 쪽만 닳아버린 젓가락이 집집마다 남겨진 수많은 어머니 같아서, 연인을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그 누군가 같아서 말이다.

 

 옻나무 젓가락

 

 십 년도 더 된 옻나무 젓가락

 짝짝이다.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한쪽만 몰래 자랐

나? 아니면

 한쪽만 허기의 어금니에 물어뜯겼나?

 

 어머니. 이 젓가락 본래부터 짝짝이였어요? 그럴

리가. 전 그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간데요. 저런 싸

가지를 봐. 같은 미루나무라도 짧은 쪽은 네 놈 혓바

닥처럼 물  질질 흐르는 데서 버르장머리 없이 크다가

물컹물컹 제 살 아무 데나 쓸어 박은 것이고, 안 닳은

쪽은 산 중턱 어디쯤에서 나마냥 조신하게 자란 게지.

출신이 모다 이 어미라도 동생들 봐라. 물컹거리는 녀

석 있나? 장남이라고 고깃국 먹여 키웠더니, 뭐? 그

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가라고? 배운 놈이 그걸 농

이라고 치냐? 젖은 혓바닥이라고.

 

 저녁밥 먹고

 어머니와 나란히 바깥마당으로 나오며

 짝짝이 젓가락처럼 발끝 머리끝을 맞춰보는데

 솥바닥을 뚫고 나가 불길이 되고 싶었나?

 서러워라, 어머니 쪽에서 불내가 솟구친다.

 숟가락 내동댕이치고 서둘러 떠난 식구들

 저 밤하늘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먹고 있나?

 녹슨 양철 지붕 위로 옻칠 부스러져 내린다. (p. 40~41)

 

 사는 건 참 별 게 아니라고 하는데, 누구나 같은 생을 산다고 알고 있는데, 사는 건 왜 이리 힘들까. 철물점에서 마주한 톱날에게서 투명한 물결을 본 시인은 이런 시로 삶을 위로한다.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는, 고난한 일상이 힘겨운 누군가에게 ‘누구나 톱날 하나쯤은 악다물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내가 가진 톱날은 과연 하나뿐일까. 그 톱날로 자르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내 마음 속 톱날이 무뎌지기를 바라야 할까, 더 강해지기를 바라야 할까.

 

 결

 

 철물점에 갔다가

 톱날 묶음을 보았다

 톱니들이 물결처럼 보였다. 손을 대면

 물방울이 튀어 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톱날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누군들 자르는 일에 몸담고 싶으랴

 톱날을 어루만지며, 나는

 얼음집에 가면 톱으로 엉킨 물을 푼다고 말했다

 믹서의 톱날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빨을 번뜩이며, 자기는 정말 파도를 닮아서

 크게 한 번 출렁이면 천 년 묵은 고목도 순간이라고

으스댔다

 누구나 톱날 하나쯤은 악다물고 살아간다고

 내가 아는 실패한 친구에 대해 말해주었다

 너는 토막 난 쇳조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녹슬 줄밖에 모르는 불쌍한 말년이 될 뿐이라고

 타일러 주었다. 일생 억눌려 사는 바위도

 결만 좋으면 구들장이 될 수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러자 톱날에 껴 있던 파도 한 줄기가

 내 마음의 얼음장을 톱질하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물결 소리가 들려왔다

 시린 철새의 발가락도 보았다

 깃털 속으로 햇살 들이쳤다 (p. 56~57)

 

 겨울이니 <겨울밤>이란 시에 눈이 간다. 옥탑방에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 옥상에 보일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가족, 살 부비며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식구들이 모여 앉은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양각색 빨래집게처럼 저마다 색을 지닌 가족들. ‘내가 저 보석 지붕을 받들고 선 주춧돌이다’란 구절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든든한 남편, 좋은 아빠이고 싶은 사내의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겨울밤

 

 보일러를 녹이려고 옥상에 오른다.

 

 하루 내내 이가 시리도록 일한 빨래집게들. 서걱거

리는 옷가지들을 다 건네주고 빨랫줄 한가운데에 모여

있다. 빨랫줄에도 아랫목이 있나? 오목하게 모두 모

여 찬바람을 비끼고 있다. 언 뼈를 부닥뜨리며 겨울밤

을 건너가고 있다.

 

 손전등을 밤하늘에 비춘다. 어리둥절 비틀거리던

기둥 하나가 허공에 선다. 그 불기둥을 따라 추운 별

들이 내려온다. 내가 저 보석 지붕을 받들고 선 주춧

돌이다.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던 약속이 있었지, 한

사내가 쓴웃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아이 방 한가운데 작은 이불 속에도 빨래집게 같은

다리들이 아랫목을 만들고 있다.

 차갑지? 내 시린 무릎을 디민다.

 별꼴이야.

 별꼴이라고? 그렇지. 가족이 무릎을 맞대면 별꼴이

되지.

 

 그 누가 빨래집게들의 가슴마다 목걸이 하나씩을 채

워줬나? 깊은 밤  한 사내가 누군가의 목덜미를 쓰다

듬는다. 빨래집게는 그 팽팽한 철사 목걸이의 힘으로

이 악물고 일만 하나?

 끄응, 별꼴이 돌아눕는다.

 기름 떨어진 보일러처럼, 거칠게 바람이 빠진다. (p. 92~93)

 

 이 시집에는 유쾌하고 정겨운 시들이 많다. 그 유쾌함은 절대 가볍지 않고, 그 정겨움엔 많은 것들이 박혀 있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마음, 자연과 사물에 대한 애틋한 마음, 앞으로 살아갈 우리 생에 필요한 위로와 격려가 함께 있었다. 그래서 더 좋았고 그래서 더 따뜻했다.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p. 10~11)

 

 우리는 서로에게 고단한 삶은 쉴 수 있는 의자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의자가 된 풍경을 함께 바라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지금 나를 받히고 있는 의자에게 고맙다. 흔들리는 나를, 넘어지지 않게 잘 잡아준, 앉을 수 있는 ‘의자’란 이름의 당신에게 고맙다. 나도 당신에게 의자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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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2012-01-1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자, 시 좋네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겠어요.^^

자목련 2012-01-20 11:32   좋아요 0 | URL
진즉,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게 아쉬워요..
참 따뜻한 시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핸드메이드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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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의 처음은 언제나 설렘과 걱정이 함께 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소설은 특히 그렇다. 어떤 글을,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접하는 박형서의 소설 『핸드메이드 픽션』도 그랬다. 이 책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한다면, 흥미롭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양한 장르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소설은 정말 재미있고, 어떤 소설은 정말 애닯고, 어떤 소설은 기상천외한, 어떤 소설은 정말 놀라웠다. 그러니까 박형서란 작가는 실로 대단한 글쟁이라 할 수 있겠다.

 

 8편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녔지만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소설은 <신의 아이들>이다. 화자인 나는 시인이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소설에는 두 명의 제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선택하는 재능을 타고난 시인 지유였고 다른 하나는 재능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지만 열심히 시를 쓰는 설기다.  자신의 재능을 아는 지유는 그로 인해 시인과 부딪히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채 어긋나고 만다. 지친 육신을 달래기 위해 찾은 시골 마을에서 만난 설기는 매일 시를 써서 시인을 찾아온다. 설기에겐 재능이 없었느니 결국엔 그 사실을 일러줘야 했다. 분노하는 설기를 보며 시인은 지유를 떠올리며 시와 재능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신은 인간에게 재능을 주면서, 까닭 모를 심술에 그 계약서를 감춰놓았다.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평생 저만의 가치를 찾아 헤매다 죽음의 경계 바로 너머에서야 비로소 신과 맺은 약속을 알아차린다. 이는 무수한 비극을, 어쩌면 사람이 감당해야 할 거의 모든 비극을 잉태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과의 계약을 발견했다는 증거는 없다. 달변의 재능을 받았지만 도서관 사서로서의 고요한 생활에 만족할 수 있다. 사냥의 재능을 받았지만 수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구나 원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할 자유가 있다’는 말은 하늘이 내린 재능을 찾지 못한 불행자들을 위해 고안된 위로의 수사일 것이다.’ p. 107~108

 

 제목처럼 둘은 신의 아이들였다. 지유는 신이 시를 주었고 설기는 조각 예술의 재능을 주었던 것이다. 설기는 시가 아닌 나무를 깎고 매만지는 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소설의 구절처럼 우리는 저마다 신에게 재능을 받았을까. 받았다면 어 재능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어쩌면 소설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슬픈 소설도 있다. 작은 마을을 떠나 큰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으나 그 때마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고향에 남겨진 화자의 이야기 <너의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과 댐으로 인해 거대한 물 속으로 가라앉은 정류장과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지만 가슴 한 구석에 남은 그곳에 대한 기억으로 아파하는 <정류장>속 인물은 전혀 다르지만 낯설지 않다. 그건 마치 갈망하는 무언가를 놓쳐 절망하거나, 목적 없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내 속도를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게 정상적인건지 어떤지 알지 못했다. 정류장이 보이면 잠시 멈추었다가, 그곳에서의 날이 다했거나 다했다고 느껴지면 망설임 없이 출발했다. 그게 바로 내가 한 일이었다. 다음 정류장은 뭐지? 바로 이다음은? 나는 매일같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무언가 생각이 나면 곧바로 거기에 덤벼들었다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지어내서라도 덤벼들었다. 그러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엷어져감을, 대신 다른 것들이 그 빈자리로 속속 밀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건 조금 쓸쓸한 일이긴 했다.’ p. 48

 

 우연하게 술자리에서 만난 청년이 들려주는 이야기 <갈라파고스>엔 성범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나오는데, 이 이름은 가난한 연인의 일상을 담은 <자정의 픽션>에서 같은 이름의 멸치로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한분태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인 <나는 『부티의 천년』을 이렇게 쓸 것이다>라는 소설엔 ‘부티’라는 인물이 온갖 풍파를 견뎌 전 세계를 돌고 돌아 ‘한분태’란 이름으로 남은 과정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로 시작은 곧 끝이었던 거다. 

 

 작가 박형서는 어떤 소재가 주어지든 어떤 장르를 요구하든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핸드메이드 픽션』이라는 제목과 ‘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부 나다. 내 손으로 썼다.’ 란 작가의 말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려 한다. 그의 증명은 당당하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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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이 지났고, 2012년이 되었다. 벌써 넷째날이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읽었던 책, 리뷰를 쓴 책에 대한 기록이다. 2011년에 읽고 리뷰를 쓴 책은 125권이란다. 알라딘이 아닌 (알라딘에서도 그런 통계가 있을지도 모르다. 허나 나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구매 목록을 찾는 일도 한참 걸리니 말 다했다) 모 서점에서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한 달에 10권 정도 읽은 셈이다.

 

 한국문학을 주로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목록을 살펴보니 그렇지도 않다. 내 마음에 우선적으로 한국문학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간은 언제나 내 책 읽기보다 앞선다. 해마다 새로운 작가가 나오니 더욱 그렇다. 거기다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에 대한 책에도 눈이 가고 혹시나 해서 참여하지만 역시나로 돌아오는 리뷰 대회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한다.

 

 2011년의 첫 책은 <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였고,

 

 

 

 

 

 

 

 

 

 

 

 

 

 

 

 

 

 

 

 

 

 

 

 

 

 

 

 

 

 

 

 

 

 

 

 

 

 

 

 

 

 

 

 

 

 

 

 

 

 

 

 

 

 

 

 

 

 

 

 

 

 

 

 

 

 

 

 

 

 

 

 

 

 

 

 

 

 

 

 

 

 

 

 

 

 

 

 

 

 

 

 

 

 

 

 

 

 

 

 

 

 

 

 

 

 

 

 

 

 

 

 

 

 

 

 

 

 

 

 

 

 

 

 

 

 

 

 

 

 

 

 

 

 

 

 

 

 

 

 

 

 

 

 

 

 

 

 

 

 

 

 

 

 

 

 

 

 

 

 

 

 

 

 

 

 

 

 

 

 

 

 

 

 

 

 

 

 

 

 

 

 

 

 

 

 

 

 

 

 

 

 

 

 

 

 

 

 

 

 

 

 

 

 

 

 

 

 

 

 

 

 

 

 

 

 

 

 

 

 

 

 

 

 

 

 

 

 

 

 

 

 

 

 

 

 

 

 

 

 

 

 

 

 

 

 마지막 책은 김미월의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다.

 

 2012년에는 계획적인 책읽기를 하고 싶은데 어찌될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기록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충동구매보다는 곁에 둔 책을 먼저 읽기를 바란다. 한국문학과 더불어 세계문학, 그리고 시를 읽는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책을 읽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그리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든 말이다.

 

 *늦었지만 이 서재를 다녀가시는 모든 분들께 인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온하시길!!

 부족한 이웃이지만 언제나 고마운 나의 이웃님, 올 한해도 마음을 나누고 인연을 이어나가길 바라요. 잘 부탁드립니다.

 

  고. 맙. 습.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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