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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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의 처음은 언제나 설렘과 걱정이 함께 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소설은 특히 그렇다. 어떤 글을,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접하는 박형서의 소설 『핸드메이드 픽션』도 그랬다. 이 책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한다면, 흥미롭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양한 장르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소설은 정말 재미있고, 어떤 소설은 정말 애닯고, 어떤 소설은 기상천외한, 어떤 소설은 정말 놀라웠다. 그러니까 박형서란 작가는 실로 대단한 글쟁이라 할 수 있겠다.

 

 8편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녔지만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소설은 <신의 아이들>이다. 화자인 나는 시인이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소설에는 두 명의 제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선택하는 재능을 타고난 시인 지유였고 다른 하나는 재능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지만 열심히 시를 쓰는 설기다.  자신의 재능을 아는 지유는 그로 인해 시인과 부딪히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채 어긋나고 만다. 지친 육신을 달래기 위해 찾은 시골 마을에서 만난 설기는 매일 시를 써서 시인을 찾아온다. 설기에겐 재능이 없었느니 결국엔 그 사실을 일러줘야 했다. 분노하는 설기를 보며 시인은 지유를 떠올리며 시와 재능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신은 인간에게 재능을 주면서, 까닭 모를 심술에 그 계약서를 감춰놓았다.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평생 저만의 가치를 찾아 헤매다 죽음의 경계 바로 너머에서야 비로소 신과 맺은 약속을 알아차린다. 이는 무수한 비극을, 어쩌면 사람이 감당해야 할 거의 모든 비극을 잉태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과의 계약을 발견했다는 증거는 없다. 달변의 재능을 받았지만 도서관 사서로서의 고요한 생활에 만족할 수 있다. 사냥의 재능을 받았지만 수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구나 원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할 자유가 있다’는 말은 하늘이 내린 재능을 찾지 못한 불행자들을 위해 고안된 위로의 수사일 것이다.’ p. 107~108

 

 제목처럼 둘은 신의 아이들였다. 지유는 신이 시를 주었고 설기는 조각 예술의 재능을 주었던 것이다. 설기는 시가 아닌 나무를 깎고 매만지는 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소설의 구절처럼 우리는 저마다 신에게 재능을 받았을까. 받았다면 어 재능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어쩌면 소설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슬픈 소설도 있다. 작은 마을을 떠나 큰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으나 그 때마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고향에 남겨진 화자의 이야기 <너의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과 댐으로 인해 거대한 물 속으로 가라앉은 정류장과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지만 가슴 한 구석에 남은 그곳에 대한 기억으로 아파하는 <정류장>속 인물은 전혀 다르지만 낯설지 않다. 그건 마치 갈망하는 무언가를 놓쳐 절망하거나, 목적 없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내 속도를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게 정상적인건지 어떤지 알지 못했다. 정류장이 보이면 잠시 멈추었다가, 그곳에서의 날이 다했거나 다했다고 느껴지면 망설임 없이 출발했다. 그게 바로 내가 한 일이었다. 다음 정류장은 뭐지? 바로 이다음은? 나는 매일같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무언가 생각이 나면 곧바로 거기에 덤벼들었다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지어내서라도 덤벼들었다. 그러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엷어져감을, 대신 다른 것들이 그 빈자리로 속속 밀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건 조금 쓸쓸한 일이긴 했다.’ p. 48

 

 우연하게 술자리에서 만난 청년이 들려주는 이야기 <갈라파고스>엔 성범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나오는데, 이 이름은 가난한 연인의 일상을 담은 <자정의 픽션>에서 같은 이름의 멸치로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한분태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인 <나는 『부티의 천년』을 이렇게 쓸 것이다>라는 소설엔 ‘부티’라는 인물이 온갖 풍파를 견뎌 전 세계를 돌고 돌아 ‘한분태’란 이름으로 남은 과정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로 시작은 곧 끝이었던 거다. 

 

 작가 박형서는 어떤 소재가 주어지든 어떤 장르를 요구하든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핸드메이드 픽션』이라는 제목과 ‘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부 나다. 내 손으로 썼다.’ 란 작가의 말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려 한다. 그의 증명은 당당하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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