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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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욕망의 존재다. 그 욕망을 얼마나 잘 다스리며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욕망을 쫓다 보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알지만 눈앞에 보이는 욕망을 외면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름답고 화려한 신도시의 편리한 생활과 쓰레기 가득한 변두리의 구도시 중 하나를 택하라면 구도시를 택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화려함으로 위장한 실체를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감춰진 모습을 확인하더라도 과감하게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쉽지 않은 결정이다.  박범신은 비즈니스를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진다. 욕망이 가득한 세상,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묻는 것이다.  
 
 소설은 서해안에 위치한 ㅁ시가 거대한 자본의 유입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따라 달라지는 도시의 삶을 이야기한다. 해안도로를 경계로 도시는 나워진다. 권력과 자본으로 비즈니스를 성공시킨 신도시와 구도시는 빛과 그림자였다. 사람들은 빛만 보려 한다. 그에 따른 그림자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짐짓 모른 척한다. 사람들은 모두 신도시를 향한다. 어떻게 해서든 신도시에 입성해야 성공한 삶이었다. 

  ‘쓰레기차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쏜살같이 지날 때 구시가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오로지 신시가지 사람들의 쾌적한 문화생활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비로소 소스라친다.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잇는 20분간의 그 이동은 공간 이동이라기보다 시간 이동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 p. 14~15  

 주인공 ‘나’와 준하는 그림자에 속한 삶이다. 높은 빌딩숲이 아닌 쓰레기가 가득한 오염된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이다. 아들의 학원비를 위해 몸을 파는 나는 구도시의 동백횟집을 지키고자 도둑이 되버린 준하를 고객으로 만난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단순한 관계일 뿐이다. 그러나 서로의 아픔을 알아 본 운명이었을까. 새로이 시작된 나와 그의 관계는 점점 긴밀해진다.  

 형사였던 준하는 동료들의 함정에 빠져 모든 것을 내려놓고 ㅁ 시로 내려온다. 선거 활동으로 시장을 도왔고 동백횟집을 차렸지만 신도시로 인한 매립지구로 인해 빚더미에 오른다. 나는 고시공부 하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이었지만 결과는 남편의 고향인 ㅁ시였다. 

 더 이상 젊지 않았기에 그들은 소박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도시의 등장으로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아들에게만은 이 생활을 절대로 물려줄 수 없었기에 나는 몸을 팔았고, 엄마의 죽음으로 자폐 증상이 심해진 아들 여름을 위해 준하는 신도시 부자들의 집을 턴다. 나와 준하에겐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같았고, ‘이팝나무’로 통하는 추억이 같았다. 나를 이팝나무라 부르던 남편, 이팝나무를 좋아했던 준하의 아내.  

 준하가 살아온 삶을 통해 나는 지난 날을 돌아보며 지금의 자신과 마주한다. 남편을 믿고 사랑하며 돈이 전부가 아니라 실패가 두렵지 않았던 시절은 어디로 가고 아들만은 신도시 입성을 해야 한다고 몸부림치는 서글픈 현실이 자신의 전부라니.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와 그가 그림자였다면, 나의 친구 신도시에 사는 주리와 그 도시를 만든 시장은 빛이라 해야 할까. 나에게 일을 소개해 준 것도 일찍이 삶은 비지니스라는 걸 알았던 주리였다. 부와 명예만이 이 시대를 사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시장은 어떠한가, 성공을 위해선 구도시의 삶은 어디에도 없었고, 모든 것이 그에겐 도구일 뿐이다. 과연, 어느 쪽이 행복한 삶일까. 아니, 제대로 살고 있는 삶일까.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속해 살고 있을까.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메아리로 돌아오는 질문들, 삶이라는 게 이토록 씁쓸하고 허망한 것이라니. 

 욕망에 길들인 사람들은 새하얀 이팝나무 하나만으로 행복을 떠올릴 수 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이팝나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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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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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런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어떤 소설이냐하면 바로, 곰스크로 가는 기차같은 소설 말이다. 아, 정말 기분 좋은 소설이다. 무엇이 그리 기분 좋으냐고 묻는다면 꼬집어서 답을 할 수 없다. 그냥, 당신도 읽어보면 알게 될꺼 라고 답할 뿐이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이게 무슨 행복한 소설이냐고.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모호한 이야기, 작가가 뭘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뿐이지 않냐고. 바로, 그거다. 해서, 여운이 남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오래오래 기억되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표제작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단막극으로 방영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배우의 연기보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젊은 두 남녀의 작은 논쟁과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시대와 공간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곰스트는 과연 어디일까. 인상 깊게 남았는데 원작이 있었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곰스크의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까.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아버지가 항상 말했던 곰스크는 남편에게 꼭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아내는 달랐다. 낯선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불안했고 두려웠다. 잠시 기차가 잠시 정차하고 부부는 작은 마을에 내려 둘러본다. 시간이 갈수록 남편은 기차를 놓칠까 초초하나 아내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에 반해버린다. 결국 기차를 놓치고 만다. 기차표는 몹시 비쌌고 돈을 구하려면 마을에 머물려 일을 하고 다시 기차를 기다려야 했다. 

 상심한 남편과 반대로 아내는 그 마을에 적응한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데 방을 꾸미고 살림살이를 들인다. 그리고,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도착했을 때 아내는 안락의자를 가지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표는 두 장밖에 없었고 안락의자에 대한 비용을 치뤄야 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아내가 아이를 가졌던 것을 말이다. 누구나 예상하듯 그들은 곰스트로 가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그곳에서 정착하여 살았다. 그렇다고 남편이 곰스크를 잊었을까. 아니다, 남편의 마음은 언제나 곰스트로 가고 있었다.   

 오늘까지도 여전히 그것은 나를 사로잡는다. 곰스크로 가는 특급열차가 저 멀리 돌진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찢어지는 듯 슬픈 기적소리가 초원을 뚫고 울리다가 멀리 사라질 때면, 갑자기 뭔가 고통스러운 것이 솟구쳐 나는 쓸쓸한 심연의 가장자리에 놓인 것처럼 잠시 서 있곤 한다. p. 62

 곰스크는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지명일 뿐이지만, 곰스크는 누구나 가슴속에 간직한 그 어떤 것이다. 그 때 그 시절 선택하지 못했던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 열정, 꿈, 사랑이다. 아쉽고 그립고 때로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내 때문에 곰스트로 가지 못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내에게 곰스크는 현실이었고 남편에게 곰스크는 이상이었던 것일까. 곰스트는 값비싼 댓가와 크나큰 희생을 감수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리라.
 
 그 외 7편의 단편도 내 큰 설렘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고 믿고 배에 올랐지만 배가 확히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는 불안과 혼란이 가득한 <배는 북서쪽으로>는 마치 우리네 삶을 보는 듯하다. 분명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누구도 잘 가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만을 보고 달려오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짧은 단편 <두 시절의 만남>도 그러하다. 

 눈부시게 빛나던 청춘과 사랑을 담은 <붉은 부표 저편에>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을 만나는 <양귀비>를 읽다 보면 추억에 빠져든다. 순수했던 마음과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하니 과거로 사라질 현재를 잘 살아내야 한다는 다짐으로 돌아온다.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소설이다. 뜨거운 열정을 차분한 문장으로 담았다. 자꾸 떠오르는 소설이 될 것이다. 잊고 있던 나의 곰스크를 생각할 때마다 가만히 열어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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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마지막 날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연일 내린 눈이 가득하다. 조금씩 녹고 있지만 또 눈 소식이 있다. 연말은 괜히 쓸쓸하다. 숫자에 불과한 날들인데, 어쩜 우리는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10년 책 읽기를 돌아본다. 100권을 목표로 한 책읽기는 성공했다. 실은 몇 년째 100권 읽기다. 중요한 건 다양한 책읽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는 시집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러하니 리뷰를 쓰지 못한 건 당연하다. 욕심을 내서 시집을 구매했지만, 그저 곁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두 차례의 입원으로 책 읽기에 공백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록의 공백이다. 내게 리뷰 쓰기는 기억에 관한 것이다. 좋은 느낌으로 남은 책들, 구절들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글로 남겨두는 것이다. 또한 모든 책을 소유하지 못하기에 기록은 중요한 일이다.  

 특히 아쉬운 건 정말 정말 좋았던 책에 대한 리뷰가 없다는 것이다. 6월~8월에 읽은 책들이 그러하다. 어떤 책이든 바로 쓰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면 재독을 하기 전에는 끝내 쓰지 못한다. 입원하기 전에 만난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 병원에서 만난 윤대녕의 <대설주의보>, 한지혜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보고서>, 황석영의 <강남몽>, 퇴원 후 읽은 윤대녕의 <이 모든 극적인 순간>까지 그러하다. 

 나의 책읽기는 문학이 주를 이루었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내게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 소설이 많다. 황정은, 권여선, 김훈, 윤대녕, 강영숙, 윤성희,  김숨, 김이설, 박민규, 편혜영, 김영하, 등 정말
많다.  

 

 

 

 

 

 

 

 

 

 

 

 

 

 

 

 

 

 

   

 

  

 

 

 

 

  

 

   

 

 

  

 

 

  

 

 

 

 그 뒤를 이어 만난 책은 외국문학이다. <숨그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어젯밤>, <가든 파티>, <1Q84>, < 렛미인>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산문집과 여행기도 있었다. 최윤필, 박완서, 서영은, 김도언, 박근영, 윤미나, 김연미, 전미정의 책들이 기억에 남는다.     

 

 

 

 

 

  

 

   

  

 

 

 

  

 

 

 

   

 

 

인문, 과학, 철학 분야는 올 해도 손에 꼽을 정도다. 매년 인문 분야와 시를 좀 더 읽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실천은 제자리 걸음이다. 유아 서적인, 학습서나 동화책도 그러하다.    

 

 

 

 

  

 

 

   

  

 

 2011년에도 나는 책을 읽을 사고 책을 읽고 리뷰를 쓸 것이다. 책을 통해 얻는 즐거움과 위안을 알기에 책은 내 곁에 머무를 것이다. 내년에는 언제나 소망하듯 건강하면 좋겠다. 내 가족과 지인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리. 고 내가 바라는 일도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기를 바란다. 

 모두 건강하고 평온한 새해 맞이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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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2 1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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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3 06: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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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공지영 지음 / 창비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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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 공지영의 소설을 읽은 건 우연에 불과했다. 그저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는 제목이 좋아서,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다고 해도 좋다.  한데,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보다 더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책 읽기에도 타이밍이 있다고 해야 할까. 적절한 시기에 만난 책이라 그렇지도 모른다. 소설엔 유독 이별이 많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은 슬픈 일이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영원한 이별은 더욱 그러하다. 상대방의 부재를 인식한 후에야 그 존재의 크기를 알게 되는 어리석음을 경험한다. 

 특히 좋아하는 단편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먼저 읽었다. 주인공 역시 사랑하는 남자와 이별을 했다. 이혼녀인 그녀에게 사랑은 현실이 아닌 이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남자가 페루로 떠나자 그의 부재를 힘겨워한다. 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에서 퇴직하며 돌아오는 길, 그의 환영과 마주한다. 닿을 수 없는 먼 곳 페루에 존재하는 그는 여전하게 그녀 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야. 그 부피만큼만의 슬픔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사람일 뿐이니까.’ p.159   

 내 생에 나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일까.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던 한 해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라지만, 모든 존재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의 거리』의 첫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까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이 떠나지 않았던 단편 고독은 우울해 하는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은 단편이다. 실은 내게도 그러하다. 평범한 일상에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잘 묘사한 소설이다.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까지 생각하는 동생, 불안한 시대 가장으로 힘들어하는 남편, 두 명의 아이들을 뒤로 하고 홀연히 떠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주인공. 잠들지 못하고 홀로 깨어 있는 시간, 우리는 누구나 『어두운 상점의 거리』의 첫 문장과 같으리라.  그러나 친구도 나도 주인공도 켤코 떠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소설 속 그녀처럼 고독과 슬픔을 감추고 평범한 일상의 이어갈 것이다.

 ‘내일도 특별한 날은 아닐 것이다. 그 여자는 아마 자명종도 없이 일곱시쯤이면 잠이 깰 것이고 오늘 먹던 콩나물국을 데워 내일 아침을 준비할 것이다. 남편과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차례로 일어나 회사로 학교로 유치원으로 떠날 것이다.’ p. 101 

 <조용한 나날>도 <고독>과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과연 우리 생에 조용한 나날은 얼마나 될까. 미칠 듯 사랑했던 시절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듯, 흔들리는 삶을 겪고 난 뒤에 찾아오는 삶이 조용한 나날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지만 결국 상처만 남게 된 젊은 날을 여유롭게 돌아볼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리라. 그건 서글픈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제나 타오르는 감정만을 갖고 살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자연스레 깨닫는다. 언젠가는 이런 구절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만다.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p.187  

 70~80년대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광기의 역사>,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는 작가 공지영의 삶을 엿보는 듯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광기의 역사>는 국민학교라 불렸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렸다. 학교는 거대한 권력이었다. 영화감독인 남편을 따라 모스끄바에 도착한 주인공은 소설가로 그곳에서 친구들와 재회를 꿈꾼다. 허나, 현실은 모스끄바의 차가운 풍경과 같았다. 주인공이 느꼈을 허무함도 그랬다. 민주항쟁이나, 광주사태를 대학생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나는 앞선 세대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소설을 짐작할 뿐이다.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내고 노년의 부부가 떠나는 여행인 <길>은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묻는다. 명성이 자자한 촬영감독인 남편과 수학교사인 아내는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 부부라는 이름은 허울뿐이었다. 그러다 떠난 여행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앞으로 살아갈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지난 날을 돌아본다. 

 삶이라는 것도 언제나 타동사는 아닐 것이다. 가끔 이렇게 걸음을 멈추고 자동사로 흘러가게도 해주어야 하는 걸 게다. 어쩌면 사랑, 어쩌면 변혁도 그러하겠지. 거리를 두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삶이든 사람이든 혹은 변혁이든 한번 시작되어진 것은 가끔 우리를 버려두고 제 길을 홀로 가고 싶어하기도 하니까.’ p.147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생각한다. 또 한 해를 살았다. 내가 감당할 만큼의 슬픔과 상처가 있었던 삶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내가 모르는 기쁨과 감사가 숨겨져 있었던 였는지 모른다. 보물찾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걸 찾아내는 일은 누구도 아닌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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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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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가끔 일기를 쓴다. 특별한 일이 없는 반복된 일상의 기록이지만  지난 날의 기록을 마주하는 순간, 묘한 감상에 젖는다. 또렷하게 살아나는 슬픔의 감정이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나의 생각과 기록을 되짚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기록을 읽는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리운 사람이 남긴 일기라면 더 그럴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할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소설 독고준은 그런 이야기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읽게 되는 딸의 일상과 생각을 담았다.  
 
 아쉽게도 나는 이 소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최인훈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지 못했다. 해서, 주인공 독고준의 과거를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버지 독고준과 딸 독고원의 삶을 다룬 소설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소설가 아버지가 일기를 통해 아버지의 생각과 사랑을 확인하는 딸의 애틋한 마음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소설은 독고준의 자살로 시작한다. 전임 대통령이 자살하던 날 독고준은 14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자살을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왜 그렇게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일기를 딸 독고원이 읽게 된다.   

 월남을 한 독고준에게 가족은 아내와 두 딸뿐이었다. 평생을 외롭게 살다 간 그의 기록은 담담하면서도 평온했다. 독고원의 시선에서 바라본 독고준의 삶을 만날 수 있기에 액자소설에 가깝다. 독고준의 일기는 단 한 줄의 짧은 기록을 남긴 날도 있고, 장문의 글을 남긴 날도 있다. 소설가의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어떤 일기는 논평이고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설이며, 비평이기도 하다.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월 28일부터 2007년 12월 19일까지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일기는 쓰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일흔 네살의 독고준은 자살한다. 무려 48년의 기록인 일기는 순차적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월별로 공개된다. 독고원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주류에 합류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기에 비주류였던 소설가로 살아온 아버지의 고뇌와 비애, 아버지를 대신해 경제를 책임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을 일기를 통해 표현했던 아버지. 전처 자식이 있는 남자와 재혼한 작은 딸과 동성애자의 삶을 선택한 자 큰 딸을 향한 무한의 사랑을 기록한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 아버지를 생각한다. 다정다감한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아버지, 엄마의 죽음으로 점점 작아지는 아버지의 내면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어떤 자식일까, 죄송하고 죄송하다.  

 독고준을 읽으면서 그러니까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1960년대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정치와 문학을 만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한국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독고준이 기록한 일기에는 책과 시가 많이 등장한다. 그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문학가들의 작품에 대한 글은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흥미로운 부분이다. 해서, 독고준의 일기에 거론된 작품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또한 소설가나 시인, 문학가들의 실명이 드러나기에 마치 논픽션이 아닐까 착각에 빠져든다. 그것은 저자 고종석이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라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책을 읽다 말고 거론된 작가와 작품을 검색하기도 했고, 작가 이제하씨의 홈페이지에 방문하기도 했다. 수많은 작품 중 알랭드 보통의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나, 윤성학의 시 <뼈아픈 직립>은 나를 사로잡았다. 

 허리뼈 하나가 하중을 비켜섰다/계단을 뛰어 내려오다가/후두둑/직립이 무너져내렸다//뼈를 맞췄다/삶의 벽돌 한 장쯤은/어긋나더라도/금세 다시 끼워놓을 수 있는 것이었구나/유충처럼 꿈틀대며 왔던 길을/바로 서서 걸어 돌아왔다//온몸이 다 잠들지 못하고/밤을 세워 아프다/생뼈를 억지로 끼워넣었으니/한 조각 뼈를 위하여/이백여섯/내 삶의 뼈마디 마디가/기어코 뼈 몸살을 앓아야 했다/ -  윤성학 <뼈아픈 직립> 전문 

 일기에는 유독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부고에 대한 기록이 많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던 인물의 죽음은 그렇게 단 한 줄의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인가. 독고준은 분명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정말 존재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든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자서전이나 수필같다는 느낌이 많다. 

 작가의 문학세계와 그의 삶은 일치할 수 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일치하는 경우보다 휠씬 많을 듯하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격언은 아주 깊다란 수준,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옳다. 인류는 교활해서, 자신의 추악한 참모습을 아름다운 언어의 천으로 가릴 수 있다. p.397  - 독고준 소묘 중에서 

 마지막으로 고종석 묘사한 독고준의 글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추악한 참모습을 아름다운 언어의 천으로 가리는 인간는 작가뿐 아니라, 인간 본연의 숨겨진 모습은 아닐런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우리 개인의 삶, 우리는 제대로 기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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