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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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가끔 일기를 쓴다. 특별한 일이 없는 반복된 일상의 기록이지만  지난 날의 기록을 마주하는 순간, 묘한 감상에 젖는다. 또렷하게 살아나는 슬픔의 감정이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만나기도 하지만, 나의 생각과 기록을 되짚을 수 있어 좋다. 그러나,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의 기록을 읽는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리운 사람이 남긴 일기라면 더 그럴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할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소설 독고준은 그런 이야기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읽게 되는 딸의 일상과 생각을 담았다.  
 
 아쉽게도 나는 이 소설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최인훈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지 못했다. 해서, 주인공 독고준의 과거를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아버지 독고준과 딸 독고원의 삶을 다룬 소설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소설가 아버지가 일기를 통해 아버지의 생각과 사랑을 확인하는 딸의 애틋한 마음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소설은 독고준의 자살로 시작한다. 전임 대통령이 자살하던 날 독고준은 14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자살을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왜 그렇게 삶을 마감해야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일기를 딸 독고원이 읽게 된다.   

 월남을 한 독고준에게 가족은 아내와 두 딸뿐이었다. 평생을 외롭게 살다 간 그의 기록은 담담하면서도 평온했다. 독고원의 시선에서 바라본 독고준의 삶을 만날 수 있기에 액자소설에 가깝다. 독고준의 일기는 단 한 줄의 짧은 기록을 남긴 날도 있고, 장문의 글을 남긴 날도 있다. 소설가의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어떤 일기는 논평이고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설이며, 비평이기도 하다.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월 28일부터 2007년 12월 19일까지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일기는 쓰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일흔 네살의 독고준은 자살한다. 무려 48년의 기록인 일기는 순차적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월별로 공개된다. 독고원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주류에 합류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기에 비주류였던 소설가로 살아온 아버지의 고뇌와 비애, 아버지를 대신해 경제를 책임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을 일기를 통해 표현했던 아버지. 전처 자식이 있는 남자와 재혼한 작은 딸과 동성애자의 삶을 선택한 자 큰 딸을 향한 무한의 사랑을 기록한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 아버지를 생각한다. 다정다감한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아버지, 엄마의 죽음으로 점점 작아지는 아버지의 내면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어떤 자식일까, 죄송하고 죄송하다.  

 독고준을 읽으면서 그러니까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1960년대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정치와 문학을 만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한국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독고준이 기록한 일기에는 책과 시가 많이 등장한다. 그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문학가들의 작품에 대한 글은 문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흥미로운 부분이다. 해서, 독고준의 일기에 거론된 작품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또한 소설가나 시인, 문학가들의 실명이 드러나기에 마치 논픽션이 아닐까 착각에 빠져든다. 그것은 저자 고종석이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라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책을 읽다 말고 거론된 작가와 작품을 검색하기도 했고, 작가 이제하씨의 홈페이지에 방문하기도 했다. 수많은 작품 중 알랭드 보통의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나, 윤성학의 시 <뼈아픈 직립>은 나를 사로잡았다. 

 허리뼈 하나가 하중을 비켜섰다/계단을 뛰어 내려오다가/후두둑/직립이 무너져내렸다//뼈를 맞췄다/삶의 벽돌 한 장쯤은/어긋나더라도/금세 다시 끼워놓을 수 있는 것이었구나/유충처럼 꿈틀대며 왔던 길을/바로 서서 걸어 돌아왔다//온몸이 다 잠들지 못하고/밤을 세워 아프다/생뼈를 억지로 끼워넣었으니/한 조각 뼈를 위하여/이백여섯/내 삶의 뼈마디 마디가/기어코 뼈 몸살을 앓아야 했다/ -  윤성학 <뼈아픈 직립> 전문 

 일기에는 유독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부고에 대한 기록이 많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던 인물의 죽음은 그렇게 단 한 줄의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인가. 독고준은 분명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보면 이 사람이 정말 존재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든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자서전이나 수필같다는 느낌이 많다. 

 작가의 문학세계와 그의 삶은 일치할 수 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일치하는 경우보다 휠씬 많을 듯하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격언은 아주 깊다란 수준,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옳다. 인류는 교활해서, 자신의 추악한 참모습을 아름다운 언어의 천으로 가릴 수 있다. p.397  - 독고준 소묘 중에서 

 마지막으로 고종석 묘사한 독고준의 글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추악한 참모습을 아름다운 언어의 천으로 가리는 인간는 작가뿐 아니라, 인간 본연의 숨겨진 모습은 아닐런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우리 개인의 삶, 우리는 제대로 기록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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