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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공지영 지음 / 창비 / 1999년 7월
평점 :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 공지영의 소설을 읽은 건 우연에 불과했다. 그저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는 제목이 좋아서,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다고 해도 좋다. 한데,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보다 더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책 읽기에도 타이밍이 있다고 해야 할까. 적절한 시기에 만난 책이라 그렇지도 모른다. 소설엔 유독 이별이 많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은 슬픈 일이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영원한 이별은 더욱 그러하다. 상대방의 부재를 인식한 후에야 그 존재의 크기를 알게 되는 어리석음을 경험한다.
특히 좋아하는 단편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먼저 읽었다. 주인공 역시 사랑하는 남자와 이별을 했다. 이혼녀인 그녀에게 사랑은 현실이 아닌 이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남자가 페루로 떠나자 그의 부재를 힘겨워한다. 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에서 퇴직하며 돌아오는 길, 그의 환영과 마주한다. 닿을 수 없는 먼 곳 페루에 존재하는 그는 여전하게 그녀 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야. 그 부피만큼만의 슬픔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서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사람일 뿐이니까.’ p.159
내 생에 나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일까.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던 한 해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 거라지만, 모든 존재는 자신의 눈물을 닦아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의 거리』의 첫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까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이 떠나지 않았던 단편 고독은 우울해 하는 친구에게 읽어주고 싶은 단편이다. 실은 내게도 그러하다. 평범한 일상에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잘 묘사한 소설이다.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까지 생각하는 동생, 불안한 시대 가장으로 힘들어하는 남편, 두 명의 아이들을 뒤로 하고 홀연히 떠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주인공. 잠들지 못하고 홀로 깨어 있는 시간, 우리는 누구나 『어두운 상점의 거리』의 첫 문장과 같으리라. 그러나 친구도 나도 주인공도 켤코 떠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소설 속 그녀처럼 고독과 슬픔을 감추고 평범한 일상의 이어갈 것이다.
‘내일도 특별한 날은 아닐 것이다. 그 여자는 아마 자명종도 없이 일곱시쯤이면 잠이 깰 것이고 오늘 먹던 콩나물국을 데워 내일 아침을 준비할 것이다. 남편과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차례로 일어나 회사로 학교로 유치원으로 떠날 것이다.’ p. 101
<조용한 나날>도 <고독>과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과연 우리 생에 조용한 나날은 얼마나 될까. 미칠 듯 사랑했던 시절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듯, 흔들리는 삶을 겪고 난 뒤에 찾아오는 삶이 조용한 나날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했지만 결국 상처만 남게 된 젊은 날을 여유롭게 돌아볼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리라. 그건 서글픈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언제나 타오르는 감정만을 갖고 살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자연스레 깨닫는다. 언젠가는 이런 구절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만다. ‘더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p.187
70~80년대를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광기의 역사>,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는 작가 공지영의 삶을 엿보는 듯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광기의 역사>는 국민학교라 불렸던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 ‘국민교육헌장’을 떠올렸다. 학교는 거대한 권력이었다. 영화감독인 남편을 따라 모스끄바에 도착한 주인공은 소설가로 그곳에서 친구들와 재회를 꿈꾼다. 허나, 현실은 모스끄바의 차가운 풍경과 같았다. 주인공이 느꼈을 허무함도 그랬다. 민주항쟁이나, 광주사태를 대학생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나는 앞선 세대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소설을 짐작할 뿐이다.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내고 노년의 부부가 떠나는 여행인 <길>은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묻는다. 명성이 자자한 촬영감독인 남편과 수학교사인 아내는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 부부라는 이름은 허울뿐이었다. 그러다 떠난 여행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앞으로 살아갈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지난 날을 돌아본다.
‘삶이라는 것도 언제나 타동사는 아닐 것이다. 가끔 이렇게 걸음을 멈추고 자동사로 흘러가게도 해주어야 하는 걸 게다. 어쩌면 사랑, 어쩌면 변혁도 그러하겠지. 거리를 두고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삶이든 사람이든 혹은 변혁이든 한번 시작되어진 것은 가끔 우리를 버려두고 제 길을 홀로 가고 싶어하기도 하니까.’ p.147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생각한다. 또 한 해를 살았다. 내가 감당할 만큼의 슬픔과 상처가 있었던 삶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내가 모르는 기쁨과 감사가 숨겨져 있었던 해 였는지 모른다. 보물찾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걸 찾아내는 일은 누구도 아닌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