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었다. 바람은 달라졌고 내 입술은 덥다라는 말을 삼켜버렸다. 몸은 가을이라는 걸 느끼고 있으나 아직 가을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가을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계절이 가을이다. 맛있는 바람이 불고 생명을 잉태하기 적절한 계절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나는 가을을 좋아하지 않는다. 9월로 시작하여 10월, 11월, 그리고 겨울까지 때때로 우울하고 때때로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한다. 가을을 앓기 시작한 뒤로 나는 가을이 두렵다. 매년 다른 색으로 다른 속도로 다가오며 곧 사라질 가을의 정체는 불확실하다.

 애매모호한 사랑 고백같은 게 봄이라면,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주저하는 마음은 가을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9월과 가을은 왔고 책도 왔다. 좋아하는 동생의 선물로 창작과 비평이 여름호에 이어 가을호가 도착했다. 백가흠의 소설집 <힌트는 도련님>, 김선재의 첫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심보선의 두 번째 시집 <눈 앞에 없는 사람>, 90년대 학번을 추억에 빠지게 할 한차현의 <사랑, 그 녀석>, 섹스를 테마로 쓴 <남의 속도 모르면서>까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걸 확인시키려는 듯 말이다. 

 작년 9월엔 곤파스의 손길로 유리가 사라진 채로 보냈다. 유리가 사라진 베란다 창틀에 기대어 같은 모양새의 여러 집들을 바라보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올 해 9월은 아늑하다. 9월을 맞이해 내가 한 일은 방의 구조를 변경한 것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9월이 되서 한 일은 아니다.

 내 방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방이다. 침대 옆에 있던 컴퓨터 책상을 침대 아래쪽으로 옮겼고 작은 책장의 위치도 바꿨다. 아직은 이 위치가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책들을 정리해야 한다. 소유해야 할 책들과 그렇지 않은 책들, 읽어야 할 책들과 그렇지 않은 책들, 당장 읽어야 할 책들과 조금 미뤄 읽어도 될 책들,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 리뷰를 써야 할 책들.

 9월엔 추석도 있다.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송편을 먹게 될 것이고, 마음이 분주할 것이다. 도로를 메우는 차들을 보면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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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9-08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들을 정리하실 생각이시군요. 책장 위치를 바꾸시기도 하셨구요.
가구들의 위치를 바꾸고 나서 한동안 느껴지는 낯설음이 전 왠지 좋더라구요. 그러다 또 어느날 다시 원래대로 복귀를 해놓게 되면 다시 약간의 낯설음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원래대로 돌아왔는데도 느껴지는 그 낯설음 또한 재미난 감정이더라구요.

자목련 2011-09-14 11:18   좋아요 0 | URL
방 안에 간이 책장과 책상의 위치를 바꾸었어요.
제대로 된 책장이 없기도 하고, 공간에 비해 책이 많아서 정리해야 하는데,
여전하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답니다.
바람이 좋은 오전입니다. 평온한 하루 이어가세요.^^
 
2011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장욱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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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며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작가들의 경우, 같은 해 신춘문예로 등단했거나 연령대가 비슷하면 자연스레 선의의 경쟁 상대가 되는 것이다. 소재나 주제가 비슷하거나 소설의 방향이 같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의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과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을 통해 만난 젊은 작가들은 어찌보면 훌륭한 경쟁상대이거나 같은 출발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상작가인 이장욱을 비롯해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김성중, 정용준, 김유진의 소설은 연이어 읽게 된 셈이다. 묘하게도 모두 나중에 만난 소설이 더 좋았다. 특히 정용준의 <가나>, 김선재의 <독서의 취향>, 최은미의 <눈을 감고 기다리렴>이 좋았다. 

 <가나>는 죽음을 소재로 한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원양어선을 타고 낯선 바다에 빠져 죽은 남자의 이야기다. 죽은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죽음과 시체를 걷어올린 산 자의 시선으로 나눠진다. 그러니까 화자인 나는 죽은 시체인 것이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시신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은 어떨까. 삶과 죽음으로 나뉜 소설에서 마주한 건 사랑이었다. 고향에 두고 온 벙어리의 아내와 갓 태어나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아들에 대한 사랑이다. 만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나 소리가 되어 가족에게 닿고 싶은 간절함이 애닯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하비바, 나는 당신이 좋아했던 노래가 되었다. 나는 지금 당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바람보다 가벼워졌다. 나는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다. 국경을 넘어 마을로 향한다. 가나가 만지고 있을 초원의 풀 위로, 새 떼가 뒤덮는 하늘 위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당신의 머리 위로, 그리고 당신의 말라버린 성대 속으로,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좋겠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p. 79    

 <독서의 취향>의 화자는 말더듬이로 책을 파는 외판원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가 사랑하는 안나는 환상의 인물이며 주말을 함께 보내는 결혼한 안네는 실존의 인물이다. 안나는 환상이었고 안네는 현실이었다. 아니, 둘 다 나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말더듬이 세일즈맨이 소통을 위해 쏟아내는 노력이야 말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은 아닐까. 해서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자신만의 안나를 꿈꾸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이 기울었으니 액자가 기우는 건 당연한 거야. 나의 말에 안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시 써? 파는 일이나 잘하시지. 나가 알기에 시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안네에게 그건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현실을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힘이 있었다. 시는 시인이 쓰고 나는 책이나 팔고 나와 살지 않는 안나는 나를 사랑했고 나와 사는 안네는 나를 지상에 단단히 묶었다. 다들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이토록 한결같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p. 363 

 존재 자체가 트라우마가 될 수 있을까. <눈을 감고 기다리렴> 속 화자는 쌍둥이로 존재했으나 결국 혼자 살아남아 모두에게 상처로 인식된다. 그러니 생에 대한 애착보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을 것이며 양수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자살을 감행하기 위해 모인 변두리 여관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수상작인 이장욱의 <곡란>은 존재와 부재사이를 오가는 위태로운 삶과 마주한다. 기존의 소설인 프랑켄슈타인을 독특한 인터뷰로 구성한 최제훈의 <괴물을 위한 변명>,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 잔혹하게 세상과 맞서는 약자의 이야기 이유의 <커트>는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가위가 가진 섬뜩함을 잘 묘사한다. 우연하게 살인을 저지른 연쇄 살인범을 통해 인간의 이중적 모습을 보여주는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은 탄탄한 구성이 돋보였다.

  86 아시안 게임과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이홍의 <나의 메인스타디움>과  한 번쯤 마주할 법한 사이비 종교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의 사연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겹쳐지는 모습을 발견하는 김성중의 <게발 선인장>은 무척 재미있었으며 주어 온 항아리에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에 대한 서글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황정은의 <甕器傳>과 한 집에 사는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의 통해 타인과 자신의 관계를 확인하는 김유진의 <희미한 빛>은 더 깊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내게 이처럼 다채로운 소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거기다 좋은 소설이니 더욱 그렇다. 의도하지 않아도 두 작품집에서 만난 작가들과 소설들을 비교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백하자면, 문지에서 선택한 소설에 마음이 기운다. 개인적으로 문지의 소설들이 더 단단하고 깊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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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후지와라 신야 지음, 강병혁 옮김 / 푸른숲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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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단한 일상 속 나를 위로하는 건 단체 문자가 아닌 안부를 전하는 문자, 예고없이 날아온 책들, 긴 글이 아닌 짧은 엽서에 담긴 손 글씨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것들 말이다. 오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도 마음 속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며, 감사한 일이다.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란 말을 듣는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버팀목으로 존재한다는 일, 그걸 상대방이 알아준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지 않을까. 

 『인도방랑』의 작가 후지와라 산야의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란 따뜻한 제목과 함께 비와 수국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니까 수국 때문에 더 반가운 책이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사진은 무거운 고단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더불어 그 사진만이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누군가, 혹은 누구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열네 편의 이야기는 후지와라 산야와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주 가까운 사이, 그저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이, 그러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후지와라 산야의 시선으로 쓰여진 글이다. 해서, 격한 감정은 배제되고 정물화를 읽어주는 듯 담담하다. 그런 고요함이 전해주는 여운은 무척 크다.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안타깝고, 외롭고, 슬픈 이야기가 많다. 그 중 몇 편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한 장의 수국 사진에 숨겨진 이야기 <수국이 필 무렵>이 특히 그렇다.  수국 사진만으로 사진전을 연 무명 사진작가 들려주는 수국에 담긴 사연이다. 잡지나 전단지 광고 사진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간절함이 느껴지는 사진 한 장. 수국 앞에 선 모델에게서 느낀 진심이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겼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표현 했더라면 그 어떤 간절함이 전해지는 사진은 찍지 못했을 것이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힘들어하던 아내가 집을 나가고서야 그 빈자리를 느끼는 남편 이야기 <당신이 전철의 다른 방향을 보았을 때>에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존재를 떠올린다.  심장병을 앓는 노년의 화가가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사랑을 느끼는 이야기 <예순두 송이와 스물한 송이의 장미>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 타국에서 젊은 모델과 사랑에 빠졌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건 아닐까. 그가 남긴 말처럼 말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왔어. 하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도 있다는 걸 알았지. 자신의 행복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타인의 행복이 된다는 것을. 그것은 슬픈 일이지만 인간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지. 신도 그러길 바랄 거야. p.187

 후지와라 산야가 담은 사진은 화려하지 않다. 평범한 우리네 삶의 한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삶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디선가 나와 스치고 지나간 삶이라는 게 더 맞겠다.  매일 아침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혹은 단골 가게에서 굳이 통성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그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보는 이는 평온함을 느낀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어디선가 마주한 우리의 이야기라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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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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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의 소설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함께 한다. 『달려라, 아비』에서 만난 다양한 아버지들 때문이다.  아버지의 존재와 부재에 따라 달라지는 삶을 이야기 한다. 해서 소설을 덮고 나면 아버지에 대해, 그들이 짊어진 가족이라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이어진다. 아버지가 되는 순간 느낄 감격과 동시에 삶이 무조건 즐겁진 않을 것이다. 준비된 과정 없이 부모가 되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말이다. 김애란의 소설엔 그런 오묘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드러낸다. 더불어 아버지를 보고 세상을 배우고 익히는 자식의 삶을 담고 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17살에 부모가 된 34세의 어린 부모와 조로증에 걸려 부모 보다 더 늙어버린 17살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말한다.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고등학생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일은 두려움일 것이다. 아름이 태어났다고 해서 당장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름에게 음식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재우고, 모든 게 힘들 뿐이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운 건 당연하다.  

 부모와는 다른 이유로 학교 생활을 할 수 없는 아름은 혼자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부모님은 유일한 친구이며 선배인 것이다. 아름은 엄마와 아빠의 사랑과 삶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아름은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글로 남기고 싶어 한다. 

 소설은 조로증에 걸린 아름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설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의 슬픔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아름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간다. 늙은 외모뿐 아니라 신체 기관은 급속도로 약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입원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당장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일 수 있다. 아름의 치료를 위해 부모님은 이미 많은 빚이 있다. 해서, 아름은 성금 모금 방송 출연을 결심한다. 방송을 통해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면서도 아름은 혹여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놀랄까 걱정이었다. 

 방송으로 모아진 성금으로 아름은 입원을 했고 한 통의 메일을 받는다. 자신을 동정하는 내용이 아닌 17살 아름으로 봐주는 아이였다. 암 투병 중이라는 소녀 ‘서하’와 아름은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우정을 쌓아간다. 서하의 존재가 점점 커져갈 때 누군가 나쁜 의도로 접근한 사실이 밝혀진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남은 삶을 정리해야 하는 아름의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시력 마저 잃고 아름은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간다. 참으로 가혹한 운명이다. 왜 내 아이가 이런 병에 걸렸을까.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부모와 젊은 자식은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 한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안 아름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달라 한다.  글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것은 나무들이 제일 잘 안다. 먼저 알고 가지고 손을 흔들면 안도하고 계절이 뒤따라온다. 봄이 되고 싶은 봄. 여름이 하고 싶은 여름. 가을 혹은 겨울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봄'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머지는 나무가 알아서 한다. 자연은 해마다 같은 문제지를 받고, 정답을 모르면서 정답을 쓴다. 계절을 계절이게 하는 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다.’ p. 328 

 아름은 부모님의 청춘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봄, 여름이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면서 정답을 찾아내는 그 과정이 인생이라는 걸 아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애란은 조로증에 걸린 아름의 짧은 생과 자식을 가슴에 묻고 가을, 겨울이라는 인생의 또 다른 계절을 살아가야 할 부모의 마음을 아름의 소설을 통해 매만진다. 그는 아픔과 슬픔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힘을 가졌다. 때문에 그 깊은 슬픔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서른 넷 아버지와 열일곱 아들이 나누는 대화가 그렇다.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p. 50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기쁨과 사랑이 된다는 것, 그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 것이리라. 누군가의 가슴에 자리잡은 슬픔의 존재가 된다는 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는 시구처럼 말이다. 나의 슬픔으로 남은 존재, 나를 슬픔으로 기억하는 존재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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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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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많아졌다. 닳은 때까지, 고장이 나서 고치지 못할 때까지 쓰는 물건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꼭 필요한가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선다.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결핍을 알지 못한다. 아니, 결핍을 두려워하는 게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이 항상 여유로웠나.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새 것을 사들였던가.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 제법 잘 사는 나라란 말에 흥분하여 거품이 늘어난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깨우치듯 다리는 무너졌고, 백화점은 붕괴되었다. 황석영은 강낭몽에 이어 낯익은 세상에서 그동안 잊고 있던 그 곳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기도 하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곳이다.

 산동네에 살던 딱부리와 엄마가 꽃섬으로 이사를 오며 소설은 시작한다. 그곳에서 아수라 아저씨의 아들 땜통을 만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산동네 보다 나은 삶을 기대했을 것이다. 분명 그랬다. 꽃섬은 쓰레기 집하장이다. 재활용과 분리 수거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던 시절이다.   

 ‘이곳은 분명 사람들이 쓰다 남아서 또는 싫증이 나서 아니면 못쓰게 된 물건들을 버리는 쓰레기장이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도시에서 내몰리고 버려진 인간들이었다.’ p.44

 넘쳐 나는 쓰레기는 사회 문제였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열심히 일을 한 만큼 돈을 모을 수 있고, 하루 세끼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쓰레기로 둘러 쌓인 곳으로 누가 봐도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아니었지만, 꽃섬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찬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것이다. 

 ‘자고 일어나도 언제나 고약한 냄새며 먼지와 파리떼에 괴물같은 덤프트럭들이 쏟아내는 온갖 물건들의 추악한 형상에 비하면 무서울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는 갈퀴 끝에서 어떤 동물의 썩은 몸통이 나와도 발치로 획 밀어내리면 곧 다른 물건에 뒤덮여버리곤 했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물건의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그것들은 생선 머리처럼 원래의 모양을 잃고 복잡하고 자잘하게 분해되어 있어서 기계가 처음 만들어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괴한 사물로 보였다. 아아,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다.’ p.122 

 아이들은 곰팡이가 피고 버려진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스스로 자랐다. 일을 하러 나간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해야 했고 제대로 된 학교엔 다니지 않는다. 딱부리는 땜통을 통해 꽃섬 형편을 익혔다. 유기견을 돌보는 할아버지와 빼빼 엄마를 알게 되고 김서방에 식구들을 만나게 된다. 딱부리가 만난 김서방에 식구들은 꽃섬으로 변하기 전의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사람들이다. 맑은 강물이 흐르고 논에서 벼가 익어가고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곳이다. 그러니까 꽃섬에도 쓰레기 꽃이 아닌 진짜 꽃이 피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해 남아 있는 혼령인 것이다. 

 꽃섬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며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아수라 아저씨가 싸움에 휘말려 감옥에 가자 엄마는 땜통을 아들처럼 여겼다. 딱부리는 땜통에게 도시를 구경시켜 주고 싶었다. 꽃섬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목욕을 하고 냄새나는 옷이 아닌 새 옷을 입으니 딱부리와 땜통이 아닌 정호와 영길이가 되었다. 백화점에서 게임기을 사고 햄버거를 사 먹으니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돌아갈 곳은 꽃섬 뿐이다. 김서방네 가족들처럼 말이다.

 외부 사람들은 꽃섬의 존재, 낯익은 세상인, 그곳의 삶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낙후된 전기, 수도, 방역으로 인해 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폭발음이 들리고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었을 때 영길이는 빠져 나오지 못했다. 꽃섬에 남은 땜통은 김서방네 식구들을 만나서 행복할까. 더미 꽃섬을 떠나 딱부리는 꿈꾸던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까. 

 소설은 급격하게 성장한 우리 경제에 가려져 숨겨진, 가려진 삶을 소년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버려지고 잊혀진 그곳에 존재하는 삶에 대해 말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낯설다 말하고 싶은 그 세상,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 삶은 아닐까. 우리가 모른 척, 부인하며 외면하고 싶은 과거가 현재 우리를 만들었다는 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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