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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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많아졌다. 닳은 때까지, 고장이 나서 고치지 못할 때까지 쓰는 물건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꼭 필요한가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선다.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결핍을 알지 못한다. 아니, 결핍을 두려워하는 게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이 항상 여유로웠나. 아무렇지 않게 버리고 새 것을 사들였던가.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 제법 잘 사는 나라란 말에 흥분하여 거품이 늘어난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깨우치듯 다리는 무너졌고, 백화점은 붕괴되었다. 황석영은 강낭몽에 이어 낯익은 세상에서 그동안 잊고 있던 그 곳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기도 하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곳이다.

 산동네에 살던 딱부리와 엄마가 꽃섬으로 이사를 오며 소설은 시작한다. 그곳에서 아수라 아저씨의 아들 땜통을 만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산동네 보다 나은 삶을 기대했을 것이다. 분명 그랬다. 꽃섬은 쓰레기 집하장이다. 재활용과 분리 수거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던 시절이다.   

 ‘이곳은 분명 사람들이 쓰다 남아서 또는 싫증이 나서 아니면 못쓰게 된 물건들을 버리는 쓰레기장이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도시에서 내몰리고 버려진 인간들이었다.’ p.44

 넘쳐 나는 쓰레기는 사회 문제였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열심히 일을 한 만큼 돈을 모을 수 있고, 하루 세끼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쓰레기로 둘러 쌓인 곳으로 누가 봐도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아니었지만, 꽃섬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찬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것이다. 

 ‘자고 일어나도 언제나 고약한 냄새며 먼지와 파리떼에 괴물같은 덤프트럭들이 쏟아내는 온갖 물건들의 추악한 형상에 비하면 무서울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제는 갈퀴 끝에서 어떤 동물의 썩은 몸통이 나와도 발치로 획 밀어내리면 곧 다른 물건에 뒤덮여버리곤 했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물건의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그것들은 생선 머리처럼 원래의 모양을 잃고 복잡하고 자잘하게 분해되어 있어서 기계가 처음 만들어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괴한 사물로 보였다. 아아,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다.’ p.122 

 아이들은 곰팡이가 피고 버려진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스스로 자랐다. 일을 하러 나간 부모님을 도와 일을 해야 했고 제대로 된 학교엔 다니지 않는다. 딱부리는 땜통을 통해 꽃섬 형편을 익혔다. 유기견을 돌보는 할아버지와 빼빼 엄마를 알게 되고 김서방에 식구들을 만나게 된다. 딱부리가 만난 김서방에 식구들은 꽃섬으로 변하기 전의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사람들이다. 맑은 강물이 흐르고 논에서 벼가 익어가고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곳이다. 그러니까 꽃섬에도 쓰레기 꽃이 아닌 진짜 꽃이 피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차마 그곳을 떠나지 못해 남아 있는 혼령인 것이다. 

 꽃섬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며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아수라 아저씨가 싸움에 휘말려 감옥에 가자 엄마는 땜통을 아들처럼 여겼다. 딱부리는 땜통에게 도시를 구경시켜 주고 싶었다. 꽃섬이 아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목욕을 하고 냄새나는 옷이 아닌 새 옷을 입으니 딱부리와 땜통이 아닌 정호와 영길이가 되었다. 백화점에서 게임기을 사고 햄버거를 사 먹으니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돌아갈 곳은 꽃섬 뿐이다. 김서방네 가족들처럼 말이다.

 외부 사람들은 꽃섬의 존재, 낯익은 세상인, 그곳의 삶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낙후된 전기, 수도, 방역으로 인해 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폭발음이 들리고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었을 때 영길이는 빠져 나오지 못했다. 꽃섬에 남은 땜통은 김서방네 식구들을 만나서 행복할까. 더미 꽃섬을 떠나 딱부리는 꿈꾸던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까. 

 소설은 급격하게 성장한 우리 경제에 가려져 숨겨진, 가려진 삶을 소년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버려지고 잊혀진 그곳에 존재하는 삶에 대해 말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낯설다 말하고 싶은 그 세상,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 삶은 아닐까. 우리가 모른 척, 부인하며 외면하고 싶은 과거가 현재 우리를 만들었다는 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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