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애란의 소설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함께 한다. 『달려라, 아비』에서 만난 다양한 아버지들 때문이다.  아버지의 존재와 부재에 따라 달라지는 삶을 이야기 한다. 해서 소설을 덮고 나면 아버지에 대해, 그들이 짊어진 가족이라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이어진다. 아버지가 되는 순간 느낄 감격과 동시에 삶이 무조건 즐겁진 않을 것이다. 준비된 과정 없이 부모가 되는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말이다. 김애란의 소설엔 그런 오묘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드러낸다. 더불어 아버지를 보고 세상을 배우고 익히는 자식의 삶을 담고 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17살에 부모가 된 34세의 어린 부모와 조로증에 걸려 부모 보다 더 늙어버린 17살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말한다.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고등학생이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일은 두려움일 것이다. 아름이 태어났다고 해서 당장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름에게 음식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재우고, 모든 게 힘들 뿐이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운 건 당연하다.  

 부모와는 다른 이유로 학교 생활을 할 수 없는 아름은 혼자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부모님은 유일한 친구이며 선배인 것이다. 아름은 엄마와 아빠의 사랑과 삶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아름은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글로 남기고 싶어 한다. 

 소설은 조로증에 걸린 아름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소설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의 슬픔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아름의 병은 점점 깊어만 간다. 늙은 외모뿐 아니라 신체 기관은 급속도로 약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입원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당장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일 수 있다. 아름의 치료를 위해 부모님은 이미 많은 빚이 있다. 해서, 아름은 성금 모금 방송 출연을 결심한다. 방송을 통해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면서도 아름은 혹여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놀랄까 걱정이었다. 

 방송으로 모아진 성금으로 아름은 입원을 했고 한 통의 메일을 받는다. 자신을 동정하는 내용이 아닌 17살 아름으로 봐주는 아이였다. 암 투병 중이라는 소녀 ‘서하’와 아름은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우정을 쌓아간다. 서하의 존재가 점점 커져갈 때 누군가 나쁜 의도로 접근한 사실이 밝혀진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남은 삶을 정리해야 하는 아름의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시력 마저 잃고 아름은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간다. 참으로 가혹한 운명이다. 왜 내 아이가 이런 병에 걸렸을까.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부모와 젊은 자식은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 한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안 아름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달라 한다.  글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것은 나무들이 제일 잘 안다. 먼저 알고 가지고 손을 흔들면 안도하고 계절이 뒤따라온다. 봄이 되고 싶은 봄. 여름이 하고 싶은 여름. 가을 혹은 겨울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봄'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머지는 나무가 알아서 한다. 자연은 해마다 같은 문제지를 받고, 정답을 모르면서 정답을 쓴다. 계절을 계절이게 하는 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다.’ p. 328 

 아름은 부모님의 청춘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봄, 여름이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면서 정답을 찾아내는 그 과정이 인생이라는 걸 아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애란은 조로증에 걸린 아름의 짧은 생과 자식을 가슴에 묻고 가을, 겨울이라는 인생의 또 다른 계절을 살아가야 할 부모의 마음을 아름의 소설을 통해 매만진다. 그는 아픔과 슬픔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힘을 가졌다. 때문에 그 깊은 슬픔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서른 넷 아버지와 열일곱 아들이 나누는 대화가 그렇다.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p. 50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슬픔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기쁨과 사랑이 된다는 것, 그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 것이리라. 누군가의 가슴에 자리잡은 슬픔의 존재가 된다는 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는 시구처럼 말이다. 나의 슬픔으로 남은 존재, 나를 슬픔으로 기억하는 존재가 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