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장욱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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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며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작가들의 경우, 같은 해 신춘문예로 등단했거나 연령대가 비슷하면 자연스레 선의의 경쟁 상대가 되는 것이다. 소재나 주제가 비슷하거나 소설의 방향이 같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의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과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을 통해 만난 젊은 작가들은 어찌보면 훌륭한 경쟁상대이거나 같은 출발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상작가인 이장욱을 비롯해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김성중, 정용준, 김유진의 소설은 연이어 읽게 된 셈이다. 묘하게도 모두 나중에 만난 소설이 더 좋았다. 특히 정용준의 <가나>, 김선재의 <독서의 취향>, 최은미의 <눈을 감고 기다리렴>이 좋았다. 

 <가나>는 죽음을 소재로 한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원양어선을 타고 낯선 바다에 빠져 죽은 남자의 이야기다. 죽은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죽음과 시체를 걷어올린 산 자의 시선으로 나눠진다. 그러니까 화자인 나는 죽은 시체인 것이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시신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은 어떨까. 삶과 죽음으로 나뉜 소설에서 마주한 건 사랑이었다. 고향에 두고 온 벙어리의 아내와 갓 태어나 아직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아들에 대한 사랑이다. 만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나 소리가 되어 가족에게 닿고 싶은 간절함이 애닯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하비바, 나는 당신이 좋아했던 노래가 되었다. 나는 지금 당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바람보다 가벼워졌다. 나는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다. 국경을 넘어 마을로 향한다. 가나가 만지고 있을 초원의 풀 위로, 새 떼가 뒤덮는 하늘 위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당신의 머리 위로, 그리고 당신의 말라버린 성대 속으로,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좋겠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p. 79    

 <독서의 취향>의 화자는 말더듬이로 책을 파는 외판원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가 사랑하는 안나는 환상의 인물이며 주말을 함께 보내는 결혼한 안네는 실존의 인물이다. 안나는 환상이었고 안네는 현실이었다. 아니, 둘 다 나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말더듬이 세일즈맨이 소통을 위해 쏟아내는 노력이야 말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은 아닐까. 해서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자신만의 안나를 꿈꾸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이 기울었으니 액자가 기우는 건 당연한 거야. 나의 말에 안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시 써? 파는 일이나 잘하시지. 나가 알기에 시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안네에게 그건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현실을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힘이 있었다. 시는 시인이 쓰고 나는 책이나 팔고 나와 살지 않는 안나는 나를 사랑했고 나와 사는 안네는 나를 지상에 단단히 묶었다. 다들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이토록 한결같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p. 363 

 존재 자체가 트라우마가 될 수 있을까. <눈을 감고 기다리렴> 속 화자는 쌍둥이로 존재했으나 결국 혼자 살아남아 모두에게 상처로 인식된다. 그러니 생에 대한 애착보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을 것이며 양수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  

 자살을 감행하기 위해 모인 변두리 여관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수상작인 이장욱의 <곡란>은 존재와 부재사이를 오가는 위태로운 삶과 마주한다. 기존의 소설인 프랑켄슈타인을 독특한 인터뷰로 구성한 최제훈의 <괴물을 위한 변명>,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더 잔혹하게 세상과 맞서는 약자의 이야기 이유의 <커트>는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가위가 가진 섬뜩함을 잘 묘사한다. 우연하게 살인을 저지른 연쇄 살인범을 통해 인간의 이중적 모습을 보여주는 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은 탄탄한 구성이 돋보였다.

  86 아시안 게임과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이홍의 <나의 메인스타디움>과  한 번쯤 마주할 법한 사이비 종교를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의 사연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겹쳐지는 모습을 발견하는 김성중의 <게발 선인장>은 무척 재미있었으며 주어 온 항아리에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에 대한 서글픔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황정은의 <甕器傳>과 한 집에 사는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의 통해 타인과 자신의 관계를 확인하는 김유진의 <희미한 빛>은 더 깊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내게 이처럼 다채로운 소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거기다 좋은 소설이니 더욱 그렇다. 의도하지 않아도 두 작품집에서 만난 작가들과 소설들을 비교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백하자면, 문지에서 선택한 소설에 마음이 기운다. 개인적으로 문지의 소설들이 더 단단하고 깊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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