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후지와라 신야 지음, 강병혁 옮김 / 푸른숲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고단한 일상 속 나를 위로하는 건 단체 문자가 아닌 안부를 전하는 문자, 예고없이 날아온 책들, 긴 글이 아닌 짧은 엽서에 담긴 손 글씨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것들 말이다. 오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도 마음 속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며, 감사한 일이다.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란 말을 듣는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버팀목으로 존재한다는 일, 그걸 상대방이 알아준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지 않을까. 

 『인도방랑』의 작가 후지와라 산야의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란 따뜻한 제목과 함께 비와 수국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니까 수국 때문에 더 반가운 책이다. 장황하게 늘어놓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사진은 무거운 고단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더불어 그 사진만이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누군가, 혹은 누구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다.  

 열네 편의 이야기는 후지와라 산야와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주 가까운 사이, 그저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이, 그러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후지와라 산야의 시선으로 쓰여진 글이다. 해서, 격한 감정은 배제되고 정물화를 읽어주는 듯 담담하다. 그런 고요함이 전해주는 여운은 무척 크다.  행복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안타깝고, 외롭고, 슬픈 이야기가 많다. 그 중 몇 편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 

 한 장의 수국 사진에 숨겨진 이야기 <수국이 필 무렵>이 특히 그렇다.  수국 사진만으로 사진전을 연 무명 사진작가 들려주는 수국에 담긴 사연이다. 잡지나 전단지 광고 사진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간절함이 느껴지는 사진 한 장. 수국 앞에 선 모델에게서 느낀 진심이 사진 속에 그대로 담겼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표현 했더라면 그 어떤 간절함이 전해지는 사진은 찍지 못했을 것이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힘들어하던 아내가 집을 나가고서야 그 빈자리를 느끼는 남편 이야기 <당신이 전철의 다른 방향을 보았을 때>에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존재를 떠올린다.  심장병을 앓는 노년의 화가가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사랑을 느끼는 이야기 <예순두 송이와 스물한 송이의 장미>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 타국에서 젊은 모델과 사랑에 빠졌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건 아닐까. 그가 남긴 말처럼 말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왔어. 하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도 있다는 걸 알았지. 자신의 행복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타인의 행복이 된다는 것을. 그것은 슬픈 일이지만 인간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지. 신도 그러길 바랄 거야. p.187

 후지와라 산야가 담은 사진은 화려하지 않다. 평범한 우리네 삶의 한 장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삶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디선가 나와 스치고 지나간 삶이라는 게 더 맞겠다.  매일 아침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혹은 단골 가게에서 굳이 통성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그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보는 이는 평온함을 느낀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어디선가 마주한 우리의 이야기라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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