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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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고 싶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나만 혼자 간직하기 위해 글을 쓰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1인 미디어라 할 수 있는 블로그, 트윗, 페이스 북의 등장으로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크다. 소통을 위한 글쓰기든, 독백이든 공개된 글이라면 누군가가 읽기 마련이다. 그래서 글쓰기 관심이 높다. 작가를 꿈꾸는 창작의 글쓰기가 아닌 일상에서의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많다. 그 가운데 내게 가장 적합한 책을 고르는 건 어렵다.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강좌를 녹취 정리한 『고종석의 문장』도 최상의 교재가 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기존에 만난 글쓰기 책과 비교했을 때 많은 이가 강조하는 점을 고종석 역시 언급하고 있어 놀랐다. 그러니까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 말이다.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으니 무조건 쓰라, 훈련이 중요하다, 조사(의, 에, 적)을 빼는 게 좋다, 중복을 피하라, 수동형의 문장을 쓰지 마라, 책을 많이 읽어라, 등 익숙한 것들이다. 이렇게 읽을 때마다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기억한다. 그럼에도 습관처럼 조사와 중복은 고쳐지지 않는다.

 

 본문 가운데 특별히 실천하고 싶은 점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대한 부분이다.  첫인상과 같은 첫 문장의 강렬함이 글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첫 문장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처럼 누구나 다 아는 문장 말이다.

 

 ‘제가 읽은 글 중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것들은 기다란 책이든 짧은 아티클이든 대게 첫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는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아주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상적인 문장을 써도, 그 문장을 책 한가운데 갖다놓으면 독자들은 그냥 지나쳐버리기 쉽습니다. 첫 문장이 인상적 일 때, 사람들은 그 글에, 또는 그 책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44쪽)

 

 고종석의 강의가 인상적인 것은 교재에 있다. 강의에서 그가 사용한 교재는 자신의 책 자유의 무늬다. 2002년에 나온 책 본문 가운데 잘못된 글쓰기, 나쁜 문장을 올바르게 고친다.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에서 잘못된 번역에 대해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다.

 

 ‘“짜증스러운 절차를 되풀이 거치고 비행기에 오르면 실제로 어느 정도 안도감이 생겼다.” 『자유의 무늬』, 187쪽

 

 ‘되풀이 거치고’란 표현이 나옵니다. ‘되풀이’를 사람들이 많이 부사로 쓰곤 하는데 아직 부사로 인정이 안 되고 있습니다. 되풀이하다’라는 말은 있지만 ‘되풀이’ 자체가 부사로 허용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되풀이해서’라고 쓰든지, 그 말이 너무 무거우면 거듭’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거듭’, 참 좋은 말입니다. ’(271쪽)

 

 고종석은 단순 글쓰기에 국한된 강의가 아니라 한글 창제의 원리, 한국어의 특징, 한국 역사, 정치, 문화, 시사도 함께 다루고 있다. 기자 출신이라는 장점을 발휘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부분은 많이 어려웠다. 그만큼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증거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 교재이자 인문 교양서라 할 수 있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듯 읽기도 다르지 않다. 고종석의 말처럼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듯 이 책도 반복해서 읽는다면 나쁜 글쓰기 습관이 사라질 것이다. 그나저나 이 글의 첫 문장은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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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vs. 알렉스 우즈
개빈 익스텐스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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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이 나를 주목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스타가 된 것처럼 우쭐하기보다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어디를 가든 알아보는 사람들과 질문이 이어진다면 피곤하다. 그러니 열 살 어린 나이에 우주에서 날아온 운선에 머리를 맞은 우리의 주인공 알렉스는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2주 동안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난 세상, 알렉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전의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소설은 운석을 맞은 아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온다. 확률적으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게 우리 삶이라는 걸 알려주듯 말이다. 알렉스는 한동안 집에서 생활한다. 운석을 맞은 충격으로 간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간헐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알렉스는 몸이 주는 신호를 감지하고 점차 잘 견디게 된다. 알렉스는 운석 때문인지 공부를 열심히 한다. 특히, 과학, 우주를 좋아한다.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엄마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고통이다. 그러다 아이들을 피해 어느 헛간으로 피하는데, 그곳에서 소중한 인연 피터슨 씨를 만난다.

 

 ‘카오스에서 질서를 찾는 것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질서 아래 숨은 카오스를 찾을 수도 있다. 질서니 카오스니 이런 개념들은 불안정하다. 옷을 바꿔 입고 장난치는 쌍둥이와도 같다. 질서와 카오스는 자주 섞이고 겹친다. 시작과 끝이 그렇듯이. 세상일은 겉보기보다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111쪽

 

 월남전에 참전했고 아내가 죽은 후 애완견 커트와 지내는 피터슨은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적다. 이웃들에게는 괴팍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알렉스와는 점점 가까워진다. ‘커트 보거네트’를 좋아해 개 이름까지 커트라 지은 피터슨을 통해 그의 소설과 만난다. 그러다 애완견 커트가 갑자기 죽게 되고 혼자 남은 피터슨의 강이 악화된다. 급기야 불치병 진단을 받는다. 알렉스는 커트 보거네트를 읽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 피터슨이 사람들과 교류하게 도와준다. 

 

 피터슨은 다가오는 죽음을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려 한다. 그러니까 자살을 시도한다. 알렉스가 발견하고 고비를 넘겼지만 피터슨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 열여덟 알렉스는 그런 피터슨의 마음을 이해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돕는다. 그리고 중대한 계획을 함께 실행한다. 스위스로 자살여행을 떠난다. 피터슨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맞닿는 여행, 둘은 행복하다.

 

 ‘입자들은 튀어나오면서 존재하는 동시에 순간의 작은 파편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너무 빨라서 그것들의 존재를 기록할 만큼 예민한 도구는 발명되지 않았다. 사라진 다음에나 그 존재를 짐작할 수 있을 뿐.(…) 나는 깨달았다. 인생의 문제란 ‘별난’ 입자와 닮았다는 것을. 우주의 크기와 규모에 비하면 다른 모든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금방 지나가는 사건일 뿐이다. 우주의 규모로 보면, 별조차 눈을 깜박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간다.’ 429쪽

 

 알렉스와 피터슨의 사귐을 통해 삶과 죽음, 우정에 대해 생각한다. 우연이 운명으로 이어지는 뜨겁고 따뜻한 이야기. 책에 등장하는 물리학 용어나, 우주에 대한 이론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거대한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삶의 향연은 아름답다. 때로 치열하게 망가지고 때로 폭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을 통해 만나는 커트 보거네트의 소설에 대한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을 읽고 커트 보거네트의 소설을 읽는 이가 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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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싶었던 책은 루이스 어드리크의 『그림자 밟기』였다.  최지월의 『상실의 시간들』에 밀려 다음으로 미뤄진다. 받아든 책을 펼쳐 만난 문장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번째로 펼쳐진 곳이다.

 

 ‘엄마는 세 번의 출산을 모두 집에서 했다. 세 번 다, 아버지는 근무하느라 집을 비웠다. 옆집 아주머니가 도와주긴 했다지만, 엄마는 소희 언니를 낳을 때 호되게 고생했기 때문에 내 출산 예정일에 맞춰선 시댁에 연락했다. 친할머니가 왔는데, 나는 예정일에 나오지 않았다. 보름쯤 해산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급한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시골로 돌아갔다. 나는 고 사이에 태어났다. 열네 시간에 걸친 지독한 난산이었다. 내가 태어난 뒤에 할머니가 다시 왔지만, 이제 몸도 풀었으니 일해도 되겠다면서 밥을 차려내라, 국이 맛이 없다, 집이 더럽다, 애 꼴이 저게 뭐냐 하는 등등의 잔소리와 훈수로 엄마 가슴에 평생 잊지 못할 한을 남겼다.’ (80쪽)

 

 내 어머니를 생각한다. 엄마는 다섯 번 출산을 했다. 마지막 남동생의 출산엔 내가 있었다. 뜨거운 물을 끓이는 등 분주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아들 손주라 좋아했다. 하지만 그 귀한 손주를 낳은 엄마에겐 어떤 말도 건네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소설처럼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두 달이 지났다. 아버지 방은 사라졌다. 동생이 새로운 장판을 깔고 벽을 도배했다. 방 어느 벽엔 구름무늬가 있는 벽지가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들어왔다. 아버지가 잠들었던 방에서 동생이 잠을 잔다.

 

 밤새 쏟아지던 장맛비가 사라진 시각, 나는 제습기를 돌린다. 창을 닫고 선풍기를 켜고 제습기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옮긴다. 단편집 『뱀』으로 만난 윤보인의 장편소설 『밤의 고아』가 들려주는 문장들.  ‘문을 열면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간다. 서른한 개의 계단, 아니 서른세 개의 계단, 계단 끝에는 지하실이 있다. 지하실 옆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다.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9쪽)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걸을 것이다. 정해진 곳을 향하거나 알지 못하는 낯선 곳을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딘가에 멈춰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이광호의 산문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속 문장처럼 말이다.

 

 ‘절대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누군가와 떨어져 있다면, 죽음처럼 건너갈 수 없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너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아득한 거리는 아득한 시간이다.’ (37쪽)

 

 나와 아버지의 거리, 나와 엄마의 거리는 아득한 그것이다. 때로 아득해서 꿈속을 헤맨다. 때로 아득해서 멍으로 채워진 시간을 보낸다. 부재를 인정하고 부재를 소멸해야 하는 일이 남은 것일까?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커진다.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다른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아빠가 아닌 아버지.

 

 

 

 

 

 

 

 

 

 

 

 

 

 

 

 

 

 

 

 

 

 

 내게는 이해인 수녀의 책이 아닌 백지혜의 책인 『밭의 노래』가 나왔다. 백지혜의 책이 처음이라면 『꽃이 핀다』와 함께 만나면 더 좋을 것이다. 끝이 보이는 장마, 그 뒤를 이어 달려올 더위를 날려줄 책으로 『유괴』를 고른다. 초복, 여름이라는 삶에 지친 당신에게 윤희상의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에 수록된 이 시를 건넨다.

 

 

  버드나무로부터의 편지 - 윤희상

 

 

 이른 아침부터 언덕을 거닐며 안으로부터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읽고 있다

 그리움이거나

 미움이거나

 목마름이거나 그럴 테지만, 뜨겁다

 이내 바람이 불어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이지만,

 아픈 것은 마음이다

 이제 다치지 않는 바람이 되고 싶다

 날마다 그런 마음을 드리운 그림자를 물 위로 띄워보지만,

 아무도 건져서 읽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바람에게로 간다

 이미, 풀어내린 긴 나뭇가지의 잎사귀들이

 바람 속으로 먼저 들어서고 있다

 언덕에서 바람에게 몸과 마음을 다 맡기도 있다

 벌써 바람과 함께 놀고 있다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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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돌이 2014-07-2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꽃이 핀다]의 그림작가였군요. 이해인의 글에 그린 사람이...어쩐지 푸근하고 낯이 익는 그림이다 했어요^^
아이 어릴때 사놓곤 그림이 너무 예뻐 자주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림자밟기] 읽으려고 하고 있는데, 선뜻 손이 안가네요.
가슴아픈 가정사를 읽으면 우울해지려고 해서...

자목련 2014-07-23 10:11   좋아요 0 | URL
남희돌이 님도 <꽃이 핀다>를 곁에 두셨군요. 저도 종종 들여다보는 책이에요.
이번 그림책엔 이해인 수녀님의 글이 있어 한층 더 풍성할 듯해요.

[그림자 밝기]는 지금 오는 중인데, 저도 언제 읽게 될 지 모르겠어요.

비가 오는 수요일, 평온하게 보내세요^^
 

 

 한 권의 책이 운명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표현했지만 사랑을 주고 싶은 책이라는 말이 맞겠다. 정호승의 산문집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가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이라고 하는데 나는 칼럼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글이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었는데도 참 좋다. ‘좋다’란 말속에  따뜻함, 포옹, 기운, 안부, 토닥임, 친구 같은 뜻이 담겼다. 뭐라고 표현하면 정확할까? 아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좋겠다.

 

꽃은 왜 아름다울까. 그것은 겨울이라는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지금은 묵묵히 고통을 견뎌내야 할 때다. 나이 든 중년 세대의 인생은 짧지만 젊은 청년 세대의 인생은 길다. 인생은 일회적인 것이지만 수능이나 입사 시험은 일회적인 게 아니다. 수능이나 입사 시험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니다.’ (127쪽)

 

 ‘사람이든 나무든 직선보다 곡선의 삶의 자세나 형태가 더 아름답다. 새들은 곧은 직선의 나무보다 굽은 곡선의 나무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함박눈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쌓인다. 그들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만들어져, 굽은 나무의 그늘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편이 쉰다. 사람도 직선의 사람보다 곡선의 사람의 품 안에 더 많이 안긴다.’ (201쪽)

  

 내게는 이렇게 정확하지 않아도 좋은, 설명하지 않아도 좋은, 그리 믿고 있는 인연이 있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이들이다. 오직 글로만, 때로는 목소리로, 문자로 만난 이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신비롭고 신기한 일인가. 이 책을 나누고 싶은 이가 떠올랐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E 님,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즈음이 생일이다. 방금 주문을 했다. 나는 괜히 설렌다. 내가 책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아진다. 책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이 그곳에 제대로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생은 어느 순간에 가장 아름다워지는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고독한 성찰의 세계에 머물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 박항률의 그림 속에 앉아 자연과 하나가 될 때 나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을 살게 된다. 그의 그림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또한 내가 사랑하는 까닭은 바로 그림 속의 인물과 내가 하나 됨으로써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 인물과 하나가 되어 한순간이나마 영원히 낙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254쪽)

 ​화가 박항률의 그림 때문에 더 좋다. 해야 할 일들이 거미줄처럼 펼쳐졌지만 가만히 그림을 바라보고 매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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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6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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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기 좋은 계절은 따로 없다. 그러나 추리, 스릴러는 여름에 읽어야 한다. 더위를 날려 줄 서늘한 기운을 담은 책 말이다. 인형 귀신을 연상시키는 표지로 시선을 끄는  미쓰다 신조의 첫 호러 단편집 『붉은 눈』이야말로 여름에 읽어야 제격인 소설이다. 단편 8편과 네 편의 짧은 괴담 기담이 실렸다.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중간에 멈추거나 공포를 견디며 끝까지 듣는 두 가지다. 『붉은 눈』은 무섭지만 멈출 수가 없다.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이야기를 이끄는 실력 때문인데 특히 이 소설집에서는 화자로 등장하는 작가가 실제로 근무했던 잡지사나 사진집을 언급하여 더욱 호기심을 키운다. 

 

긴 머리카락에 살결이 희고 예쁜 아이였는데 특히 양쪽 눈동자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째서인지 처음에는 알차채지 못했지만 유심히 보니 오른쪽 눈보다 왼쪽 눈의 홍채가 색이 진하더군요. 그런 짝짝이 눈으로 저를 응시할 때면 뭐랄까, 쾌감과 전율을 동시에 맛보는 듯한 기분이…….’ (「붉은 눈」, 11쪽)

 ​

 표제작 「붉은 눈」은 유년 시절 전학 온 소녀 마도 다카리에 대한 이야기다. 마도 다카리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 한다. 따돌림을 당한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항상 혼자였다. 외할머니가 무당였던 화자는 마도 다카리에서 어떤 기묘한 기운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마도 다카리가 학교에 오지 않아 반장과 함께 집을 방문하는데 그 후로 화자와 반장은 무언가가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꿈을 꾼다. 그것은 반장은 꿈에서 집 안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고 그 후에 병으로 죽는다. 화자는 인간의 형태를 한 이상한 형체로 오직 붉은 눈만 선명한 꿈에 시달린다. 붉은 눈의 소녀 마도 다카리의 집을 다녀온 후 일어난 일이라 단순한 꿈이라고 단정을 짓기 어려운 것이다.

 

 소설은 이처럼 귀신이나 유령이라고 확정짓기 어려운 괴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저 소문에 불과하다고 무시할 수 없는 누군가의 경험이라 더욱 공포는 강해진다. 어린 시절 담력 시합을 하듯 친구들과  벼랑 위의 집을 조사하는「내려다보는 집」도 그렇다. 울며 겨자 먹기로 데려간 친구의 동생에게만 보인 집주인. 그러나 정작 부모들의 문의엔 아무도 찾아온 적이 없다는 말이 돌아온다. 동생이 본 건 무엇일까?

 

 제목 그대로 호러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기묘한 괴담을 중계하며 소설로 써보라는「한밤중의 전화」, 죽음의 그림자를 보는 탐정에게 찾아와 죽은 친구들이 꿈에 나타나 자신을 부른다는 「죽음이 으뜸이다 ; 사상학 탐정」은 낮에 읽어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독특한 점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실감 나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귀신이나 유령의 기척 말이다. 읽기만 해도 기분이 이상해진다. 손으로 두 귀를 막고 어떤 소리를 차단하고 싶어진다.  

 

‘슥슥슥…… 하고 다다미를 훑는 듯한, 드드득드드득…… 하고 썩은 갈대밭에 손을 얹는 듯한, 츠읏츠읏츠읏…… 하고 마룻바닥을 기는 듯한, 쿵…… 하고 봉당에 떨어진 듯한, 툭툭툭…… 하고 봉당을 걷는 듯한, 서서히 커지는 소리가 확실히 문을 향해 다가오는 느낌이…….’  (「붉은 눈」,  36쪽)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 있자 묘한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 소리가 아니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별당 어딘가에서…… , 끽……, 내 머리…… , 끼익……, 머리 위에 있다…… , 끼이익…… 별당 창문 쪽에서 끼이이이이익…… 하고 조금씩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뒷골목의 상가」,  231쪽) 

 

 인상적인 기억이나 상처가 된 경험을 소재로 일상의 공포를 제대로 포착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공포의 실체를 끄집어내는 소설이다. 그래서 자꾸만 어떤 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나를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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