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운명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표현했지만 사랑을 주고 싶은 책이라는 말이 맞겠다. 정호승의 산문집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가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이라고 하는데 나는 칼럼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글이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었는데도 참 좋다. ‘좋다’란 말속에  따뜻함, 포옹, 기운, 안부, 토닥임, 친구 같은 뜻이 담겼다. 뭐라고 표현하면 정확할까? 아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좋겠다.

 

꽃은 왜 아름다울까. 그것은 겨울이라는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지금은 묵묵히 고통을 견뎌내야 할 때다. 나이 든 중년 세대의 인생은 짧지만 젊은 청년 세대의 인생은 길다. 인생은 일회적인 것이지만 수능이나 입사 시험은 일회적인 게 아니다. 수능이나 입사 시험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니다.’ (127쪽)

 

 ‘사람이든 나무든 직선보다 곡선의 삶의 자세나 형태가 더 아름답다. 새들은 곧은 직선의 나무보다 굽은 곡선의 나무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함박눈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쌓인다. 그들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만들어져, 굽은 나무의 그늘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편이 쉰다. 사람도 직선의 사람보다 곡선의 사람의 품 안에 더 많이 안긴다.’ (201쪽)

  

 내게는 이렇게 정확하지 않아도 좋은, 설명하지 않아도 좋은, 그리 믿고 있는 인연이 있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이들이다. 오직 글로만, 때로는 목소리로, 문자로 만난 이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신비롭고 신기한 일인가. 이 책을 나누고 싶은 이가 떠올랐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E 님,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즈음이 생일이다. 방금 주문을 했다. 나는 괜히 설렌다. 내가 책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아진다. 책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이 그곳에 제대로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생은 어느 순간에 가장 아름다워지는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고독한 성찰의 세계에 머물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 박항률의 그림 속에 앉아 자연과 하나가 될 때 나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을 살게 된다. 그의 그림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또한 내가 사랑하는 까닭은 바로 그림 속의 인물과 내가 하나 됨으로써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 인물과 하나가 되어 한순간이나마 영원히 낙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254쪽)

 ​화가 박항률의 그림 때문에 더 좋다. 해야 할 일들이 거미줄처럼 펼쳐졌지만 가만히 그림을 바라보고 매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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