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이라는 제목에서 단호함이 느껴진다. 김숨은 짧은 단편으로만 만났고 장편은 처음이다. 단편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기에 기대가 컸다. 사실, 단편집 <투견>, <침대>에 대해 쉬이 읽혀지지 않는다는 평을 접했기에 살짝 긴장을 했지만, 소설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 할까. 

 소설은 시골 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용하고 면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한다. 거대한 조선소는 작은 마을을 변화시킨다. 누군가는 발전이라고 할 것이다. 일자리가 생겼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주었다. 조선소에 다니는 아들, 남편을 둔 사람들은 모두에게 부러운 존재였다.  아이들이 자라 조선소에서 일하는 것을 꿈꿨다. 하여, 너도 나도 철선을 만드는 조선소에 취직을 하고 싶어했다.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 중에 ‘꼽추’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소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마을을 조선소에 다니는 푸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구분되었다. 

 조선소의 주인과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철선에 대해서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매일 같이 출근을 하는 사람들 조차 알지 못했다. 출근하여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었기에 무시했다.  마을엔 철로 가득했다. 철문, 무쇠 식칼, 무쇠 솥, 무쇠 가위, 쇠로 만든 관, 틀니까지 무쇠로 만들었고, 심지어 철을 약처럼 복용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모두가 조선소를 신봉했으나, 단 한 사람꼽추’는 예외였다. 그는 자신을 무시한 조선소와 마을 사람들을 증오했고, 틀니를 팔아 돈을 모았다. 

 시간이 지나고, 철옹성과 같았던 조선소는 어느 순간 사람들을 쫓아냈고, 마을에서 쇠를 빼앗아간다. 조선소에서 폐병으로 병원에 감금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조선소는 더이상 꿈이 아니었다.마을은 농사를 지을 수도 동물을 키울 수도 없게 되었다.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파괴되는 지난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김숨은 조선소라는 거대한 자본에 지배되는 삶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노동에서 소외된 인물 ‘꼽추’가 그들을 상대로 돈을 모으고 집착하는, 조선소에 속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을 대조적으로 그렸다. 조선소에서 쫓겨난 아버지들을 통해 신성하다고 여겨졌던 노동이 한낱 소모품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절대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조선소와 철선에 의해 마모되어 철저하게 버려지고 소외되는 삶. 

 아침부터 까끌까끌하고 불그스름한 먼지가 북쪽에서 불어와 마을을 휩쓸었다. 그 먼지는 공기 중으로 번져나갔다. 대낮에도 마을은 급작스럽게 불어 닥치니 먼지로 인해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시큼하고 비릿한 쇠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녹(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녹을 한 숟가락씩 복용하는 늙은이들도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이 녹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p 49

 김숨의 소설은 우리 이웃의 모습이자 나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삶은 여전하게 자본의 지배 속에 있다. 소설속 조선조는 또 다른 이름의 수많은 조선소로 여전하게 존재한다. 삶이 지속되는 한 노동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철선을 보는 이는 누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든파티 - 영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캐서린 맨스필드 외 지음, 김영희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을 떠올리면 오래 전, 우리집에도 세계 문학 전집이 있었다. 꽤 묵직했고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가득했다. 내가 읽은 건 겨우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수레 바퀴 밑에서가 전부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건 무리였다.  그 뒤로 세계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문학을 읽는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만나는 것이다. 

 창비 세계 문학 전집 영국편에는 <크리스마스 케롤>로 유명한 ‘찰스 디킨즈’ 을 시작으로 ‘토머스 하디’, ‘조피프 콘래드’, ‘제임스 조이스’, <여자의 방>의 ‘버지니어 울프’, ‘D.H 로렌스’,‘캐서린 맨스필드’,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도리스 레씽>까지 만날 수 있다.  

 찰스 디킨즈의 <신호수>나 토머스 하디의 <오그라든 팔>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을 다루었고 뒤를 이은 작가의 소설들은 그 시대의 영국의 변화를 작품속에서 함께 볼 수 있었다.  영국엔 유독 여성을 소재,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회상을 담은 소설이 많았다. 아마도 계급이나 신분에 따라 차별을 받았던 사회상이 반영해 세상에 고발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오그라든 팔>, 버지니어 울프의 <유품>과  D.H 로렌스의 <차표 주세요>,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타피>다. 

 <오그라든 팔>을 보면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두 여자의 이야기로, 두 여자 간의 미묘한 감정과 그들의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가정 환경을 엿 볼 수 있다. 아이까지 낳았지만, 남자와 살지 못하는 여자가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한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아내를 질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여자가  꿈에 아내를 공격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나타난다. 정작 두 여연은 만남과 동시에 서로에게 끌리나, 결국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한 증오는 커지고, 기묘한 결말에 이른다.

 죽은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아내의 외도를 알게되는 <유품>, 바람둥이 남자에게 농락당한 여자들이 합심하여 남자를 벌하는 <차표 주세요>는 무척 현실적이었다. 자신만이 최고인 줄 알고 무시했던 아내에게 뒤통수를 맞은 남편, 여자들의 진심을 쥐고 흔든 바람둥이 남자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는 모습은 같은 여자로 살짝 통쾌하기도 했다.

 <가든 파티>는 부유한 집안의 소녀가 파티를 준비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빈부 격차를 실랄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파티가 시작될 무렵, 빈민가에서 죽은 남자의 소식을 듣고, 소녀는 추자고 말하지만, 가족들은 개의치 않는다. 파티가 끝나고 소녀는 그 집을 방문하게 된다.소설은 소녀의 시선을 통해 수직적 관계의 사회를 비춘다.

 창비 세계 문학의 특징을 꼽자면, 단편의 시작전 작가의 이력을 수록한 점과 마지막에 더 읽을거리라 하여, 다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장들의 단편을 통해 영국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었고, 특히 캐서린 맨스필드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을 더 만나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강렬한 색채, 상실감으로 가득찬 여자의 눈빛. 표지만으로도 깊은 슬픔이 전해진다. 이미 1997년 아카데미 9개 부분을 수상한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원작소설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소설은 아주 천천히 속내를 드러냈다. 소설은 내게 집중을 요구했다.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만난 네 명의 이야기다. 수도원에 사막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화상을 입은 영국인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간호사 해나’가 있었다.  그녀를 찾아온 ‘카라바지오’는 죽은 아버지의 친구이며 첩자이자 도둑이었고, 그곳에 지뢰와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공병 ‘킵’이 찾아온다. 

 심한 화상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화상 환자는 자신을 돌봐주는 해나에게 사막과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를 영국인이라 굳게 믿고 있는 해나에게 카라바지오는 그가 영국인이 아닐 꺼라 주장한다. 전기가 끊긴 수도원은 그들에게 안식처와 같았다. 카라바지오가 구해오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때로 춤을 추며,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완전하게 변화하였고, 전쟁이 끝난다 해도 그들은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전쟁으로 해나는 그녀 자신과 아버지를 빼앗겼. 절망과 상실감으로 해나는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거울을 보려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읽는 동안 몇 몇 문장은 머리 속으로 장면을 그려본다. 어둠이 가득한 수도원, 희미한 촛불에 의지하여 영국인 환자 머리맡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해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한 여자와 사막을 이야기하는 남자.  가족과 형제를 떠나 낯선 나라의 공병이 된 청년 , 첩자 활동 중에 손가락을 잃은 카라바지오. 그들은 어느새 서로를 의지하게 되고, 해나와 은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사랑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처절하며, 강렬하다. 사랑은 참으로 작아서 바늘귀도 들어갈 수 있다(p381)는 글처럼. 

 소설은 잔잔한 음률이었고,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들의 앞 날은 어떻게 펼쳐질까?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전쟁으로 인한 상실은 치유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의문의 끝에는 여전하게 삶이 있었다. 의사가 되었고, 가정을 이룬 이 해나를 떠올리는 장면은 영화의 엔딩이었을까?   

 이제는 식사 시간에 그녀와 다시 이야기하고 그들이 천막 안에서나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가장 친밀감을 느꼈던 그 단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요동치는 강같은 공간을 포함하고 있었던 두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를 회상하자 그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던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소년답고 진지한 사람. 나긋나긋한 팔은 그가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를 향해 허공으로 뻗는다. 젖은 장화는 끈을 한데 묶어 이탈리아의 문가 옆에 서 있다. 그의 팔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대 위에는 엎드린 인물 형상이 있다.p 3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은 타로 카드 뒷장처럼 겹겹이 펼쳐지는지. 물위
                   에 달리는 꽃잎들 맴도는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
                   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 사과파이의 뜨거운 시럽
                   이 흐르는지, 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지. 유리공장
                   에서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부서지는지. 어
                   쩌자고 젖은 빨래는 마르지 않는지. 파란 새 우는지,
                   널 사랑하는지, 검은 버찌나무 위의 가을로 날아가는
                   지. 도대체 어쩌자고 내가 시를 쓰는지, 어쩌자고 종
                   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곡두 - 함정임 소설집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함정임은 아직 내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다.  중단편 <아주 사소한 중독>으로 처음 만났고, 하나의 단편을 더 만난게 전부였다. 환영(幻影)이라 뜻의 곡두와 묘한 표지가 왠지 끌렸다. 소설은 곡두라는 제목처럼 잡히는 것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10편의 소설 중 <곡두>, <자두 >, 상쾌한 밤>은 연작소설과 같은 흐름을 갖었고,  다른 소설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도 마찬가지였다. 함정임의 소설속 인물들은 정착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여기 저기 삶의 언저리를 떠돌거나, 다시 정착할 어딘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들이었다.

 <곡두>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동거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자의 어머니가 결혼을 허락하면서 여자는 결혼식에 함께 들어가야 할 사람이라며, 노모가 수소문한 이복 오빠의 흔적을 따라 다닌다. 그러나 도착한 곳마다 그는 이미 떠난 상태였고, 사람들의 말을 통해 오빠의 일상을 듣든다. 한 번도 만나적 없는 오빠의 존재가, 그녀에겐 곡두가 아니었을까.

 <곡두>가 여자의 이야기라면, <자두>는 남자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곡두>보다 구체적인 상황이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이혼경력이 있으며 여자에겐 아이도 있다. 남자는 결혼과 함께 이사를 하려고 집을 내놓는다. 화가였던 전처의 그림이 거실에 걸려있는 집은 쉽게 팔리지 않고, 남자는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새로게 펼쳐질  삶을 생각한다.

 <상쾌한 밤>은 여자의 오빠 이야기라 하겠다. IMF로 인해 떠돌이가 된 그,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만나려 하는 이복 여동생, 상견례 참석 소식을 전하는 아내. 위장 이혼인 아내가 완전한 결별을 통보할까 그는 두려워한다. 단편은 뚜렸한 결말 없이 흘러간다.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는 죽음으로 인한 부재, 이별을 말한다. <환대>는 여동생이 모시고 있던,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큰 딸 안서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상한다. 자신을 유독 아꼈던 아버지와 불화가 시작되었던 시절,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 빈자리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안서는 생각한다.  <구름 한 점- 환대2>는 안서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우연하게 근처 요양소에서  자신을 딸로 착각하는 노인 달자씨를  통해 안서는 돌아가신 아버지,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곡두>,<자두>,<상쾌한 밤>이 난해한 꿈의 느낌이 강한 반면에 두 편의 소설은 소설보다는 일상의 기록처럼 다가온다. 꾸며지지 않은 우리네 모습처럼 담담하다. 

 함정임의 <곡두>는 특정 지명이 곳곳에 등장한다. 인상깊었던 곳은 <환대>, <구름 한 점 - 환대2>에서 등장하는 추리문학관, 달맞이언덕, 송정, 오륙도, 등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나머지 소설 <달콤한 눈물>,<행인>, <킬리만자로의 눈[目]>,<백야>에서도 목포, 슬라이고의 이니스프리 호수섬,아프리카 등 불쑥 불쑥 길을 떠나고, 떠도는 군상들이다. 지친 일상을 달래기 위한 휴식이나, 여행을 위한 떠남이 아니라, 정착할 이유를 찾기 못해, 부유하는 삶이다. 하여, 사랑하는 연인, 가족이 있어도 그들은 모두 쓸쓸하고 외롭다. 

 <곡두>인 양, 함정임의 소설은 낯설고 어렵다. 존재하나, 잡히지 않는, 환상과 환영의 세계, 그 곳에 함정임의 소설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