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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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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하지 않은 어떤 일과 맞닥뜨렸을 때 누구나 혼돈에 빠진다. 그 깊은 수렁에서 빠른 시간 내에 온전히 두 발을 모두 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위기 대처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러하다. 위험은 도처에 깔려 있다. 다만 그 크기가 다를 뿐이며, 이미 경험한 위험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이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때로 거대한 구덩이를 파놓고 기다린다. 그 구덩이에서 올라올 수 없다는 걸 판단했을 때 나의 부재로 인해 가장 힘들어 할 사람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건 바로 가족이다.    

 삶의 전부였던, 우상이었던 아버지가 범죄자로 낙인 찍힌다면, 그의 아들은 세상에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 범죄가 잔혹한 살인이라면 세상은 그를 살인자의 아들이자 살인자로 볼 것이다. 설령, 우연한 사고나 정당방위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들리는 것이 전부라 믿는다. 아니, 그들의 삶에 대해 알려하지 않는다. 그것에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 믿는 사고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러니까, 그 진실이 정녕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에 의해 진실로 확정되어지는 것들, 부나 권력에 의해 진실로 왜곡되는 사실들에 대해서 말이다. 소설은 세령 수목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다. 우발적 사고로 한 소녀를 죽게 한 남자 최현수와 열두 살짜리 그의 아들 서원, 딸 세령을 잃은 남자 오영제, 그리고 진실을 알고 있는 남자 안승환.   

 소설은 현수가 세령 부녀와 아내 은주를 살해한 살인죄로 경찰에 구속되면서 홀로 남은 서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살인자의 아들을 보듬어 줄 손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친척이며 학교, 세상의 모든 시선은 그에게 살인자의 아들이라 말하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현수의 부하 직원이자 짧은 기간 한 방을 쓴 아저씨인 승환 뿐이었다.

 서원은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  아버지는 분명 살인자였다. 자신과 같은 열두 살 소녀 세령을 죽였고 세령호에 던져 버린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다. 사건직후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았다. 왜 그런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등대마을에서 아저씨와 고요히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세상은 최현수와 그의 아들 최서원을 가만두지 않았다. 악의적인 누군가는 서원에게 당시의 사건을 담은 잡지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저 살인사건과 그 사건 일지의 기록에 그친다면 소설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것이다. 정유정은 액자소설이란 형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신문이라 기록으로 남겨진 사건과 서원을 돌보는 승환이 쓴 소설로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이 그것이다. 승환의 소설을 서원이 발견하는 순간, 독자는 서원이 된다. 소설을 통해 밝혀지는 영제의 존재는 반전을 불러오며 모두를 긴장시킨다.  

 숨을 죽이며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확인하게 된다. 진짜 진실과 마주한 서원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사형집행을 기다리면서 아들에게 향하는 죽음의 손길로부터 아들을 구하고자 한 애끓는 부정. 7년 동안 서원의 버팀목이었던 분노와 증오가 한순간 애정으로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이 모두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모른다.  몰랐던 사실과 마주했으니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온 7년보다 최서원으로 살아갈 날들에 살아갈 이유가 생긴 것이다.  

 살인과 복수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정유정의 『7년의 밤』이 호평을 받는 이유는 탄탄한 서사와 생동감 넘치는 인물(주인공뿐 아니라 등장 인물은 하나같이 살아있다),  눈 앞에 펼쳐진 듯한 배경 묘사에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적요한 수목원을 감싸는 세령호가 숨쉬는 물소리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 심장을 쏴라』보다 강한 흡입력을 지녔으며 인간에 대한 정유정의 관심과 애정이 한층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모두가 주목하는 작가, 정유정은 어떤 이야기를 들고 세상을 흔들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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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기어이 책을 사고 말았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이제 당분간 책을 사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당분간 좋아하는 작가의 새로운 소설이 나와도 구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 다짐을 지킬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굳은 다짐을 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마다 남아있던 마일리지를 모아 모아서 산 책들이다.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김연수 외 <깊은 밤, 기린의 말>, 김훈의 기행산문집 <풍경과 상처>, 고 박완서님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 서울 테마 두 번째 소설집 <서울, 밤의 산책자들>, 12명의 작가들의 산문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만날 수 있는 <불가능한 대화들>이 그것이다.  

 어제도 두 권의 신간이 도착했다. 구매하지 않았을 뿐, 책은 계속 오고 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하여, 더 즐거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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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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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은 장편소설 『철』과 『물』로 만났다. 스스로 광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던 그녀의 두 소설은 무척 기묘했다. 때문에 광물을 다루지 않은 소설은 어떨까 궁금했다. 테마집을 통해 접했던 단편은 장편과는 많이 달랐다. 『간과 쓸개』 속 인물은 대체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사소한 분쟁을 원하지 않았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렇다고 욕구가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사건 사고 없이 살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때로 우리 주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웃들이었다. 해서, 더 마음이 머무른다.  

 <간과 쓸개>는 간암에 걸린 주인공과 담낭관에 담석이 생긴 큰 누님의 이야기다. 땅 3백 평을 팔아 자식들에게 나줘 주고 혼자 사는 그는 간암 투병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안고 산다. 간암과 쓸개즙이 나오지 못해 생긴 병을 비교할 때 위급함은 간암이 훨씬 크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간암 환자로 살아가는 그나 아흔이 넘은 나이에 배에 구멍을 뚫어 쓸개즙을 빼내는 일은 죽음 가까이에 있었다. 그에게도 큰 누님에게도 장성한 여러 자식이 있지만, 암과 싸우며 일상을 견뎌내는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읽는 내내 아흔 셋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부서질 듯 마른 육체가 떠오르는 건 왜 일까.   

 <북쪽 방>은 32년 동안 중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을 맞은 노인 곽노의 일상이다. 폐가 좋지 않아 먹어야 할 약이 4봉지나 되는 그는 북쪽방에 갇힌 듯 생활한다.  그에게 주어진 공간이자 삶은 북쪽 방 뿐인 것이다. 아내는 그에게 부속된 모든 것(밥, 속옷, 화장실까지)을 북쪽 방에 넣고 언제나 문을 닫는다. 그 안에서 그는 지하실 가방 공장 미싱 소리에 누군가 벽에 쇠공을 던지는 소리와 함께 산다. 종교 활동에 빠진 아내는 점차 곽노를 잊어버린다. 곽노가 때로 죽음을 경험하는 북쪽 방은 곽노이며 거대한 광물인지도 모른다. 

 ‘광물은 외계를 내계로 끌어들인다. 외계를 압축해 내계에 기록한다. 기록은 색, 조흔색, 광택, 굳기, 비중, 쪼개짐, 단구, 점성, 자성, 발광성 등 여러 방식으로 구현된다. 만물이 그러하겠지만, 광물의 형성에도 분명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곽노는 북쪽 방이 벽면들로 막혀 있지만, 외계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될 수 없음을 안다. 북쪽 방은, 북쪽 방을 둘러싸고 있는 외계의 온도와 습도, 소리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고스란히 곽노의 육신에 영향을 미친다.’ p.142~143  

 <육(肉)의 시간>은 부부 사이에 등장하는 한 여자로 인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는 아주 태연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아내를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무시해버린다. 아내는 셋이서 평화롭게 살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남편이 데려온 여자는 누구이며, 그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한 건 당연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과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설령, 그 여자가 죽은 육체라도 말이다.

 묘한 기운은 <룸미러>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생기고 부터 남편은 언제나 아이들이 잠들기만을 원한다. 아이들은 분주하고 사건을 일으키고, 요란스럽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남편은 끊임없이 룸미러를 통해 아이들을 주시한다. 혹시나 잠에서 깨어날까 두려워한다. 무슨 일인지 도로는 막히고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나와 계속 걷는다.  

<흑문조>는 빚으로 마련한 집의 보일러 기계가 고장나 벌어지는 일이다. 보일러 배관공은 집안 여기 저기 구멍을 파놓고 원인을 찾지 못한다. 원하던 바가 아니다. 단순히 보일러를 고치려 했을 뿐인데,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만다. 특별한 일 없이 돌아가던 권태롭기까지 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배관공이 파놓은 구멍들 때문에 집 안에서의 내 동선은 엉망이 되었다. 집의 질서가 흐트러졌다. 고스란히 드러난 보일러 배관들을 바라보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보이러 배관마다  녹 뭉치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p. 171

 오랜 기간 고시를 준비하다 실패해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모일, 저녁> 속 삼촌이나 평생을 직사각형 매표소에서 보낸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일상의 균형이 깨지기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작은 틈새, 균열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없고 할 수 있는 건 울어버리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철』과 『물』을 빠르게 읽었다면 『간과 쓸개』는 느리게 읽으면 좋겠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소설 속 인물처럼 웅크리고 있거나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가만히 울음을 토해내도 괜찮겠다.  북받치는 감정을 눌러 담아 만들어 낸 소리들, 주의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김숨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그러하지 않을까.  조용하지만 간절하여 더 강한 힘을 가진 그녀의 문장이 점점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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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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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신의 미국작가 하 진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소설 『기다림』에 대한 호평을 접한 터라 『멋진 소설』에 기대와 설렘이 컸다. 결과적으로 그의 소설은 나를 흡족하게 했다. 수록된 12편의 소설은 친근했고 편안했다. 소설은 중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는 이민자들의 삶을 다뤘다.   

 표제작 <멋진 추락>의 주인공 간친은 뉴욕의 사원에서 쿵후를 가르친다. 그러나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주지는 비자 연장을 도와주지 않고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자신이 일한 만큼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주지는 그를 사원에서 내쫓는다. 간친의 사정을 들은 친구 신디는 스님의 신분을 벗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한다. 그는 결국 죽음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음식을 대접받은 식당주인에게 그 동안 주지가 일삼은 착취에 대해 털어 놓는다. 그의 추락은 이슈가 되어 각계각층의 도움을 받는다. 그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말 그대로 멋진 추락이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인디언들을 제외하고 미국이 자기 나라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당신이 여기에서 살고 일하면 당신 나라인 거죠.” 
 “바꾸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스물여덟 살밖에 안 됐어요!” 
 “그래도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어요.” 
 “당신은 앞으로 적어도 50년은 더 살 거예요.”  p. 357  

 신디의 말처럼 미국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나라다.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할 수 있는 건 바로 자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민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거나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12편의 소설 속 다양한 삶은 결국 미국에서 잘 살고자 하는 같은 목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어떤 사람은 성공을 위해, 어떤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달랐다. <벚나무 뒤의 집> 속 여자들은 중국에 남겨진 부모와 형제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고, <계약 커플>의 남녀는 남편과 아내가 있었지만 동거를 해야 했고, <부끄러움>의 교수는 불법 체류자란 신분 때문에 영사관 직원을 피해 다녀야 했다. 몸이 아파도 의료보험료가 비싸 병원에 가지 못했고 나를 위해 그 어떤 투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일상을 부모나 형제는 알지 못했다. 해서, 좀 더 많은 돈을 보내주기를 원했고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으며, 잠시 다니러 온 부모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어와 환경이 다르고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른 사회에서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은 때로 실소를 자아냈고 때로 안쓰러웠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로 안절부절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사소한 일상을 차분하게 담을 수 있었던 건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중국인으로 미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 진의 소설은 자연스레 영국 출신이나 인도인 부모를 둔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과 김재영의 『폭식』을  떠올렸다. 그들 소설에서 이방인이란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견뎌내야 할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줌파 라히리가 여성의 심리를 면밀하게 묘사했다면 하 진은 남성의 그것을 간결한 단문으로 담백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멋진 추락>으로 하 진을 만났으니 누군가 그의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흔쾌히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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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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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이별을 예상하며 관계를 맺고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이별의 카운트다운이 함께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수를 얼마까지 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이별한다. 어제의 나와도 이별하고 가족과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으로 짧은 이별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일상적인 이별이 반복되어 때로 이별의 늪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 이별에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이별 리뷰』는 다양한 이별 중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말한다. 저자가 택한 이별 치유법은 바로 책이다. 책 읽기를 통해 이별을 해석하고 이별을 위로하고 사랑을 말하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건 단순한 책읽기를 떠나 책에서 만나지는 다양한 삶을 마주하고 이해하면서 사랑과 이별에 대해 깊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소설은 우리의 생을 가장 많이 닮았고 가장 많이 투영한다. 소설 속에서 우리는 원없이 사랑하고 처절하게 이별한다. 물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게 우리네 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을 소설 속에선 맘껏 발산할 수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이유로 저자는 책 읽기를 선택한 게 아닐까 한다. 

 이별을 견디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울부짖으며 누군가는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할 것이다. 혹독하게 이별을 겪은 사람은 이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전하게 이별을 껴안지 못했기에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잔인한 말이지만 이별이 진행 중인 사람이거나, 이별의 전를 느끼고 있는 사람, 곧 누군가에게 이별을 통보할 사람이라면 더 좋을 책이다. 이런 구절들처럼 말이다.   

 ‘사랑을 한다면, 그리고 이별을 했다면 당연히 미쳐야 한다. 우리가 사랑과 이별을 겪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어쩌면 미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약간은 미쳐서, 이별을 기억하지 않고, 다만 사랑만 더 아름답게 각색하면서 살아도 좋을 것이다.’ p. 92 

 저자가 선택한 32편의 소설이나 시는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으로 김동리의 <역마>,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시작해 김애란의 <성탄특선>까지 다양하다. 그저 역사 소설이라 여겼던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과 여진의 강렬한 이별은 예상된 이별이지만 애절함으로 남는다. 박완서의 <그 여자 네 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어느 한 세대의 소유물이 아니며 어디에나 삶이 있듯 어디에나 사랑과 이별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나의 이별이 가장 고통스러운게 아니라고 전한다. 자신의 이별의식을 잘 치른 후에야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할 수 있다. 소설 속 연인들의 이별과 사랑은 안다고 믿었던 이별에 대해 다시 한 번 학습하게 한다. 그리고 제대로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수많은 이별이 사랑으로 다가가는 길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는 것은, 과장되게 연애하고, 덜 아프게 이별하게 위해 가면을 쓰는 일이 아니라, 가면을 한 손에 들고, 자신에게도 가면이 있음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일이다. 나 또한  가면은 버리지 못한다. 다만,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 가면을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p.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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