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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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신의 미국작가 하 진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소설 『기다림』에 대한 호평을 접한 터라 『멋진 소설』에 기대와 설렘이 컸다. 결과적으로 그의 소설은 나를 흡족하게 했다. 수록된 12편의 소설은 친근했고 편안했다. 소설은 중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는 이민자들의 삶을 다뤘다.   

 표제작 <멋진 추락>의 주인공 간친은 뉴욕의 사원에서 쿵후를 가르친다. 그러나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주지는 비자 연장을 도와주지 않고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자신이 일한 만큼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주지는 그를 사원에서 내쫓는다. 간친의 사정을 들은 친구 신디는 스님의 신분을 벗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한다. 그는 결국 죽음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음식을 대접받은 식당주인에게 그 동안 주지가 일삼은 착취에 대해 털어 놓는다. 그의 추락은 이슈가 되어 각계각층의 도움을 받는다. 그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말 그대로 멋진 추락이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인디언들을 제외하고 미국이 자기 나라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당신이 여기에서 살고 일하면 당신 나라인 거죠.” 
 “바꾸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스물여덟 살밖에 안 됐어요!” 
 “그래도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어요.” 
 “당신은 앞으로 적어도 50년은 더 살 거예요.”  p. 357  

 신디의 말처럼 미국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나라다.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할 수 있는 건 바로 자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민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거나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12편의 소설 속 다양한 삶은 결국 미국에서 잘 살고자 하는 같은 목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어떤 사람은 성공을 위해, 어떤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달랐다. <벚나무 뒤의 집> 속 여자들은 중국에 남겨진 부모와 형제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고, <계약 커플>의 남녀는 남편과 아내가 있었지만 동거를 해야 했고, <부끄러움>의 교수는 불법 체류자란 신분 때문에 영사관 직원을 피해 다녀야 했다. 몸이 아파도 의료보험료가 비싸 병원에 가지 못했고 나를 위해 그 어떤 투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일상을 부모나 형제는 알지 못했다. 해서, 좀 더 많은 돈을 보내주기를 원했고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으며, 잠시 다니러 온 부모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어와 환경이 다르고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른 사회에서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은 때로 실소를 자아냈고 때로 안쓰러웠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로 안절부절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사소한 일상을 차분하게 담을 수 있었던 건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중국인으로 미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 진의 소설은 자연스레 영국 출신이나 인도인 부모를 둔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과 김재영의 『폭식』을  떠올렸다. 그들 소설에서 이방인이란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견뎌내야 할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줌파 라히리가 여성의 심리를 면밀하게 묘사했다면 하 진은 남성의 그것을 간결한 단문으로 담백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멋진 추락>으로 하 진을 만났으니 누군가 그의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흔쾌히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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