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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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는 대로 욕망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불현듯 발견한 자신의 욕망에 화들짝 놀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욕망으로 인해 또 다른 욕망의 싹을 키우는지도 모른다.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는  숨겨두거나 몰랐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말하다. 아니, 때로는 욕망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욕망하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건 나와 당신, 우리 모두의 살아 있는 이야기이며, 살아 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그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나부터도 번듯한 직장, 단란한 가정,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식으로 살고 있는 그가 드러내지 못한 욕망이 얼마나 있겠냐며 딴지를 걸고 싶으니까. 먹고 입고 사는 일만도 힘든 세상인데 욕망을 들여다 보고 있을 이가 몇 명이나 될까. 물론 욕망이라는 게 무책임한 일탈이나 악의 실천이나 사회 규범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욕망은 참을 수 있으면 참아야 한다고 교육 받아 온 우리가 아니던가. 사춘기 시절 무한하게 확장되는 호기심도 어른이 되면 다 해결된다는 식이었고, 집 장만을 위한 저축이 아니라 폼 나는 외제 자동차나 보석 같은 사치품을 위해 돈을 모은다고 하면 정신 나간 이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아이들에게도 조그만 참으면 괜찮다고 말하고, 나중에 라는 말로 달래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한다.

 

 욕망이라는 것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제시한다. 대중적인 영화나 책을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세간의 모든 시선이 주목했던 신정아 사건, 존경받은 목회자의 동성애자 고백을 한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한 욕망을 말하고, 자신이 내면을 인정하는 게 욕망이라 말한다. 가장 쉽고 가깝게 자신의 욕망을 들려줌으로 공감을 얻는다. 자신의 집안 환경과 가족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 비춰진 인정과 욕망이 아니라, 나 스스로 갈망하는 삶에 대해 인정받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의 가족사나 부모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누구의 아들로 교수로, 종교인으로 정해진 길을 걷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는 여전히 과하게 술을 마시거나 언론을 통해 올리는 글에 격한 감정이나 사회에 반하는 글을 올리지도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이 시작인 것이다. 소년 시절의 욕망이 어른이 되어 카메라를 사는 일로 이어지는 일처럼 어느 순간에 오랜 시간 참아온 욕망과 숨겨둔 갈망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그 욕망의 종류와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욕망이라는 녀석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기를 꿈꾸고 갖지 못한 무언가 소유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으니까. 입고 싶은 옷이나 하고 싶은 머리 모양을 주저하는 건 시선 때문이다. 내 나이를 생각하고, 과연 해도 될까 하며 주저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와 같은 세대의 누군가가 내가 하지 못하는 행동이나 옷차림을 할 때 부러워하는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지 생각한다. 저자도 그랬다. 연애 상담을 하는 제자들이 딸의 경우엔 어떻게 할 거냐 물었을 때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욕망에 대해 어떤 용기가 생긴 것이다. 무조건 욕망을 참는 대신 욕망과 함께 살아가는 게 훨씬 행복하고 현명한 삶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이며,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깊은 내면을 이웃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주변에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개인, 사냥꾼의 고아기 속에서 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이웃,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동지 들이죠. 그런 개인들과 아주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합니다.’ p. 301

 

 어쩌면 그가 말하는 욕망해도 괜찮다는 말의 숨은 의미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삶의 변화를 위한 작은 용기, 욕망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누군가 내민 손을 잡을 수 있는 용기,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들이 결국엔 나를 살게 하고 당신을 살게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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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2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3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3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가 잘 된 리뷰입니다. 우리 사회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으니까 이 책의 메시지는 새길만 하군요. 저부터 말입니다.

자목련 2012-06-23 08:08   좋아요 0 | URL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책이에요. 중년층에게는 묘한 향수와 추억을 불러오기도 하고,청춘이라 불리는 세대에게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젠 아침부터 더워지려 해요. 여름이니까 당연한 일인가 싶기도 하구요. 시원한 하루 시작하세요.^^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는 설렘과 동시에 불안을 안겨준다. 지난 금요일 걸려온 전화와 주말 오후에 걸려온 그것이 그러했다. 금요일에 걸려온 전화는 작은 아버지셨다. 어렸을 때 나를 무척 아끼고 예뻐해주셨는데, 어른이 되면서 명절이나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나 뵙는 분이다. 봄에 내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소식을 알려주려고 일부러 전화를 주신 것이다. 그 소식은 정보라는 말에 가깝겠다. 신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나는 그 전화로 알게 된 소식이니까. 사촌들의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금요일엔 그 전화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 표현하지 않아도 항상 조카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고맙고 감사했다.

 

 주말 오후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두 어 달 만의 전화였는데 친구는 갑자기 주소를 문자로 보내라고 했다. 문자를 보내니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사는 곳,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하여 나를 보러 온다는 말이었다. 20여분이 지나고 도착한 친구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우리는 대학 3학년 여름에 만났다.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곳에서 만났다. 그녀 역시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내게 빨간 원피스란 별명을 붙여준 곳이다.

 

 짧은 시간 우리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눈과 눈을 마주하고, 한 번씩 손을 잡으며 말이다. 그녀가 남자친구와 함께 운영하는 카페에 대해서, 주인의 팔을 물어버린 그녀가 기르는 고양이에 대해서, 책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것들에 대해서. 언제나 그렇듯 내가 말을 많이 했고, 그녀가 많이 들어주었다. 김경주의 『밀어』에 대해 말하다 『패스포트』로 이어졌고 그 순간 나는 「3호선 버터 플라이」의 그녀에게와 「롤러코스터」의 괜찮아요 가 떠올랐다.

 

 

 

 

 

 

 

 

 

 

 

 

 

 

 

 

 

 

 빨간 원피스로 불리던 시절, 내 곁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 소식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손을 뻗으면 언제나 그 손 끝에 그녀가 닿아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 그 늙음이 좋다. 우리는 내내 그렇게 늙어갈 것이다. 눈과 눈을 마주한 시간이 짧을 거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내 안에 그녀가 살고 있으니 괜찮다. 그녀 역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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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렸다. 시원한 비였다. 언니와 조카는 이곳보다 많은 비가 내린 남부 지방을 여행중인데도 나는 하나도 걱정은커녕 신이 났다. 비오는 날,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들었다. 비가 와서 라면도 먹었다. 신간에 대한 소식은 문자를 통해 접하지만 음반은 그렇지 않다. 에피톤 프로젝트가 새 음반을 냈다는 걸 안 건 정말 우연이다.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란 앨범 제목도 좋다. 우선 세 곡을 듣고 있다. <믿을게><터미널>,<새벽녘>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 한데,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이 다 좋다. 검색해서 들어보니 정말 좋다. <우리의 음악>도 좋고, 이 나이에 이렇게 이런 감성에 취하면 곤란한데, 하면서도 빠져든다.

 

 

 

 

 

 

 

 

 

 

 

 

 

 

보고 싶은 많은 사람들
늘 쉽지 않은 마음의 용기
언제쯤 보자 또 언제 만나자
기약 없는 약속들이 늘고
무표정한 계절 사이로
너의 모습 내게 다가온다
오랜만이야 참 오랜만이야
길어진 하루 해 끝에 걸음을 늦춰보며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나의 하루는 그런대로 지내
믿을게, 믿을래 그렇게 믿어볼게
잘했다고 우리 그 결정은 잘했다고
괜찮을 거야, 다 괜찮을 거야
나의 하루는 내일도 같은 하루라도
믿을게, 믿을래 그렇게 믿어볼게
이제 그만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고
괜찮아 다 괜찮아 지난일이야
마음속 남은 것들은 털어내고
괜찮아 다 괜찮아 지난일이야
슬퍼했던 마음은 이제는 모두 벗어내고   - 믿을게-

 

 

 여름, 떠나려는 당신에게 필요한 건 이 음악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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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6-1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거기 날씨 어때요? 금빛 물결의 바다 막 그런 푸른 로망이 이 음악과 함께 하길 바래요^^

자목련 2012-06-13 22:50   좋아요 0 | URL
여기는, 너무 더워요. 바다의 시원함이 필요해요. 해서, 내일 바다를 보러갈지도 몰라요.
아이님은, 잘 지내시나요?
 
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 - 사상가 아버지와 문학가 딸이 나눈 10년의 편지 글항아리 인문에세이 3
류짜이푸.류젠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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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무엇을 닮느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 좋지 않은 습관이나 행동을 닮는다면 반가워 할 부모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부모의 대를 이어 같은 분야에 종사한다면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 거울을 보듯 닮은 부녀가 있다.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걸어가는 중국의 사상가인 아버지 류짜이푸와 문학가인 딸 류젠메이가 그들이다.

 

 책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부녀가 인생과 학문에 대해 팩스로 나눈 편지를 엮은 책이다. 제1부 사랑하라, 제2부 생각하라, 제3부 표류하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물음표로 가득한 삶에 대해 토론한다. 언제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부녀사이인데 왜 그들은 편지를 써야 했을까?  아버지 류짜이푸가 천안문 사건으로 두 딸을 중국에 남겨두고 아내와 함께 미국행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국에 있는 아버지와 중국에 남은 큰 딸 류젠메이는 그때부터 편지로 소통한다. 두 사람의 편지는 류젠메이가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문학을 공부하는 딸의 고민,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된 후 겪는 놀라운 감동과 우울,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아버지이기 이전에 인생의 선배이자 사상가에게 묻고 딸이기 이전에 문학가에게 답하는 것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하는 편지글이라 다정하고 친근하지만 내용은 쉽다고는 말할 수 없다.사상가와 문학가라는 직업이 말해주듯 편지로 나눈 내용은 다양한다.  철학과 사상, 고전, 문학, 인생에 대해 서로에게 묻고 답한다.

 

 편지에는 특히 타국에서 바라보는 고국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이나 중국 문학에 대한 내용이 많다. 아버지와 딸이 미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다르지만 중국에 대한 애정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외롭고 고독한 이방인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있어 아버지는 딸에게 이런 글을 전한다.

 

 ‘평상심은 자연스러운 마음이야. 중국을 떠나온 이후에 근본적으로 나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평상심이란다. 중국에 있었을 때에는 나 역시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아주 활기차게 살았지. 하지만 중국을 떠난 뒤로는 단숨에 끝도 없는 적막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단다. 그런데도 내가 마음의 평정을 빨리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애당초 나 자신을 결코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야.’ p. 77

 

 ‘생명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단다. 이 말의 의미는 한 사람의 즐거움과 행복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직위와 직함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생명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란다.’ p. 173

 

 제목처럼 삶이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 차 무거울 때,  ‘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던 이라면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해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빛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준다. 부와 명예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자아라는 지옥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그것은 네가 어딜 가든 너를 따라다니는 지옥이란다. 허영의 추구, 끝없는 욕망, 타인에 대한 배척과 질투의 사념, 분발하기를 멈춘 나태, 먼지 같은 성취가 빚어낸 교만 등이 모두 자아의 지옥이란다. 어쨌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욕망(사념)이 허망하게 느껴지지. 그리고 인간이 최후에는 피할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 세상의 눈부신 허영이 죄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단다. 난 네가 청춘일 때, 자아의 지옥에 대해 깨닫기를 정말 바란단다.’ p. 98

 

 이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가르침을 주니, 인문학과 철학 강의를 듣는 기분이다. 하여 스승 같은 책이 아닐까 한다. 날짜대로 싣지는 않았지만 어느 부분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딸에게, 딸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안부이며, 인생에 대한 질문과 답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문학, 철학, 문학을 공부하고 있거나 중국 문학에 관심있는 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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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0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태그가 눈에 들어옵니닷. 아버지이기 이전에, 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묻고 답하고 또 반대로 하기도 하는 이런 행위가 보기 좋아요. 가족 관계로 얽혀 서로에게 가족의 지위를 바라는 그런 류는 고향의 푸근함을 주기도 하지만 벗어나고픈 갑갑함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니까요. 참 부러운 부녀지간입니다.

옮겨주신 '평정심'부분과 '자아라는 지옥' 부분은 두고두고 읽으며 곱씹고 싶은 부분이네요.

자목련 2012-06-08 09:45   좋아요 0 | URL
제게는 어려웠지만 책은 아주 좋았어요. 중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많이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텐데.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은 부분에서 밑줄 긋고 싶은 책이었어요. 1999년까지만 이어지지만 아마도 부녀사이의 교류는 끊임없이 계속되지 않을까 싶어요.
 

 

 여름이 되었고, 가뭄의 날들이다. 적당한 비는 내리지 않고 곧 장마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드는 저녁이다. 내일, 모레 비 소식이 있지만 얼만큼의 비가 내릴지 알 수 없다. 저마다 비를 기다리는 마음은 다를 것이다. 부디 그 마음에 맞게 비가 내려주면 좋겠다. 

 

 이은규, 허연, 김경후의 시집을 읽었고 몇 편의 시를 옮기기도 했다. 미처 전하지 못한 시들을 옮긴다. 봄보다는 바다색 여름과 어울릴 것 같은 시는 이은규의 이런 시다.

 

 <허밍, 허밍>

 

 종종 구름을 눈에 담는 습관, 당신의 폐활량이 천천히 부

풀 때 그날의 공기를 부러워한 적 있다 구름을 가리키며 바

람의 춤이라고 말하는 당신의 허밍은 입술에 기대는 음악일

까, 기대지 않은 음악일까

 

 바람의 춤이 보인다면 그건 구름의 몸을 빌렸거나 폐활량

이 푸른 여름잎의 소관일 것, 구름은 바람으로 흐르고 바람

은 여름잎으로 들리니까

 

 언젠가 고원의 사라진 호수에 대해 이야기 나눴지 수면을

맴돌던 그때의 구름은 지금 어디 있을까 가장 낮은 하늘을

흐르고 있을 호수 저편, 깃털무늬구름이거나 물결무늬구름

 

 당신은 잠시 구름사전 속 이름들을 덮는다 구름과 노닐기

에 알맞은 바람이므로, 구름의 후렴은 음악이다 마지막 소

절이 첫 소절로 흐르는 허밍, 허밍

 

 사라진 호수 저편

 팔랑, 수면을 깨뜨리는 나비 한 점도 좋을 오후  - <다정한 호칭, p. 94>

 

 봄에서 여름으로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다. 생이란 막을 수 없는 시간 같은 것일까. 어찌하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것. 감당할 수 없다고 피하고 싶지만 결국엔 나만이 감당해야 하는 게 삶이고 생이다. 그리하여 허연은 생은 선택된 적이 없다고, 생무덤이다라고 말한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생에서 포기는 어떤 좌표도 읽지 않겠다는 결의다.

생은 선택된 적이 없다. 복제된 F1 완두콩들이 생에

들어온다. 엉겹결에 생에 들어서고, 생의 한가운데

놓인다. 생은 시달리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깨달음이 있는 것 같지만 생판 그게 어디 쉬운 일인

가. 늘 피를 보면서도 결국 생에서는 X축과 Y축이 와

글거린다. 이래저래 도망치는 놈은 도망치느라 생으

로 숨어들고, 살아보겠다는 놈들도 생으로 걸어 들어

간다. 무기력하게 좌표 평면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

가지 매력이 있다면 생에서는 사라져가는 걸 동정하

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나라는

다행스럽게 없다. 지금 이 생이 무덤이다. 생은 우리

들의 무덤이다. 생무덤이다. <내가 원하는 천사, P. 76>

 

 그러니 삶은 때때로 비루하고, 때때로 울울하다.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하는 날들이 있을 것이고, 그 울음을 쌓아두고 막아두려는 의지와의 싸움이 반복되는 일은 습관처럼 되버리고 말았다. 김경후의 이런 시는 누군가를 울게 할지도 모른다. 아니, 울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코르크>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똬리 튼 뱀만큼 커다랗다

 찌그러져 일렁대는

 목 그늘을 보지 못하는 그만이

 울지 않았다고 웃음을 띠고 있다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똬리를 틀고 겨울잠 자는 뱀만큼 커다랗다

 이대로 커진다면

 곧 성대 위로 이오니아식 기둥을

 세울 수도 있으리라

 

 그는 자신에게 ‘안녕?

 인사도 참고 있는 게 틀림없다

 미소와 웃음의 종류가 그의 인생의 메뉴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오래 참는 것이

 크게 울어버린 것이라고

 말을 건넬 수 있을까 그건

 갈라진 뱀의 혀를 깁는 것보다 위험한 일

 무엇을 그는 버려야

 그를 견디지 않을 수 있을까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랗다

 꼬챙이에 찔려 죽은 줄도 모르고

 겨울잠 자는 뱀의 꿈처럼 커다랗다

 그뿐이다

 울음을 참지 않았다고 외치는

 울음을 참는 자의 성대는 커다랄 뿐이다 <열두 겹의 자정, P.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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