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책읽기에 대해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너는 왜 책을 읽냐고.. 단순하다. 책이 좋고, 책 읽는 동안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 때문이다. 혹자는 내게 책과 관련된 일을 하냐고 묻기도 한다. 주부라는 커다란 직업군에 속하지만, 실상 온전한 주부는 아니다. 무기력한 생활 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다가,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기억해내고 책에게 손을 내민지 이제 2년 정도가 되었다. 

책에 관련된 모임에 가입하고,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기록하고, 그런 과정에 책에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친구가 된 분도 있고, 내가 무척 좋아하는 분들도 생겼다. 반대로 나를 향한 이런 마음이 있는 분도 있다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올 해, 책으로 인해 아주 기뻤던 일들도 있고, 반대로 적지 않게 실망한 경우도 많았다. 쌓여 있는 책들도 점점 늘어나고 나는 이제 책이 아닌 다른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집에 살고 있다. 오죽하면 울 큰 언니, 저 책 좀 버리든가 하지, 한다. 사실, 그러면서 내심 좋은 양서(이렇게 표현하니 참 우습지만)들은 당신집으로 들고 가 버렸다. 물론 내가 언니에게 양도한 것이지만, 좁은 집에 산다는 것, 나의 공간이 적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매력적인 분야이다. 하여, 많은 이들이 그곳으로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리라. 유독 2008년에는 책을 통해 책을 구매했다. 공짜 마일리지, 상품권의 수익(ㅋㅋ)이 있었다. 암튼 그것은 내게 다행이었다. 책으로 인한 수입보다 지출이 크다면 나는 식구들의 눈총을 견뎌내지 못할지도 모르니. 

읽은 책들을 둘러보면서 당신에게 권하고 싶어서 소개하려 한다.  

   

나는 한국 문학을 사랑한다. 아직 만나지 못한 소설들, 기다려 줘, 너를 만나러 갈께.

 

 

 

기억에 남은 외국소설, 지금 떠오르는 책 외도 더 있을 텐데, 생각이 나지 않느니.. 

  

산문집, 시집, 아직 은은한 향이 있는 책들, 사랑스러운 책들. 

   

내게 부족한 분야의 책들, 어렵기도 했지만, 관심을 두어야 할 책들. 

2009년에는 더 깊이 있는 책읽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나의 글쓰기도 조금 더 발전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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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코 2008-12-3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로만 만났을 뿐이지만, 저는 언니 무척 좋아해요.
해 넘어가기전에 수줍게 고백하고 갑니다.
내년엔 우리 더 가까워지고 행복해져요. = )

자목련 2009-01-02 00:24   좋아요 0 | URL
앗, 주원이다.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니 새롭고 반가워.
행복한 고백, 나도 주원이를 좋아하는거 알지?
고마워, 올 해,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까이^^*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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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런 증상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의 눈이 먼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살아있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차차 어둠의 삶에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고 해도 그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어떻게 이런 소설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를 통해 그가 인간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하는 작가가 아닐까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를 만나고 보니 그가 더 궁금해진다.

 나만이 아닌 세상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 눈이 먼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허나, 점진적으로 세상에 눈 먼 자들이 늘어난다면 제발 내 차례가 오지 않기를 모두가 바랄 것이다. 이유를 찾을 수 없기에, 다수를 위해 소수의 전염자들을 정부는 공권력이라는 이름하에 감금한다. 그것은 마치 정부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양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인간은 쉽게 동요한다. 죽음을 몰고 오는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SARS, 조류 독감같은 경우에도 인간은 아무리 안전하다고 강조해도 닭고기를 먹지 않으며 중국이라는 단어조차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이처럼 단순하며, 이기적이다. 물론 그것은 당연한 일 인지 모른다. 하여, 의사의 아내는 홀로 눈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기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눈먼 자들에게 위협을 당할 수도 있으며, 그들의 노예가 될 수도 있었으니, 그녀는 그들과 같이 눈 먼 자로 남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 고통인가.

 사람들은 불과 몇 시간만에 이성과 사회규범을 잃어버리고 혼돈의 세상에 빠져버리고 만다.  한 순간, 나는 마치 내 눈이 멀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막아가며 나의 눈이 볼 수 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지만, 나는 꼭 확인해야만 했다. 눈먼 세상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으로 변해버렸다. 아니, 차라리 동물의 왕국처럼 체계가 있었다면 나았으리라

 먹을 것을 시작으로 숨어있어서 차마 드러내지 않았던 인간의 탐욕은 눈이 멀고서도 드러난다. 살아 남기 위한 본능적 욕구를 이용하여 여자를 농락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버린다. 끝내, 의사의 아내는 그들을 살인하기에 이른다.  전쟁터가 이러했을까. 그 안에서 인간이므로 가져야 할 본질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추악한 모습이 본질일까.

 이제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눈이 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사회가 구성되고 새로운 규범이 생겨난다.  서로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선이라는 것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인가. 본다는 것으로 선의 역할이 맡겨진 의사의 아내, 그녀는 진정 볼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을 이끌고 돌봐야만 하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영영 그들이 아무 것도 보지 못한대로  소설이 끝나지 않는다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본문 461쪽

 주제 사라마구가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보여준 인간의 본질, 그것은 우리의 사회의 모습과 같은지 모른다. 눈을 뜨고 있어도 우리는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쉽게 생각하고 시류에 휩싸여 행동하는 어리석음, 그 안에서 제대로된 시선으로 선을 행하는 자는 누구일까.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신비의 거울처럼 위기에 처한 인간들의 내면이 변모하는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경고한다. 

 다행스럽게도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이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함께 협력하여 살게 되었을 때 점진적으로 눈이 멀었던 것 처럼 다시 그들에게 눈뜬 자들로 돌아가게 한다. 그들에게 보이는 한 줄기 빛, 그것은 무엇일까. 새로이 만나는 세상에 빛과 같은 삶을 살라는 메시지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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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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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의 역사에 있어 전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들의 욕망은 전쟁을 불러온다. 그리하여, 인류는 잔혹한 죽음을 역사에 기록한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의 소리를 통해 새로운 역사로 이어지고, 토론의 대상이 된다. 인간으로써는 차마 행할 수 없는 처참한 살인 기록들을 마주하며 과연 그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지만 그건 사실이다. 

 잔인함이 자리잡은 인간의 내면, 그 살벌한 현장에 작가 코맥 매카시는 소년을 등장시킨다. 그에게 있어 소년은 <로드>에서 만난 아들과 같다. 냉랭한 눈빛, 세상에 대한 적대감이 가득한 소년, 코맥 매카시는 여전하게 불친절하기만 하다.  역사적 기록, 전쟁을 재구성한 소설이지만, 그 시절 그 무리에 분명 열네 살, 아니 더 어린 소년은 존재했을 것이다.  소년과 감옥에서 만난 토드빈, 전직 신부라는 이유로 선의 표상으로 보여지는 토빈, 살벌한 눈빛이 그려지는 인간 사냥군 글랜턴, 궤변을 늘어놓는 판사등 구체적 인물을 제시하지만 소년에게는 어떠한 이름으로도 불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소년이라는 단어가 그 이유를 대신할지 모른다. 아이, 소년, 그들은 세상과 세상을 이어 줄 끈이 아니던가.
 
 1842년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은 끝이 났지만, 기록과 실제는 언제나 다르다. 멕시코와 미국은 새로운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모래 바람이 가득한 사막, 가물거리는 오아시스, 마른 선인장, 그리고 경계심이 가득한 사람들의 건조한 눈빛만이 소설을 진행시킨다. 이처럼 건조하고 메마른 세상을 서정성 짙은 문장으로 승화시킨 코맥 매카시, 아마도 이런 이유로 그의 소설을 극찬하는 것이리라.

 살인과 약탈, 방화는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피로 물들인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낭자한 피는 그저 결과일 뿐이며, 살아있으니 또 다시 걷을 뿐이다. 군대는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를 반복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영입되거나 한꺼번에 소멸된다. 소년은 혼자가 되었다가 어디선가 스친 그들과 재회를 한다. 그들이 죽여야 할 사람들은 아파치였으나, 끔찍하고 잔인한 욕망은 인디언과 주민들에게로 향한다.

 걷고 걷는다. 적과 아군의 차이는 없다. 그저 나만이 아군일 뿐이다. 그들이 맞는 새벽, 새로운 빛은 말 그대로 핏빛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결정은 정의에 관한 모든 질문을 무력화하네. 하느님의 거대한 선택에는 도덕적이고 영정이고 자연적인 모든 사소한 것들이 다 포함되네. 325족)전쟁이라는 상황은 살인에 대해 한없이 너그럽다. 그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진행시키는 살벌함, 그것이 인간의 본질인가. 선과 악, 정의는 사라지고 오직 죽음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인가.  말이 없는 소년은 목격자이며 관찰자,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하는 판사는 마치 하느님의 대변자처럼 느껴진다.

(전쟁의  피에 자기 자신을 오롯이 바친 사람만이, 저 밑바락으로 내려가 생생한 공포를 맛보고 급기야 참된 영혼으로 공포와 이야기 나누는 법을 배운 자만이 진정한 춤을 출 수 있네. 427쪽)문득,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한다. 성악설(性惡說), 성선설(性善說)로 대두되는 인간의 본질, 과연 그 본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독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난해한 문학을 이해하고자 욕심을 부릴 것도 아니요, 추악하고 살벌한 인간에 대해 논할 것도 아니다. 다만, 작가가 그려내는 아비규환의 현장에 언제나 소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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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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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날들, 경험하지 못한 역사 속 많은 사건들을 종종 문학을 통해 접하게 된다. 시나, 소설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누가 그랬던가, 역사는 강자의 편에서 기록된다고. 우연찮게 오늘은 새로운 정권이 구도를 잡으려 용트림한지 꼭 1년을 맞는 날이다. 작년 한 해, 조금이나마 나아질 꺼라는 기대를 품었던 수많은 이들의 가슴, 그 가슴에 지금은 분노와 냉대로 가득하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다. 그러나 올 해, 세상은 모두를 정치에 참여하는 자로 이끌어냈다. 촛불을 손에 든 유모차 부대,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 넥타이 부대, 어느 하나 자신의 이익을 염두해두고 거리로 달려나가지 않았다. 스스로의 판단하에 자발적인 동참이었다. 그들의 뜨거운 밤의 노래가, 그들의 흥겨운 춤사위의 진심을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세상은 알아줄까.

 편향적인 사고로 내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내게, 부끄럽지만 역사는 지나간 날들의 기록일 뿐이다.  1930년대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 이념은 어떤 것이며, 혁명을 위해 무참히 죽은 이들의 영혼, 그들은 진정 무엇을 위해 청춘을 바쳤는가. 그들의 무수한 밤들, 두려움에 떨던 날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불렀던 노래들. 

 북간도, 1932년 9월의 용정, 내게는  윤동주의 생가로 기억되는 그곳에 모인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 삶을 내던졌는가. 그저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 김해연, 그 남자를 사랑했지만, 혁명을 위해 죽는 그 순간에서야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 이정희. 중국, 일본, 조선의 젊은이 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스파이로 이용하여 그들은 <민생단 사건>의 중심에 선다. 이념이 중요했던, 민족이 중요했던 그 시대는 피끓는 청춘의 죽음을 요구한 시대였다. 

 사랑에 배신당했다고, 연인을 이해하기까지 김해연은 입과 귀는 닫히고, 눈은 멀고 만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봄 날의 기억임을 알기에 그의 침묵이 그의 모부림이 가슴 아프다. 그를 꼭 안아주고 잠들게 할 사랑이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봄날 아스라한 아지랑이 같은 사랑, 그 눈과 입을 열리게 한 이, 역시 혁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여옥이라는 청춘이었다.  새로운 사랑은 새로운 혁명으로 이어지나, 시대는 그들에게 사랑 보다 혁명을 요구한다. 그들이 바람과 맞서며 지새운 밤들, 정의라 믿고 그것을 위해 총을 겨누는 그 밤의 공포를, 포근한 침대 속에서 그들의 밤과 마주한 나는 머리 속으로도 느낄 수 없다.

 진실은 언제나 힘겹게 얻어지는 것일까. 여옥이 불러대던 노래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처연함이 이 시대, 시청 앞에 모인 시민들의 노래와 같다는 것을 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이 이야기를 쓰고자 고민했다는 김연수식 밤의 노래는 이제 세상의 낮과 밤에 울려 퍼진다. 길고 깊은 밤, 아침이 혹여 오지 않을까 두려운 내게 김연수의 노래는 말을 건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는 것을 알지 않느냐고.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이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중략)
우리가 영국더기 언덕에서 찍었던 그 사진이 생각나요. 그러니까 멀리서 몸을 뒤척이며 흘러가던 강물들. 눈송이들처럼 떨어져 내리던 봄의 하얀 꽃잎들. 십자가를 향해구불구불 이어지던 영국더기 언덕길. 사진 속에 찍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더없이 아끼던 보물들이었고, 내게 필요한 건 오직 그게 보물이라는 걸 알아보는 단 한 사람뿐이었어요. 내가 원할 때마다 지치지 않고 함께 그 보물들을 봐줄 사람이었죠. 한때는 이 세상 전부를 원했지만. 이젠, 겨우 그 정도. 이제 내가 아는 세계의, 그러니까 거의 전부. 323~324쪽 정희가 보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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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일기
이승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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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적절한 때,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면 의도하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만다. 그 후로 많은 불편함으로 지속된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타이밍을 맞춘다는 것은 맘 먹기에 따른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때로 평생을 묻어둔 그 타이밍을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기억해 내곤 한다. 그 때,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랬어야 했는데. 후회 아닌 후회는 비밀인 양, 숨겨둔 일기장에 기록되고 만다.

 이승우의 『오래된 일기』속 단편들은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기장의 기록한 간질 간질한 불편함들이다. 가려운 곳은 긁어주어야 한다. 바로 긁어주지 못하면 부스럼이 되고,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소설들은 지워버렸다고, 잊어버렸다고 치부했던 불편함들이 사실은 마음 한 구석에서 부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소설 속 화자들은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결코 소설가가 될 꺼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어했던 사촌 대신 소설가가 된 나의 오래된 일기장을 가직한 ‘오래된 일기’,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 속 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정신적 질환을 앓고, 가족들에게 철처하게 무시당하는 동생 상규를 돌본다. 아니, 사실은 그를 떠나보내고 싶어한다. 집안의 십자가라고 말하면서도 그 십자가를 돌보지 않은 가족들.

 ‘타인의 집’ 과방’ 을 통해 공간이 주는 위안을 말한다. 사소함으로 시작된 부부싸움은 끝내 별거가 되고, 나는 집에서 쫓겨난다. 삶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집이라는 공간은 방으로 이어진다. 사실, 우리는 집보다는 나만의 방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우연이지만, 옛 애인의 집에 머물게 된 타인의 집 화자는 그 공간 자체에 위안을 받는다. 같으면서도 다른 그 공간에서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자신을 돌봐주었던 치매 걸린 큰어머니의 등장으로 가족을 헤체된다. 아내와 아이는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큰어머니는 죽고 만다. 이혼을 종용하는 아내, 그는 집을 팔고 자신만의 방을 찾아 헤맨다. 과거의 따뜻했던 공간,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존재감의 실체를 느낀다.  언제 떠나야 할 지 모르는 방, 그 안에 나는 새로운 존재를 각인시킨다. 

 추억이 아닌, 과거의 기억들이 소설을 통해 드러난다. 3년 전 헤어진 여자로의 전화는 지난 과거는 현재로 흡입된다. ‘정남진행’, ‘풍장- 정남긴행2’는 그 과거로의 여행이다.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위치한 정남진이라는 곳은 과거의 이야기의 시작점이며 귀착점이다. 그 여로를 동행하며 독자는 그들의 과거를 떠올린다. 내게 있어 그곳은 어디인가. 고향, 사랑이 머물렀던 곳, 기억이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인 우리들의 정남진은 어디인가.

 담아둔 말은 그 시간이 오래되면 진정성이 사라질지 모른다.  누군가에 의해 말해지지 않으면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길고 어둡고 놀랍고 뜨거운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의 지표면 아래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 128쪽  현 시대에 부활한 과거의 이야기꾼 전기수라는 직업을 통해 나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게 아니라 말을 나누고 싶어한다. 말을 통해, 당신을 알고 나를 보이고 그렇게 살아야 함을 알면서도 입을 열지 못한다.  현대인의 고독감, 온전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말들, 일기장에 담아두지 않아야 한다. 일기장이라는 말은 비밀스럽다. 작가 이승우가 오랫동안 담아둔 마음의 고백 아닌 고백은 다소 어려웠고 먼 메아리로 남는다.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떼어내서 하루씩 삶을 연명하는 거랍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을 내놓아야 하는 거지요. 그것이 인생이예요.”91쪽

 하루를 살기 위해 우리는 딱 하루만큼의 삶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걸까. 내일을 만나기 전에, 지난간 오늘을 기록한다. 주저함과 머뭇거림을 쌓아둔 일기장, 그 일기장 속에 회환과 슬픔도 있을 터, 그러나 그 기록들은 나에 속한 것들. 또 다른 일기장을 펼친다. 이제 나는 어떤 말들을 비밀스런 이곳에 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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