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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나무 식기장 - 제15회 한무숙문학상 수상작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소설을 통해 만나는 삶은 소설이므로 가능한 삶이 있는 반면, 이것이 과연 소설일까 하는 삶도 있다. 소설속에 녹아든 일상이 평범하여 마치 누군가의 인생 스토리를 듣는 듯 하다. 이현수의 소설 <장미나무 식기장>은 사실, 제목과 표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찬장'이라 불리며 마루 한 쪽에 놓여있던 내 어머니의 낡은 장식장이 떠올랐다. 이현수의 소설에는 여자의 다양한 삶이 있었다.
‘어제 산 여자는 닭살 피부였다. 옷을 벗겨보니 생각보다 휠씬 오돌토돌햇다. 드물게도 운이 좋은 날이었다. ’p 9 단편 <녹>은 조금은 섬뜩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포장 전문 학예사인 남자에게 손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오로지 그에게는 유물만이 전부였고, 최우선이었다. 손이 갖는 고유의 감각을 기억하기 위해, 여자를 만났는지 모른다. 하여, 함께 살았던 여자가 떠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물이 좋으면 유물과 살라고 말이다.
이 단편은 불교박물관에 학예관으로 일하는 은영이 역사학도인 후배 정호의 청혼을 거절하는 <남은 해도 되지만 내가 하면 안되는 것들의 목록>와 함께 읽으면 좋다. 대대로 내려오는 문화재 남유당을 지키는 안주인 역할을 은영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행여 집이 어떻게 될까 싶어 전전긍긍하며 남들에게 부러움과 대단한 삶인양 보여도 정작 내가 아니면 아닌 것이다. <녹>여자도 은영도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표제작인 <장미나무 식기장>과 <추풍령>은 과거의 추억에서 이어진 현재를 이야기한다. <추풍령>은 대대로 여자만이 남겨져, 그리하여 자동적으로 호주가 되어야 했던 여자가 풀어내는 이야기. 내력인지 모두 과부가 된 여자들은 집 안 살림과 먹거리에 정성을 다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어머니만은 여기 저기 친척집을 전전하며 밖으로 나돈다.
주인공은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한번씩 집에 돌아와서 끓여준 감자탕은 집 안 여자들뿐아니라, 동네 모든 여자들과 함께 먹었다. ‘감자탕을 먹는 동안은 호주라는 무거운 짐도 내려놓을 수가 있었고, 슬픔과 분노, 원인을 알 수 없는 노여움, 삿된 기운일 수도 있는, 몸 안에 떠도는 대책 없는 열기 들을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게 잠재울 수가 있었다. ’p 61 어머니의 한과 슬픔이 녹아들어 끊인 감자탕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힘이었다.
<장미나무 식기장>의 주인공은 어느날 주워 온 장미나무 식기장을 보고 어린 시절 책상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만든 살통을 겸한 책상은 부피만 컸을 뿐, 실용적인 구석이라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가 죽고 가장이 된 어머니는 수완좋게, 억척스럽게 살림을 늘렸고, 애물단지 같은 책상을 어디든 끌어안고 다녔다.
‘책상은 어머니에겐 그냥 책상이 아니었다. 나와 언니들이 무심히 책상을 볼 때도 어머니는 그 책상을 다른 눈으로 봤던 것이다. (……)생전의 아버지는 그 물건이 어떤 용도로 쓰일 때 기뻤을까. 그것이 책상이라면 단 한순간일도 온전한 책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이 쌀통이라면 단 한순간이라도 온전한 쌀통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의 모든 아버지 같은, 요령부득한 그 물건.’p 101
결국 자신의 손으로 태워버렸지만 어머니에게 그 책상은 아버지를 대신한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여자 혼자 딸 셋을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때는 몰랐을 터, 삶은 그런 것이리라.
<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 들이지 마라>는 우연하게 늙은 여자의 정원에 들어간 젊은 여자의 일상이다. 후처의 삶을 선택한 젊은 여자, 본처였지만 귀가 넷인 아이를 낳고 엄마와 아내의 자리를 저버린 늙은 여자. 일반적인 삶이라 볼 수 없다. 계모라는 자리를 벗어던질 수 없었고, 버린 아이를 키워온 후처에게 늘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있어 더 속도를 내고, 신나게 읽었다. 그러나 결코 신나지 않은 소설이었다. 그들에겐 남들은 쉬이 사는 것 처럼 보였을 삶이 얼마나 기막힌가 생각하니 자못 슬퍼졌다.
한 때, 소녀였던 그녀들은 이제 엄마가 되거나 중년의 여인이 되어 지나온 삶을 반추하리라.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이를 먹이고 입히며,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어머니가 소중하게 여겼던 살림살이, 마흔이 넘어 혼자인 큰 언니, 이제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를 소설 속에서 만난 것이다.
소설은 막힘없이 읽혔다. 해서 너무 잘 익는 과일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느낌, 그것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슬그머니 했다. 살아 온 날들을 기록한다면, 어떤 단편과 가장 근접할까, 남겨진 삶은 잘 살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