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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 -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시 치유 에세이
전미정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타인의 상처는 언제나 작아 보인다. 티눈처럼 작은 상처라도 내 상처만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소한 다툼에도 사랑의 이별에도 모든 원인을 내 잘못보다는 상대의 잘못으로 돌리려 한다. 그만큼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해서 상처를 치유하기란 더욱 힘든 일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술을 마시거나 우는 방법을 택한다. 함께 울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는 독특한 치유 방법을 제시한다. 시가 그것이다. 하소연 할 친구 대신 때로는 음악이나 그림이 더 좋은 치료가 된다는 걸 안다. 과연, 시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시인이면서 상담자인 저자는 시를 통해 인간이 가진 수많은 심리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우선 자신을 드러낸다. 다섯째 딸로 태어나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어린시절, 힘들었던 사랑과 이별의 상처, 혼자 살아가는 삶의 외로움을 과감없이 꺼내 놓는다. 그리하여 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온다. 나약한 심성탓에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사연을 읽고 있노라면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다.
책은 너, 나, 우리,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상처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로 ‘너에게’에선 공감, 죄책감, 자기애, 상실, 분리 불안, 동반의존 등 9가지 감정을 다룬다. 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과 그로 인해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나를 믿고 슬픔을 토해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감사한 일이며 잘 살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마음을 가졌는가 묻는다.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당신 곁의 사랑하는 이가 지옥에서 구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연약한 당신 역시 그런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사람에 대한 지상 최고의 환대가 푸짐한 음식이 아니라, 푸짐한 공감으로 이루어진다. 공감은 존재 하나가 세계를 전부 거머쥐는 황홀한 순간이다. p. 21
두 번째 ‘나에게’에선 말하기, 수치심, 질투, 자학, 반성 분노 등 10가지로 나를 관찰할 시간을 준다. 자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를 귀하게 여기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라 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에선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감정으로 상처, 사랑중독, 사랑, 외로움, 용서, 자살, 소문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내면 심리와 행동을 28편의 시로 분석했다. 저자가 선택한 시는 널리 알려진 시보다는 낯선 시들이 대부분이다. 아무 생각없이 시를 읽었다가 저자가 들려주는 사연과 설명을 듣고 다시 천천히 시를 읽게 된다.누군가를 향한 끊임없는 질투와 분노로 힘들었던 순간과 끝내 용서를 하지 못한 내 모습을 떠올린다. 시를 통해 감춰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고 고치지 못한 성격을 지적당한 듯 부끄럽다. 그리하여 누구나 쉽게 회복되지 않을 깊은 상처가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로 진행되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자신의 상처도 사랑해야 하고 타인의 상처도 사랑해야 한다. 앙갚음하는 심정으로 오기를 부르며 살아왔더라도, 사랑으로 그 상처가 숙성되고 부드러워진다면 끝내 누군가의 삶의 혀끝을 향긋하게 자극해 주리라. 상처와 더불어 사는 맛은 뜻밖에도 감미롭다. 그 맛은 달콤 쌉싸래하다. 그리고 성숙한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진정한 달콤함은 쓴맛이 주는 자극 속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인가 살아가면 갈수록 상처가 꽃이 된다는 믿음을 뿌리치기 힘들다. p. 216
자신의 상처도 사랑해야 하고 타인의 상처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날들이 올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껏 내 상처에만 급급한 나머지 곁에 있는 이의 상처엔 신경쓸 겨를이 없던 마음이 조금은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