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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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죽음을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 아니, 죽음을 실천하고 싶은 여자라고 해야 겠다. 그 여자의 죽음을 막고 싶은 남자도 있다. 독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복어>는 죽으려는 여자와 그녀를 살리려는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은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들려준다. 조각가인 여자와 건축가인 남자는 자살로 죽은 가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남편과 자식 앞에서 복어국을 마시고 자살한 여자의 할머니,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걸고 투신한 남자의 형. 여자에겐 죽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악몽을 꾸는 아버지가 있었고, 남자에겐 아들의 죽음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아버지가 있었다. 죽음이라는 그늘에 속한 삶이었다. 

 조각가인 여자는 자살 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혼자서 깔끔하고 단정하게 삶을 마무리 하고 싶어서다. 여러 방법을 생각한 끝에 복어를 선택한다. 모임에서 여자를 본 남자는 그녀의 눈에서 죽음을 본다. 형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여자에게로 향했던 것일까. 남자는 여자와 만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여자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어떤 계기라도 있나요?
그냥 끌린 거예요. 복어한테.
자연스럽게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분명한 목적도 없이요.
오른손이 왼손을 이끄는 것처럼요.
그럼 복어는 오브제 같은 것이로군요.
……오브제요?
그렇죠. 자연스럽게 끌리면서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요. p.170~171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죽음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 변명하고 싶다. 조경란 특유의 감정을 배제한 건조함과 섬세함으로 심리를 묘사하고 있으나  죽기 위해 살고 있는 여자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공의 직업으로 인해 등장하는 공간과 예술에 대한 부분도 형상화 시키기 어려워 힘들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지 찾을 수 없었다. 타고난 기질, 운명이었을까. 우울했고 침울했다. 

 간질을 앓는 여자의 친구 사임, 사후 정리를 도와주는 유품 정리인, 주변인물마저 모두 쓸쓸하고 어두운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와 달리 생에 대해 강한 애착을 지녔다. 예고없이 닥치는 발작으로 언제나 죽음을 대비하는 삶, 끔찍한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여자에게 그들은 죽음의 실체가 얼마나 두려운지 보여준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여자에게 그들보다 더 확실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이가 있을까.    

 너는 내가 복어로 뭘 하려고 했는지 모르지. 가까이 갔어. 그리고 그것을 만져보지 않고는, 먹어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었어. 그 이전에는 결코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어. 왜냐하면 나를 압박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욕망이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 밤에. 복어의 뼈가 말했어. 온몸으로 밀고 가야만 하는 삶이 있다고. 복어의 눈이 말했어. 소중한 것이 사라지기 전에 똑바로 봐야 할 게 있다고. 그리고 나는 눈을 떴어. 내가 눈을 떴을 때 본 것, 그것이 지금 내가 기다리는거야. p. 331

 소설은 죽음을 말하는 동시에 삶을 이야기한다. 아니다, 복어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죽기 위해 매일 복어를 보러 간 여자는 복어를 마주할 때마다 지독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산다는 건 고역이다. 해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조경란은 생에 대해 회의를 느낀 여자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해 말한다. 절망의 연속일 때, 세상에 나 혼자라고 생각할 때 언제나 누군가 있다고 알려준다. 또한 사는 동안 죽음은 그림자처럼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해야 한다. 존재, 그 자체가 생의 이유이며 목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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