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황홀 - 김도언 문학일기
김도언 지음 / 멜론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노동과 창작을 병행하는 동안 나는 그 어느 쪽으로부터도 전폭적인 이해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문단으로부터는 딜레탕트의 혐의를 받았고, 회사로부터는 위장취업의 혐의를 받았다. 나는 기우뚱한 날개를 달고 위험한 비상을 하는 불구의 새와 같았다. 나는 이 위험한 비상의 기우뚱한 순간들을 ‘불안’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여기에 기록된 내 젊은 날은 이 불안을 껴안기 위해 치열하게 욕망하고 투쟁하고 성찰했던 시간의 집착이다. 그 과정 하나하나는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황홀한 감회에 젖는다. 예정된 길로 날아가고 날아오는 새의 안전한 날갯짓에 과연 어떤 황홀이 있을 것인가. 책의 제목을 ‘불안의 황홀’이라고 붙인 것은 이와 같은 생각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김도언이 출판사 편집장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 전업 소설가로 김숨의 남편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위험한 비상의 기우뚱한 순간들이란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소설가로 산다는 건 정말 외롭고 힘겨운 날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도언의 소설을 아직 읽지 못했기에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대신 그의 아내 김숨의 소설은 무척 좋아한다. 해서, 김도언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숨의 남편일 뿐이다.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에서 만난 김도언을 기억한다. 소설 <랑의 사태>가 곁에 있다. 블로그를 방문하여 그의 일기를 훔쳐 읽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심이 있는 건 맞다.  <불안의 황홀>는 그런 일기의 기록이다. 소설가를 흠모하는 독자로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건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불안의 황홀>은 2004년 7월 19일의 일기를 시작으로 2009년 12월 27일 까지의 일기다. 그의 의도인지, 출판사의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일기는 역순으로 묶였다. 나는 그 반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거꾸로 책을 읽은 셈이다. 일기를 쓴다는 건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일은 정말 대단하다. 그것이 메모든, 책의 내용이든, 사색이든 말이다. 소설가와 편집장이라는 직업을 떠나 개인적인 그의 글쓰기가 존경스럽다. 

 김도언의 문학일기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과 그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와 더불어 친분이 있는 작가와 만날 수 있는 행운까지 안겨준다. 천양희, 김승옥, 박범신, 김훈 등 한국문학의 거장들과 젊은 소설가와 젊은 시인이 그러하다.  그의 집 1층에 사는 젊은 시인 신동옥에 대한 글은 문학에 대한 김도언의 강한 다짐처럼 들린다. 

 동옥은 내가 문학을 불신하고 냉소할 때마다 홀로 그의 방에 촛불을 켜고 그 빛을 창문 밖으로 흘림으로써 나의 경솔을 부드럽게 타일러준 시인이다. 직설적으로 말해 나는 동옥을 보면서 다시 문학의 가능성을 긍정한다. 문학을 하려는 자는 동옥의 삶에서 많은 걸 읽어야 할 것이다. 동옥은, 물정과 사람을 몰라서 시를 쓴다. 그는 평생 그럴 것이다. 거짓과 위선을 두드려패면서 처참한 시를 쓸 것이다. 2008년 2월 23일 토요일 일기 중에서

 소설가 부부와 시인이 사는 단독주택에선 언제나 문학에 대한 열정이 들끓고 기르는 고양이 마저 시를 좋아하지 않을까. 문학뿐 아니라 술이 있다. 소설가의 고독과 불안을 달래는 술이 자주 등장한다. 삼삼오오 문학인들이 모여 술를 마시고, 문학을 논한다. 시를 읽으며 책등을 마주하며 술을 마시는 소설가, 그 모습을 흉내내는 이가 많을 듯하다. 어쩌면 늦은 밤 시를 읽을 때면 술이 생각날지 모르겠다. 

 내 방에서 뇌가 녹아내리도록 술을 마시고 있다. 빨간 방울토마토가 소주의 쓴맛을 덜어준다. 빨간 토마토를 둥글게 만든 것은 어떤 사랑일까. 바람이 단풍나무 이파리를 건드리고 지나간다. 단풍나무 이파리가 띁어먹고 싶을 정도로 파릇하고 상큼하게 느껴진다. 단풍나무는 당연히 나보다 휠씬 상상력이 풍부할 것이다. 예술가의 오만과 열정과 분쟁과 굴욕과 열등감 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토요일 오후다. 사실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내가 처음 불을 보았을 때의 눈동자를 묘사해야 한다. 2008년 4월 26일 토요일 일기 전문

 어떤 날의 일기는 아주 친절하고, 어떤 날은 감미롭기까지 하다. 시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일까. 글은 너무도 맑았다. 그는 이런 표현을 싫어할 게 분명하다. 이런 말은 독자니까 할 수 있다. 문학에 대한 끊임없은 그의 고뇌와 열정이 느껴진다. 문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발견할 수 있는 일기, 전문적인 문학에 대한 견해의 기록은 일반인 독자인 내게는 대부분 어려웠다. 

 내 안에 있는 것들, 이중의 겹을 두르고 나선형을 회유하는 친절과 공격적인 허무주의. 결핍을 상쇄하는 과대망상과 저체중의 요설, 침묵의 비만, 상처를 관능으로 왜곡하려는 저의와 기꺼이 왜곡당하려는 저의. 그 뻔한 것들 - 2005년 8월 9일 화요일 일기 전문 

11월은 소금 같다
눈동자에 떨어지는 소금처럼,
긴 황홀이다
나뭇가지마다 흉터가 열리는,
11월은
비늘을 벗은 물고기처럼
등이 따갑다 - 2005년 10월 30일 일요일 일기 전문 
   

 김도언이 좋아지려 한다. 아직 그의 소설을 읽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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