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가능한 대화들 - 젊은 작가 12인과 문학을 논하다, 2011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ㅣ 불가능한 대화들 1
염승숙 외 지음 / 산지니 / 2011년 3월
평점 :
어떤 소설이나 시는 내용보다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해서, 한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혹은 끝마무리를 지을 때 작가의 말이 없으면 정말 서운하다. 예전에는 작가의 말이나 해설은 잘 읽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절대 길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건빵 속의 숨겨진 별 사탕 같고, 도너츠의 블루베리잼 같다고 할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 바로『불가능한 대화들』이다.
의미심장한 제목의 이 책은 대담집이다. 염승숙, 김이설, 김재영, 정한아, 김숨, 김사과, 김언, 안현미, 최금진, 김이듬, 박진성, 이영광 젊은 작가 12명은 평론가의 날카롭고 불편한 질문에 아주 성실하게 답하고 있다. 자신들의 소설에 대해 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에 이 책은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소설 속에 녹아 든 문학적 상징이나, 의미를 나 같은 독자는 잘 모른다. 그저 내 나름대로 느끼고 생각할 뿐이다. 문학에 대해 소설이나 시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질문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이미 읽은 소설의 단편과 문 장을 떠올린다. 아,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이런 마음을 가졌었고 숨겨진 의도는 이랬구나 한다. 다시 그 소설을 펼쳐보게 한다. 특히 정한아가 그랬다. 그의 소설에서는 몽글몽글 뜨거운 따뜻함이 피어났는데, 그런 소설을 쓰는 그는 정작 슬픔을 안고 있었고 슬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정한아의 산문 <날아라 뛰어라, 그게 네 이름>에 이런 부분이다.
‘저는 한 때 방 안에 갇혀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기를 뭐하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절망의 의지도 남지 않은 무기력의 상태에서, 하루하루, 시간이, 생이, 저를 스쳐 지나갔지요. 저는 지금도 그때의 제가 내뱉었던 얕은 호흡과 방 안의 고요를 기억합니다. 매일 밤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죽음에 대한 망상과, 새벽빛이 떠오를 때마다 간지럽게, 부끄럽게, 그래도 살고 싶다는 마음. 그 시절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소설만 남아 있었습니다.’ p.89
김사과는 진실을 믿지 않으며 김이듬의 글은 놀라웠다. 김이듬의 글을 처음 만났다. 그는 솔직했으나 내게는 파격적이었다. 그가 쓴 시와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궁금해진다. 김사과와 김이듬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닮은 듯 보여진다. 김숨의 산문은 그의 이름처럼 깊은 숨을 들이키고 내 쉬게 한다. 마치 아주 짧은 단편 소설처럼 다가온다. <하루 - 상상은 어디에서 오는가>의 시작부터 그렇다.
‘오후 두 시. 그것은 내 출근시간이다. 프란츠 카프카. 그는 오후 두 시에 퇴근을 했다지. 그는 오후 두 시에 퇴근해 한숨 낮잠을 자고 일어나 독서를 하고 새벽까지 글을 썼다지. 나는 자유로를 달려 오후 두 시에 닿는다. 오후 두 시는 무가당 크래커를 닮았다. 오후 두 시를 입 속에 넣고 낙타처럼 우물거리다 보면 목에 멘다. 침과 뒤섞여 혀와 입천장에 달라붙는 그것을 뱉을 수 도, 그렇다고 꿀꺽 삼킬 수도 없다.’ p. 32
오후 두 시가 되면 때때로 김숨이 생각날 것이다. 아니, 내게 오후 두 시는 무엇과 닮은 시간일까. 작가들이 쓰고자 하는 소설과 시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에 작가들이 지녀야 할 위무는 무엇인가. 작가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듣는 시간은 의미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대담이라면 이처럼 상세하게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 하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작가가 있다면 그들과 조금은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가들의 산문 때문이다. 그 시간은 아주 즐거웠다. 산문에서 작가의 솔직한 면을 볼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작가를 닮아 있었다. 무엇을 추구하는 삶인지 조금 알게 되었고, 앞으로 그들이 써낼 소설과 시를 읽을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어떤 글로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의 삶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작가의 속내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그들의 대화를 읽다 보니 소설 보다는 시가 더 궁금해졌다. 언어 안에서 자유 자재로 노는 그들, 언어가 가진 그늘과 무늬, 그 모든 것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 특히 안현미와 최금진의 시집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세상에나, 내 책장에는 최금진의 그 시집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의 시집을 꺼내어 천천히 읽어야 겠다.
*읽은 지 많은 날들이 지났는데, 늦게 나마 겨우 이렇게 느낌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