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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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이별은 아프다. 예정된 이별이라고 해도 그렇다. 연인에게는 찰나의 이별도 영원처럼 느껴진다. 헤어짐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굳이 사람이 아닌 사물과 공간에 대한 이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버려야 살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듯 이별에 있어야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서유미의 장편소설 『끝의 시작』의 제목에서 그런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끝보다는 시작에 시작에 중점을 둔 것이다.

 

 소설은 병실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영무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어머니는 암 말기 환자지만 빨간 립스틱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무는 그런 어머니 곁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인식하기가 두렵다. 아내 여진과의 거리도 좁혀지지 않고 결국 이혼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 때문에 미뤄졌을 뿐 이혼은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영무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온 아내였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영무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말을 잃는 사막의 낙타 같았다. 아이가 유산되자 여진은 잡지사를 그만두고 미용실을 인수한다. 계획이 아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미용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지면서 둘 사이의 간극은 커졌고 여진에게는 동현이라는 젊은 애인이 생겼다. 여진은 잘못된 관계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문밖의 노크 소리에 응답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생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충만하게 즐기는 것,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사랑 없이 건조하고 퍽퍽하게 사는 것보다 뜨겁고 충만하게 사는 것, 그게 지금 여진이 바라는 삶의 방식이었다.’ (89쪽)

 

 영무에겐 어린 시절 약을 먹고 자살한 아버지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있었다. 야반도주를 하듯 이사를 한 어머니는 언제나 환한 햇볕 같았다. 하지만 영무는 언제나 우울했고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도 쉽게 끝났다. 영무에게 드리워진 어둠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무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영무에게 삶은 죽음의 다른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영무는 자신의 삶이나 하루가 묘지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일 자체의 유사성과 상관없이 태도나 심정이 그랬다. 이른 아침 황량한 공동묘지에 가서 밤새 쌓인 쓰레기와 낙엽을 치우고 상석 위도 쓸어 낸다. 하루 종일 기다란 빗자루를 든 채 묘지 안을 유령처럼 맴돈다. 묘지 안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자는 자리와 묘비, 상석의 크기와 재질로 구별된다. 그러나 부질없고 쓸쓸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07쪽)

 

 그런 영무를 통해 소정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 집을 나간 동생과 바닥단 잔고가 모두 아버지로 비롯된 것만 같았다. 그나마 소정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우유니 사막과 남자 친구 진수와 꿈꾸는 막연한 미래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했다. 소정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진수는 걱정과 근심을 모르고 살아왔다. 사랑했지만 이별을 택해야 하는 연인이었다.

 

 소설은 평범한 삶의 이야기다. 암의 걸린 어머니를 둔 영무와 그의 아내 여진, 그리고 영무가 국장으로 있는 우편취급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정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친근한 일상처럼 가까이 파고든 암 환자, 권태로운 부부 관계,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바쁜 취업 준비생의 모습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네 모습인 것이다. 위태로운 일탈을 꿈꾸는 대신 주어진 현실을 살아내고 그 안에서 웃음의 조각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그들의 애쓰는 모양이 모양이 안타까우면서도 고마운 건 왜 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이별은 삶의 과정일 뿐 끝이 아니었다.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며 꽃이 진 자리에서 다시 꽃이 피듯 완전한 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 생에 얼마나 많은 형태의 이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소정에게 남은 우유니 사막처럼 누군가에게 이 소설이 하나의 의미가 되어줄 것이다.

 

 ‘모니터 앞엔 여전히 우유니 사막의 사진이 붙어 있다. 좀 더 낡고 색이 바랬지만 가 보고 싶은 곳 1순위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언제쯤 가게 될지 누구와 동행할지 알 수 없지만 꿈꾸게 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남아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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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 방 - 죽음 후에 열화당 영혼도서관
존 버거, 이브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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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한 사람. 바로, 나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도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군가 사라지면 그 자리는 영원히 빈 공간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그곳을 떠날 수 없다. 그곳에서라도 그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잣말을 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떤 이는 그런 시간을 오래도록 지속한다. 누구도 그 시간을 방해할 수 없다. 충분한 애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당신은 사 주 전에 죽었지. 어젯밤 처음으로 당신이 돌아왔다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없어진 자리에 당신의 존재감이 돌아왔다고나 할까. 베토벤의 「피아노를 위한 론도」 2번(작품번호 51)을 듣고 있던 중이었소. 구 분 남짓한 동안 당신은 그 ‘론도’였고, 그 ‘론도’가 당신이었지. 거기에는 당신의 밝음, 당신의 고집, 당신의 치겨 올라간 눈썹, 당신의 부드러움이 들어 있었다오.’ (10쪽)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존 버거의 글은 부드러운 햇살처럼 쏟아진다. 마치 그 햇살로 아내를 안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사십 년이라는 시간을 산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분명 아내는 죽었다. 그러나 여전히 곁에 존재한다.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을 때,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장소에 도착했을 때 함께 한다. 만질 수 없는 형체로, 볼 수 없는 이미지로, 대답이 없는 메아리로.

 

 ‘당신을 유심히 보면, 길을 찾는 일에 익숙한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오. 모자를 쓰거나 코트를 입은 모습, 머리를 만지는 모습, 문을 여는 모습, 돌아서서 나가는 모습. 당신은 길을 찾는 사람이오.’ (13쪽)

 

 우리는 종종 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 잊는다.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생생했던 세포는 긴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진 익숙함에 꺼내지 않는 옛이불처럼 변해버리고 만다. 단 하나의사랑이었던 당신을 기억하는 일이 새삼 힘들다.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예정된 이별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존 버거는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사랑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1쪽)

 

 존 버거와 베벌리 버거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며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아내의 물건에 담긴 아내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자 노력했을 존 버거. 점점 사라지는 아내를 향한 눈빛은 얼마나 애틋했을까. 화수분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잊혀질 수 없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통해 아들 이브 버거에게 전해졌을 사랑은 감히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지속된다. 어쩌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는 나 밖에 없다는 말은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 당신이 살고 있다면 말이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몸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요. 잠시 후면 저희가 고른 돌멩이가 엄마 무덤 위에 놓이겠죠. 흙과 풀 사이에 놓은 텐데, 그러면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또 그러기를 바라요.’ (35쪽)

 

 애도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듯이. 아내의 빈 방이 존 버거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이 얇은 책으로 사랑을 전부 담을 수 없다. 그저 부재 속에 존재하는 당신이라는 사랑을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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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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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욤 뮈소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7년 후』와 『내일』을 읽었지만 강렬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하지만 묘하게 궁금하고 끌리는 작가였다. 그런데『센트럴 파크』는 달랐다. 강력한 펀치를 한 방 날린 듯한 느낌이랄까. 놀라운 흡입력으로 빠져들게 만들어 신선한 여운을 남겼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오늘을 맞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러니까 꿈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면? 소설은 이처럼 기이한 일로 시작한다. 주인공 알리스는 분명 파리에서 친구들과 헤어졌는데 눈을 떠보니 뉴욕의 공원 벤치였다. 거기다 옷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고 낯선 남자와 함께 수갑을 찬 상태였다. 파리 경찰청 강력계 형사인 알리스는 즉각 총을 찾고 남자를 깨운다.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남자 가브리엘은 아일랜드에서 공연을 마쳤다며 영문을 모른다고 대답한다. 누가 자신을 파리에서 뉴욕의 센트럴파크까지 데리고 왔을까. 가장 필요한 건 휴대폰. 십 대의 휴대폰과 주차된 차를 도난하여 도주한다. 알리스는 파리의 동료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다.

 

 그런데 가브리엘이라는 이 남자, 믿어도 괜찮을까?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벌인 일일까. 생각의 끝에는 과거 자신이 수사했던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있었다. 알리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2년 전 알리스는 범인이 휘두른 칼에 아이를 유산했고 병원으로 오던 남편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이와 남편을 잃은 게 자신 때문이라 자책하는 그 후로 알리스에게 삶은 사라졌다.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알리스는 파리의 동료에게 비밀리에 범인의 흔적을 찾으라 부탁한다.

 

‘인생의 수레바퀴는 점점 빨리 돌아간다. 2013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완벽하게 이전의 모습을 되찾는다. 나는 넘치는 자신감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강력계를 이끌고, 그러는 사이 팀원들의 파트너십도 한껏 고취된다. 그 무렵 나는 다시 한 번 아직 삶이 나에게 바라는 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252쪽)

 

 소설은 2년 파리의 잔혹한 사건과 현재를 오가며 알리스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알리스는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복직 후 겨우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단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가브리엘과 함께 사건을 풀어날 갈 수밖에 없다. 알리스의 손바닥의 숫자와 가브리엘의 팔뚝에 상처로 새겨진 숫자만이 유일한 실마리다. 잠적한 살인사건의 범인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도주한 것일까. 숫자가 가리키는 호텔과 우연하게 발견하는 알리스 몸에 박힌 금속의 이물질.

 

 동료의 도움을 받아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듯 범인을 추적하는 도중 알리스는 어떤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가브리엘의 정체가 밝혀진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비밀에 놀라고 만다. 손을 뗄 수 없게 만든 기욤 뮈소의 트릭에 빠져든 것이다. 센트럴파크에서 시작된 치열한 하루를 함께 달린 독자도 마찬가지다. 뻔한 범주에서 살짝 빗겨나간 결말이 완벽하게 즐겁다. 절망의 순간에 누군가 손을 내민다는 설정이 진부하지 않고 완벽하게 다가온다. 기욤 뮈소는 소설을 통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바로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단 한 사람이 있어 삶은 빛날 수 있고 적으로만 여겨졌던 세상이 동지로 다가오는 걸 느끼게 된다는 걸 말한다. 그만큼 기욤 뮈소의 애정이 담긴 소설이 아닐까 싶다. 길고 긴 겨울밤을 함께 보낼 이야기를 찾는다면 『센트럴 파크』가 제격일 것이다. 

 

‘우리의 생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지닌 모순, 두려움, 회한, 분노, 머릿속에 들어있는 복잡한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고 품어 안아주는 당신의 반쪽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당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등을 토닥여주고,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더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켜주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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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 삶에 질식당하지 않았던 10명의 사상가들
프레데리크 시프테 지음, 이세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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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혼자 찾은 영화관이나 목욕탕이 되기도 한다. 마음껏 나를 드러내도 좋은 공간 말이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눈물과 표정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그곳은 책이 된다. 책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고마운가. 고해성사를 하듯 책 속의 누군가에게 속상함을 털어놓아도 좋다. 그러니 프레데리크 시프테의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속 이런 문장에 반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펼치지 않더라도 책을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정신이 부재하는 삶의 구역과 자유 구역의 경계선을 언제라도 넘나들게 해주는 친구가 내 손닿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57쪽)

 

 제목에 대한 기대는 ‘불행한 이가 일단 통찰력을 가지면 더욱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기만하거나 물러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란 에밀 시오랑의 문장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개인적인 에세이일 뿐이다. 다만 에세이의 소재가 열 명(니체, 페소아, 프루스트, 쇼펜하우어, 『전도서』의 저자, 몽테뉴, 샹포르, 프로이트, 로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작가와 사상가라는 거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삶을 통찰하는 철학을 배우는 시간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프랑스 철학교사이자 작가인 저자가 선택한 10명 가운데 절반 정도만 익숙하다. 오히려 낯설어서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 저자는 그들을 상징할 수 있는 문장을 소개하며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삶과 사상에 동의하고 때로 반격한다. 시종일관 까칠하고 시니컬하다. 철학을 논하고 사유하는 삶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려하거나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인간이 배우는 본질적인 것은 전부 불행의 경험에서 온다. 몸소 불행을 겪을 수도 있고, 남의 불행을 지켜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앎은 어떤 식으로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116쪽)

 

 절대로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불행은 없다. 절대로 나의 불행이 타인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그의 말에 격하게 수긍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게 불행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견디지 못하는 감정들, 버리고 싶은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것 같다. 순조롭게 읽기고 쉽지는 않지만 아주 묘한 책이다. 철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지 않은 책이다. 

 

 철학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상실, 고독, 고통, 죽음을 초월한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을까. 소개된 10명의 사상가와 작가가 아니라  ‘생은 전염병이다. 세월에 의해 허무에 감염되는 것이 생이다.’ (128쪽)란 저자의 문장에 빠져든다. 프레데리크 시프테의 불친절한 매력에 빠지고 만다. 그의 방식대로 슬픔 한 조각을 마시고 조금은 권태로운 생을 살아도 좋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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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1-1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끝을 봐야겠어요! 맨날 읽다 말다하는 나쁜버릇을 고쳐야^^

자목련 2015-01-15 10:18   좋아요 0 | URL
지금쯤은 다 읽으셨을까요?
저도 요즘 이 책을 읽다, 저 책을 읽다 그래요. ㅎ

2015-01-13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5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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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은 괜히 쓸쓸하다. 봄이 오기 전 거쳐야 할 하나의 계절이라는 걸 알면서도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인생의 겨울(이런 표현은 적절한 것일까)에 속하는 노년의 삶은 어떨까. 아흔 살까지 정정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려보지만 그녀의 삶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을지 짐작할 수 없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어진 똑같은 하루였을 텐데 말이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의 시간을 생각한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자신의 생이 끝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그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쪽)

 

 죽는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다. 필립 로스는 평범한 한 남자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소설은 적막한 공동묘지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버지, 전 남편, 동생, 삼촌, 친구,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저마다 그를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소설은 그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보석상을 하는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그리고 든든한 형이 있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광고 회사에 취직해 인정을 받았고 퇴직 후에는 자신이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아버지가 운영했던 보석상의 이름 ‘에브리맨’처럼 보통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사랑은 언제나 특별했다. 세 번의 결혼으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지만 좋은 남편과 존경받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두 번째 아내의 사이에 낳은 딸 낸시가 살갑게 안부를 챙겼지만 함께 살 수는 없었다.  화려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병든 육체만 남은 노년의 그에겐 아무도 없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년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약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뿐이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건 형에 대한 질투였다. 심장질환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는 자신과 다르게 여섯 살 많은 형의 건강한 육체는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세 번째 젊은 모델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서 수술을 받고 퇴원을 하는 동안 형은 동생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형이 자신을 위해 모든 걸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이혼한 딸 낸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닌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를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혼자라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늙고 병든 아버지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딸에게  건네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83쪽) 말은 자신을 위한 말이기도 했다. 버틸 수 없는 순간과 맞닿았을 때 느꼈을 절망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겨울의 계절이 아닌 여름, 가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반드시 인생의 겨울에만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다.’ (23쪽)

 

 필립 로스는 삶과 죽음에 대해 보편적 시선을 지킨다. 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제목 ‘에브리맨’이 갖는 의미를 소설에 잘 녹여냈다.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생을 살겠지만 죽음이라는 평범한 결말을 맞는다는 걸 잘 보여준다. 더 이상 어떤 계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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