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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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은 괜히 쓸쓸하다. 봄이 오기 전 거쳐야 할 하나의 계절이라는 걸 알면서도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인생의 겨울(이런 표현은 적절한 것일까)에 속하는 노년의 삶은 어떨까. 아흔 살까지 정정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려보지만 그녀의 삶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을지 짐작할 수 없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어진 똑같은 하루였을 텐데 말이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의 시간을 생각한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자신의 생이 끝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그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쪽)

 

 죽는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다. 필립 로스는 평범한 한 남자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소설은 적막한 공동묘지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버지, 전 남편, 동생, 삼촌, 친구,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저마다 그를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소설은 그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보석상을 하는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그리고 든든한 형이 있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광고 회사에 취직해 인정을 받았고 퇴직 후에는 자신이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아버지가 운영했던 보석상의 이름 ‘에브리맨’처럼 보통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사랑은 언제나 특별했다. 세 번의 결혼으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지만 좋은 남편과 존경받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두 번째 아내의 사이에 낳은 딸 낸시가 살갑게 안부를 챙겼지만 함께 살 수는 없었다.  화려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병든 육체만 남은 노년의 그에겐 아무도 없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년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약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뿐이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건 형에 대한 질투였다. 심장질환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는 자신과 다르게 여섯 살 많은 형의 건강한 육체는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세 번째 젊은 모델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서 수술을 받고 퇴원을 하는 동안 형은 동생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형이 자신을 위해 모든 걸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이혼한 딸 낸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닌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를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혼자라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늙고 병든 아버지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딸에게  건네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83쪽) 말은 자신을 위한 말이기도 했다. 버틸 수 없는 순간과 맞닿았을 때 느꼈을 절망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겨울의 계절이 아닌 여름, 가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반드시 인생의 겨울에만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다.’ (23쪽)

 

 필립 로스는 삶과 죽음에 대해 보편적 시선을 지킨다. 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제목 ‘에브리맨’이 갖는 의미를 소설에 잘 녹여냈다.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생을 살겠지만 죽음이라는 평범한 결말을 맞는다는 걸 잘 보여준다. 더 이상 어떤 계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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