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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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이별은 아프다. 예정된 이별이라고 해도 그렇다. 연인에게는 찰나의 이별도 영원처럼 느껴진다. 헤어짐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굳이 사람이 아닌 사물과 공간에 대한 이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버려야 살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듯 이별에 있어야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서유미의 장편소설 『끝의 시작』의 제목에서 그런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끝보다는 시작에 시작에 중점을 둔 것이다.

 

 소설은 병실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영무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어머니는 암 말기 환자지만 빨간 립스틱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무는 그런 어머니 곁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인식하기가 두렵다. 아내 여진과의 거리도 좁혀지지 않고 결국 이혼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 때문에 미뤄졌을 뿐 이혼은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영무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온 아내였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영무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말을 잃는 사막의 낙타 같았다. 아이가 유산되자 여진은 잡지사를 그만두고 미용실을 인수한다. 계획이 아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미용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지면서 둘 사이의 간극은 커졌고 여진에게는 동현이라는 젊은 애인이 생겼다. 여진은 잘못된 관계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문밖의 노크 소리에 응답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생의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충만하게 즐기는 것,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사랑 없이 건조하고 퍽퍽하게 사는 것보다 뜨겁고 충만하게 사는 것, 그게 지금 여진이 바라는 삶의 방식이었다.’ (89쪽)

 

 영무에겐 어린 시절 약을 먹고 자살한 아버지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있었다. 야반도주를 하듯 이사를 한 어머니는 언제나 환한 햇볕 같았다. 하지만 영무는 언제나 우울했고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도 쉽게 끝났다. 영무에게 드리워진 어둠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무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영무에게 삶은 죽음의 다른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영무는 자신의 삶이나 하루가 묘지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일 자체의 유사성과 상관없이 태도나 심정이 그랬다. 이른 아침 황량한 공동묘지에 가서 밤새 쌓인 쓰레기와 낙엽을 치우고 상석 위도 쓸어 낸다. 하루 종일 기다란 빗자루를 든 채 묘지 안을 유령처럼 맴돈다. 묘지 안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자는 자리와 묘비, 상석의 크기와 재질로 구별된다. 그러나 부질없고 쓸쓸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107쪽)

 

 그런 영무를 통해 소정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벗어날 수 없는 가난, 집을 나간 동생과 바닥단 잔고가 모두 아버지로 비롯된 것만 같았다. 그나마 소정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우유니 사막과 남자 친구 진수와 꿈꾸는 막연한 미래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잔인했다. 소정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진수는 걱정과 근심을 모르고 살아왔다. 사랑했지만 이별을 택해야 하는 연인이었다.

 

 소설은 평범한 삶의 이야기다. 암의 걸린 어머니를 둔 영무와 그의 아내 여진, 그리고 영무가 국장으로 있는 우편취급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정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친근한 일상처럼 가까이 파고든 암 환자, 권태로운 부부 관계,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바쁜 취업 준비생의 모습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네 모습인 것이다. 위태로운 일탈을 꿈꾸는 대신 주어진 현실을 살아내고 그 안에서 웃음의 조각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그들의 애쓰는 모양이 모양이 안타까우면서도 고마운 건 왜 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이별은 삶의 과정일 뿐 끝이 아니었다.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며 꽃이 진 자리에서 다시 꽃이 피듯 완전한 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우리 생에 얼마나 많은 형태의 이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소정에게 남은 우유니 사막처럼 누군가에게 이 소설이 하나의 의미가 되어줄 것이다.

 

 ‘모니터 앞엔 여전히 우유니 사막의 사진이 붙어 있다. 좀 더 낡고 색이 바랬지만 가 보고 싶은 곳 1순위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언제쯤 가게 될지 누구와 동행할지 알 수 없지만 꿈꾸게 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남아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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