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박영택의 마음으로 읽는 그림 에세이
박영택 지음 / 지식채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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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하루는 같은 듯 다르다. 반복된 시간을 살지만 같은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는 생의 마지막 하루가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생의 첫 하루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루는 평범하고도 특별한 것이다. 박영택의 『하루』는 그런 우리네 일상을 그림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을 50편의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새벽이란 시각을 시작으로 깊은 잠으로 빠져들지 못하는 밤까지의 다양한 삶을 모습을 그림, 사진, 조각 등 예술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조금은 특별한 하루 여행이라 해도 좋겠다.

 

 책은 하루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채워지고 어떤 감정들로 새겨지는지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게 담아 낸다. 시간의 흐름으로 소개하는 예술 작품은 놀랍게도 우리의 삶과 너무도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어떤 그림은 따뜻하고, 어떤 그림은 유쾌하고, 어떤 그림은 외롭고, 어떤 사진은 아프다. 감각적인 그림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한 장의 사진에 포착된 생생한 삶의 단면은 수많은 나의 하루와 오버랩 된다. 특히 이런 작품들이 그렇다.  

 

 

 

 김경덕, <일상 - 보물> 32쪽

 

좌혜선, <부엌, 여자> 190쪽

 

 

서상익, <엄마의 정원>196쪽

 

 

 ‘일상은 늘 오늘이다. 그것은 매일매일 다소 지루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된 과정 속에 미세한 펀치를 만들어놓는 것이 또한 일상이기도하다. 겉으로는 하등의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유심히 그리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는 경이로운 차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36쪽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 주변의 풍경, 내 손길이 닿는 사물들, 내가 매일 보고 사용하는 것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디 사물 뿐인가. 언제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소홀하게 대해는 가족들에 대한 애틋함도 함께 몰려온다. 한결같은 반복이 주는 고마움을 생각한다.

 

 

박강원, <서울 37> 116쪽

 

 

 ‘삶은 이렇게 찰나의 우연적인 것들로 응집되어 있고 신기루처럼 허망하게 되어 있다. 매일 반복되지만 이 장면은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 공존하는 것이 일상이다. 매일매일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있겠고 또는 처음으로 이 길을 오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시는 이곳에 이들이 이렇게 모여 있을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매 순간순간의 장면은 단 한 번뿐인 마지막 ‘씬’이다. 유일무이한 장면인 것이다.’ 120쪽

 

 

 

이동환, <문득 깨어 있는 밤> 296쪽

 

 

 ‘잠이란 스스로의 몸으로 시작해서 끝을 함께하는 신비한 여정이다. 그것은 그 누구와도 동행할 수 없고 공유할 수도 없으며 삶과 죽음과 마찬가지로 페쇄적이고 고립된 한 인간의 육체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잠들기는 평화롭고 행복하고 편안한 일임과 동시에 예측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으며 불안하기도 한 일이다.’  298쪽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경험한 이라면 이 그림 속에 그대로 스며들지도 모른다. 내일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질 지도 모를 누군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숨가쁘게 지나온 하루를 끝내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들지 못하는 밤, 뒤척이다 불을 켜기도 할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을 이처럼 다양한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가장 편안 공간이 주는 휴식, 먹고 치워야 하는 일상, 치열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고독하고도 허무한 순간, 숨기고 싶었던 내면의 불안과 슬픔까지 잘 전달하고 있다. 그림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들이 조금 더 크게 실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안다. 현재의 순간, 이 하루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하루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하루를 가만히 돌아볼 만큼의 여유는 없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말을 건다. 나만의 하루를 어떻게 채우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리고 살포시 손을 내민다. 얼마나 바쁘게 보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나치고 있었던 삶의 풍경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그 하루로 이어진 삶의 조각들을 통해 현재의 나를 생각한다. 어제였던 오늘을 어떻게 보냈는지, 내일은 또 어떻게 보낼지 말이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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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나 창비청소년문학 48
김중미 지음 / 창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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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 학교는 무서운 곳이 되버렸다.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해 필요한 도덕이나 정의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좋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가기 위해 거쳐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친구라는 이름은 경쟁자 뒤로 가려지고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학교 폭력에 대해서도 나만, 내 아이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때문에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직접 맞서는 이가 적은 것이다.

 

 표제작 「조커와 나」는 근육이 마비되는 희귀병을 앓는 정우와 짝 선규의 이야기다. 정우의 도우미가 된 선규는 말 그대로 도우미 역할만 한다. 정우의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특수반과 화장실에 데려다 주는 게 전부다. 하지만 정우는 선규를 좋아하고 진짜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소설은 조커라는 별명을 가진 조혁을 필두로 정우를 따돌리고 폭언을 일삼는 모습을 통해 중학교 남자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보여준다. 선규는 그런 아이들이 못마땅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나는 정우에게 친구라 말해 놓고도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정우가 일기에 쓴 것처럼 나는 정우에게 절실히 필요한 존재였는지 모르나 내게 정우는 그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꺼이 내 것을 나눠 줄 수 있는 대상일 뿐이었다. 서로 편해졌다 해도 그것이 우정이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정우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크다는 걸 느끼면 느낄수록 나는 뭔지 모를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49쪽, 조커와 나」

 

 선규는 보통의 아이들을 대표한다. 조커가 가해자, 선규가 피해자를 대표하듯 말이다. 하지만 조커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집을 나간 엄마 대신 외할머니와 지내다 보육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정우가 죽고 남긴 일기장을 통해 선규는 그 간의 모든 일을 알게 된다. 선규에게 진짜 친구가 되주지 못한 점, 혁이에게 편견을 가졌던 점을 후회한다. 김중미는 폭력 뒤에 가려진 아이들의 상처를 보려 한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세심한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외에 모든 게 벌점으로 이어지는 학교를 꼬집는 「불편한 진실」, 학교의 입장만 앞세워 성적으로 아이들을 상, 중, 하로 나누고 입시만을 강요하는 교육 현실을 고발하는 「꿈을 지키는 카메라」,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지만 그대로 답습하는 안타까운 모습의 「주먹은 거짓말이다」, 오랜 시간 심각한 따돌림으로 인해 자살한 친구를 기억하며 폭력에 맞서기 위해 용기를 내는 소녀의 이야기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를 통해 김중미는 책을 빌려 학교 폭력과 따돌림에 대해 직구를 던진다. 허구가 아니라 실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재를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해서 생생한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이 사회가 청소년을 청소년이 아닌 어른으로 보고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호 받아야 할 아이들,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걸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과연 이 같은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아파하는지 어른들은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어른들이 바뀌고 변해야 한다. 아이들이 멋진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학교 폭력을 막는 것은 가치의 전환부터 시작해야 한다. 열등과 우등을 가르지 않고, 일등과 꼴등을 차별하지 않고, 불의에 눈감고 정의를 외면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부끄러움과 염치가 무엇인지 알게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사회와 세상을 탓하며 그 폭력에 무릎 끓거나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거대한 집단에서 겨우 몇 사람의 회심이나 용기가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 또 한 사람의 작은 용기와 회심이 모이면 언제가는 바뀔 수 있다.’ <267쪽,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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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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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 자기 자리를 찾아야만 완성되는 퍼즐이라면 그 과정을 견디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자리의 존재 여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그 자리에 대한 확신을 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스스로 찾아 나서고 누군가는 정해진 자리에 만족하기도 한다.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일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스의 짧은 생을 통해 무척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한스는 정해진 자리가 아닌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스의 생은 한스가 아닌 주변 어른들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목사님, 교장 선생님은 그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나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물론 한스에게는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주변의 높은 기대와 관심이 한스를 짓눌렀지만 단 한 번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들이 정해준 자리에 자신을 맞춰야만 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친구 하일너를 만나면서 한스는 조금씩 변화한다. 무엇이든 당당하고 자유로운 하일너와 단단한 우정을 키운다. 하지만 제도와 관습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 하일너가 징계를 받았을 때 한스는 그를 옹호할 수 없었다. 한스의 마음에는 언제나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날품팔이꾼이나 하는 짓이야. 너는 모든 공부를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야. 단지 선생님들이나 아버지가 무서워서 하는 거라고. 1등이나 2등이면 뭐해? 나는 20등이지만 성적에 목을 매는 너희 공부벌레들보다 멍청하지 않아.” 95쪽

 

 성적과 대학 입시에 얽매였던 시간을 돌아보면 하일너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학생으로 공부에 주력하는 한스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십 대라는 시기는 애매하다. 어떤 신념이나 자아가 확립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보낸 어른들에게는 한스만이 옳았다. 하일너는 그 틀을 스스로 벗어던졌고 그곳에 남은 한스는 학업에 매진하지만 신경쇠약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그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달래주지 않았다. 한스에게 기대를 갖는 이는 없었다. 이제 그는 마을의 희망이 아니었다. 거기다 사랑의 아픔까지 겪어야만 했다. 왜 그를 안아주는 이가 없었을까. 잠깐의 꾀도 부리지 않고 공부만 했던 한스에게 필요했던 건 서기나 기계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괜찮다는 말이었다. 아니, 서기나 기계공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줘야 했다. 기계공이 되기로 하고 수습공의 길을 걷는 한스가 힘든 그 과정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한스는 어떤 것에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자연이 주는 평온만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과일주스의 이 향기를 마시는 건 좋은 일이다. 이 향기를 마시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멋지고 좋은 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내리는 5월의 이슬비와 좍좍 쏟아지는 여름비, 서늘한 가을 아침이슬과 봄날의 포근한 햇볕과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 하얗게 또는 장밋빛으로 빛나는 꽃들, 수확을 앞둔 잘 익은 과일나무의 적갈색 윤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 한 해가 주는 갖가지 아름다운 일과 즐거운 일들을 말이다.’ 164쪽

 

 어쩌면 이토록 평범한 것들이 주는 즐거움을 너무 빨리 알게된 게 한스의 불행인지도 모른다.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허무하게 여겨졌을 테니 말이다. 한스에게 좋은 집과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한 삶이 아니라 하일너처럼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버지나 목사, 교장 선생님 중 누구라도 한스에게 원하는 만큼 낚시를 해도 좋다고, 신학교에 떨어져도 괜찮다고 말을 해줬더라면 그는 그토록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퍼즐을 잘 맞춰가고 있을 것이다. 아니 퍼즐 한 조각 잃어버렸다고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게 당연한 것처럼 분명 한스의 절망과 고뇌는 다른 이름이 되어 빛났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방황하는 수많은 한스와 그들에게 걱정스런 시선을 걷어내지 못하는 어른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우리는 더이상 또다른 이름의 한스를 잃어서는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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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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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이 바뀌거나 새해가 되면 잊고 있었던 이들에게서 문자가 온다. 연락을 하지 않았던 시간이 길었던 탓에 목소리가 아닌 짧은 글로 안부를 전하는 게 의식처럼 되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 단체 문자를 보낸다. 나는 단체 문자의 형태로 온 문자에는 답을 하지 않는다. 정말 나의 안부가 궁금하다면 전화를 할 것이고, 다시 문자를 보낼 테니까.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참으로 많다.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그리운 이에게 나를 전하는 방식으로 이런 시집을 건네도 좋겠다. 박 준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어쩌면 시인에게 이 시집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입춘이 지났으니 겨울의 끝이라 해도 좋을 날들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시를 오래 바라보았다. 소리를 내어 읽기도 했다.

 

 낙서

 

 저도 끝이고 겨울도 끝이다 싶어

 무작정 남해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는 벌써 봄이 와서

 농어도 숭어도 꽃게도 제철이었습니다

 

 혼자 회를 먹을 수는 없고

 저는 밥집을 찾다

 근처 여고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몸의 왼편은 겨울

 몸의 오른편은 봄 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메뉴를 한참 보다가

 김치찌개를 시킵니다

 

 여자는 냄비에 물을 올리는 남자를 하나하나 지켜보고

 저도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봅니다

 

 남자는 돼지비계며 김치며 양파를 썰어넣다 말고

 여자와 말다툼을 합니다

 조미료를 그만 넣으라는 여자의 말과

 더 넣어야지 맛이 난다는 남자의 말이 끓어넘칩니다

 

 몇 번을 더 버티다

 성화에 못 이긴 남자는

 조미료 통을 닫았고요

 

 금세 뚝배기를 비웁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뜩 낙서해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 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76~77쪽)

 

 봄날은 내가 기다리는 날이다. 봄날에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이름의 계절이 돌고 돌지만 봄이라는 계절은 막연한 희망이 생긴다. 얼었던 땅이 녹는 것을 지켜보는 일, 밤새 분주한 몸놀림으로 아침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보는 일, 어제보다 조금 더 길게 내리는 햇볕을 보는 일이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주는 계절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았으면 한다

 

 창문들은 이미 밤을 넘어선 부분이 있다 잠결이 아니라도

 나는 너와 사인(死因)은 너와 았으면 한다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

 벽과 마주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

 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요와 홑청 이불 사이에 헤어 드라이의 더운 바람을 틀

 어넣으면 눅눅한 가슴을 가진 네가 그립다가 살 만했던

 광장(廣場)의 한때는 역시 우리의 본적과 사이가 멀었다

 는 생각이 들고

 

 나는 냉장고의 온도를 강냉으로 돌리고 그 방에서 살아

 나왔다

 

 내가 번듯한 날들을 모르는 것처럼 이 버튼을 돌릴 줄 아

 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맥주나 음료수를 넣어두고 왜 차

 가워지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낯빛을 여관의 방들은 곧

 잘 하고 있다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 오면 안 돼” 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內勤)하는 것이어서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 (34~35쪽)

 

 호우주의보

 

 이틀 내내 왔다

 

 미인은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귀를 뒤덮은 내 이야기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꼭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은 용서 았다

 

 이발소에 처음 취직했더니

 머리카락을 날리지 않고

 바닥을 쓸어내는 것만 배웠다는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미인은 내가 졸음을

 그냥 지켜만 보는 것이 불만이었다

 

 나는 미인이 새로 그리고 있는

 유화 속에 어둡고 캄캄한 것들의

 태(胎)가 자라는 것 아 불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책 속의 글자를

 바꿔 읽는 놀이를 하다 잠이 들었다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 (44~45쪽)

 

 때로 생은 철저하게 혼자인 시간을 부여한다. 부르지 않은 고독이 친구처럼 곁을 맴돌고 온기를 나눌 이를 찾을 수없는 순간들. 사귐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겨를이 없는 생인 것이다. 사는 일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시집을 읽으면서 부르지 못한 이름들을 시를 빌려 불러본다.(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 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 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55쪽)

 

 여름에 부르는 이름

 

 방에서 독재(獨裁)했다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팔리지 않는 광어를

 아예 관상용으로 키우던 술집이 있었다

 

 그 집 광어 이름하고

 내 이름이 았다

 

 대단한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나와 은 이름의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벽면에서 난류를

 찾아내는 동안 주름이 늘었다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잠,

 잠을 끌어당긴다

 선풍기 날개가 돈다

 

 약풍과 수면장애

 강풍과 악몽 사이에

 

 오래된 잠버릇이

 당신의 궁금한 이름을 엎지른다 (58~59쪽)

 

 박 준의 시는 특별하지 않아 특별하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상실이며 추억이고 일상이다. 나와 은 계절을 사는, 쏟아지는 비를 함께 보거나 싸구려 여관에 잠시 몸을 의탁하는 그런 생을 사는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더 끌린다. 예쁘거나 좋은 것만 보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슬픔과 커져가는 절망을 건네는 것이다. 그 슬픔과 절망을 아는 이는 시를 읽으며 가슴이 절이거나 생목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쁘거나 아프기만 한 게 아니다.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앓다 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驛)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82~83쪽)

 

 어디선가 슬퍼하고 있을, 어디선가 아득한 시간을 손으로 꼽고 있을 당신을 생각한다. 나와 당신과의 거리는 닿을 수 없이 멀겠지만 큰 목소리로 이런 시를 읽어주고 싶다. 당신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전하는 안부를 듣고 싶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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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3-02-1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안녕!

박준 시인은 제가 박연준 시인으로 혼동을 해서 시집의 제목을 좀 특이하게 짓는 시인구나 하고 생각했지 뭐에요. 제목으로 봐서는 김춘수 시인의 <꽃>보다 더 의미심장할 것 같은데, 시는 좀 어려운데요... 못알아 듣겠어요. ㅠ.ㅠ

자목련님은 시 먹는 자목련! 오늘은 무슨 시를 읽고 계세요? 그나저나 겨울이 끝나간다니, 봄을 기다리셨나요? (이런 질문은 좀 간지러워요. :))

자목련 2013-02-16 10:08   좋아요 0 | URL
이 시집,좋아요. 댈레웨이 님의 표현대로 시 먹는 거(체할지도 모르지만, ㅋㅋ) 계속 하고 싶어요!!
요즘은 장승리의 <무표정>을 읽어요. 언제나 봄을 기다려요. 자목련도 피고, 작약과 수국을 만나는 여름을 기다릴 수 있는 봄, 봄이 좋아요!!
 
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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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기를 원한다. 어쩌면 그것은 의도하지 않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지도 모른다. 불운한 삶이 아닌 행복한 삶을 꿈꾸는 단순하면서도 거대한 소망처럼 말이다. 그 소망이 실현되었을 때 그것이 사라질 거라 생각하며 사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닥친 갑작스런 사고나 불행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한다. 문제는 언제나 불신과 추측이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의심이 모든 것을 망쳐놓는다. 혹시 혹은 만약에, 라는 생각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이다.

 

 『붉은 낙엽』은 그런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물론 이 소설은 범죄소설이며 추리소설의 장르에 속한다. 이웃의 한 아이가 실종되고 주인공의 아들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며 벌어지면서 겪게 되는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에릭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그의 아내 메러디스는 대학 강사다. 둘 사이엔 평범한 중학생 아들 키이스가 있다. 누가 보더라도 단란한 가족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에이미 부모의 부탁으로 키이스는 아이를 돌봐주고 돌아온다. 다음 날 에이미가 사라지면서 키이스는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에릭은 아들 키이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다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사춘기 아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이층 방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릭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키이스의 지난 행동에 대해 의심을 한다. 그러면서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와 자동차 사고로 죽은 어머니, 어린 나이에 죽은 동생 제니, 혼자 사는 형 워렌을 생각한다. 아들 키이스와의 관계를 통해 아버지와 자신의 사이를 돌아본다.

 

 실종된 에이미의 진범을 찾는 과정과 에릭이 알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가족이라는 큰 퍼즐을 하나씩 맞추며 이어진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고통과 분노, 용의자로 몰린 키이스를 지키려는 에릭 부부의 대립이 팽팽하게 흐른다. 에릭이 알지 못했던 키이스의 모습들과 하나씩 드러나는 증거들로 인해 소설은 어느새 키이스가 범인일지 모른다는 확신을 독자에게 심어준다. 빨리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경찰, 키이스를 범인으로 단정한 에이미의 아버지, 걷잡을 수없는 의심으로 아내까지 믿지 못하는 에릭. 그들에게 행복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처럼 말이다.

 

 ‘나는 창 앞에 남아서, 아침 햇빛이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이 집을 둘러싼 숲의 작은 조각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잠시 나는 우리가 이곳에 이사 오던 날을 회상했다. 트럭에서 짐을 부리는 동안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떤 시간을 가졌던가. 날은 또 얼마나 화창했던가. 그날 우리가 이 완벽한 숲에 함께 모여, 모두가 웃고 또 웃으며 얼마나 행복해 했던가. 167쪽’

 

 소설은 잔인하게도 한 가족이 어떻게 와해되는지 그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가족은 서로를 보듬어 껴안거나 절대로 다시 붙일 수 없는 수 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기도 한다.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견고하다고 믿었지만 티끌 만한 것에도 쉽게 흔들리며 오해의 벽을 만드는 인간의 마음 때문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에이미가 카렌 지오다노의 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그즈음 동네의 길을 걸어가다 느낀 것은, 멀리 높은 곳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모래알처럼 구별이 안 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어떤 얼굴이든 독특하고 딱 하나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얼굴들은 엄마의 얼굴이거나 아빠의 얼굴이고, 누이 혹은 형제의 얼굴이며, 딸의 얼굴이거나 아들의 얼굴이다. 그 얼굴에는 수많은 기억들이 아로새겨져 있어서 다른 누구의 얼굴과도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애착의 핵심이고, 그 애착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질이다. 우리가 이런 애착의 기억들을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무관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무표정한 눈으로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가장 기초적인 영양분을 찾아 바다를 떠올게 될 것이다.’ 19~20쪽

 

 유괴 범죄라는 섬뜩한 소재로 시작되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척 아름다운 소설이다. 생생하게 포착한 불안과 주인공의 내밀한 감정이 잘 표현되었다. 더불어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인지 확인시킨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관계인 가족이야말로 거대한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란 걸 각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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