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 / 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권의 책은 그 자체로도 독립적인 우주이지만, 한 권의 책이 어떤 책 곁에 있는지에 따라 그 책의 의미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서점은 한 권의 책이 있는 곳이 아니라 책 곁에 또 다른 책이 있는, 즉 책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지요. 서가를 구성하는 것은 책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의미의 맥락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79쪽)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생기면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 그중 하나가 책이다.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을 좋아하는 이를 알게 되면 정말 반갑다. 좋아하는 작가와 책이 겹치면 더욱 신이 난다. 온라인에서 같은 책을 읽은 누군가의 글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지 못해도 종종 찾아가 그의 글을 읽는다. 같은 책을 읽었어도 다른 느낌을 받고 주목하는 부분이 다르다. 책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작가, 서점으로 확대된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기에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갈증이 있다. 내가 사는 읍의 서점은 참고서를 주로 판매하는 걸로 안다. 몇 년 전부터 서점에서 작가와의 만남, 낭독회가 열린다.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낭독회에는 꽃배달로 마음을 전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독립 서점, 동네 서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러움만 컸다. 문학만 다루는 서점, 인문학, 건축에 대한 책만 파는 서점. 시인 유희경이 시집 전문 서점을 열었을 때 그 서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회학자 노명우가 서점 이야기는 기사로 읽었다. 서점을 소개하는 사진이 너무 예뻐서 더 궁금했다.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에 대한 기대의 절반은 첫인상이 아닐까 싶다. 녹색의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마주하는 서점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서 마스터 북텐더가 소개하는 책은 어떤 책일까. 동네 서점은 어떻게 운영될까. 유명인이 운영하는 서점 이야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니은서점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나를 반겨주기를 바랐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이 있는 서점, 그것만으로도 나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우습게도 그랬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운영하는 책방이라는 이미지도 한몫 거들었지만 말이다. 어디에 서점을 내고, 어떤 공사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고 서점을 운영할지 그의 고민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서점을 운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임대료를 낼 정도의 수익은 있어야 한다.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수익이고 니은서점도 다르지 않았다.


부동산 거리에 있는 책방이라니. 하지만 좋은 공간은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나 같은 독자도 연신내에는 니은서점이 있구나 생각하니까. 독립 서점에 방문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고유한 분위기와 그곳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 때문이다. 이제는 서점하면 커피와 사무용품, 굿즈가 저절로 생각나는 이들에게 니은서점은 커피도 없고 참고서도 없는 공간이다. 그러면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니은서점에는 ‘니은 하이엔드 북토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보고 싶은 작가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고 책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열 평이 안 되는 작은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번 상상하게 된다. 20여 명이 모인 곳에서 작가와 내가 눈을 맞추고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을 말이다. 니은서점의 단골로 작가도 많다니. 출간될 시집을 기대하는 장혜령 작가도 그곳의 단골이란다.


그렇다면 서점은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어떤 공간, 어떤 의미일까. 이제 단순하게 책을 구매하는 곳은 아닐 것이다. 책으로 통하는 세상이라고 할까. 책과 책으로 연결된 이들의 집합소. 온라인 서점의 경우도 그렇다. 처음엔 책을 사고 리뷰를 올리고 다른 이의 리뷰만 읽었지만 지금은 책이 아닌 그들의 일상에도 관심이 생긴다. 나는 그저 읽는데 그치지만 함께 책을 읽고 오프라인 만남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일면식도 없던 이들이 한 권의 책과 서점을 매개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처음엔 저자 혼자였던 공간이 지금은 세 명의 90년 대생 북텐더가 함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 된 것처럼 말이다. 니은서점으로 통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연신내에 니은서점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전자책이 나오면서 종이책은 사라질 거라 예상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종이책은 지금껏 사랑받는다. 온라인 서점의 활약으로 동네 서점은 찾기 어렵다. 어느 시절 밤 산책의 끝에는 서점이 있었다. 서점에서 만났던 책은 곁에 없지만 그때 느꼈던 공기의 감촉은 여전하다. 나를 반기던 책의 냄새, 책을 정리하면서 인사를 나누던 주인,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고르던 꼬마의 진지한 눈빛. 책을 검색해 장바구니에 넣고 구매하기를 누르는 나에게 니은서점은 그 순간들을 데려왔다.


니은서점이 그곳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연신내 니은서점에 방문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니은서점의 녹색 출입문 입구에서 인증 사진을 찍을지도 모르니까. “안녕, 니은서점!” 반가운 인사말을 건네며. 책을 읽고 책이 만들어진 그곳에서 책과 함께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소 곤란한 감정 -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
김신식 지음 / 프시케의숲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확한 실루엣이 아닌 흐릿한 이미지는 호기심을 불러온다. 모호함이 주는 끌림이라고 할까. 『다소 곤란한 감정』에 대한 첫 느낌이 그러했다. 곤란하다는 난감하고 불편하다는 말과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는 말일까? 아니면 그걸 모르고 살고 있다는 말일까? 이 책의 저자 김신식의 글은 문학평론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이 책에 대한 한 줄 평을 감정 비평이라고 말해도 괜찮다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사회의 기준 같은 것에 그것을 맞추려고 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어렵기도 했고 지루한 부분도 좀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이런 종류의 글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감정에 대한 에세이 혹은 감정에 대한 분석 같은 것 정도만 익숙했던 내게 감정을 사회학적으로 읽는 일은 마치 저자처럼 누군가 내 감정을 읽고 있는 건 아닌가 두리번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 역시 난감해졌다는 말이다.


책은 모두 5부에 걸쳐 포괄적인 사회적 시류, 혹은 분위기를 다루며 그 안에서 섬세하게 감정을 짚어낸다. 1부 우울과 행복, 2부 차별과 혐오, 3부 사랑과 사랑과 사회학, 4부 감정과 공감, 5부 지식사회의 풍경. 개인적으로 1부 우울과 행복, 2부 차별과 혐오에 더 집중하면서 읽었다. 우리 사회에서 우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아니 개인적으로 내가 우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누군가 우울하다고 했을 때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상대를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과연 진짜 도움이 되는가. 우울뿐 아니라, 아픈 환자나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무조건 긍정의 마음을 전하려 애쓰는 일이 과연 진실된 것일까. 그런 생각이 이어졌다.

“당신은 한동안 정체 모를 상태에서 허덕이고 싶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당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당신의 일상은 그림 한 점이 된다. 사람들은 당신의 일상을 관람하다 아쉬운 구석을 찾아낸다” (47쪽)

이런 부분은 4부 감정과 공감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댓글을 통해 모두 상대의 상태를 공감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상대의 SNS 계정의 프로필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여 짐작한다. 아름다운 꽃이나 풍경이었던 프로필이 갑자기 바뀌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 여기고 무조건 충고를 하거나 조언을 한다. 이런 감정들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피곤한 일인지 아마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혼자를 견디지 못하여 고독을 즐기지 못하는 현대인의 슬픈 초상은 아닐까.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이면에는 어떤 감정이 있을까.

타인의 감정 상태에 이름 붙이기가 심해지면 어찌 될까. 당신의 하루. 본인의 감정을 굳이 해석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자신을 잠시 내버려 두고 싶은 날. 그러나 누군가는 당신의 심적 상태마저도 어떤 감정이라며 이름 붙이려 한다. 감정에 관해 스스로 무無의 상황에 놓이고 싶은 싶은 시공간을 확보하기란 점점 어렵다. 감정에 관한 무의 상황도 특정한 감정임을 확인하려 드는 시도 때문에. (212쪽)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론이나 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감정에 휩쓸리곤 한다. 그들과 다른 감정을 표출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다른 감정을 소유할 수 있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사회학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사회라는 신을 숭상할 필요는 없겠다. 개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읽어내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니까.

사회라는 신을 숭상하며 사회의 기분에 맞춰서 살아갈 신도일 필요는 없다. 사회‘신비’학으로서의 사회학이 존재 가능하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당신이란 신비를 당신 스스로 지키기 위한 몸짓들이다. 이러한 사회학은 당신을 구경꾼을 두 길 거부한다. 삶과 부대껴가면서 피어오르는 당신의 몸짓, 미화되길 거부하며 현실을 직시하되 상상력을 놓지 않는 당신의 감수성. 그러한 당신이 사회신비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직접 이뤄나갈 수 있다. (31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고통과 슬픔을 느끼지 않고 오직 행복한 황홀감만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을 선택하라면 어떨까? 주저없이 선택할지도 모른다. 어떤 댓가를 치르든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의 걱정 근심을 다 잊고 취할 수 있는 무엇. 그것이 중독으로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니, 이미 중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언론을 통해 접한 마약, 약물 중독으로 인해 삶이 망가지며 회복할 수 없은 지경에 이른다는 사실을. 그러니 근절을 위한 노력을 한다. 가와이 간지의 『스노우 엔젤』 도 마약을 소재로 다룬다. 


이야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살인사건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부부를 찾아온 한 남자, 그는 레시피를 요구한다. 무엇을 만들기 위한 레시피인가. 그들이 말하는 ‘천사’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증은 또 다른 살인사건으로 이어진다. 한 남자가 도쿄에서 사람들을 흉기로 살해한 후 백화점 옥상에서 투신한다. 그는 허공을 향해 ‘천사님’이라 외치고 투신했다고 한다. 얼핏 천사라 불리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마약을 다룬 영화 <독전>에서 이선생을 찾는 듯 말이다. 


그럼 이제 마약범을 잡을 경찰이 등장해야 할 때다. 마약 단속반 미즈키 쇼코는 협력자를 찾는다. 9년 전 경찰이었던 진자이 아키라를 선택한다. 진자이 아키라는 동료 히와라 쇼코와 함께 고가도로에서 떨어져 사망한 변호사 부부의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살인사건이라 판단한 그는 수사 중 히와라 쇼코가 사망하자 다섯 명의 남자를 전부 죽였다.


서류상으로는 경찰을 퇴직한 후 실종 후 사망처리된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키라는 9년 전 사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신분을 위장하고 노숙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미즈키 쇼코는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마약의 연관정을 설명한다. ‘스노우 엔젤’이라는 마약을 유통하는 마약 판매상을 소탕하겠다는 작전에 아키라가 마약 판매상으로 위장 잠입하여 증거를 확보하라고 말한다. 


미즈키 쇼코의 제안을 수락한 아키라는 판매상과 접촉하며 친분을 쌓아 마약을 구매하데 성공한다. 그리고 판매상과함께 현장에서 판매를 하기 시작한다. 판매상과 함께 일을 하면서 그는 마약 구매자가 평범한 주부라는 사실에 놀란다. 그만큼 마약이 우리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고 있었다. 소설 속 ‘스노우 엔젤’는 유통되는 약물의 중독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한번 의존하면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약물이었다. 아키라는 자신이 직접 ‘스노우 엔젤’흡입한다. 그 과정은 정말 놀랍고도 무섭다. 처음에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면서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 이른다. 그러나 약기운이 떨어지면서 ‘스노우 엔젤’을 원하는 강도가 백화점 옥상에서 투신한 사람처럼 천사가 부르는 것처럼 환각에 빠진다.


미스키 쇼코는 더 대담한 작전을 제시하고 아키라는 마약상의 실체인 ‘하큐류 노보류’와 만남을 성사한다. 이제 모든 게 완벽하게 끝나고 작전은 성공할 거라 예상하는순간 가와이 간지는 반전을 선사한다.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결말이다. 


“스노우 엔젤은 특정 식품이나 음료, 기호품에 은밀히 첨가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섭취한 사람은 모두가 그 상품에 대한 의존 상태에 빠지게 되겠지요. 머잖아 전 세계로부터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부가 스노우 엔젤을 제조하는 자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누구도 그 인물을 거역할 수 없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226쪽)


마약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따라오던 환각이라는 상태와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설명하는 미스키 요코의 말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모르는 세게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하지 못했던 힘과 권력이 마약을 통해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서울 뿐이다. 현실에서도 여전히 마약과의 전쟁은 선포되었고 그 끝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하기를 말하기 -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김하나 지음 / 콜라주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잘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상대를 집중시키고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 그리고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지만 말을 잘 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말하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매일 말을 하며 사는데 그랬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김하나의 『말하기를 말하기』는 그런 점에서 남다르다. 수많은 말과 말 사이를 오가는 어떤 공기, 말들에 둘러싸인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직업이 말하는 사람이니 얼마나 말을 잘 할까 싶다가도 정작 그가 말하는 걸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걸 알았다. 예스24의 팟캐스터 책읽아웃을 진행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팟캐스터를 청취하지 않기에 그랬다. 그런 점이 이 책을 읽는데 장점으로 작용했다. 나는 아무런 기대와 편견 없이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말하기에 대한 책이지만 화법이나 화술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건 아니다. 말하기는 우리 일상에서 누구나 행하는 것이므로. 저자는 수줍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내성적인 아이여서 새 학년이 될 때마다 친구를 사귈 걱정을 할 정도였다니. 모두가 놀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집과 밖에서 똑같은 사람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 한다. 사회생활이란 그런 것이니까. 저자는 학교에서 반장이 되면서 자신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며 담임 선생님께서 너는 말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 하셨단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을까.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솔직하게 들려주는데 마치 친한 사람과 수다를 떠는 것처럼 다가온다. 아마도 수없이 많은 글을 쓰고 말을 한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기억, 학창 시절의 추억, 현재 동거인과 살아가는 이야기. 그 안에 담긴 말과 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면 말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회사를 그만두고 성우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하면서 ‘잠깐 멈춤’에 대해 인상적이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어디서 말을 끊고 다시 이어가야 하는지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장황하지 않고 간단하면서도 말에 힘을 싣는 것. 나도 연습해보고 싶다. 강연과 방송에 대한 에피소드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저자가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라디오 방송에도 참여하는 줄은 몰랐다. 또한 주변에서 말하기 선생님을 찾을 수 있다고 한 점도 인상적이다. 그만큼 말에 대한 관심이 있기에 주변의 모든 상황에서 말을 하는 이들을 관찰한 결과일 것이다. 막연하게 말을 잘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연습도 필요하다.


말하기에는 발성, 속도, 억양, 크기, 높낮이, 호흡, 포즈, 어휘, 어법, 습관, 태도, 제스처 등등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쓰인다. 거울을 보면서 더 나은 표정을 지어보거나 매일 스킨로션을 바르고 뾰루지가 나면 연고를 바르듯이, 말하기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아름다워질지 고민해보거나 안 좋은 습관을 고치려고 신경을 쓰면 좋지 않을까? (41~42쪽)


연습을 하면 달라진다. 내 경우 중요한 전화 통화를 해야 할 때 미리 연습한다. 목소리를 차분하게 하고 가상의 상대에게 질문을 하고 내 의견을 말하는 연습 말이다. 이상하고 우습게 보일지라도 연습 후 진짜 통화를 하면 훨씬 가볍고 후회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를 잘 하라면 우선 잘 들어야 한다.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막상 내 이야기에 집중해서 놓치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무조건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놓고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저자는 그걸 ‘그 순간’에 있기가 표현한다. 깊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저자의 경우 인터뷰의 상황을 설명하지만 일상에서는 아이들과 대화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대화가 줄어드는 건 스마트폰 때문은 아니니까. 아이가 말하는 그 순간에 있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대화에서는 듣기가 80이고 말하기가 20이다. 잘 들어야만 잘 말할 수 있다. 잘 들어야만 미묘하게 상승하는 대화의 호흡과 리듬을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을 더 끌어올리거나 식힐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들어야만 ‘그 순간’에 있을 수 있다. (115쪽)


말이 흐르고 말이 오가는 삶, 말하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침묵이 필요할 때도 있다. 침묵으로 대화하는 시간,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녔는지 그런 부분을 언급해 줘서 고마웠다. 살면서 우리는 말을 할 수 없는 순간과 마주한다. 그 순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말로도 채울 수 없는 순간 말이다.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은 말로 담아낼 수 없기에 찾아온다. 의미와 경계, 한 줌 언어의 납작한 정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침묵이 촘촘히 들어찬다. 저 낮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른 침묵은 마침내 흐르기 시작한다. 가끔 마주치는 눈빛, 작은 한숨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지 않고 흐르는 침묵은 대화의 완벽하고 더 차원 높은 연장이다. 침묵은 상상하게 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168쪽)


좋은 사람과는 오래 시간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상대가 말을 잘 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술 취한 저자가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도 그러면 어떠냐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나를 잘 알고 받아주는 이가 있다면 그들 사이에 흐르는 말은 더욱 빛날 것이다. 말하기를 말하기란 책은 결국 우리네 일상에서 필요한 말에 대한 책이 아닐까 싶다. 잘한다는 칭찬의 말, 굳이 해야 아냐며 말하지 않았던 말을 꺼내는 말, 자신의 가치를 말하는 말,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말. 나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가는 지금도 소설을 쓸 것이다. 직접 집필을 하는 건 아니더라도 소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독자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도 책을 생각하고 읽어야 하는데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폭우로 산사태가 났고 누군가의 삶이 사라진 이 순간도 소설로는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까. 알지 못하는 소설은 얼마나 많을까. 내가 읽는 소설은 겨우 몇 편, 기억하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독자의 본분을 생각하면 분발해야 하나, 혼자 생각하다 웃고 만다.

문학과지성사가 계절마다 선정한 소설을 읽는 일은 반갑고도 즐겁다. 『소설 보다 : 여름 2019』엔 우다영, 이민진, 정영수의 소설이 있다. 세 편 다 인상적이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인상적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우다영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은 여유롭고 멋진 휴가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노년의 여성의 시선을 따라 그녀의 휴가를 따라간다. 그곳에서 과거 연인이 될 뻔한 요리사를 만나기도 한다. 과거로의 회상일까 싶으면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바꾼다. 어쩌면 우다영의 소설은 이미 제목에 모든 게 담겨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렸다면 삶이라는 게 소설처럼 한순간의 꿈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자유분방하게 이끌면서 어떤 의심이 아닌 궁금증을 불러오는 힘, 그게 소설이구나 확인한다. 자유롭게 떠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소설은 때로 여행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다영의 소설 어린 시절 꿈꿨던 상상의 세계, 혹은 현실이 아닌 판타지로 이끄는 문이 될 수도 있다.

이민진의 「RE:」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소설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소설이면서도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우리가 알고 지냈다고 믿은 어떤 이들에 대해 과연 알고 지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소설 속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 ‘유완’, ‘해니’, ‘영우’, 세 사람은 과연 어떤 사이였을까 생각한다. 친구, 그냥 아는 사이, 한때 친했지만 지금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사이일까. 소설은 영우가 해니의 죽음을 알리는 메일로 시작한다. 해니의 메일 계정을 통해 유완에게 보낸다. 만약 그런 메일을 받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함께 글을 배우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긴밀한 사이는 될 수 없었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지 못하고 멀어진 사이, 그러나 그때 그 시절을 알고 해니를 아는 이는 유완뿐 이기에 영우는 해니의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식이 끊긴 이들, 메일 계정에만 존재하는 이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은 묘한 충동. 이민진의 단편을 읽은 이들 가운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가 분명 있을 것 같다. 연락처는 삭제했지만 온라인의 메일은 내 주소록에 저장된 이들과 나는 무슨 사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은 그의 다른 단편 「우리들」와 비슷한 느낌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불안한 미래가 그렇다고 할까. 지금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믿으면서도 어떤 불안을 외면할 수 없는 삶의 쓸쓸함 말이다. 화자인 ‘나’는 어린 시절 한 형제처럼 지낸 엄마 친구 딸 ‘선애’ 누나가 이혼을 하면서 비워둔 집에서 잠시 살게 된다. 그 공간에서 연인과 함께 보내는 순간은 달콤했다. 둘만의 공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다 과거 ‘선애’ 누나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자신의 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그래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떠나게 된 이야기. 흔한 이야기였다.’ 란 구절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특별하다고 여겼던 사랑이 어느 순간 보통의 흔한 사랑으로 변할 수 있는 일, 그런 게 삶이겠지만 쓸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지루하고 긴 장마의 나날이 끝나니 폭염에 태풍까지 몰려온다. 지루하기만 하면 좋을 텐데. 들려오는 소식은 너무도 처참하다. 한순간에 사라진 삶의 현장. 복구하고 회복할 수 있을까. 절망의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안착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잠시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 다가온다. 소설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복귀하는 순간 진짜 삶이 펼쳐진다. 이 모든 게 소설이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바람과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