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가는 지금도 소설을 쓸 것이다. 직접 집필을 하는 건 아니더라도 소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독자가 책을 읽지 않으면서도 책을 생각하고 읽어야 하는데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폭우로 산사태가 났고 누군가의 삶이 사라진 이 순간도 소설로는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까. 알지 못하는 소설은 얼마나 많을까. 내가 읽는 소설은 겨우 몇 편, 기억하는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독자의 본분을 생각하면 분발해야 하나, 혼자 생각하다 웃고 만다.

문학과지성사가 계절마다 선정한 소설을 읽는 일은 반갑고도 즐겁다. 『소설 보다 : 여름 2019』엔 우다영, 이민진, 정영수의 소설이 있다. 세 편 다 인상적이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인상적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우다영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은 여유롭고 멋진 휴가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노년의 여성의 시선을 따라 그녀의 휴가를 따라간다. 그곳에서 과거 연인이 될 뻔한 요리사를 만나기도 한다. 과거로의 회상일까 싶으면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방향을 바꾼다. 어쩌면 우다영의 소설은 이미 제목에 모든 게 담겨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렸다면 삶이라는 게 소설처럼 한순간의 꿈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자유분방하게 이끌면서 어떤 의심이 아닌 궁금증을 불러오는 힘, 그게 소설이구나 확인한다. 자유롭게 떠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소설은 때로 여행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다영의 소설 어린 시절 꿈꿨던 상상의 세계, 혹은 현실이 아닌 판타지로 이끄는 문이 될 수도 있다.

이민진의 「RE:」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소설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소설이면서도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우리가 알고 지냈다고 믿은 어떤 이들에 대해 과연 알고 지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소설 속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 ‘유완’, ‘해니’, ‘영우’, 세 사람은 과연 어떤 사이였을까 생각한다. 친구, 그냥 아는 사이, 한때 친했지만 지금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사이일까. 소설은 영우가 해니의 죽음을 알리는 메일로 시작한다. 해니의 메일 계정을 통해 유완에게 보낸다. 만약 그런 메일을 받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함께 글을 배우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긴밀한 사이는 될 수 없었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지 못하고 멀어진 사이, 그러나 그때 그 시절을 알고 해니를 아는 이는 유완뿐 이기에 영우는 해니의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식이 끊긴 이들, 메일 계정에만 존재하는 이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은 묘한 충동. 이민진의 단편을 읽은 이들 가운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이가 분명 있을 것 같다. 연락처는 삭제했지만 온라인의 메일은 내 주소록에 저장된 이들과 나는 무슨 사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은 그의 다른 단편 「우리들」와 비슷한 느낌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불안한 미래가 그렇다고 할까. 지금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믿으면서도 어떤 불안을 외면할 수 없는 삶의 쓸쓸함 말이다. 화자인 ‘나’는 어린 시절 한 형제처럼 지낸 엄마 친구 딸 ‘선애’ 누나가 이혼을 하면서 비워둔 집에서 잠시 살게 된다. 그 공간에서 연인과 함께 보내는 순간은 달콤했다. 둘만의 공간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러다 과거 ‘선애’ 누나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자신의 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그래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떠나게 된 이야기. 흔한 이야기였다.’ 란 구절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특별하다고 여겼던 사랑이 어느 순간 보통의 흔한 사랑으로 변할 수 있는 일, 그런 게 삶이겠지만 쓸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지루하고 긴 장마의 나날이 끝나니 폭염에 태풍까지 몰려온다. 지루하기만 하면 좋을 텐데. 들려오는 소식은 너무도 처참하다. 한순간에 사라진 삶의 현장. 복구하고 회복할 수 있을까. 절망의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안착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잠시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 다가온다. 소설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복귀하는 순간 진짜 삶이 펼쳐진다. 이 모든 게 소설이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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