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 / 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권의 책은 그 자체로도 독립적인 우주이지만, 한 권의 책이 어떤 책 곁에 있는지에 따라 그 책의 의미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서점은 한 권의 책이 있는 곳이 아니라 책 곁에 또 다른 책이 있는, 즉 책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지요. 서가를 구성하는 것은 책 사이에 보이지 않는 의미의 맥락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79쪽)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생기면 나는 수다쟁이가 된다. 그중 하나가 책이다.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을 좋아하는 이를 알게 되면 정말 반갑다. 좋아하는 작가와 책이 겹치면 더욱 신이 난다. 온라인에서 같은 책을 읽은 누군가의 글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지 못해도 종종 찾아가 그의 글을 읽는다. 같은 책을 읽었어도 다른 느낌을 받고 주목하는 부분이 다르다. 책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작가, 서점으로 확대된다.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기에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갈증이 있다. 내가 사는 읍의 서점은 참고서를 주로 판매하는 걸로 안다. 몇 년 전부터 서점에서 작가와의 만남, 낭독회가 열린다.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낭독회에는 꽃배달로 마음을 전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독립 서점, 동네 서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러움만 컸다. 문학만 다루는 서점, 인문학, 건축에 대한 책만 파는 서점. 시인 유희경이 시집 전문 서점을 열었을 때 그 서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회학자 노명우가 서점 이야기는 기사로 읽었다. 서점을 소개하는 사진이 너무 예뻐서 더 궁금했다.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에 대한 기대의 절반은 첫인상이 아닐까 싶다. 녹색의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마주하는 서점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서 마스터 북텐더가 소개하는 책은 어떤 책일까. 동네 서점은 어떻게 운영될까. 유명인이 운영하는 서점 이야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니은서점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나를 반겨주기를 바랐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이 있는 서점, 그것만으로도 나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우습게도 그랬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운영하는 책방이라는 이미지도 한몫 거들었지만 말이다. 어디에 서점을 내고, 어떤 공사를 하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고 서점을 운영할지 그의 고민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서점을 운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임대료를 낼 정도의 수익은 있어야 한다. 동네 서점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수익이고 니은서점도 다르지 않았다.


부동산 거리에 있는 책방이라니. 하지만 좋은 공간은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나 같은 독자도 연신내에는 니은서점이 있구나 생각하니까. 독립 서점에 방문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고유한 분위기와 그곳에서 열리는 작은 행사 때문이다. 이제는 서점하면 커피와 사무용품, 굿즈가 저절로 생각나는 이들에게 니은서점은 커피도 없고 참고서도 없는 공간이다. 그러면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니은서점에는 ‘니은 하이엔드 북토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보고 싶은 작가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고 책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열 평이 안 되는 작은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번 상상하게 된다. 20여 명이 모인 곳에서 작가와 내가 눈을 맞추고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을 말이다. 니은서점의 단골로 작가도 많다니. 출간될 시집을 기대하는 장혜령 작가도 그곳의 단골이란다.


그렇다면 서점은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어떤 공간, 어떤 의미일까. 이제 단순하게 책을 구매하는 곳은 아닐 것이다. 책으로 통하는 세상이라고 할까. 책과 책으로 연결된 이들의 집합소. 온라인 서점의 경우도 그렇다. 처음엔 책을 사고 리뷰를 올리고 다른 이의 리뷰만 읽었지만 지금은 책이 아닌 그들의 일상에도 관심이 생긴다. 나는 그저 읽는데 그치지만 함께 책을 읽고 오프라인 만남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일면식도 없던 이들이 한 권의 책과 서점을 매개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 처음엔 저자 혼자였던 공간이 지금은 세 명의 90년 대생 북텐더가 함께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 된 것처럼 말이다. 니은서점으로 통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연신내에 니은서점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전자책이 나오면서 종이책은 사라질 거라 예상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종이책은 지금껏 사랑받는다. 온라인 서점의 활약으로 동네 서점은 찾기 어렵다. 어느 시절 밤 산책의 끝에는 서점이 있었다. 서점에서 만났던 책은 곁에 없지만 그때 느꼈던 공기의 감촉은 여전하다. 나를 반기던 책의 냄새, 책을 정리하면서 인사를 나누던 주인,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고르던 꼬마의 진지한 눈빛. 책을 검색해 장바구니에 넣고 구매하기를 누르는 나에게 니은서점은 그 순간들을 데려왔다.


니은서점이 그곳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연신내 니은서점에 방문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니은서점의 녹색 출입문 입구에서 인증 사진을 찍을지도 모르니까. “안녕, 니은서점!” 반가운 인사말을 건네며. 책을 읽고 책이 만들어진 그곳에서 책과 함께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