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저는 기꺼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몇몇 쓸데없는 사건들, 그러니까 자동차 사고들이나 병원 신세를 진 일들이나, 사랑 때문에 가슴 앓이를 했던 일들은 피하면서 말입니다. 하나 저는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제 대외적인 이미지나 전설, 그 안에 거짓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바보 같은 짓들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며, 과속을 좋아합니다. 물론 제게는 그것 말고도 위스키나 자동차들만큼이나 수많은 취향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음악이나 문학처럼 말이죠. (372쪽)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터뷰집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를 읽기 전 그동안 내가 읽은 그녀의 글을 검색해 보았다.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었다. 첫 소설이자 대표작인 『슬픔이여 안녕』은 읽지 않았다. 그 소설의 내용에 대해 아는 것도 없다. 열아홉의 나이에 소설을 썼다는 정도만 알뿐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인생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 이유로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궁금증과 기대를 생각하면 진도가 팍팍 나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렇지는 않았다.


1954년부터 1992년 사이에 가졌던 인터뷰의 내용은 질문이 비슷한 것도 많았고(아, 당연한 것인가) 그러니 중복된 느낌의 답도 많았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내 느낌으로 사강은 솔직하고 유머를 좋아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강의 소설과 에세이만 읽었던 나는 그가 희곡도 쓰고 영화도 만들고 드라마도 썼다는 건 몰랐다. 그는 희곡과 소설에 대해 소설은 작가 자신이 더 많이 개입되기에 어렵고 희곡은 바깥을 향하는 장르라서 훨씬 쓰기 쉽다고 설명한다. 연극은 재미를 주고 소설은 열정을 준다고 말한다. 기회가 되면 그의 희곡을 읽어보고 싶다.






독자는 착각한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작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소설 속 인물이 작가의 일부라고 여기는 거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사강의 소설에서, 연애와 사랑에서 그것이 사강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결론지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까. 잘은 모르지만 사랑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확장된 것 같다. 친구를 좋아하고 함께 지내고 그들을 도와주는 사강의 마음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보인다.


사강의 말대로 그는 운이 좋았다. 물론 소설에 대한 비평가의 혹독한 비평이나 문학의 진정성에 대한 비하는 있었지만 사강은 그런 문제에 신경 쓰지 않았고 돈에 대한 부분에서도 풍족함을 누렸다. 술을 마시고 도박을 좋아하고 스피드를 즐긴 모습과 다르게 그녀는 차분한 분위기를 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독자가 안다고 느끼는 사강은 진짜 사강은 아닌 것이다.







저는 차분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 제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제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도함 속에 빠져드는 일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피로함의 극단에서만 쉴 수 있고, 불안함의 극단에서만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심연에서만 새로운 책을 쓰기 시작할 수 있지요. (171쪽)


이 인터뷰집에서 가장 중점적인 분야인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단호하게 느껴진다. 글쓰기의 어려움이 분명 있을진대, 그것에 대한 구질구질한 변명 같은 것 찾을 수 없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명확하게 말한다. 좋아서 쓴다는 것, 얼마나 당당한가. 글에 대한 사강의 생각과 정의는 정말 아름답고 멋지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글 쓰는 게 좋아서입니다. 그것은 악덕인 동시에 미덕이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며, 쾌락으로 바뀌는 미덕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대단히 내밀한 일입니다. (250쪽)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창조해 내기… 우리들의 모든 약점들, 지성과 기억력의 약점들, 마음과 취향과 본능의 약점들, 그것들이 마치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한 군데로 모으기… 그렇게 모은 무기들을 돌격해 오는 ‘무’를 향해 우리 자신의 상상력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백지의 힘의 돌격을 향해 집어던지기. (285쪽)


사강이 좋아하는 프루스트와 생일이 같았던 사르트르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사르트르와 보낸 시간, 그들은 서로의 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바보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실명이 된 사르트르와 식사를 하는 부분에서 사강은 그의 어머니가 된 느낌이었다고 전한다. 매력적이고 지적이고 유머가 많은 사르트르와의 관계, 사강은 그것을 사랑의 한 형태라고 말한다.


앞으로 사강의 소설을 읽을 때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다는 사강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어쩌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 사강,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당돌할 정도로 직진한 사강, 산책을 학 사람을 보고 멍하게 있기도 하는 사강, 그리고 항상 담배 연기와 함께 한 사강을. 그러면서 소설 속 이런 문장이 사강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짐작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휘바람을 불며 하루를 시작할 것 같은 사강, 한 손에는 담배를 쥐고서 말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결코 심연을 좋아하는 그런 취향을 가지지 않을 거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늘 아침에 짧은 사냥 노래를 휘파람을 불면서 잠에서 깨어날 거야. (『잃어버린 옆모습』, 94쪽)






아직 읽지 못한 사강의 소설이 더 궁금해진다. 지난 삶에 대해 후회는커녕 단호하게 기꺼이 자신의 삶을 껴안고 살아가는 당당하고 멋진 사강이 들려줄 사랑과 삶의 이야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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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3-01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 참 좋네요!
그런데 피로의 극단에서만 쉴 수 있고 불안의 극단에서만 안정을 취하다니.. 게다가 절망의 심연에서만 새 책을?? 책이 꽤 많던데..

자목련 2024-03-04 15:00   좋아요 1 | URL
사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자신만의 가치나 신념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쓰는 일은 사강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책읽는나무 2024-03-0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강!
막 좋진 않아도 왠지 끌리는 작가로 다가옵니다. 인터뷰집은 작가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겠군요?^^

자목련 2024-03-04 15:01   좋아요 1 | URL
맞아요, 꽂히는 작가는 아닌데 또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는. 인터뷰집은 그녀의 소설을 더 읽고 싶게 만들고요,

coolcat329 2024-03-0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여자들은 참으로 당당하고 솔직하고 자신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저돌적이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모습이 저는 좀 부담스러워 그다지 관심이 없는 작가지만 그 자신의 캐릭터만으로도 문학계의 스타가 되기 충분한 사람인 건 확실하네요.

자목련 2024-03-04 15:03   좋아요 1 | URL
저돌적이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딱 사강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걸 보면 스타는 스타였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