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을 만나면 설레고 좋다. 울림이 있는 문장을 만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면 신기하고 기쁘다. 그게 아주 사소하고 미미한 것일지라도. 읽다만 에세이의 다음이 궁금하고, 친구처럼 대화를 건네는 작가의 문장을 따라 나도 뭔가 답장을 쓰고 싶어진다. 책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정리된 책들 때문에 집안이 좀 지저분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책을 잘 읽을 수 있다.
소설도 많이 읽고 좋아하지만 에세이가 주는 매력도 놓칠 수 없다. 최근에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강세라는 걸 느낀다. 편안하면서도 색다른 주제를 다룬 에세이, 훔치고 싶은 문장, 나도 따라 쓰고 싶은 문장까지 에세이가 줄 수 있는 느낌들.
좋았던 에세이를 꼽자면 당연 황정은의 『일기 日記』다. 추천 사유엔 사적인 애정도 부인할 수 없다. 소설가의 첫 산문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 과 여러 소설가의 쓰기에 대한 이야기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도 만족도가 큰 책이다.
빠져드는 글들이 있다면 반성하고 각성시키는 글들도 있다. 정희진의 책이 그러하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는 공부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주었다. 나를 아는 일, 나를 찾는 일에 대해 읽고 쓰는 일이 주는 위안과 깨닮음이라고 할까. 황정은의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란 말과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한나 아렌트 평전』도 좋았다. 한나 아렌트를 처음 만나는 책으로도 나쁘지 않다.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잘 몰라고 쉽게 읽을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책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를 위한 가르침보다는 스스로 발견하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고 말해도 좋을까.
죽음은 어디에나 있고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없다. 좋았던 책을 고르고 보니 죽음에 대해 말하는 두 권의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과 『자유죽음』. 무거울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는 주제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 상실과 애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생각한다.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지만 친근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우주, 지구, 에너지,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이 존재한다고 느껴졌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집 『영원히 사울 레이터』,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에 펼치며 사색에 빠진다.
어쩌면 놓치고 만 책들도 있을 것이다. 놓쳐서 더 궁금한 책, 나중으로 미뤄서 조금 천천히 만날 책, 책도 사람과 같아서 만나게 될 책은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2022년에 만나지 못한 책들은 2023년에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