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노크
케이시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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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표지,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저 여인은 무엇을 듣고 있는 것일까. 팔뚝에 드러난 타투 때문일까. 여인에게도 숨겨진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케이시의 장편소설 『네 번의 노트』는 읽기도 전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온 소설이다.


낡고 오래된 원룸 건물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여성 전용층 3층의 계단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3층에는 301호부터 306까지 여섯 명의 여자가 혼자 거주한다. 죽은 남자는 303호의 남자친구. 사건 당일에 303호는 집에 없었다. 같은 층의 여섯 명의 여자는 모두 참고인이자 동시에 용의자가 된다.


소설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경찰이 조사한 ‘내사 보고서’와 ‘참고인 진술서’의 형태로 각각 각각 여섯 명의 신상과 직업, 3층 이웃들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다. 죽은 남자가 6개월 전에 든 보험의 수령인이 여자친구인 303란 사실만으로도 범인으로 가장 유력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다. 나머지 5명에게는 특별한 동기가 없으니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 그렇듯 이 원룸에도 다양한 형태의 삶이 모였다. 무당인 301호,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302호, 사회복지사 303호, 지적장애가 있는 304호, 노점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305호, 건물 청소와 관리를 맡은 306호. 306호를 제외하면 미혼의 젊은 여성이다. 그들에겐 암묵적인 룰이 있다. 옷차림이나 화장으로 삶을 짐작할 뿐 서로에게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이다.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목표가 같다는 정도다.


여섯 명의 화자가 돌아가면 자신의 삶과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원룸에 대한 이미지, 힘겹게 살아온 시간들, 직업에 대한 고충, 사회 전반에 대한 생각들에 이어 3층 여성들의 관찰한 이야기다. 귀신과 죽음,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에 고민을 들려주는 301호, 303호의 소음과 남자친구와의 다툼을 자세하게 기억하는 302호,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자신을 찾는 303호를 좋은 언니라 말하는 304호, 옆집인 304호와 관리인 306호에 대해 언급하는 305호, 참견과 소문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306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게 소설의 전부라고 여겼던 나 같은 독자는 점점 작가가 만든 분위기에 빠져든다. 자발적 비대면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민, 외롭고 고독한 공간에서 벗어나 이웃과 소통을 원하는 마음, 보이는 게 아닌 들리는 것으로 타인의 삶을 짐작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똑. 똑. 똑. 똑

302호의 문을 두드렸다. 첫 방문할 때는 대개 노크를 네 번 정도 해야 한다. 두 번은 친근한 사이일 때, 세 번은 안면이 있을 때. 처 방문일 때는 노크 네 번이 적당하다. (235쪽)


저마다 감추고 숨겨놓은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드러난다. 소설 속 원룸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며 여섯 명의 화자는 결국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일부다. 우리 역시 그들 중 하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뜻이다. 1인 가구의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훌륭한 추리소설이자 스릴러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소설은 끝났지만 삶은 끝이 없고 낡고 오래된 건물의 이미지는 오래 기억에 남아 한 번씩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서로 무관심하게 떨어져 살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운명공동체일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단단한 콘크리트 벽으로 뚜렷한 경계가 그어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우리는 모두 빛으로 연결돼 있다.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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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1-2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싹..🥶

자목련 2021-11-25 11:56   좋아요 1 | URL
아, 정확한 표현이에요.
이 소설 다 읽고 소름 돋았어요 ㅎ

공쟝쟝 2021-11-25 12:05   좋아요 0 | URL
뭐랄까 되게 현실적일 것 같아서 ㅋㅋ 무서운거 읽고 싶을때 읽겠사와요!

자목련 2021-11-25 12:07   좋아요 2 | URL
맞아요, 내가 아는 원룸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고요.

프레이야 2021-11-25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강렬한 느낌이 들어요. 오싹 소름 돋는 소설 요즘 좀 갈증 나던데 찜해 갑니다 자목련 님.

자목련 2021-11-25 14:07   좋아요 1 | URL
네, 표지처럼 내용도 그러해요. 영화로 만들어진다니 더 궁금해져요.

그레이스 2021-11-2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똑,똑,똑,똑
왜 이렇게 소름이 돋죠?

자목련 2021-11-27 15:44   좋아요 0 | URL
이제 노크 소리가 무섭게 들릴 것 같아요.
집콕으로 배달이 많아서 벨 대신 노크가 많은 요즘, 소설 덕분에 조금 경계할 것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