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공식을 생각한다. 공식에 숫자만 넣으면 어떻게든 결괏값이 나오는 공식들. 학창 시절에는 이해도 못 하면서 무조건 외우기에 급급했던 공식들 말이다. ‘함수’의 그래프처럼 ‘기울기’를 구하는 일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차 방정식’, ‘근의 공식’처럼 미지수에 숫자를 대입해 계산하면 간단할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게 삶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사는 게 점점 고되다.

바닥을 치면 괜찮다고 했던가.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으니 바닥을 차고 올라오면 된다고. 그런데 삶이라는 게, 삶의 바닥이라는 게, 그 깊이가 넓고 깊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그 깊이는 삶이 끝날 때까지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바닥의 바닥을 딛고 바닥의 바닥으로 올라선다. 손톱이 자라는 만큼 좋아지는 기미가 보인다고 믿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절망은 한 뼘씩 자란다. 절망에도 절망하지 않는다고, 나름 나는 단단해졌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마음과 잠시 멀어지고 만다. 이문재 시인의 『혼자의 넓이』를 뒤적이다 만난 시 덕분에 다시 절망하지 않을 힘을 붙잡는다. 나를 찾는 게 삶이고 삶이 나를 찾는다로 바꿔 읽으면서.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루미의 시 한 구절이다


이렇게 바꿔 읽을 수 있겠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나를 찾고 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나를 찾고 있다고?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신은 아마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을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써야 한다


어쩌면 당신이 찾고 있는 것

당신을 찾고 있는 것

둘 다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 둘을 찾을 때까지

저 돌이 기어코 만날 때까지

되뇌고 되뇌고 또 되뇌어야 한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전문)



이런 시를 읽을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하다. 나와 닮은 슬픔을 나와 닮은 절망을 나는 힘껏 안아줄 수 있으니까. 오래 만진 슬픔, 오래 만진 고통은 이미 내 안으로 파고들었고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내게로 스며든 것들은 따로 떼어놓고 볼 때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시집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좋은 이에게, 가까운 이에게 마구 추천해야겠다.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지니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다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 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한 자리에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오래 만진 슬픔」, 전문)


오히려 바닥의 바닥은 끝이 아니니 다행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더 할 수 있는 일들이, 해볼 만한 것들이 남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슬픔과 고통이 키운 힘을 생각한다. 그것들로 채워진 나의 일부는 얼마나 단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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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11-1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랜만에 이이의 이름을 듣고, 시를 읽습니다. ^^

자목련 2021-11-20 12:20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올 봄에 낭노 시집이 참 좋았습니다.
미세먼지가 나쁨이지만, 그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1-11-19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만추도 이제 겨울로 접어드나 봐요
이문재 시집이 새로 나왔군요. 반가운 마음에
덥석 담아갑니다. 건강히 지내세요 ^^

자목련 2021-11-20 12:21   좋아요 0 | URL
내일 밤에 비가 내리면 추워진다고 해요.
이문재 시집, 좋습니다^^
따뜻한 오후 이어가세요^^

scott 2021-11-19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올려 주신 시
여러번 읽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서울은 요 며칠 미세먼지로 가득!
자목련님 건강 잘 챙기세요. ^ㅅ^

자목련 2021-11-20 12:21   좋아요 2 | URL
스콧 님의 마음에도 좋은 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2021-11-2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3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5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