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뜻이다. 상식과 지식을 총동원해도 기이하고 이상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그런 일의 대부분은 당사자만이 그 당혹스러움을 느낄 뿐 주변에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코」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코가 사라질 수 있을까? 심지어 통증도 없다. 얼굴에서 코만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의 코발료프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불상사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코를 찾으려 한다. 경찰서에 가고 심지어 코를 찾는 광고를 내려고 한다. 놀라운 건 그의 눈에 자신의 코를 만나기도 한다. 자신보다 높은 관등으로 나타난 코. 오직 자신만이 그가 자신의 코라는 걸 알 수 있다. 코가 없어진 것도 기절할 노릇인데 그런 코가 사람 행세를 하다니. 아, 이런 기발한 상상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허황된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곳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하여튼 잘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이야기 속에는 확실히 무언가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곤 한다. 드물지만 일어나는 것이다. (「코」, 58쪽)


코는 아무렇지 않게 코발료프에게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마냥 웃으며 재밌게 읽다가도 헛헛함을 느낀다. 고골이 코로 비유한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명예와 부, 권력 끝없는 욕망은 아닐까. 유머로 세상을 비판하는 고골의 날카로움은 단연 단편 「외투」에서 빛을 발한다. 관청에서 9급 관리로 일하는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서기로 일한다. 관청의 서류를 정서하는 업무를 성실하게 해낸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하며 박봉으로 소탈하게 살아가는 그에게 가장 강력한 적은 페테르부르크의 추위다. 아카키 아키키예비치에게도 그런 시련이 닥쳤다.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아서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새 외투를 장만하는 대신 수선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재봉사는 아카키 아키키예비치의 외투를 보더니 절대 수선할 수 있는 상태라 아니라고 말한다.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새 외투를 장만하기 위해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돈을 지불한다.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한껏 들떠 걷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깨 위에 있는 새 외투를 매 순간 느꼈고, 심적으로 만족하며 미소까지 몇 번 지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했다. 하나는 외투가 따뜻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멋져 보여서였다.( 「외투」, 88쪽)


새 외투를 입은 그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라는 걸 상상할 수 있다. 관청의 사람들도 그를 다른 사람으로 대접한다. 외투 하나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심지어 상사가 그를 대신하여 축하파티에 초대한다. 관청과 집, 서류 정서로 이어진 단순한 일상이 아닌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상사가 사는 도시로 가는 그 밤은 아름다웠고 놀라웠다. 모든 게 순탄한 것 같았는데 파티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광장에서 외투를 잃어버린다. 누군가가 그에게서 외투를 벗겨갔다. 전부인 외투를 찾기 위해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경찰서장을 찾지만 헛수고였다. 아카키 아키키예비치는 ‘중요 인사’를 찾아가지만 돌아오는 건 책망과 호통이었다. 외투 없이 추운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열병에 걸려 죽고 만다. 그 후 페테르부르크에는 밤마다 유령이 나타나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아 간다는 소문이 가득하다.


작은 눈덩이들이 그의 얼굴을 때리며 날라왔고, 그의 외투 옷깃은 마치 돛처럼 펄럭였다.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의 머리에 불어닥치는 이 돌풍은 그를 거기에서 빠져나오도록 부단히 애를 쓰게 만들었다. 중요 인사는 돌연 누군가가 목의 옷깃을 아주 세게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몸을 돌린 중요 인사는 낡고 해진 제복을 입은, 크지 않은 키의 사람을 보았고, 그가 아카키 아키키예비치임을 깨닫고 공포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외투」, 114쪽)


고골이 소재로 한 코와 외투는 같은 듯 다르다. 코발료프에게 코는 신체의 일부지만 없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인간의 허영심에 대한 이야기라면 아카키 아키키예비치엑 외투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에게 외투는 가족이었고 삶이었고 자신이었다. 유령이 되어 자신의 외투를 찾으려 할 정도로 간절한 대상이었다. 외투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생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 누군가의 외투를 함부로 대하거나 빼앗아서는 안 된다.


나머지 단편 「광인의 수기」, 「소로친지 시장」, 「사라진 편지」는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동화처럼 다가온다. 「광인의 수기」속 주인공은 개들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이 스페인의 국왕이라고 착각한다. 한 편의 뮤지컬처럼 느껴지는 「소로친지 시장」은 제목 그대로 소로친지 시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왁자지껄 소동을 벌이고 악마가 등장하기도 하며 그 안에서 누군가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필사의 전략을 짠다. 「사라진 편지」는 화자가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경험담이다. 여왕께 편지를 전하기 위해 떠난 길에서 할아버지가 만난 사람들. 「소로친지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악마가 등장한다. 「소로친지 시장」에서는 술집 주인이 손님이 담보로 맡긴 옷을 팔아버렸고 할아버지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다. 신의를 저버린 인간에게 나타난 악마라고 할까. 그렇다고 해서 악마가 몹쓸 짓을 하거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일종의 죄에 대한 경고라고 하면 맞을까.


고골의 단편은 유머를 장착한 사회 비평이다. 험한 세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고 조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1830년대 그의 소설이 21세기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진심을 혹독하게 받아들이고 새겨야 하지 않을까. 고전을 읽고 그것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붕툐툐 2021-09-06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너무 귀엽네용! 저도 외투만 읽은 거 같은데,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용!

자목련 2021-09-08 15:19   좋아요 1 | URL
그쵸, 책 선택에 있어 표지도 중요해요 ㅎ

새파랑 2021-09-06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랑 외투는 많이 들어봐서 읽어본 느낌이 드는데 아딕 읽어보진 않았는데 팽귄클래식 버전으로 곧 읽어봐야 겠어요 ^^ 역시 러시아 작품은 풍자가 뛰어난것 같아요 😄

자목련 2021-09-08 15:19   좋아요 3 | URL
어쩌면 읽다 보면 읽었구나 싶을 것 같아요. 저는 외투가 그랬거든요. ㅎㅎ
새파랑 님, 활기찬 오후 보내세요^^

오늘도 맑음 2021-09-06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편작품을 기피하는 편인데요. 자목련님의 코에관한 글을 보니 정말 읽고 싶어지네요. 그러고보니 여태껏 고골작품을 읽어본적이 없네요ㅠㅠ 작품이 서평 만큼이나 재밌으면 좋겠어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1-09-08 15:18   좋아요 3 | URL
맑음 님도 즐겁게 읽으실 거라 생각해요. 코, 외투는 재미와 함께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어요.
즐겁고 맑은 오후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