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는 열어둔 문들을 닫지 못한다. 밤에도 낮에도 새벽에도 문은 열려 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열려있다. 그 틈으로 모든 소리가 들어온다. 복도를 지나는 옆집 사람들,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 기사님, 복도를 내달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덤이다. 그 모든 게 즐겁게 들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소음처럼 다가온다. 내가 그렇게 듣기 때문이다. 위층 어느 집은 같은 종종 피아노를 친다. 그 소리가 잘 들릴 때가 있고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잘 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꽤 성실하게 치는 것 같다.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어떤 날은 그냥 그렇게 들린다. 요란하게. 우렁차게 들리는 게 아니라 요란하게.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소리에 조금 예민하고 조금 불편하다. 그건 내 기분이 그렇다는 말이다. 문자의 알림에도 그렇게 반응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안전 안내 문자를 받는다. 폭염, 코로나 백신 접종에 관해서다. 그 안에는 정보와 안전을 위한 정보가 담겨 있다. 아무렇지 않게 확인 후 삭제한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대한 안내를 받으면 쉽게 삭제할 수 없다. 더 자세히 보고 저 오래 본다. 정보와 안전을 안내하기 위한 목적인데 불안을 전달한다. 그런 이유로 주변에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받지 않는 이들도 있다. 운전이나 주요 업무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기분에 따라 모든 게 변화한다. 그런 기분을 변화시키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우연하게 듣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어떤 말들이나 노래, 친구가 보낸 풍경 사진(거의 자연이다. 나이가 든 증거라고), 소소하게 주문한 물건들. 어제 그런 물건이 도착했다. 책을 주문하면서 주문한 북엔드. 고백하자면 내게는 북엔드가 많다. 차고 넘친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걸 주문했는지.
하지만 어떠겠는가. 그 당시의 기분은 높낮이로 표현하자면 낮았고 나는 그때 스누피를 발견했다. 사용할 수 있는 쿠폰도 있었으니 구매할 수밖에.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주문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실용성에 대해서는 나쁘지 않은 정도. 북엔드 말고 이런 소설도 기분을 바꿔준다.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밝은 밤』과 넬라 라슨의 『패싱』, 두 권의 소설이다.
8월의 소설이 되겠지. 두 소설 모두 여성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밝은 밤』은 단편소설에서 느꼈던 최은영의 분위기를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할머니, 할머니의 엄마, 그들이 등장하는 여성 서사가 아닐까 싶다. 아직 읽기 전이라서.
한동안 스누피를 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고마워, 스누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