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 이은정 -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
이은정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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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쓴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쓴다. 문자를 보내고 간단한 톡을 하고 댓글을 쓰고 긴 메일을 쓰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어떤 이는 정성을 담아 손 편지를 쓸 것이고 어떤 이는 소설을 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모두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 ‘쓰는 사람’이라 말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그럼 쓴다는 건 무엇일까.


『쓰는 사람, 이은정』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가 부러웠다. 이 사람은 쓰는 게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런 당당함이 내게로 전염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처음엔 저자의 이름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낯선 이름은 아니었는데 그가 쓴 글이 글의 분위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책을 읽자마자 알 수 있었다. 집을 구하는 이야기, 대출이 되지 않는 형편, 그 모든 사정을 알고 흔쾌히 매매가 아닌 형태로 집을 내어준 주인. 그랬다. 나는 이 작가를 알고 있었다. 반려견과 살아가는 이야기,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떠난 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했던 작가였다.


편안하고 따뜻했던 글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감사와 긍정을 퍼올리는 그런 글이었다. 시골 동네에서 매일 마주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 병원을 오가고 붕어빵을 사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고생한 이야기, 냉랭했던 이들과 조금씩 친해지고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 모든 게 삶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생, 그녀의 자리에 나를 놓아도, 나의 지인이 들어가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세대가 비슷해서 그럴 수도 있고 감성이 같은 부분이 있어도 그럴 수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삶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기에.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아이에게 글쓰기를 부탁할 때 그 마음을 알기에 글쓰기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곁에 있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려 애쓰는 사람.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할 때 아이의 눈물이 너무 가슴 아픈 괜찮은 어른. 그런 사람이 쓰는 글이었다. 이제 나는 ‘마음 쓰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그를 기억할 것 같다. 말 그대로 마음을 쓰는 일은 어렵다. 글로 쓰는 것도 어렵고 타인을 향해 마음을 쓰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극한의 추위나 배고픔에 시달리면, 폭력이나 공포에 길게 노출되면 마음 쓰는 법을 잊게 된다. 나 자신이나 타인에게 어떤 마음을 쓰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나와의 관계도, 타인과의 관계도 틀어지는 원인이다. 그 시기가 깊어지면 병이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문학이나 밥벌이는 고사하고 잠을 자는 일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어진다. 가난 때문만이 아니라 마음 쓰는 법을 잊어버리고 살았기에 삶이 더 고달팠던 것 같다. (94쪽)


상대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마음. 상처가 되지 않도록 그 아픔을 지긋이 눌러주고 보살필 수 있는 마음은 상처로 인해 단단하고 무뎌졌을 때 조금 알 수 있다. 아무 제목의 글을 골라 읽어도 그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다. 아니, 그를 둘러싼 이들의 온기에 스며드는 것이다.


어디든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어렵다. 작가가 일 때문에 자주 방문하는 우체국에서 느낀 냉랭함. 그것이 점차 따뜻함으로 변한 건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업무로만 대하는 게 아니라 안부와 함께 슬그머니 간식을 건네는 일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작가가 오랜만에 방문하자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다는 마음이 돌아온다. 경계를 허무는 일은 어려운 게 아리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던 벽을 만든 건 모두였을 것이다. 나 역시 지금 어떤 형태의 벽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이 화끈거린다.


아, 글이라는 게 무엇일까. 때때로 생각한다. 내가 반한 글은 무엇일까, 나는 쓸 수 없는 글은 무엇일까. 나도 쓸 수 있는데 뭔가 다른 그 느낌,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추운 겨울에 기름보일러의 기름이 떨어지면 바로 채울 수 없어 장갑을 끼고 글을 쓰는 삶을 아는 사람, 어린이에게도 인생을 배울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 실패의 경험에 멈추지 않고 쓸 수 있는 건 그 일이 즐겁고 기쁘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그의 글이 주는 진심을 알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은 날마다 처음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매일 처음을 산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십대도 육십대도 오늘은 처음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무엇을 시작하더라도, 그 무엇을 실패하더라도 모두 처음이니 아무런 어떨까. (134쪽)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힘든 세상이다. 코로나 블루를 껴안고 사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력도 없다. 그래도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 마음을 써야 하는 게 맞다. 쓰는 사람인 저자처럼 우리는 더 열심히 써야 한다. 마음을 쓰고 사랑을 쓰고 삶을 쓰는 것. 저마다 재료와 형태는 다른 삶을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는 쓰는 사람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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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22 17: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글에는 향기가 느껴집니다.
모든 인생은 날마다 버티고 살아 남는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내일이라는 희망이!!

무더위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는 7월
자목련님 건강 잘 챙기세요 ^ㅅ^

자목련 2021-07-23 16:44   좋아요 2 | URL
음, 향기라는 말씀을 덥썩!!
버티는 일이 힘들지만 그래도^^
건강한 오후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07-22 1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플에 있는 분들은 모두 쓰는 사람은 맞는것 같아요. 글도 쓰고 마음도 쓰는사람 ~!!

자목련 2021-07-23 16:43   좋아요 3 | URL
글도 쓰도 마음도 쓰는^^
바람도 덥게 느껴지는 오후, 시원하게 보내세요^^

mini74 2021-07-22 22: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각자 모두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써나가고 있는 거란 말씀이지요. 공감합니다 *^^*

자목련 2021-07-23 16:43   좋아요 3 | URL
맞아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써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