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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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만으로는 부족했다. 내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251쪽)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이다. 월급으로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학자금 대출, 전세금 대출의 이자를 내고 월세를 내고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이들 말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시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N잡러가 되는 사람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월급날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건 직무유기였다. 그게 뭐든 관심을 갖고 촉을 세우며 달려들어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티끌은 티끌일 뿐 한 방이 필요했다. 장류진의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속 마론제과의 입사 동기 다해, 은상, 지송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겨우 취업을 했을 뿐 나아지는 건 없었다. 동료나 상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니 인사평가는 매년 같았고 연봉도 제자리였다. 하루하루 버거운 일상, 화자인 다해에겐 은상과 지송과 만난 점심을 먹는 짧은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나와 같다는 동질감이 그들과 더욱 긴밀한 사이로 이끌었다. 누군가 인사평가를 높게 받았거나 나보다 잘 나갔다면 셋의 관계는 화해되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 직장 생활에서는 반드시 필요했다. 다행스럽게 셋은 서로를 진심으로 대했다. 그래서 연장자인 은상이 ‘이더리움’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을 때 믿고 따를 수 있었다. 가상화폐가 뭔지도 모르면서 은상이 던지는 확신에 확신을 더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세 명의 여성은 지금 우리 시대의 대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본이라고 할까. 취업이 전부가 아닌 시대, 노력 이상의 운이 따라야 내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시대의 고민과 절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 ‘이더리움’의 등락에 울고 웃는 모습은 부동산과 주식을 향한 누군가의 열망과 포개어진다. 절실한 그들의 마음은 현시대의 흙수저를 대변한다고 할까.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인 ‘가상화폐’란 소재를 떠나서 가장 현실적으로 시대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고 소설 속 인물에 몰입하게 된다. 가볍고도 발랄한 위트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모래사막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다. ‘달까지 가자’란 소설의 제목은 허무맹랑한 기대인지도 모르다. 하지만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갈 수 있는 세상을 열망할 수는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명백한 벼랑의 끄트머리였다. 크고 사나운 물결이 너울질 때마다, 험한 파도가 벼랑을 힘껏 때릴 때마다 그 가장자리가 조금씩 침식되었다. 내가 서 있는 땅의 경계가 자꾸만 깎이고 부서졌다. 돌가루가 디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게 내 눈으로 고스란히 보였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부서져 추락한 것들이 어디까지 떨어지는지는 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가 끝도 없이 떨어졌다. 땅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그게 가장 두려웠다. (331쪽)


열심히 하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를 마주하는 건 서글픈 일이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그만큼 고통을 체득하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다. 나가야 한다는 걸 알기에 자꾸만 시선을 돌릴 수밖에. 무엇에 동참해야 할까. 무엇을 놓치지 않아야 될까. 그리하여 시대를 읽는 일, 어떤 시류를 몸을 맡겨야 할지 수없이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모두에게 잠시나마 신나는 상상을 선사한다. 독자의 욕구를 잘 파악한 장류진 작가의 영리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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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26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읽어서 리뷰보니 더욱 생생해요! 장류진작가님 정말 영리하게 잘쓰시는 듯 ^.^

자목련 2021-06-28 15:35   좋아요 1 | URL
공쟝쟝 님의 멋진 리뷰가 소설을 아주 잘 보여준 것 같아요. 가상화폐(에 관심 있는 있는 이들에게 아주 즐거운 소설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서니데이 2021-06-26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가상화폐가 뉴스에 많이 나오는데, 시기에 잘 맞는 소재 같습니다.
자목련님,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6-28 15:32   좋아요 2 | URL
네, 작가가 의도와 시대의 흐름이 잘 맞았다고 할까요.
이제 진짜 더위의 날들이에요. 서니데이 님도 시원한 오후 이어가세요^^

초딩 2021-07-07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관왕 축하드립니다~
:-)

자목련 2021-07-09 16: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딩 님도 축하드려요^^
시원한 오후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7-0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7-09 16:08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